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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인터뷰] 화석 없이 200만 년 전 그린란드를 복원하다

대서양 북극 어귀에 있는 덴마크의 거대한 섬, 그린란드. 이곳에서도 북위 80°가 넘는 최북단의 피오르 어귀에는 ‘카프 쾨벤하운 층(kap københavn formation)’이 쌓여있다. 극지 사막으로 생명의 흔적조차 찾기 힘든 이곳의 과거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최근, 커트 키에르 덴마크 코펜하겐대 교수팀은 카프 쾨벤하운 층의 퇴적물에 남아있는 DNA를 발견했다. 이 DNA를 분석하자, 200만 년 전 그린란드에서 번성했던 다채로운 생태계가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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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란드, 현재

화가 베스 자이켄이 그린 카프 쾨벤하운층 일대의 현재 모습. 강이 침식하여 드러난 언덕으로 퇴적층이 보인다. 이곳의 극지 사막은 매우 춥고 건조하여 이끼나 키작은 초본만 자랄 수 있다.멀리 그린란드에 사는 가장 큰 동물인 사향소 무리가 어슬렁거리고 있다. (Beth Zaiken/bethzaiken.com)

 

200만 년 전

그린란드,약 200만 년 전

과학자들이 재구성한 약 200만 년 전 그린란드 카프 쾨벤하운 층 일대의 생태계. Beth Zaiken/bethzaiken.com

 

 

200만 년 전 그린란드는 생물의 낙원

 

지금은 북극의 여름, 해가 지지 않는 백야. 먼 산등성이 너머로 낮은 해가 다시 얼굴을 비추자 끝없이 펼쳐진 푸른 자작나무 숲이 드러난다. 거대한 마스토돈 몇 마리가 연못가에서 물을 마시며 소란을 일으키자 놀란 기러기 떼가 푸드덕 날아간다. 토끼와 통통한 나그네쥐도 황급히 몸을 숨긴다. 저 멀리 어린 측백나무 사이로는 순록들이 어슬렁거리며 키 작은 풀과 이끼를 뜯고 있다.

 

얼음으로 덮인 황량한 그린란드에 익숙하다면 상상하기 힘들겠지만, 이 광경은 200만 년 전 그린란드의 생태계를 재구성한 모습이다. 작년 12월 7일, 예스케 윌에슬류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와 커트 키에르 덴마크 코펜하겐대 지질유전학 센터 교수 연구팀은 그린란드 북부의 빙하기 퇴적물에서 발견한 DNA를 분석해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doi: 10.1038/s41586-022-05453-y 이 논문에 따르면 신생대 제4기 플라이스토세였던 200만 년 전 그린란드에는 풀과 나무가 우거진 숲은 물론, 나그네쥐, 순록, 토끼, 거위, 곤충은 물론 코끼리의 친척으로 현재는 멸종한 마스토돈이 살았다. 또 해양 생물인 투구게와 녹조류 등 다양한 생물이 생태계를 이루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팀의 분석 대상이 된 카프 쾨벤하운 층은 거의 100m 두께로 쌓인 퇴적층으로, 마른 나뭇가지와 이끼를 비롯한 잔해가 발견됐다. 지질학적 증거와 고기후 연구 결과를 토대로 과학자들은 200만 년 전 그린란드가 현재보다 10℃ 이상 따뜻한 기후였으며, 숲으로 덮인 광경이었으리라 추측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카프 쾨벤하운 층에서 나무와 곤충을 제외한 다른 동물들의 화석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연구팀은 어떻게 고대 그린란드의 모습을 복원할 수 있었을까?

흙 속에서 퍼 올린 고환경DNA에서 실마리를 찾다

 

연구팀이 퇴적물에서 찾아낸 것은 고생물의 형체가 보존되어 있는 화석이 아니라 고생물의 DNA였다. 생물은 살면서 주위에 DNA를 흩뿌린다. 사람의 경우, 머리카락이나 땀, 비듬, 피, 배설물에 DNA가 섞여 있다. 이렇게 떨어져 나온 DNA는 자외선이나 효소 등에 의해 서서히 분해되지만, 공기나 물, 토양 등에 잠시 남아있기도 한다. 이렇게 생물에서 떨어져 나와 주위 환경에서 채취된 DNA를 ‘환경DNA(eDNA)’라 부른다. 매우 적은 양의 eDNA가 검출되더라도 중합효소 연쇄 반응(PCR)을 통해 DNA의 양을 증폭해 원하는 생물의 DNA가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eDNA는 DNA 탐지 기술이 발전하면서 최근 급속도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예를 들어 생태학 연구자들은 조사하기 힘든 위험하고 방대한 지역이나 찾기 힘든 희귀종을 찾을 때 eDNA 기술을 활용한다. 2018년, 미국지질조사국(USGS) 과학자들은 바닷물에서 멸종위기종인 수생 포유류 매너티가 남긴 eDNA를 탐지하는 방법을 개발해 미국 플로리다와 아프리카 카메룬 등지에서 매너티를 찾기도 했다.doi:10.3354/esr00880

 

eDNA가 오랜 시간, 매우 오랜 시간 동안 남아있다면 어떨까? 지난 1985년, 스반테 페보 당시 스웨덴 웁살라대 연구원이 이집트 미라에서 오래된 DNA를 추출하여 분석하는 데 성공한 이후로 약 40년 동안 고DNA 연구는 엄청난 발전을 거듭했다. 지금까지 고DNA 연구자들은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 같은 고인류를 거쳐 약 100만 년 전의 매머드 화석에서 DNA를 검출하는 데 성공했으며, 고DNA연구 분야를 열어젖힌 스반테 페보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 연구소장은 202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연구팀은 퇴적물에 고생물의 DNA 흔적이 남아있을지 모른다고 추측하고 5개 지역에서 채취한 41개의 시료에 DNA가 남아있는지 확인했다. 그 결과, 점토 광물 표면에 부착된 200만 년 전의 eDNA가 검출되었다.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고DNA보다 무려 100만 년이나 오래된 DNA가 발견된 것이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자신들이 찾은 DNA를 ‘고환경DNA(ancient eDNA)’라고 칭했다.

 

연구팀이 퇴적물에서 발견한 고환경DNA는 당시 생태계에 살던 모든 생물-숲을 이루는 나무와 풀은 물론, 그 위를 활보하며 잎사귀를 뜯어먹었을 수많은 동물, 죽은 동물을 분해한 균류까지-의 DNA가 부서져 섞인 잡탕 상태였다. 연구팀은 이 DNA 잡탕, 즉 생태계 전체의 DNA 상을 담고 있을 ‘메타게놈’을 현존하는 생물들의 DNA 라이브러리와 비교했다. 만약 서열이 겹치는 DNA가 발견된다면, 200만 년 전 그린란드에 지금과 같은 생물이 살았다고 추측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그린란드 퇴적물의 DNA 잡탕에서 놀랍도록 다양한 생태계가 복원되었다. 여기에는 토끼처럼 지금도 그린란드에서 발견되는 종이 있었는가 하면, 들쭉나무나 난쟁이자작나무처럼 현생 종이지만 더는 그린란드에 살지 않는 종, 코끼리의 친척이며 털로 덮인 마스토돈처럼 멸종한 종도 있었다. 흔적이 드러난 생물 중 육식동물은 발견되지 않았는데, 연구팀은 논문에서 “식물이나 초식동물에 비해 생물량이 적어서일 수 있다”고 추측했다. 다른 생물에 비해 상대적인 DNA의 양이 적어 보존되기 힘들었으리란 뜻이다.

퇴적물에서 발견한 그린란드의 오래된 미래

 

커트 키에르 교수팀의 이번 연구가 네이처의 표지에 선정될 정도로 많은 관심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이 연구는 지구의 과거를 밝히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했다. 고DNA가 보존된 새로운 원천을 찾아내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고DNA의 연대를 약 100만 년이나 앞당긴 것이다.

 

DNA는 보통 춥고 건조한 환경에서 잘 보존되는데, 키에르 교수팀은 이번 연구에서 석영과 점토 광물에 흡착된 DNA가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보존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앞으로는 석영과 점토 광물이 고DNA 사냥꾼이 노리는 새로운 사냥감이 될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DNA 분자가 광물 표면에 달라붙어 형태가 변하면서 DNA 분해 효소의 반응이 방해받았으리라 추측했다. 윌에슬류 교수는 보도자료에서 “어쩌면 앞으로 덥고 습한 아프리카의 점토에서도 고DNA를 찾아낼 수 있을지 모른다”며, “수많은 종, 심지어는 인류의 조상과 그 기원에 대해서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라 밝혔다.

 

이 연구가 제시하는 또 하나의 방향은 미래에 있다. 카프 쾨벤하운 층에서 찾아낸 과거의 그린란드 생태계가, 지구 온난화로 다가올 미래 그린란드의 모습과 닮았으리라는 추측 때문이다. 키에르 교수와 함께 논문의 공동 제1 저자인 미켈 페데르센 덴마크 룬드벡 재단 지질유전학 센터 교수는 “카프 쾨벤하운 층의 생태계는 현재 지구상의 어떤 생태계와도 다르며, 지구 온난화로 인해 우리가 예상하는 미래의 그린란드 기후와 비슷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카프 쾨벤하운 층의 증거는 한대 기후의 식물들이 200만 년 전 따뜻한 그린란드의 기후에도 잘 적응했음을 보여준다. 이 식물들이 지닌 어떤 DNA가 열 저항성을 가졌는지 알아낼 수 있다면 앞으로 지구 온난화로 멸종 위기에 처할지도 모르는 식물들을 보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키에르 교수팀의 연구는 카프 쾨벤하운 층의 퇴적물을 분석하여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풍경을 들여다보는 작은 창을 열었다. 이 창을 통해 보이는 광경은 200만 년 전 과거 따뜻했던 그린란드의 생태계일 뿐만 아니라, 어쩌면 다가올 미래에 인류가 맞이하게 될 풍경일 수도 있다. 퇴적물 양동이에 담긴 고환경DNA는 그린란드의 과거 생태계가 인류로 하여금 지구 온난화 시대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보여주는 ‘오래된 미래’일지도 모른다.

 

2023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이창욱 기자
  • 디자인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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