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바늘에 대해 조금씩은 불편함과 두려움을 느낀다. 2011년 미가교역은 국내 최초로 바늘 없는 주사기를 개발해 이런 불편함을 해결할 길을 열었다. 1990년 설립된 미가교역은 정형외과의 수술용품과 의료기기를 수입하고 유통하는 회사였는데, 돌연 바늘 없는 주사기를 개발하게 된 데는 이지은 대표의 공이 컸다.
무역하는 과학기술인이자 여성 발명가
2009년 세계 최대 의료기기전시회인 독일 뒤셀도르프 국제의료기기전시회(MEDICA)에 참석한 이 대표는 충격을 받았다. “유럽의 한 회사에서 바늘 없는 주사기를 출품했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선진국에서는 이미 바늘 없는 주사기가 상용화됐더라고요.”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개발에 매진해 2년 만에 국내 최초의 바늘 없는 주사기 ‘컴포트인(Comfort-in)’ 특허 등록을 마쳤다. 당뇨병 환자의 인슐린 투약, 국소마취, 호르몬 주사 등에 사용하는 피하주사기다. 이 대표는 “바늘 없는 주사기는 바늘 주사기보다 약액을 17% 적게 쓸 수 있다”며 “인슐린을 맞는 당뇨 환자들은 식사 30분 전에 꼭 주사를 맞아야 하는데, 컴포트인으로는 식사 중에 주사해도 혈당 조절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컴포트인을 활용할 수 없는 분야도 있었다. 컴포트인은 주사할 때마다 약물을 충전해야 하는데, 다른 부위에 여러 번 주사해야 하는 피부나 두피에는 적용하기 어려웠다. 이를 개선해 0.1cc씩 30회 연속 주사가 가능한 제품 ‘컴포트엠(Comfort-M)’을 개발했다. 이 대표는 컴포트엠으로 지난해 열린 제14회 세계여성발명대회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세계 17개국에서 출품한 270여 점의 작품 중 단연 돋보였던 것이다.
“무역 업무만 주로 해왔는데 바늘 없는 주사기를 개발하며 생산공정시스템 개발, 연구개발(R&D) 업무도 익숙해졌습니다. ‘무역쟁이 과학기술인’이 된 거죠.”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이 대표는 2001년 입사한 지 두 달도 안 돼 이란, 쿠웨이트 등지로 출장을 다녔다. 미가교역 창립자인 아버지의 뜻이었다. 이런 경험은 외국 바이어들과 소통하는 능력을 키우는 데 밑거름이 됐다.
MEDICA에 16년째 참가하고 있는 이 대표는 미가교역이 생산하거나 개발 완료한 제품들을 소개하기 위해 매회 최소 20팀 이상의 바이어를 만난다. “100m 이상 떨어진 곳에서부터 바이어들이 ‘제니퍼(이지은 대표)’를 부르며 저희 부스로 달려옵니다. 전 미가교역에서 개발하고 제품화시킨 것들을 소개할 수 있는 짜릿한 시간을 반갑게 맞이하죠.”
이 대표는 2017년 아버지로부터 가업을 승계 받았다. 그는 아버지 말씀을 삶의 모토로 삼고 있다고 했다. “저의 멘토이자 기업 경영의 스승이셨던 아버지께서는 제가 판매나 개발 아이템 등 고민에 빠질 때마다 ‘일단 나가봐, 부딪쳐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생각하고 움직이면 늦는다. 뛰면서 생각하라’고 종종 혼을 내셨죠. 아버지의 말씀에 따라 앞으로도 몸으로 직접 부딪치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성장하려 합니다.”
의료기기 분야에도 여성의 아이디어가 많아지길
바늘 없는 주사기의 국내 개발 역사는 이제 막 10년을 지났다. 미가교역에서 개발한 바늘 없는 주사기는 현재 20여 개국에 수출되고 있다. 이 대표는 “시장 변화를 주도하고 신뢰할 수 있는 바늘 없는 주사기로 새로운 100년을 성장시키기 위해 과학기술인이라는 칭호가 부끄럽지 않게 더 열심히 하겠다”며 “여성과학인, 여성기술인, 여성기업인 분들께 자신의 경험이 작게나마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현재 의료기기는 정보통신기술(ICT), 인공지능(AI), 메타버스 등 다양한 기술과의 접목을 시도하고 있다. 의료기기에도 트렌드가 있는데, 요즘은 피부미용 의료기기가 많이 개발되고 있다. 여성 과학기술인이 다양한 제품 개발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이 대표는 “여성들의 감각과 아이디어가 이 분야에도 접목된다면 훌륭한 제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