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해 봅니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바라보며 “기왕 짖을 거면 한국말로 말해줘”라고 부탁을 해보지만, 돌아오는 건 여전히 뜻 모를 울음소리뿐입니다. 하지만 이 대답, 잘 살펴보면 인간과 대화하기 위한 반려동물의 노력을 읽어낼 열쇠가 됩니다. 인간과 긴 세월 함께 하는 동안 개와 고양이도 나름 ‘제2외국어’를 터득했거든요.
기자가 키우는 고양이는 말을 건넬 때면 “미야아옹”이라며 대답하곤 합니다. “솜아, 오늘 뭐하고 지냈어?” “미야아옹!” “언니 너무 귀찮은데 대신 설거지 좀 해줘.” “미야아아아옹!” 이런 식이죠. 한참 ‘대화’를 나누다 보면, 정말 고양이가 말을 알아듣고 대답하는 건지 의문이 들곤 합니다.
이 의문은 기자만 떠올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난 6월 10일, 과학동아는 사이언스 보드(www.scienceboard.co.kr) 홈페이지를 통해 독자들이 평소에 반려동물과 인간의 소통에 대해 품고 있던 궁금증을 물어봤습니다. 올라온 첫 질문은 “강아지나 고양이는 사람 말을 알아듣나요?”였습니다.
왜 내가 불러도 고양이는 답을 안 할까
먼저 고양이입니다. ‘고양이가 이름을 알아들어도 모른 척 한다’는 애묘인들의 푸념은 반은 맞는 이야기입니다. 가정에서 기른 고양이가 자기 이름을 알아듣는다는 연구결과가 있기 때문이죠. 사이토 아쓰코 일본 소피아대 심리학과 교수팀은 고양이가 자신의 이름과 일반 명사, 그리고 함께 사는 다른 고양이의 이름을 구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2019년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발표했습니다.
연구팀은 가정에서 기른 집고양이와 고양이 카페에서 무리생활하는 고양이를 이름으로 부르고 알아듣는지 실험했습니다. 이 때 이름과 음이 비슷하거나 길이가 비슷한 일반 명사를 섞어 불러 정말 이름을 구분하는지 확인했죠. 그 결과 가정에서 자란 고양이와 고양이 카페에서 자란 고양이 절반 이상이 이름을 구분해 반응한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낯선 사람이 이름을 부를 때에도 마찬가지 결과를 얻었습니다. 사이토 교수는 “고양이가 음소를 구별해 자신의 이름을 알아듣는다”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doi: 10.1038/s41598-019-40616-4
고양이가 인간에게 말을 걸어오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흔히 고양이 울음소리로 표현하는 ‘야옹’ 소리입니다. 주둥이를 천천히 붙이며 내는 높은 소리죠. 야옹 소리는 고양이가 인간과 교류할 때 자주 사용하는 소리로, 주로 놀이 중이나 먹이를 기다릴 때 등 친교의 의미로 씁니다.
같은 야옹도 상황에 따라 음이 다릅니다.
스웨덴 룬드대 연구팀은 2019년 40마리 고양이가 낸 780번의 야옹 소리를 여섯 가지 상황과 네 가지 감정 상태로 분류해 분석한 결과를 논문 사전공개사이트 ‘피어제이 프리프린트’에 공개했습니다.
상황은 문이나 창문 앞에서 기다릴 때, 친한 사람이나 고양이에게 접근할 때, 음식을 받을 때, 놀 때, 들어 올려질 때, 이동장 안에 들어가 있을 때 등 여섯 가지였습니다. 감정 상태는 관심 구하기, 만족, 불만족, 스트레스로 나눴죠. 분석결과, 고양이는 긍정적 상황에 있을 때 더 높은 소리로 짧게 울었습니다. doi: 10.7287/peerj.preprints.27926v1
나만 눈키스할 고양이 없어
고양이가 인간과 소통할 때 사용하는 다른 언어도 있습니다. 인간과 고양이가 서로 눈을 맞추고 눈을 천천히 깜빡이는 동작입니다. 흔히 ‘눈키스’라고 부릅니다. 영국 서섹스대 포유류 커뮤니케이션 및 인지연구단팀은 눈키스가 고양이와 인간이 긍정적인 감정을 교류하는 행위라는 사실을 밝혀 지난해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발표했습니다.
연구팀은 두 종류의 실험을 했습니다. 우선 주인이 고양이에게 눈을 깜빡였을 때와 주인이 아닌 사람이 깜빡였을 때 반응을 비교했습니다. 고양이는 주인의 눈키스에 더 잘 화답해 같이 눈을 깜빡여 줬죠. 두 번째 실험은 주인이 아닌 사람이 고양이에게 눈을 깜빡였을 때, 화답해 같이 깜빡인 고양이와 그렇지 않은 고양이 중 어떤 경우가 타인에게 더 잘 다가갔는지를 비교했습니다. 그 결과, 같이 눈을 깜빡인 고양이가 더 잘 다가갔습니다. doi: 10.1038/s41598-020-73426-0
눈키스를 하면 고양이와 친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만큼 ‘길에서 만난 고양이에게 눈키스를 했더니 고양이가 도망가 버렸다’는 제보도 속출하죠. 신윤주 다산숲 동물메디컬센터&동물행동클리닉 수의사는 “고양이 입장에는 낯선 사람이 갑자기 반갑게 인사를 건넨 셈”이라며 “고양이가 당황하는 반응을 보일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우선 친해지고 나서 눈키스를 건네야 성공 확률이 높아지겠네요.
‘인간, 도와줘’ 물끄러미 바라보며 도움 청하는 개
인간의 가장 친한 친구라고 불리는 개는 한술 더 떠 감정도 읽어냅니다. 2016년 국제학술지 ‘영국왕립학회 생물학회보’에 소개된 연구결과입니다. 연구팀은 다양한 품종의 성견 17마리에게 긍정적 감정(행복과 신남)과 부정적 감정(화남과 공격)을 느낄 때 인간의 얼굴을 찍은 사진을 보여줬습니다. 이 때 소리도 함께 들려줬는데요. 긍정적 감정이나 부정적 감정을 느끼는 인간의 목소리, 그리고 대조군으로 아무런 의미 없는 잡음을 들려줬습니다.
긍정적 감정 사진과 긍정적 감정 목소리, 부정적 감정 사진과 긍정적 감정 목소리 등 사진과 소리를 교차해가며 접한 개들은 목소리와 사진 속 감정 상태가 일치한 사진을 더 오래 응시했습니다. 연구팀은 “이 같은 결과는 개가 시각과 청각, 두 가지 정보를 분석해 사람의 긍정적 감정과 부정적 감정을 구별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결론내렸습니다. doi: 10.1098/rsbl.2015.0883
집을 실컷 어질러놓고 주인 눈치를 보는 개의 모습은 화가 나려다가도 쏙 들어가게 귀엽죠. 개는 자신이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할 때 사람의 ‘눈치’를 보며 문제를 해결합니다. 이런 특성은 그간 개와 인간의 소통을 연구하는 중요한 수단이 됐습니다. 먹이가 꺼내기 어려운 곳에 있을 때 개는 인간을 바라보며 해결책을 찾는데, 이런 모습은 개의 조상이라 여겨지는 늑대에게선 쉽게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사라 마샬 페시니 오스트리아 빈대 수의대 선임연구원팀은 다 자란 늑대, 늑대연구시설에서 자란 개, 애완견, 그리고 주인 없이 길을 돌아다니는 개를 대상으로 이들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마주했을 때 사람을 쳐다보는지를 관찰했습니다. 그 결과, 늑대의 경우 개보다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 노력하는 시간이 길었습니다. 반면 개는 빠르게 포기하고 사람을 쳐다봤죠.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2017년 발표됐습니다. doi: 10.1038/srep46636
네 말을 알아듣는 방법쯤이야 태어날 때부터 알고 있었는걸
동물의 행동은 사회화 과정을 거치면서 학습된 특성과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특성이 작용한 결과입니다. 반려동물이 인간과 소통하며 보여주는 다양한 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과 함께한 세월이 반려동물의 유전적 특성까지 바꿨는지 밝히기 위한 연구가 최근 활발합니다.
미국 애리조나대 개 인지 센터 연구팀과 미국 사회적 기업 ‘독립을 돕는 반려견’ 연구팀이 국제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 6월 3일자에 발표한 연구결과는 개가 태어날 때부터 인간의 행동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연구팀은 개가 인간의 행동을 읽는 능력이 선천적으로 물려받은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태어난 지 약 8주 된 강아지 375마리를 대상으로 간식이 있는 곳을 손으로 가리키며 뜻을 이해하는지 실험했습니다. 실험에 참여한 강아지들은 아직 어려 사람을 많이 접해보지 못했습니다. 인간의 행동을 읽는 능력이 선천적으로 물려받는 유전적 특성이라면, 아주 어린 강아지 때부터 손의 의미를 이해해야 하죠. 실험 결과, 전체 강아지의 67.4%가 연구자가 가리킨 방향으로 가 간식을 먹는 데 성공했습니다. 선천적으로 인간 행동을 이해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입니다.
연구팀이 진행한 다른 실험에서도 강아지가 처음 보는 인간과 교감을 나누는 모습이 확인됐습니다. 실험에 참여한 강아지들은 흔히 강아지를 어를 때 사용하는 높은 음의 ‘오구오구, 누구 개가 이렇게 예쁘대’ 등 소리에 반응해 사람을 오랫동안 응시하고 다가가 친근한 행동을 보였습니다. doi: 10.1016/j.cub.2021.04.055
인간과 소통하기 위해 개는 표정을 지을 수 있게 됐습니다. 인간처럼 표정을 지을 수 있도록 얼굴 근육이 발달한 겁니다. 영국 포츠머스대 비교 및 진화심리학센터 연구팀은 개의 피부 근육을 늑대의 피부 근육과 비교한 연구결과를 2019년 국제학술지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했습니다. 연구팀은 특히 개의 눈썹 근육이 발달한 점에 주목했습니다. 개는 안쪽 눈썹을 강하게 올릴 수 있는 근육이 있지만, 늑대는 없었습니다. 연구팀은 “눈썹을 올리는 동작은 인간이 슬플 때 짓는 표정과 닮았다”며 “인간이 개를 돌보도록 유도하기 때문에 진화적 관점에서 선택적 우위를 가져 현재의 ‘강아지 눈’을 탄생시킨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doi: 10.1073/pnas.1820653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