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6일 오후, 강릉 사천진해변. 도로 한 편의 해변 입구에 모인 관광객들 사이에서 볼멘소리가 터져나왔다. “여길 어떻게 내려가?” “신발에 모래 다 들어가겠네.” 1m는 족히 넘는 모래 절벽이 그들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바다로 가려면 절벽 아래로 마치 미끄럼틀 타듯 내려가야 했다.
지난 가을 거센 파도가 할퀴고 간 흔적이었다. 모래가 깎이다 못해 도로까지 위협하다 11월 이후 점차 회복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1m 넘는 절벽이 남아있을 만큼 모래 유실이 심각하다. 동해안은 최근 몇 년 사이에 모래 유실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유실이 유독 심각했다는 게 현지 사람들의 증언이다. 사천진해변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한경순 씨는 “이곳 토박이인데 뒷섬(사천진해변)의 모래가 이렇게나 사라진 것은 평생 처음 본다”고 말했다. 강원도청 산하 강원도환동해본부 박재호 주무관 역시 “이전에도 침식이 있었지만 하평, 사천진 해변은 올해 유독 피해가 컸다”고 말했다.
사라진 모래는 멀리 가지 못했다. 강릉에서 택시를 운전하는 권오식 씨는 “한쪽에서 모래가 사라지면 다른 쪽에 축구장처럼 넓게 모래가 쌓이는 일이 매년 반복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찾아간 강릉 안목해변부터 영진해변까지 15km의 모래사장은 들쭉날쭉한 해안선을 보이고 있었다. 특히 영진해변에서는 남쪽에서는 모래가 깎여 나가고 북쪽에서는 모래사장이 드넓게 발달한 모습을 고스란히 볼 수 있었다. 현지에서는 해안 개발이 모래 유실을 가속화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영진해변에서 수산도매업을 하는 오진관 씨는 “가을에 태풍이 지나간 뒤 도로가에 있는 우리 가게 앞 해변엔 모래가 거의 남지 않아 파도가 도로까지 들이쳤다”며 “바다 한가운데 방파제가 생긴 후 부분적으로 모래가 깎이거나 쌓이는 현상이 심해졌다”고 말했다. 영진해변은 현재 주문진항 인근에서 모래를 끌어와 채워 넣어 긴급하게 복구한 상태다.
해변에 모래가 사라지고 채워지는 현상에는 여러 원인이 있다. 전국을 대상으로 하는 ‘연안침식 실태조사’ 연구책임자인 장성열 강원대 삼척산학협력단 이사는 “지난해 사천진해변에서 일어난 큰 규모의 침식은 해수면 상승 속도 증가, 수온 상승, 너울성 파도의 증가, 태풍의 방향 변화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며 “반면 영진해변의 침식은 이안방파제로 인한 영향이 크다”라고 말했다. 그는 “사천진해변의 침식은 조금씩 회복되고 있지만 영진해변은 현재로선 모래를 채워 넣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며 “기후위기로 침식이 가속화될 것을 대비해 항만이나 방파제 건설 시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