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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속 매트릭스

마지막회 - 브레인 임플란트

모피어스의 양 손엔 아름다운 거짓 현실에 안주할 수 있는 파란 알약과, 힘들지만 진실을 볼 수 있는 빨간 알약이 있다. 빨간 알약을 선택한 네오가 매트릭스에서 깨어나는 순간 그의 눈앞엔 충격적인 장면이 펼쳐진다. 수많은 캡슐 속에 누워 잠든 사람들은 몸에 연결된 몇 개의 케이블을 통해 끊임없이 기계에 전력을 공급하고 있었다.

SF영화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누구나 보았을 영화 ‘매트릭스’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이다. 본 연재를 읽는 예비과학자들은 이 장면을 보며 ‘사람의 몸에서 기계를 구동할 수 있는 전기 에너지를 뽑아내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라는 의문을 가져봤을지도 모르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제로 가능한 일이다. 그것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가능하다. 기술적으로는 우리 몸의 세포가 활동할 때 발생하는 전류를 직접 추출해낼 수도 있지만 이런 방식은 효율이 매우 낮아서 실용적이지 않다.

2012년 라훌 사페쉬카 MIT 전기공학과 교수팀은 인체의 대사과정에서 생기는 물질인 글루코오스로부터 수백 마이크로와트의 전기 에너지를 얻어낼 수 있는 초소형 연료전지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세포의 효소 반응을 모방한 이 연료전지를 이용하면 뇌에 이식한 브레인 임플란트 장치를 배터리나 충전기 없이도 구동할 수 있어 궁극적으로 뇌와 하나가 된 반영구적 기계 장치를 만들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임플란트’를 빠진 치아를 대체하는 인공 치아를 뜻하는 말로 쓴다. 하지만 본래 의미는 신체에 이식하는 기관(또는 조직)의 대체물이나 기계장치란 뜻이다. 아직 뇌 기능의 일부를 대체할 수 있는 임플란트는 없지만 뇌기능 조절이나 뇌질환 치료를 위한 브레인 임플란트 장치는 이미 30여 년 전부터 쓰이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브레인 임플란트 장치는 심부뇌자극(DBS) 장치다. 이 장치는 뇌의 심부(예를 들어 시상하핵)에 가늘고 긴 바늘을 찔러 넣고 펄스 형태의 전류를 흘려보내 뇌 활동을 조절한다. 파킨슨병, 강박증, 뚜렛증후군(틱장애), 만성통증 등의 치료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뇌에서 만드는 세로토닌이나 도파민과 같은 호르몬을 측정할 수 있는 화학 센서가 함께 들어 있어 자극 전류를 알아서 조절해주는 기술도 개발되고 있다. 이 장치를 뇌전증(간질) 환자에게 이식하면 발작이 일어날 것을 미리 예측해 발작을 예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브레인 임플란트 장치의 가장 큰 문제점은 몸속에 배터리도 함께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배터리는 어린아이 손바닥 크기 정도로 크고 무겁기 때문에 몸속에 넣기 어렵다. 또 배터리 용량이 길어야 3~5년이라 적어도 5년에 한 번씩은 재수술로 배터리를 교체해야 한다.







뇌공학자들은 일회용 배터리를 대신해 충전식 배터리를 쓰면 더 오래 사용할 수 있고 크기도 더 작은 브레인 임플란트를 개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2009년에는 이런 아이디어가 현실이 돼 가로, 세로 길이 각 5cm, 두께 9mm, 무게 40g 밖에 되지 않는 소형 심부뇌자극 임플란트 장치가 개발됐다. 이 장치는 최근 휴대전화에도 쓰기 시작한 무선전력전송 기술로 충전한다. 2주에 한 번씩 2시간 동안 전력 전송 안테나에서 일정한 거리 안에 머무르기만 하면 충전이 완료된다. 덕분에 임플란트 시스템의 크기와 무게가 많이 줄어들기는 했다. 하지만 아직도 배터리 장치를 왼쪽 어깨 아래 부위에 삽입하는 수술을 9년에 한 번씩 해줘야 한다.

이런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서 개발하고 있는 기술이 바로 글머리에 소개한 체내 자가발전 시스템이다. 사페쉬카 교수팀이 개발한 글루코오스 연료 전지는 사람의 뇌와 두개골 사이를 채우고 있는 뇌척수액의 글루코오스를 수집해 전기 에너지를 만든다. 뇌척수액에는 백혈구가 거의 없어 면역 반응이 나타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뇌척수액 내의 글루코오스는 뇌 활동에 사용되지 않기 때문에 인체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제 남아 있는 단계는 생체에서 만들어 낸 미약한 전기 에너지만으로도 작동이 가능한 초저전력 전자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이다. 현재 스마트 기기나 노트북 컴퓨터의 소모 전력을 줄이기 위해 초저전력 회로 설계 기술이 급속히 발전하고 있다. 이르면 10년 안에 외부 전력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반영구적 브레인 임플란트 기기를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본 연재의 1편에서 “뇌의 모든 부분에 미세바늘을 꽂고 전기 신호를 컴퓨터로 전달하면 이론적으로 모든 뇌 활동을 읽어낼 수 있다. 하지만, 뇌 표면은 주름이 많이 잡혀 있어 각 신경세포마다 바늘을 꽂는 건 현재 기술로 어렵다”고 밝힌 적이 있다. 필자가 원고 마감을 한 직후인 2011년 12월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의 존 로저스 교수팀은 얇고 잘 휘어져 주름진 뇌에 붙일 수 있는 미세 전극을 개발했다고 ‘네이처 뉴로사이언스’지에 발표했다. 이 전극의 해상도가 더욱 높아지고, 앞서 소개한 생체 에너지 수집 장치와 함께 머릿속에 삽입할 수 있다면 1편에서 소개한 꿈을 저장할 수 있는 장치도 생각보다 더 빨리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뇌공학 분야의 발전은 전자공학, 재료공학, 화학공학, 나노공학의 발전과도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또 기술이 고도화됨에 따라 다른 분야와의 융합 연구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본 연재를 읽는 예비 과학도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뇌공학과 뇌과학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인재로 성장해 나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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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에디터 이우상 | 글 임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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