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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노벨생리의학상, ‘당연한 감각’ 이면의 비밀을 밝히다

매운 음식을 먹으면 왜 혀가 아프고 땀이 날까. 또 한밤중에 불빛 없이도 손을 뻗어 전등 스위치나 문고리를 찾을 수 있는 이유는 뭘까. 우리는 몸이 자극을 감지하고 반응하는 능력이 너무나 익숙하고 당연해 별다른 의문을 갖지 않았다. 2021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이 당연함의 이면에 숨은 비밀을 파헤친 두 과학자, 데이비드 줄리어스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UCSF) 교수와 아뎀 파타푸티언 미국 스크립스연구소(TSRI) 교수에게 돌아갔다. 외부 자극과 우리 몸 사이의 연결고리인 ‘촉각’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발견한 공로였다. 

 

고추가 매운 이유는 TRPV1 때문이었어

 

촉각이라는 영단어(somatosensation)의 ‘somato’는 그리스어로 몸을 의미한다. 팔다리와 관절, 피부와 점막을 통해 느끼는 모든 감각이 촉각에 포함된다는 뜻이다. 온도, 압력(touch), 진동 등 다양한 자극뿐만 아니라 자신의 신체 위치, 자세, 움직임을 느끼는 고유수용성 감각도 촉각에 포함된다.
촉각은 다른 감각과 두 가지 면이 다르다. 먼저 항상 ‘깨어있는’ 감각이다. 청각 혹은 시각은 귀를 막거나 눈을 가려 자극을 차단할 수 있지만 피부, 관절 등은 온몸에 걸쳐 있고 인위적으로 그 기능을 가릴 수 없다. 즉, 우리가 의식적으로 인지하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 몸은 항상 촉각을 활용하고 있다.


또 촉각은 통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높은 온도나 강한 물리적 자극에 노출될 경우 인체는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받을 수 있다. 이렇게 극심한 자극을 통증으로 인지하는 것은 감각신경계의 중요한 보호 본능 중 하나다. 19세기 말, 신경계에 대한 해부학적 이해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1906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 20세기 말에는 촉각의 원리에 대한 세포 수준의 이해가 더욱 깊어졌다. 21세기에 남아있는 질문은 ‘어떤 분자를 통해 세포 바깥의 자극이 신경세포를 활성화하는 전기자극으로 바뀌는가?’였고, 온도에 대한 해답을 처음으로 찾은 과학자가 줄리어스 교수, 물리적 자극에 대한 첫 해답을 제시한 이가 파타푸티언 교수였다.

 


줄리어스 교수는 온도 감지의 게이트키퍼 유전자(외부 환경을 감지해 생체 내 전기자극으로 변환시켜주는 유전자)를 발견한 공로로 노벨 생리의학상의 주인공이 됐다. 그는 1997년 고추의 매운맛을 내는 화합물인 캡사이신 수용체 단백질인 TRPV1 유전자를 발견했다.


이전에도 톡 쏘는 듯한 자극적인 맛을 일으키는 화합물(예를 들면 캡사이신)이 통증신경세포를 활성화한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캡사이신이 어떤 수용체를 활성화시키는지는 분자 수준에서 이해하지 못했다.


줄리어스 교수는 통증신경세포에서 발현되는 유전자들을 하나씩 선별해 테스트할 수 있는 ‘발현 클로닝 전략(expression cloning strategy)’이라는 실험방법을 고안해 캡사이신에 반응하는 유전자 TRPV1을 찾아냈다. 그는 TRPV1이 캡사이신뿐만 아니라 43℃ 이상 고온에서도 활성화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화합물뿐만 아니라 온도변화에 의해서도 활성화되는 이온통로(채널)를 처음으로 찾아낸 순간이다.


줄리어스 교수의 발현 클로닝 전략을 응용한 여러 분자생물학 기법이 학계에 활용되면서 새로운 온도 감지 유전자를 찾기 위한 경쟁이 더 치열해졌다. 일례로 2002년 TRPV1과 반대로 차가움을 감지하는 TRPM8 유전자가 발견됐다. 이 유전자는 줄리어스 교수와 파타푸티언 교수가 하루 차이로 각각 국제학술지 ‘네이처’와 ‘셀’에 발표했다. 지금까지 TRPV1, TRPM8뿐만 아니라 TRPA1, TRPV4 등 여러 TRP 계열 유전자가 각기 다른 범위의 온도 변화에 활성화되며, 동시에 자극적인 맛을 느끼게 해주는 화합물의 수용체임이 밝혀졌다.

 

 

우리 몸에 탑재된 압력 센서, 피에조

 

파타푸티언 교수도 다양한 온도 감지 TRP 유전자들을 연구했지만, 이번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에 결정적 역할을 한 업적은 또 다른 유전자인 ‘피에조(Piezo)’의 발견이다. 


온도 감지 유전자가 연이어 발견되면서, 압력에 반응하는 유전자를 찾는 일이 촉각 연구의 다음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온도에 반응하는 TRP 계열 유전자처럼, 물리적 자극에 따라 신경세포를 활성화하는 이온통로가 있을 것으로 추측됐지만, 그 정체는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았다. 너무 오랜 기간 묻혀있었기 때문에, 실존하는지조차 의심이 됐다. 압력 감지 유전자는 연구자들 사이에 성배와 같은 존재였다. 


파타푸티언 교수는 2008년경 베르트란드 코스테 연구원과 함께 이 난제에 도전했다. 이들은 후보 유전자의 발현을 하나씩 억제한 쥐 신경모세포주의 세포막을 유리막대로 건드려 전기신호를 발생시켰다. 만약 어떤 유전자 발현을 억제한 뒤 세포막을 건드렸는데 전기신호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그 유전자가 압력 감지 유전자다. 직관적이면서도 확실하게 유전자의 기능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문제는 전기신호를 감지하기 위한 전기생리학 자체가 매우 정교한 세팅이 필요한 데다 유리막대로 세포를 건드리는 행위도 기술적으로 어려운 일이었다는 점이다. 일 년이 넘는 시간동안 코스테 연구원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 그러다 72번째 후보 유전자(Fam38a)의 발현을 억제한 세포가 물리적 자극에도 전기신호를 발생시키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리스어로 압력이라는 뜻을 가진 피에조1이 발견된 순간이다. 연이어 척추동물에서 피에조1과 유사한 피에조2 유전자도 발견됐다.


2010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피에조1과 피에조2를 발표한 뒤, 파타푸티언 교수팀은 이 유전자가 정말 압력 수용체인지 밝히는 연구를 이어가기로 했다. 쥐와 사람의 피에조1, 피에조2 유전자에 연이어 초파리, 예쁜꼬마선충의 피에조 유전자를 합성한 뒤 이 유전자를 세포에서 인위적으로 발현했다. 그 결과 물리적 자극에 반응을 보이지 않던 세포가 전기신호를 만드는 것을 확인했다.


긍정적인 결과를 얻었지만 피에조는 그 형태가 기존에 알려진 이온통로 종류 중 어떤 것에도 속하지 않았기에, 피에조가 정말 이온통로인지 증명해야만 했다. 또 피에조 유전자가 세포가 아닌 생체 내에서도 촉각과 관련된 기능을 하는지 확인이 필요했다.


2010년 파타푸티언 교수 연구실에서 박사과정 3년차를 보내고 있던 필자는 무척추동물의 생체 내에서 피에조의 역할을 증명하기로 결심했다. 피에조는 사람부터 점균류까지 많은 생명체에서 발견되는데, 척추동물에서는 두 개의 유전자(피에조1, 피에조2)로 존재하는 반면, 초파리와 예쁜꼬마선충 등 무척추동물에서는 한 개의 유전자로 존재했다. 2012년 필자는 초파리에서 피에조 유전자가 물리적 통증을 일으킬 수 있는 강한 자극을 인지하는 역할을 한다고 ‘네이처’에 발표했다. 이어 2014년과 2015년에는 연구실의 또 다른 한국인 연구자 우승현 박사와 산지브 라나데 박사과정 연구원이 쥐에서 피에조2 유전자가 물리적 감각과 고유수용성 감각의 게이트키퍼 유전자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일련의 결과를 통해 피에조가 우리가 찾던 성배, 압력 감지 유전자임을 증명했다.

 

통증 완화하는 신약 개발의 열쇠

 

촉각은 통증과 직결되기 때문에 진통제 등에 활용될 수 있는 여지가 많지만, 아직까지 피에조 유전자를 기반으로 한 치료제는 전무하다. 보통 하나의 신약을 개발하는 데 임상시험을 거쳐 허가를 받기까지 평균 13~15년이 걸리는 것을 고려하면, 피에조2 신약 개발은 아직 요원하다. 반면 TRPV1을 표적으로 활용하는 신약은 이제야 하나씩 나오는 중이다. 예를 들어 2018년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은 발작 및 유아기 난치성 뇌전증 등의 치료제(Epidiolex)가 TRPV1 저해제이고, TRPV1 억제제인 아토피 치료제(Asivatrep)도 3상 임상시험 중에 있다. 줄리어스 교수는 노벨상 수상 소감 인터뷰에서 그의 연구가 비마약성 진통제 개발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피에조는 아직 발견된 지 10여 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피에조1, 2 유전자의 역할이 속속 드러나며 신약 개발의 중요한 후보물질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아프리카계 인구 3분의 1은 피에조1 활성을 촉진하는 유전자 변형을 가지고 있는데, 이들은 말라리아에 내성이 있다. 피에조1이 말라리아 치료제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으로 관련 약물 개발도 속도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 김성은 박사 인터뷰

 

 

Q파타푸티언 교수 실험실에서 어떤 연구를 하셨나요?
파타푸티언 교수의 네 번째 박사과정 학생으로 2008년부터 2013년까지 소속돼 있었습니다. 초기에는 TRP 계열 유전자의 기작을 연구하다가, 피에조 유전자가 발견된 이후 2009년부터는 초파리와 예쁜꼬마선충에서 피에조 유전자의 기능을 연구했습니다. 

 

Q실험실 분위기는 어땠나요?
파타푸티언 교수는 레바논계 미국인으로 10대 시절 내전을 피해 미국으로 이민 온 이민 1세대입니다. 파타푸티언 교수를 필두로 저희 실험실 멤버들은 다양한 국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문화적 배경이 서로 달랐지만 다같이 점심도 자주 먹고 서로 응원해주는 분위기였습니다. 프랑스 출신 박사후연구원인 베르트란드 코스테 연구원이 피에조 유전자를 찾은 날이 기억납니다. 그가 평소보다 이른 오후에 퇴근했는데, 발걸음이 그날따라 무척 경쾌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날이 피에조를 발견한 날이었다네요(웃음).

 

Q 생리학 실험실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학부 때 화학, 석사 때 생화학을 전공해 박사과정은 본격적으로 생물학을 전공하고 싶었습니다. 당시 파타푸티언 교수 연구실은 전기생리학뿐 아니라 대규모 스크리닝, 쥐 행동 실험 등 생물학 전 분야를 다루고 있었습니다. TRP 통로가 온도를 감지하는 방법을 찾기 위한 실험들이었습니다. 덕분에 실험 도구에 맞춰 가설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정말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이에 대답하기 위해 필요한 실험을 설계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Q. 파타푸티언 교수님은 어떤 분이었나요?
항상 학생의 의견에 귀 기울여 주시고, 연구에 필요한 것을 찾아내 지원해주는 든든한 지원자였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피에조 연구에 초파리와 예쁜꼬마선충을 활용하자고 제안했을 때 실험실에 해당 모델이 없음에도 흔쾌히 동의해 주셨습니다. 이후 초파리 연구자와 예쁜꼬마선충 연구자와 함께 실험할 수 있게 지원해주셨습니다.

 

※필자소개

김성은. 2008년부터 6년간 미국 스크립스연구소(TSRI)에서 신경생물학을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UCSF) 메디컬센터와 목암생명과학연구소를 거쳐, 현재 단백질 제재의 항암제를 개발하는 파노로스바이오사이언스에서 연구기획본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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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김성은 파노로스바이오사이언스 연구기획본부장(CSO)
  • 에디터

    이영애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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