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쥐방울덩굴(Aristolochia littoralis)은 이름도, 생김새도 참 특이한 식물이다. 꽃가루 매개자를 속여 손쉽게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정도로 영리하게 진화한 식물이기도 하다.
쥐방울덩굴과 쥐방울덩굴속에 속하는 이 식물은 원래 아르헨티나, 브라질, 콜롬비아 등 남아메리카 남서부 열대 혹은 아열대 지역의 숲 가장자리와 강둑에서 자란다. 상록성 여러해살이 덩굴식물로, 다른 나무줄기나 물체를 타고 8m까지 감아 올라갈 수 있다.
갯쥐방울덩굴의 속명은 아리스톨로키아(Aristolochia)로, 최고를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아리스토스(aristos)’와 출산을 뜻하는 ‘로케이아(locheia)’가 합쳐진 말이다. 고대에는 출산 후 감염병을 치료할 때 쥐방울덩굴이 쓰이기도 했고, 이 식물의 꽃 모양이 꼭 자궁 안에 웅크리고 있는 태아를 닮기도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파리를 이용해 손쉽게 번식하는 영민함
갯쥐방울덩굴 꽃의 독특한 생김새와 치밀한 꽃가루받이 전략에 관한 이야기는 더욱 흥미롭다. 꽃은 성숙하면서 여러 모습을 띤다. 처음엔 크림색 파이프 모양의 작은 주머니 같은 것이 생겨나고, 이후 점점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그 모습은 셜록 홈즈를 연상케 하는 담배 파이프 모습을 닮았다. 그러다가 가운데 부분이 세로로 갈라지며 마침내 아기 얼굴만 한 꽃잎, 꽃덮이가 나팔처럼 활짝 펼쳐지며 모습을 드러낸다. 꽃이 활짝 핀 뒤에는 마치 색소폰 모양으로 보인다.
꽃 모양이 이렇게 생긴 이유는 꽃가루받이를 도와줄 파리를 생식 기관이 있는 안쪽 깊숙한 곳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부드러운 벨벳 같은 질감의 이 꽃덮이는 자주색과 갈색이 섞인 빛깔에 흰색의 줄무늬가 있어 전체적으로 얼룩덜룩한 생고기의 마블링처럼 보인다. 파리가 먹이 공급원으로 인식하고 군침을 흘릴 만한 최상의 모습이다.
그러나 그 중심에는 암적색의 구멍이 블랙홀처럼 뚫려 있다. 파리는 맛있는 먹이를 찾아 왔다가 홀린 듯이 이 구멍으로 들어간다. 구멍 안에는 좁은 통로를 따라 털이 더 깊은 쪽을 향해 한 방향으로 뻗어 있다. 파리가 미끄럼틀을 타듯 들어가기는 참 쉬우나, 다시 되돌아 나오기는 굉장히 어려운 구조인 것이다.
그 어두운 통로의 끝에 다다르면 마침내 작고 아늑한 밀실이 나온다. 천장엔 암술과 수술이 자리하고 있는데, 밀실에서 보면 마치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처럼 은은한 빛이 비친다. 빛에 민감한 파리는 그곳을 탈출구로 여기고 밖으로 나가 보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사실은 막혀 있어 빠져나갈 수 없다. 당황한 파리가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며 애쓰는 동안 바깥에 있는 다른 꽃에서 몸에 묻혀 온 꽃가루가 자연스럽게 암술머리에 묻게 된다. 갯쥐방울덩굴 입장에선 꽃가루받이가 성공적으로 이뤄진 것이다.
다행히 꽃은 목적을 달성하면 파리가 나갈 수 있도록 출구를 마련해 준다. 좁은 통로의 털이 점차 시들면서 파리가 미끄러지지 않고 되돌아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놀랍게도 이 무렵에는 꽃가루도 방출돼 파리의 몸 여기저기에 달라붙게 되고, 결국 또 다른 꽃으로 운반된다. 파리는 갯쥐방울덩굴의 번식에 철저히 이용된 셈이다.
한편 갯쥐방울덩굴의 꽃은 암꽃이 수꽃보다 먼저 활성화되는 전형적인 암꽃선숙 전략을 취한다. 국내에 자생하는 등칡을 비롯해 전 세계 500종이 넘는 다른 쥐방울덩굴과 식물도 이와 비슷한 전략을 펼친다. 이때 대부분 썩은 고기 냄새로 파리를 유혹한다. 하지만 갯쥐방울덩굴은 그런 악취를 풍기진 않는다. 오히려 꽃의 관상 가치가 높아 정원 소재로도 많이 이용된다.
원래 살던 지역에서 갯쥐방울덩굴은 여러 질병 치료를 위한 귀한 약재로 쓰여 왔다. 그러나 동남아시아, 호주 등 다른 나라의 열대·아열대 지방에 퍼져나간 뒤에는 때때로 토종 생태계를 위협하는 존재가 된다. 갯쥐방울덩굴에는 아리스톨로크산이라는 독성물질이 들어 있는데, 이걸 먹고 살 수 있는 곤충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토종 쥐방울덩굴 종류의 잎을 먹고 자라는 토종 나비 애벌레들이 갯쥐방울덩굴의 잎을 먹게 되면 독성 때문에 죽을 수 있다.
※필자소개.
박원순. 서울대 원예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롱우드 가든에서 국제 정원사 양성 과정을 밟았으며, 델라웨어대에서 대중원예 석사 학위를 받았다. 에버랜드에서 식물 전시를 담당하다가 현재는 국립세종수목원 전시기획운영실장으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나는 가드너입니다’ ‘식물의 위로’ ‘미국 정원의 발견’이 있고, ‘세상을 바꾼 식물이야기 100’ ‘식물: 대백과사전’ ‘가드닝: 정원의 역사’ 등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