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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탐독] 다양성과 혁신이 이끄는 도시의 진화

도시는 수많은 요소들이 맞물려 돌아가는 복합적인 시스템입니다. 다양한 인종, 세대, 사회적 계층의 사람들이 모입니다. 사람들은 서로 네트워크를 이루며 사회적, 경제적 활동을 하고, 오래된 건물과 새로운 건물은 같은 공간에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합니다. 비슷한 것들끼리 뭉쳐 있기도 하고, 전혀 다른 것들이 한 곳에 모여 조화를 이루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새로운 경험과 기회를 제공하는 도시의 다양성과 복합성에 끌려 도시에 모입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공간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더 쾌적하고,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이 도시계획입니다.

 

도시는 혁신과 관용, 다양성의 도가니


1960년대 이전까지 학계에서는 도시를 무질서하고 혼란한 공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도시계획가들은 에버니저 하워드의 ‘전원 도시’나 르 코르뷔지에의 ‘빛나는 도시’처럼 이상적인 기하학적 도시계획으로 도시를 통제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이런 인식은 1960년대 미국의 기자이자 사회운동가였던 제인 제이콥스의 등장 이후 달라졌습니다. 제이콥스는 도시계획가는 아니었지만, 현대 도시계획 분야에서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입니다. 그는 도시의 모습이 이상적인 기하학적 계획으로 만들어지는 일률적이고 영혼 없는 모습과는 멀어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대신 경제적 번영을 위해 도시는 혁신, 관용, 다양성, 새로움, 놀람의 도가니가 돼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의 주장 이후 도시는 더 이상 무질서한 곳이라고 여겨지지 않습니다. 도시의 다양성을 이해하는 도시 계획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도시의 다양성을 측정하는 방법


모양과 크기가 다양하고, 서로 다른 사람들이 사는 도시가 가진 다양성은 어떻게 측정하고, 비교할 수 있을까요. 이번에 소개하는 논문은 새로운 연구보다는 기존의 연구를 종합하고 정리하여 해당 분야의 흐름을 보여주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리뷰 논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논문에서는 스케일링, 네트워크 과학, 프랙탈 기하학 등의 방법으로 도시가 가진 다양성을 분석하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도시를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스케일링은 정규화, 표준화 같은 방법으로 데이터의 범위를 조정하는 방법을 말합니다. 도시에서 얻을 수 있는 데이터는 그 범위와 단위가 제각각 다릅니다. 스케일링을 거치면 도시를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 사이의 연관성을 수치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가령 스케일링을 한 이후 인구수와 건물 크기의 관계를 살펴보면 선형적인 관계가 보입니다. 도시의 인구수가 많을수록 그에 비례해 건물의 크기는 커집니다. 언뜻 생각했을 때 당연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대략적으로 아는 것과 정확하게 기울기를 계산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스케일링을 통해 인구와 일자리가 로그함수의 관계를 가진다는 사실도 알 수 있습니다. 도심으로부터 거리에 따라 인구밀도와 고용밀도가 비슷한 패턴을 보인다는 사실도 말입니다. 도시가 가진 패턴을 파악하고, 도시 크기에 따라 달라지는 요소들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도시를 이루는 다양한 요소를 수치적으로 비교할 수 있게 된 동시에 이들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찾아내는 것도 가능해졌습니다. 네트워크 과학 덕분이죠. 네트워크 과학은 복잡한 시스템을 구성하는 요소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방법입니다.


그동안 네트워크 과학을 접목한 도시 연구는 교통에 국한돼 왔습니다. 도로를 어떻게 배치해야 차가 덜 막힐지 등을 연구하는 데 네트워크 과학이 쓰였습니다. 최근에는 네트워크 과학을 통해 도시의 다양한 요소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 간의 관계나 소비생활 등까지 말입니다.
이런 연구는 그간 알지 못했던 흥미롭고 유용한 통찰력을 제공합니다. 도시 안에서 우리는 어떻게 연결되며, 불평등은 왜 만들어지는지, 사람들이 어떻게 모이고 흩어지는지 도시 속에서 이뤄지는 네트워크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혁신에서 출발하는 도시의 진화


도시 안에서 발견된 새로운 관계들은 도시 계획이 철저한 계획으로 진화하는 것보다, 마치 유기체처럼 다양한 상호작용을 통해 진화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큰 도시들은 인근의 작은 도시들이 모여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그 작은 도시들이 개발되며 성장합니다. 자연계에서도 프랙탈 구조가 성장할 때 중심에서 바깥쪽으로 작은 구조들이 성장해 나갑니다. 이런 특징 덕에 도시는 전형적인 프랙탈 구조를 가진다고 여겨져 왔습니다. 프랙탈은 도형의 일부가 전체 형태와 같은 구조를 말합니다. 흔히 얼음 결정이나 나무, 해안가처럼 자연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논문에서는 복잡계 물리학의 대가 중 한명으로 꼽히는 제프리 웨스트의 연구를 소개하며 도시가 진화하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합니다. 만약 예전 관점처럼 도시가 성장했다면, 도시와 네트워크의 성장 속도가 같아야 합니다. 하지만 웨스트는 프랙탈 기하학과 네트워크 과학을 이용해 도시의 크기가 성장하는 속도에 비해 네트워크의 성장이 느리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가령 런던의 인구 밀도와 도로 네트워크를 비교해보면, 인구 밀도가 높은 중심지에서는 도로 네트워크도 잘 발달합니다. 반면 외곽으로 갈수록 도로 네트워크의 발달은 약해지고 연결성이 낮아집니다. 이 때문에 도시 중심에서 외곽으로 자원을 운반하기가 어렵습니다.


웨스트는 외곽 지역에서 인구 성장보다 금융 서비스, 특허, 신기술 제품 같은 경제적 혁신이 더 빠르게 일어난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따라서 혁신과 관련된 자원들은 작은 도시들로 빠르게 이동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전통적인 도시 성장 이론처럼 중심에서 주도하는 성장이 아닌 주변에서의 혁신을 바탕으로 다양성이 높은 도시로 진화한다는 것입니다.

 

더 나은 도시를 만들기 위한 도전


이런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 큰 도시를 구성하는 작은 도시들이 어떻게 연결되고 상호작용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전통적인 도시 계획 방법이었던 이상적인 기하학적 계획으로 만들어진 여러 규칙들을 깨는 데도 유용합니다.


프랙탈 구조와 비슷한 대칭 구조는 과거 도시를 설계할 때 기준이 됐습니다. 하지만 이런 이상적인 도시 계획 방법에는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공간들의 상호작용을 단편적으로 이해하고 이들의 관계에 규칙을 만든 탓에 도시의 다양성을 떨어뜨렸습니다. 이상적인 계획을 참고한 많은 도시들이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이콥스의 저서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이 출판된 뒤, 하향식 도시계획이 문제를 발생시킨다는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대신 아래에서 위를 바라보는 상향식의 시각으로 도시를 바라보는 연구가 늘었습니다. 특히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도시를 이해하는 방법도 늘고, 많은 도시문제를 해결하는 데 쓰이고 있습니다.


스케일링, 네트워크 과학, 프랙탈 구조와 같은 과학기술은 상향식으로 도시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좋은 도구가 됩니다. 저자는 과학기술을 활용한 도시의 이해는 이제 시작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도전이 계속될수록 도시계획을 풍성하게 만들며 도시를 다양하고 활력 있는 공간으로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2022년 8월 과학동아 정보

  • 최홍석 울산과학기술원(UNIST) 도시환경공학과 석사과정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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