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에너지에 특화된 공대를 세우냐고요? 에너지는 세계 질서를 바꿀 만큼 크고 위협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당장 2050년까지 탄소 발생량을 줄여야 하는데, 이것은 국가적으로 엄청난 압박이 가해지는 일입니다. 안 하면 뒤쳐질 수밖에 없으며, 이 위기 속에서 세계 질서가 바뀔 것입니다. 한국도 무역에 제약이 가해져 타격을 입을 수 있습니다. 위기를 절호의 기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기술 혁신이 필요합니다. 그 중심에 에너지 기술이 있습니다.”
윤의준 한국에너지공대(KENTECH·켄텍) 초대 총장은 세계 유일의 에너지 특화 대학을 개교하는 이유를 설명하며 ‘세계 질서’를 언급했다. 지난해와 올해, 한국 등 50여 개국은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2050년까지 탄소 배출량과 흡수량을 일치시키는 개념인 ‘탄소중립’을 실천하겠다고 선언했다.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절박한 선택인 만큼 탄소중립의 성패에 따라 각국의 명운이 바뀔 가능성이 크다.
윤 총장은 “탄소중립을 달성하지 못하면 무역도, 비즈니스도 불가능해질 것”이라며 “화석연료에 기반한 산업과 생활, 수송 등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 이를 실현시키려면 먼저 에너지 분야에서 혁신적 변화를 이끄는 방법 외에 길이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윤 총장이 설립을 총괄하고 있는 켄텍은 정부, 한국전력공사(한전), 그리고 지방자치단체인 전라남도와 나주시가 함께 전남 나주혁신도시에 설립하고 있는 새로운 공과대학이다. 2017년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로 채택되면서 설립이 가시화됐다. 이후 2019년 1월 입지 선정을 시작으로 숨가쁜 일정을 달려왔다. 현재는 6월 초부터 시작된 강의동과 본부 건물 건설이 한창이다. 9월 첫 신입생 모집을 거쳐 내년 3월 개강할 예정이다. 전체 건물 완공은 2025년으로 계획돼 있다.
윤 총장은 “에너지 문제는 기존의 접근으로는 풀 수 없는 매우 복잡한 난제”라며 “켄텍이 새로 시작하는 작은 대학의 장점을 살려 혁신적인 교육을 실현해 기후위기와 에너지 분야 난제를 해결하는 데 공헌하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6월 24일 서울 서초구 한전 사옥 17층 집무실에서 만난 윤 총장과의 인터뷰를 재구성한 일문일답이다.
6월 초 착공에 들어갔다. 현재 상태는?
강의동과 본부 건물 건설이 한창이다. 첫 학부 신입생 110명이 사용할 강의동과 행정업무가 이뤄질 본부 건물 등 특별법(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법)이 규정한 핵심개교시설은 2월까지 다 완공한 상태에서 개강할 예정이다. 전체 건물 완공은 2025년이다. 교원 확보도 순조롭다. 2025년까지 총 100명의 교수를 뽑을 예정이며 올해에만 33명을 뽑는다. 올해 채용 목표는 대부분 달성했다. 이들은 내년 2월까지 순차적으로 켄텍으로 연구실을 옮길 예정이다.
세계 유일의 에너지 특화대학이다. 특정 분야에 특화된 대학이 왜 필요한가? 왜 하필 에너지인가.
에너지는 ‘특정한’ 분야가 아니다. 매우 크고 중요한 문제다. 당장 기후위기를 막으려면 2050년까지 탄소중립 실천을 통해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한다. 이것은 엄청난 압박이다. 세계 질서가 바뀔 수도 있다. 달성하지 않으면 무역도 사업도 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위기는 기회다. 여기에서 새로운 기술이 나올 수 있다. 화석연료 위주의 산업과 생활, 교통, 수송 등 모든 것을 바꾸는 기술이다. 다 에너지의 영역이다.
어떻게 다른 대학과 차별화할 생각인가.
교육 방식이 아예 다르다. 작은 신생 대학만이 시도 가능한 혁신적이고 실험적인 프로젝트 기반 교육을 전면적으로 실현할 예정이다. 에너지와 기후변화 문제는 기존의 지식 체계와 단편적인 교육·연구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다. 답이 없는 이런 문제를 교수와 함께 풀 창의적 인재를 완전히 새로운 커리큘럼을 통해 길러야 한다.
기존 대학도 이 같은 교육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는데?
관성 때문이다. 켄텍은 이제 새로 시작되는 학교인데다, 한 학년 학부생 수가 110명으로 적어 처음부터 혁신적이고 새로운 교육 시스템을 도입하면 정착시킬 수 있다. 켄텍은 문제를 푸는 역량을 갖춘 인재를 키우는 교육을 지향한다. 그 특징은 ‘학생참여교과설계(GAPA)’로 요약된다. 모든 강의가 ‘목적(G), 활동(A), 프로젝트(P), 평가(A)’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교수는 일방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과제 수행을 도와주는 퍼실리테이터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평가도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이뤄진다.
기존 대학의 교수들은 이런 요구에 난색을 표할 것이다. 교수 입장에서는 기존보다 강의에 두세 배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데, 연구와 달리 교육은 정량지표가 별로 마련돼 있지 않아 정당한 평가를 받기 어렵다. 켄텍은 교수가 교육과 연구 중 어느 쪽에 주력할지 스스로 정할 수 있다. 100명의 교수 중 20명은 연구가 아닌 교육에 몰두할 예정이다. 이들이 새로운 교육을 이끌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공대인 만큼 연구도 중요하다. 어떤 분야를 연구하나?
5대 분야를 선정해 집중적으로 연구할 예정이다(표 참조). 현재 5대 분야 각각 연구소를 설립했으며 연구소장을 맡을 분야 최고 전문가들을 섭외한 상태다. 여기에 젊은 신진 연구자들을 교수로 임용해 변화를 이끌 팀을 구성하고 있다.
서울대 산학협력단장과 연구처장을 맡으며 내실 있는 기술 개발의 중요성에 대해 자주 이야기했다. 켄텍에서도 연구자들의 기술 개발을 강조할 계획인가.
물론이다. 기초연구도 물론 중요하지만 기술로 만들어져 실제로 기업에 이전되고 고용을 창출하는 연구가 중요하다. 대학이 사회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다. 현재 대학 부지 전체와 같은 크기(40만 m2)의 부지를 기증 받아 산학연 클러스터를 구축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동일한 크기의 부지에 대형 연구시설과 인프라를 구축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이미 광주과학기술원(GIST), 전라남도와 함께 초강력레이저센터 구축을 위한 용역을 시작했다. 한국기계연구원, 기초과학연구원(IBS) 등 10여 개 기관과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도 체결했다. 기업들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특히 수소 쪽에 관심이 많다.
9월 첫 신입생을 모집한다. 어떤 학생이 오면 좋겠는가.
책을 많이 읽고 호기심을 갖고 근본적 질문을 던지는 학생이 지원하길 기대한다. 이런 학생이 켄텍에서 답이 없는 문제를 고민하고 남들이 못 해본 생각을 하는 역량을 습득하면, 에너지 같이 정말 어려운 문제를 만나 빛을 발할 것이다.
● 9월 첫 입학생 모집… 창의성 중시 ‘75분 수시 면접’이 특징
켄텍은 첫 학부 신입생으로 수시로 100명(10명은 고른기회 전형), 정시로 10명 등 총 110명을 뽑는다. 9월 10~14일 수시 지원서를 접수하며 11월 1단계 합격자를 발표한다. 대학원은 10월 8~21일 원서 접수를 받는다.
켄텍은 성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창의적 역량을 발굴하는 파격적인 학부 수시 입시 전형을 도입했다. 학생이 그간 발휘하지 못했던 역량을 발굴하기 위해 학생 한 명당 다른 대학의 4배 이상인 75분에 걸쳐 두 번의 면접을 본다. 보통 수시 면접 때는 어려운 문제를 학생에게 제시하고 풀게 한 뒤 10분간 그 답을 점검하는 면접을 한다. 켄텍은 수학 역량을 보는 학생부 기반 면접 20분 외에, 답이 없는 문제를 주고 답을 찾아가는 논리적 과정을 보는 55분간의 창의성 면접(사전 문제 분석 30분+면접 평가 25분)을 추가해 학생의 발산적 사고역량, 문제해결 역량, 창의적 역량을 확인한다. 자세한 모집 요강 및 창의성 면접 정보는 홈페이지(www.kentech.ac.kr)에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