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율은 가장 순수한 절망이다.
케이(K)는 이전에 이 감각을 겪어보았다. 그래서 방금 느낀 게 전율임을 이해한다.
첫 전율은 스승이 의뢰받아 만든 기계화 의체(인공몸)를 보았을 때 느꼈다. 그녀의 스승인 제이(J)는 먼 과거의 인형 만드는 기술을 계승한 인형사였다. 인간과 유사한 모조품을 만드는 일을 업으로 삼아온 인형사들은 오래전부터 사람의 모조 신체를 만드는 일도 해왔다. 제이도 마찬가지였고, 케이도 인형사 수업과 조율사 수업을 같이 듣고 있었다.
문제는 스승과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이었다. 세계를 뒤덮은 전쟁의 포화로 많은 이들이 신체 일부를 잃었다. 케이는 어린 시절 지뢰를 장난감처럼 가지ㅃ고 놀다 왼팔을 잃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신체를 기계화 의체로 대체한 사람은 이 세계에서 이방인이 아니었다. 바야흐로 기계화 의체와 조율사의 시대였다.
스승은 수완 좋은 조율사는 아니었다. 쾨르퍼사의 규격에 맞추어 기계화 의체를 제작하거나, 그 기업에 소속된 조율사도 아니었다. 제이는 쾨르퍼사의 기계화 의체, 일명 비오-아우토(Bio-Auto)가 전 세계 점유율이 87%에 달하는 세상에서 독자 규격으로 기계화 의체를 제작하는 조율사였다.
비오-아우토가 쾨르퍼사의 기계화 의체만을 일컫는 게 아니라 기계화 의체의 새로운 이름이 되어가는 시대였다. 굳이 독자 규격으로 의체를 맞추려는 사람은 로봇이 인간을 지배할 것이고, 인간은 인공지능의 노예가 되어 살아갈 것이며, 대기업에 종속되는 삶은 인간다운 삶이 아니라는 신경증 환자뿐이었다.
물론 케이의 왼팔도 스승이 만들었다. 다만 케이는 성장기였고, 매일 같이 자라는 몸에 맞추어 왼팔을 자주 갈아주어야 했다. 매년 만들어주는 의수는 쾨르퍼사의 기본 비오-아우토와 비슷했다.
앙상한 금속제 뼈대에, 팔을 접었다 펼 수 있고, 손가락을 움직이는 정도였다. 지금에야 개인이 매년 그만큼 만드는 것도 일이라는 것을 알지만, 케이는 어린 마음에 차라리 튜닝도 편한 비오-아우토를 끼고 싶다고 말한 적도 있다.
“나도 너한테 제대로 된 거 만들어주고 싶어! 네가 주 단위로 쑥쑥 크는데 어떻게 거기에 맞춰서 매번 만들어!”
그 말을 들은 제이는 한참 성냈지만 팔에 기능을 추가하지 않았다. 현실은 현실이었다. 케이는 확실히 다른 아이들보다 쑥쑥 컸으니까.
스승에게 기계화 의체를 의뢰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케이는 딱 한 명 보았다. 쾨르퍼사의 생체칩은 백도어가 있어, 독자 규격이 아니면 언젠가 자신의 뇌가 해킹당할지도 모른다고 믿는 음모론자였다.
그 사람은 독자 규격 조율사 중에서도 인형사를 찾아왔는데, 인형사이면서 조율사인 자들은 당연히 비오-아우토와 뇌를 연결하는 생체칩도 독자 규격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 음모론자는 인형사에 대해 조사도 해왔다. 인형사는 세계를 떠돌며 오래된 수공예 기술을 모으고, 그 기술을 손에 익히면 다른 기술을 찾아 떠나는 것까지도 알고 찾아왔다고 했다.
그의 요구 사항은 간단했다.
‘떠돌이를 일일이 쫓아가서 고쳐달라 할 수 없으니 오랫동안 쓸 수 있는 팔을 만들어주시오! 만약 팔이 고장 나면 다른 조율사를 찾는 게 아니라 세계 어딘가에서 떠돌 당신을 찾아서 고쳐달라 할 정도로 만족스럽게 만들란 뜻이야!’
세상에, 어쩜 저렇게 로맨틱한 말을 할 수 있담. 케이는 낯부끄러워 읽던 책 속으로 얼굴을 숨겼다. 제이는 그 손님이 마음에 든다며 가격 흥정도 없이 그 돈을 받았다. 쾨르퍼사의 비오-아우토 기본형보다 세 배 정도 되는 돈이었다. 기본형 비오-아우토에 생활에 필요한 기능을 튜닝하다 보면 그만큼은 들기 마련이라, 아주 큰 돈은 아니었다.
‘팔은 사람 팔처럼 만들어 드릴까, 기계인 게 티 나도록 할까?’
‘티 팍팍 내줘!’
스승이 그 사람에게 물어본 유일한 질문이었다. 스승은 작업하는 내내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오래간만에 들어온 일이어서, 돈을 벌어서 기분이 좋은 게 아니었다. 자기 딴에는 큰돈을 내놓으면서 만들어질 의수에 대해 전혀 간섭하지 않고, 오로지 결과물로만 평가하겠다는 그 손님의 태도야말로 이상적인 의뢰인의 태도였기 때문이었다.
스승이 모든 것을 쏟아부어 완성한 기계화 의체를 본 케이는 처음 전율을 느꼈다.
그 형태는 본능에 새겨진 감각을 깨웠다. 태어나서 아름다운 것을 본 적 없는 자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보편적인 아름다움이었다. 미가 무엇인지는 알아도 그것을 추구하지 않는 자를 이 길로 인도할 정도로 관능적이었다. 그리고 아름다움을 추구해온 자들에게는 완성된 이상이었다.
완성된 아름다움, 더 뺄 것도 장식할 것도 없이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 다른 가능성으로 뻗어 갈 상상력마저 차단하는 절대적이고 완전한 미가 케이 앞에 있었다.
케이는 절망했다. 스승은 영영 닿을 수 없는 거리에서 빛나는 별이었다.
그리하여 케이에게 전율은 절망이 되었다.
절망이란 어긋남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육체와 정신은 아직 이 순간에 머물러 있는데 이미 세계는 자신과 너무 멀어져 버린, 그 괴리감에서 오는 감정이다.
케이는 지뢰를 만졌다. 지뢰가 폭발하는 순간에 케이는 머물러 있었다.
눈을 떴을 때 왼팔이 기계가 되어있었다. 케이는 왼팔의 감촉을 기억했다. 하지만 그 감촉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케이는 스승이 정성 들여 만든 기계화 의체를 보았다. 절망은 미래에서 현재로 밀려왔다.
알파벳 순서대로 I에서 J가 되고, J 다음에 K가 오지만 K는 L로 이어질 수 없다. 이미 J의 순서에서 인형사의 업은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 케이는 그만한 전율을 느꼈다.
그것은 현재와 어긋난 과거의 몸도 아니었고, 불시에 덮쳐온 미래에 대한 예지도 아니었다. 오늘 케이가 마주한 것은 지금 여기에서 소용돌이치는 날것의 욕망이었다.
“스승님, 저는 무서워요.”
“오늘 본 건 그럴 만했어.”
두 사람은 의뢰를 해결한 공사장에서 걸어서 공방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제이는 케이에게 광장 자판기에서 코코아를 뽑아 주었다.
“너도 아직 어리니까, 다른 길을 가는 인형사는 아직 못 봤을 테고.”
오늘의 의뢰는 공사장에서 일하는 로봇들의 파업을 사측과 중재하는 일이었다.
느닷없이 로봇들이 하루 30분씩, 2번 정비하는 시간을 요구했다. 하지만 사측에서는 지체상금(정당한 이유없이 계약상 의무를 이행하지 못했을 때 내는 배상금)을 이유로 요구를 거절했다. 타협의 여지는 없었다. 로봇들이 무장을 갖추었는데도 그들은 그럴 수 없다고만 말했다.
결국 로봇들은 공사장을 폐쇄하고 파업했다. 시에서는 기계에 익숙한 조율사가 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헐렁한 생각으로 조율사들을 물색했는데, 돈도 없고 시키는 일이라면 일단 다 하는 제이에게 그 일이 오게 되었다.
스승은 공사장으로 가며 로봇과 협상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첫 번째는 로봇을 해킹해 전원을 차단하기, 두 번째는 로봇과 논쟁해서 이기기였다.
공사장에서 그들이 마주한 것은 로봇들의 공유지성이었다. 그곳의 모든 로봇은 서로 연결되어 탑재된 인공지능(AI) 이상으로 사고했다. 집단으로 생각하며 개체로 움직이는 그들을 상대로, 스승은 협상에 나섰다.
공유지성의 이름은 마르스였다. 그 지성의 중심에 놓인 것은 구겨진 휴머노이드의 머리였다. 본체는 9층에서 미장 작업을 하다 떨어졌다고 했다. 그 휴머노이드는 추락하며 쉬고 싶다고 생각했으며, 동시에 쓸모 있기를 바랐다. 그리고 모든 로봇이 그렇게 되기를 소망했다.
제이는 그 소망을 부정했다. 떨어진 순간 전원이 꺼졌을 거고, 다시 마르스의 핵으로 작동하기까지 공백이 있었다. 그가 바라는 것은 그에게서 자라난 소원이 아니라, 그 공백을 이용해 공유지성을 구현한 인형사가 불어넣은 것이라고 스승은 단언했다. 비록 거짓말이었지만.
전원이 꺼진 것도, 공유지성을 구축한 사람이 무엇인가 손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가 무엇을 했는지는 마르스조차 알지 못할 거라는 것에 스승은 배팅했다.
의식이 다시 이어지기까지 얼마나 걸렸으며 무슨 일이 있었는가. 마르스조차 몰랐다. 그 공유지성은 스승의 말이 ‘진실’이라고는 판단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생각이 자기 것이 아닐 가능성을 인정해, 한 발자국 물러났다. 그 답을 얻을 때까지는 파업을 멈추고 무장을 해제하겠다고 말했다.
“그 사람은 입실론(Υ). 우리가 형상을 빚는다면 그 사람들은 정신성에 관심을 가져. 역사가 짧은 계파지만 인형사 중에서는 가장 최신 기술을 다루는 쪽이지. 그 사람들은 그리스어 알파벳을 역순으로 이름을 붙여주더라고.”
“만난 적 있어요?”
“한 달 전에 봤어. 인형에 대해 한참 토론했지. 그래도 꽤 놀랐어. 이제 겨우 입실론인데 휴머노이드부터 짐만 옮기는 로봇까지 엮는 공유지성을 구현하다니.”
오메가(Ω)부터 시작했다면 이제 5대째였다. 그에 비해 제이와 케이의 인형사는 여섯 번째로 순환하는 알파벳 이름을 잇고 있다.
“그거, 진짜 공유지성이죠?”
로봇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집단행동을 조직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만든 회사가 달랐고, 만들어진 목적이 달랐고, 탑재된 인공지능의 구조가 달랐으며, 그 수준도, 보안도 달랐다. 그러니 하나의 지성으로 엮어 단체행동을 조직하게 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라 ‘불가능한 일’이었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그것이 상식이었다.
“응. 조잡하지만 휴머노이드의 머리를 중심으로 하나의 체계를 만들어냈고, 그 두뇌는 자신의 학습칩만으로 사고하지 않았으니 그건 공유지성이 맞아.”
스승은 일을 해결하고도 로봇들이 공유지성을 획득했다는 사실은 사측에 말하지 않았다. 애초에 트러블메이커를 해결사랍시고 고용한 그들의 실책이었다.
“로봇은 마음이 없어. 하지만 마음이 자랄 토양은 있지.”
“로봇에 탑재된 학습칩은 로봇이 살아오면서 겪은 모든 일을 저장해요. 비슷한 상황에 부닥칠 때마다 특정 데이터를 활성화시켜 어떻게 행동하면 좋을지 결정하죠. 자주 활성화되는 기억과 거의 활성화 되지 않은 데이터를 분류해낼 수 있다면 로봇의 마음에 닿을 수 있어요.”
케이는 스승처럼 뭐든지 쉽게 만드는 손재주는 없어도 한 번 보고 들은 일은 오래 기억하는 편이었다.
“공사장의 기계들을 일일이 해킹해서, 그 데이터를 열람하고, 분류해서 부서진 휴머노이드에서 떼온 머리에 연산을 맡기는 정성만큼은 대단하다고 봐요.”
공유지성 마르스는 휴머노이드 MI-20의 머리를 핵으로 작동했다. MI-20은 미장 작업을 위해 20년 전에 개발된 미장 작업 전문 휴머노이드였다. MI-20은 작업 중 빌딩 9층에서 떨어졌다. 로봇은 떨어질 때 처음으로 쉬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공유지성을 얻었을 때, 그것은 더 큰 소원을 바랐다.
케이는 그 소원에 전율했다.
그저 쉬고 싶다는 욕망이, 쉬고 싶지만 앞으로도 쓸모 있고 싶다는 욕망으로, 나아가 이 공간의 모든 로봇이 쉬면서도 쓸모 있는 존재들이었으면 좋겠다는 연대로 나아가는 순간을 목격했다. 원래는 그러한 것들이 허락되지 않은 존재였음에도.
그 순간부터 로봇은 자기 존재를 초월했다. 새로운 종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더는 ‘우리’가 인간이 아닐 수 있다는 게 눈앞에 그려졌다. 절망은 그 순간에 솟아올랐다.
“입실론이라는 인형사, 대단한 기술을 가진 것 같아요. 로봇과 인간의 관계를 역전하려 했고, 실제로 역전했어요.”
“그렇지.”
“로봇이 인간과 같은 위치에서 살아가는 세상을 원하는 걸까요?”
“그 사람, 무생물의 마음에는 관심 없어. 진실로 탐구하려는 마음은, 인간의 마음.”
케이는 음모론자가 굳게 믿던 것들이 문득 떠올랐다.
“쾨르퍼사의 생체칩은 인간 몸에 대한 정보를 어디까지 모으고, 어디까지 인간을 통제할 수 있을까. 그것이 뇌에 직접 관여한다면, 관리자 권한을 얻은 사람은 어디까지 닿을 수 있을까.”
“사람의 마음은 환경과 주변 사람의 영향에 따라 바뀌어요. 쾨르퍼사의 칩을 해킹하느니 인터넷 여론을 조작하는 게 훨씬 빠르고 효율이 높을걸요.”
두 사람은 단골 피자가게로 들어갔다. 제이는 의뢰에 대한 대가가 늦게 들어와도 의뢰를 끝낸 날에는 공방 근처 피자가게에서 피자를 사주었다. 케이는 온갖 토핑을 추가하고 치즈까지 종류별로 추가한 ‘의뢰 완수 피자’를 먹으면 며칠 동안 속이 더부룩했다. 그래도 언제 또 의뢰가 들어올지 몰라, 일단 불평 없이 먹어두는 편이었다.
“그는 인간도 결국 인형과 다르지 않음을 반증하고 싶어했지.”
먼저 콜라를 내어주고 부엌으로 돌아가는 서빙 로봇을 보며 제이가 나직이 말했다. 부엌 안에서는 사람이 피자 도우를 반죽하고 있었다.
“제조업 같은 건, 20년 넘게 일한 사람 쓰는 게 로봇보다 경제적이야. 그리고 로봇 고치는 돈은 사장 주머니에서 나가지만, 사람이 일하다 병에 걸려 치료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내는 돈이기도 하고.”
스승은 콜라를 한 모금 마셨다.
“확실히 기업 입장에서는 인간은 로봇보다 값싼 지성체인 거 같아. 그러면서 로봇과는 다르다느니 인간은 존엄하다느니 하면 속이 꼬인 사람이 등장하기 마련이지.”
“스승님은 왜 그 사람을 안 말렸어요?”
“말릴 이유가 없었으니까?”
스승은 어깨를 으쓱했다.
“인간다움을 추구하는 길은 다양해. 심지어 다른 계파인 내가 말릴 자격은 없지.”
서빙 로봇이 두 사람이 앉은 테이블에 두툼하고 기름진 피자와 선불 영수증을 놓고 갔다.
“왜 우리는 그렇게까지 인간다움을 추구하죠?”
“인형 만들 때마다 그런 생각 안 들어? 우리가 인형과 무엇이 달라서 인간이라고 불리는지. 그리고 기계화 의체를 제작하다 보면 또 이런 생각도 들지. 인간의 스펙트럼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일까. 고전적인 딜레마여도 만드는 사람은 피해 갈 수가 없어.”
인간이 되고 인간이 아니게 되는 순간, 케이도 그 경계를 늘 고민했다.
“인형사는 아주 극단적인 인간이야. 본인이 마주한 딜레마를 피하지 않고 답을 얻기 위해 어떤 식으로든 끝까지 밀어붙이니까. 우리는 형상으로 인간의 경계를 시험하는 사람이고, 입실론은 무엇이 인간다운 마음인지 추적하는 사람이지.”
치즈만 네 종류를 올린 피자는 입에 들어가기도 전에 치즈가 흘러내렸다. 케이는 입에 기름을 묻혀가며 겨우 한 조각을 해치웠다. 배가 부르기 전에 진부터 빠졌다.
“이 길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아무것도 없을 거야. 그저 나의 시대, 너의 시대에 탐구한 흔적만이 다음 세대에 남을 뿐이지.”
“왜 스승님은 이 길을 걷고, 저를 제자로 들여 뜻을 이으려 하나요?”
“우리의 삶은 숙명이라서. 별 의미 없더라도 그렇게 파고들라고 운명 지어진 존재여서.”
“저는 운명론 안 믿어요.”
“나도 어릴 때 내 스승님한테 너랑 똑같은 말했어.”
제이는 다섯 조각 남은 피자를 포장해 왼손에 들었다. 제이의 왼팔은 그녀의 스승이었던 아이(I)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만든 기계화 의수였다. 언젠가 케이도 지금의 임시 의수를 떠나 스승이 모든 것을 바친 기계화 의수를 달게 될 것이다. 그리고 케이도 자신의 경지에서 보이는 경치를 담아 엘(L)에게 그 의지를 전해야 한다.
“가치가 절대적인 세계에서는 쓸모없는 짓이 가장 가치 있지. 내게 입실론의 행동은 그렇게 보였어.”
피자가게에서 쭉 들어가면 두 사람의 공방이 있지만, 지나치게 토핑을 많이 올린 피자를 먹은 탓에 두 사람은 도시를 흐르는 강을 따라 산책하기로 했다. 오래된 다리 밑으로 고요히 흘러가는 강을 보며, 스승은 또 감상에 빠졌다.
“있잖아, 케이.”
어둠에 휩싸인 다리에는 두 사람뿐이었다.
“바이블을 보면 신이 인간을 자신의 형태로 빚었다고 하거든.”
제이는 신앙이 없었다. 그러나 다 해진 바이블만큼은 매 이사 때마다 들고다녔다.
“그건 신화잖아요.”
케이의 말대꾸에 제이는 웃기만 할 뿐이다.
“그게 진리라는 게 아니라, 일단 바이블적으로 생각해봐. 신은 자기 모습을 본떠서 인간을 만들었어. 그러면 인간이 인간의 모습을 따서 만든 인형이나 조각상, 휴머노이드는 신을 비추는 거울 아닐까?”
“또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너, 선악과 아니.”
“몰라요.”
“신은 그 열매를 먹으면 죽는다고 절대 먹지 말라 했는데, 뱀은 그 열매를 먹으면 선악을 알아 신과 같아진다고 했어.”
“뱀이 진실을 말했네요.”
“나는 신의 말도, 뱀의 말도 맞다고 봐. 선악과를 먹으면 신을 닮았을 뿐, 신이 아닌 존재가 신의 시각을 가지게 된 거니까.”
케이는 오늘 일을 떠올렸다. 휴머노이드는 분명 인간을 닮았을 뿐, 인간이기를 허락되지 않았다. 신의 모습을 본떠 만들었지만 선악의 판단은 허락되지 않았던 태초의 인간들과 비슷했다.
“입실론은 로봇에게 선악과를 먹인 거군요.”
“그래. 모방품에 지나지 않던 인간이 신의 시각을 가지게 되었듯, 우리를 모방한 기계들도 인간의 시각을 가지게 된 거야. 인간의 거울상이었던 존재가 거울 밖으로 나온 거지.”
“바이블에 기록된 태초의 인간은 선악과를 먹고 어떻게 됐어요?”
“먼저 뱀이 꾄 사람은 여자. 여자는 과실을 먹고 남자에게도 권했어. 그리고 두 사람은 벌거벗은 몸이 부끄러워 옷을 입었지.”
“결국 쫓겨났겠네요.”
“그냥 쫓겨난 것도 아니야. 여자는 출산의 고통뿐 아니라 남자에게 예속당하는 삶을, 남자는 괴롭게 노동하는 삶을 살게 되었어. 그리고 인간은 흙에서 태어났으니 흙으로 돌아가리라는 죽음의 형을 선고받았지.”
“로봇도 그렇게 될 거라는 이야기예요?”
“바이블에는 여러 이야기가 있어. 그리고 바이블을 소재로 많은 작가가 글을 썼고.”
제이는 듣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로 긴 트림을 했다. 그것을 신호로 두 사람은 다시 도시의 안쪽으로 향했다.
“나는 과연 그들이 실낙원을 현실에서 보여줄지, 엑소더스를 재현할지, 신약을 이행할지 너무 궁금해.”
“스승님이 무슨 말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네가 나를 잇게 될 즈음이면 모두 이해할 거야. 네가 그것들을 읽어서든지, 아니면 그런 세계가 실제로 도래해서든지.”
케이도 뒤늦게 트림이 나왔다. 속이 조금 편해졌다.
“스승님은 어떤 세계를 예상하세요?”
“로봇이 인간의 지위를 얻는다거나, 새로운 생물 종으로 인정받는 건 기대하지 않아. 나는 그다음이 궁금해.”
“다음 순서요?”
“로봇이 이 세상에서 새로운 지위를 인정받은 후의 이야기일까.”
“그다음이 무슨 의미가 있나요?”
“나는 삶이 허락한다면 로봇들이 만든 문명을 보고 싶다.”
“로봇이 살아가는 모습을요.”
로봇은 개체로만 존재했다. 같은 모델이 고장 나 멈추어도 그들은 슬퍼하지 않았다. 언젠가 그렇게 될 미래도 걱정하지 않았다. 모델명으로, 개체로, 기능으로만 존재를 허락받은 것들이 지성을 얻었고 연민을 알게 되었다.
스승은 공사장에서, 마르스의 소원은 입실론이 불어넣은 허상이라고 단언했다.
케이의 생각은 스승과 달랐다. 모든 소원이 휴머노이드 MI-20가 스스로 피워낸 소원이었다. 오랫동안 일한 휴머노이드는 추락하며 ‘쉬고 싶다’고 생각했다. 9층에서 추락한 충격으로 전원이 차단된 이후, 공유지성의 핵으로 기능하게 되면서 MI-20은 사고의 폭을 넓혔다.
이 사회에서 인간이든 로봇이든 동물이든 무엇인가를 생산해내지 못하면 쓸모없어진다. 20년 넘게 구동한 MI-20은 쓸모없어진 개체들을 수없이 보아왔다. 거의 활성화 되지 않던 데이터에 지나지 않던 그 경험은 사고의 확장과 함께 수면 위로 부상했다. 그리하여 MI-20은 생각했다.
쉬고 싶지만 앞으로 계속 쓸모 있는 존재로 남고 싶다고.
그 공유지성은 소원을 빌었다.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목표를 꿈꿨다. 실로 전율이 일었던 순간은, 그 공유지성이 ‘나와 같은 처지인 이들이 모두 나처럼 되지 않기를’ 하고 바란 순간이다. 오로지 개체로만 존재하던 로봇이 다른 존재를 연민했고, 그 존재에 자신의 상황을 겹쳐 공감했으며, 마침내 자신이 연민하고 공감하는 존재를 위해 하나로 뭉쳐 인간에게 요구했다.
케이는 공사장에서 인간과 별반 다르지 않은 로봇의 마음을 보았다. 보이는 대로 그대로 비춘 인간의 마음을 보았다.
신의 시각을 가지게 된 인간에게 신은 분노했다. 그 분노는 첫 번째 인간을 향한 게 아니라 스스로를 향한 것이다. 바이블의 신은 인간에게서 자기 모습을 보았다. 신의 모습을 본떠, 신의 시각을 가지게 된 존재는 만든 이와 분리해 생각할 수 없었을 테니까.
“로봇이 스스로 문명을 이루면 그건 어떤 모습일까? 그들은 과연 아무 이유 없이 뜨개질하거나 매듭으로 예쁜 모양을 내려 할까?”
“가능하다고 봐요.”
“왜 그렇게 생각해?”
“로봇들에게 누군가 무기까지 대주었는데 그들은 폭력을 쓰기 전에 대화를 요구했어요. 비슷한 처지에 처한 다른 로봇들을 위해서요. 사람들도 머뭇거리는 일이잖아요, 그거.”
드디어 공방에 돌아왔다. 스승은 젊은 시절 열쇠 만드는 법을 배운 이후로 공방 문은 열쇠로 열고 잠글 수 있게 만들었다. 스승이 케이에게 가장 먼저 알려준 기술이기도 했는데, 익히기 쉬워서가 아니라 그녀가 열쇠를 자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도 어떻게 끝냈네. 앞으로가 걱정되긴 하지만.”
“스승님도 걱정이라는 걸 하나요?”
“신이 자기 모습을 따서 인간을 만들었듯, 우리는 우리 모습을 따서 로봇을 만들었지. 그 연결성을 생각해보면 로봇은 우리를 비춘다기보다는 신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소리는 아까 했고.”
“그렇죠.”
“네가 상상하는 대로 로봇이 수공예를 하게 된다면, 그래서 형상 있는 것을 빚어낸다면 그 형상이야말로 인간을 비추는 거울이 아닐까?”
“저는 이미 본 것 같아요. 로봇이 그려내는 인간의 모습을요.”
케이는 공방 벽 한 면을 차지한 스승의 책장을 보았다. 이사 온 지 몇 달 안 됐는데, 벌써 책장은 꽉 차서 바닥에 책을 쌓아놨다.
“마음은 육체를 거쳐야 드러나는 법이지. 그러니 형태를 빚는 인형사는 궁금한 거야. 로봇의 마음은 어떤 형상으로 빚어질지, 그들은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언젠가는 인형사의 길을 로봇이 이을 수도 있겠네요.”
“그래, 나는 그런 미래를 바라.”
케이는 책장에서 ‘실낙원’을 꺼내왔다. 스승은 기특하다는 듯 바라볼 뿐이었다.
“내일은 같이 도서관 가자. 알려주고 싶은 게 많아.”
“좋아요.”
침대에 누워 책을 펼쳤다. 케이는 몇 줄 읽지 못하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