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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동아가 만난 사람]"의사도 데이터 공부 필수인 시대 옵니다"

김종엽 건양대병원 헬스케어데이터사이언스센터장


 

 

첫인상은 세련된 의사였다. 중간 톤으로 컬러를 맞춘 상의와 단 길이까지 세심히 신경 쓴 맵시 있는 바지, 헤어, 다린 듯 주름 없는 흰 가운도 멋을 더했다. 여느 의사와 다른 점이 있다면 진료 차트 대신 최신 태블릿 PC를 들고 있다는 점과, 연구실에 그 흔한 인체 해부도 하나 없이 커다란 컴퓨터 모니터만 놓여 있다는 점이었다.


의료 빅데이터 전문가 김종엽 건양대병원 헬스케어데이터사이언스센터장(정보의학교실 주임교수)을 1월 4일 오전, 대전 서구 건양대병원 연구실에서 만났다. 컴퓨터와 코딩에 능숙해 정보 의학 및 보건학 입문자 사이에서 ‘데이터통’으로 통하는 의사연구자다. 이비인후과 전문의로 진료와 수술을 하는 한편, 정보의학교실에서 의료 및 보건학 통계·데이터를 연구하고 있다.


그는 “앞으로는 의학 분야에서 데이터가 필수로 다뤄지는 시대가 반드시 온다”며 “지금까지의 의대 커리큘럼은 데이터와 컴퓨터 역량을 키우기에 부족했던 만큼, 앞으로 정보와 의료 통계, 데이터에 대한 관심과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데이터로 의학하는 시대 온다

 

데이터는 최근 의학 및 보건학 분야의 화두다. 10여 년 전 데이터과학과 빅데이터라는 용어가 유행할 때부터 의료 영상 등 의료 데이터는 대표적인 빅데이터 사례로 꼽혀왔다. 이들을 활용하면 인류의 건강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기술이 탄생할 것이란 기대가 컸다. 인공지능(AI)의 발전은 이 같은 기대에 기름을 부은 효과를 냈다. 암 등 질병 진단을 보조할 수 있는 의료 영상 AI 솔루션이 등장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감염자를 추적하고 확산을 예측하는 기술, 감염을 모니터링하는 기술, 개인 유전체를 분석해 질병을 진단하거나 건강 위험을 예측하는 정밀의학 기술 등도 연구되고 있다.


한국 역시 이 같은 분위기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하지만 의료 현장에서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데이터나 통계,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김 교수는 “알파고가 등장한 직후 한국에서도 AI 연구 붐이 일면서 정부 주도로 AI 연구 과제가 생겼다”며 “병원도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분위기가 생겼지만, 정작 의사들은 신기술에 의구심을 갖고 적극 참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교수가 데이터와 만난 계기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건양대병원은 정부 과제에 지원하기 위해 안저(안구 안쪽면) 촬영을 통해 질병(녹내장) 판독을 보조하는 AI 사업을 구상했다. 하지만 적임자인 안과 의사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다른 과 소속 김 교수가 불려왔다. 컴퓨터를 좋아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중고등학생 때부터 코딩을 즐기던, “백엔드부터 프런트엔드까지 모두 개발할 수 있는 풀스택 개발자”였던 그는 병원에서도 취미로 병원 게시판 관리 프로그램 등을 만들며 개발 경력을 이어오고 있었다. 이를 눈여겨본 이들이 그를 과제 담당자로 추천했다. 
“솔직히 첫 번째 든 생각은 ‘컴퓨터 좋은 거 살 수 있겠다’였어요. 컴퓨터 좋아하는 사람에게 그보다 매력적인 제안이 어딨어요? ‘컴퓨터 계의 페라리’를 장만할 기회다! 그래서 했어요.”


마침 10여 년 진료와 수술을 반복하며 기존 삶을 벗어나 연구를 하고 싶다는 갈망이 커지던 차였다. 갑자기 좋아하던 컴퓨터 분야, 그것도 첨단 주제인 데이터와 AI를 연구할 기회가 생겼다. 신이 날 수밖에 없었다.

 

“컴퓨터 계의 페라리는 못 참지”

 

연구 성과는 준수했다. 이때 개발된 안저 촬영 AI 기술은 국내외 특허를 취득했고 기업 에임즈(AIMS)에 기술이전됐다. 이 기술이 적용된 제품은 건양대병원에서 임상시험을 마치고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혁신의료기기 지정을 받아 현재 해외 진출을 준비 중이다.


이후 김 교수의 일상이 바뀌었다. 수리통계학과 통계 프로그래밍 언어 ‘R’을 독학으로 마스터하고 본격적인 데이터 연구를 시작했다. 이비인후과 진료는 일주일에 반나절로 줄였다. 수술도 하루만 맡는다. 나머지 날은 모두 데이터 연구에 할애한다. 남들이 동경하는 전형적인 의사의 삶을 버리고 고단한 연구로 방향을 트는 데에 처음에는 약간 두려움도 있었다. “시작할 때 세 개 정도의 연구 주제를 구상하고 뛰어들었는데, 내심 ‘연구 아이디어가 고갈되면 어쩌지’ 걱정도 했어요.” 하지만 웬걸. 기우였다. “연구를 마치자 꼬리를 물고 다음 연구 주제가 떠오르더군요. 제가 지루한 반복은 잘 못하고 싫어하는데, 연구는 늘 새롭고 설렙니다.”


현재 그는 의료와 다른 분야를 융합하는 정부 정책에도 자문 역할로 참여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등에 디지털 헬스케어나 AI 분야 관련 의견을 내고 있다. 의사들은 보통 스케줄이 빼곡해 정부 회의에 참석하지 못하는데, 그 결과 의료 현장을 반영하지 못한 정책이 많다는 문제 의식이 있어 가능한 참석한다. 그는 “한두 번만의 설득으로 변화를 기대하진 않는다”며 “그래도 반복적으로 자문하다 보면 서서히 반영되며 정책의 큰 흐름을 분명히 바꿀 수 있어 보람 있다”고 말했다. AI 학습에 필요한 데이터를 구축하고 공개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사업인 ‘AI 학습용 데이터 구축사업’이 대표적이다. 2016년 시작할 때엔 작은 사업이었는데, 5년이 지난 지난해엔 5400억 원 규모로 확장됐다.


대중과 소통하길 즐기는 커뮤니케이터로서 데이터와 통계를 대중에게 더 적극적으로 알릴 계획도 있다. 그는 블로그 ʻ깜신의 작은 진료소’와 유튜브 ʻ나는 의사다’를 통해 의료 정보를 나눠왔다. 지난해 말에는 데이터를 통해 연구를 하고자 하는 의학 및 보건학 전문가를 위해 자신의 R 강의록을 엮은 책 ‘R 통계의 정석(사이언스북스)’도 펴냈다. 독학 경험을 살려 통계 비전공자가 두려움 없이 실습할 수 있게 썼다. 그는 “데이터를 악용해 남을 현혹하는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다”며 “데이터와 통계에 대한 인식을 개선해 이런 사람이 활개치지 못하게 하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좋은 질문 챌린지 김종엽 교수를 만나보세요(155쪽) 

2022년 2월 과학동아 정보

  • 대전=윤신영 기자
  • 사진

    하지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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