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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궁금증이 있다면 월경상점으로 오세요

 

여성들이 모인 단톡방에 월경용품에 대해 품고 있던 궁금한 점을 묻자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 쏟아져 나왔다. 오랫동안 품어온 질문인 듯했다. 여성들은 저마다 다른 월경을 겪고 있었고 그만큼 질문도 다양했다. 
달 마다 다시 떠오르는 질문인 만큼 쉬이 잊을 수도 없었다.
지난 1월 국내 최초로 월경용품 전문 오프라인 매장, ‘월경상점’이 서울 동작구에 문을 열었다. 월경상점에 상주하는 월경에디터는 이런 여성들의 질문에 답변을 해준다. 월경용품을 직접 보고 만져보며 이해할 수도 있다. 세계 월경의 날(5월 28일)을 앞둔 5월 4일, 월경에 대한 과학적 궁금증을 풀어보고자 월경상점을 찾아가 김민지 월경에디터를 만나봤다.

 

 

5월 4일 서울엔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우중충한 하늘을 지나 월경상점의 문을 열자 새빨간 벽이 기자를 맞이했다. 100개는 돼 보이는 생리컵이 빨간 벽 선반에 줄지어 있었다. 생리컵은 질에 삽입해 생리혈을 위생적으로 처리하는 월경 용품이다. 2017년 12월 미국 펨캡 사의 생리컵 ‘페미사이클’이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으면서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판매되기 시작했다.


옆으로 눈을 돌리자 크기와 모양이 다른 생리대들이 빨래처럼 널려 있는 모습이 보였다. 다른 한 켠엔 차와 영양제, 각종 검사 키트들이 전시돼 있었다. 


생리컵 선반 앞에서 한 모녀가 월경에디터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모녀는 십여 분 간 낯선 월경용품을 차근차근 알아갔다. 사용법부터 종류, 장점 그리고 단점에 대한 질문과 답이 오갔다. 모녀가 떠나고 김민지 월경에디터가 다가와 말했다.


“초경을 시작한 지 1년 정도 지난 학생인데, 어머니께서 앞으로 30년 넘게 월경을 할 딸에게 좋은 월경용품을 소개해주고 싶어서 오셨대요. 제가 어렸을 때는 탐폰을 쓰겠다고 하면 몸에 그런 거 넣으면 안 된다고 혼나기까지 했는데, 이럴 때 인식이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 새삼 느끼죠.”

 

 

피 흘리는 며칠이 아니라 한 달의 사이클로 인식되길


생리는 본래 생물체 내에서 일어나는 기능 또는 작용을 의미하는 단어다. 하지만 달마다 반복되는 여성의 생리현상인 월경을 에둘러 가리키기 위해서도 사용되고 있다. 월경은 사춘기 이후 여성의 난소에서 만들어진 난자가 임신이 되지 않을 경우 혈액 및 자궁내막과 함께 질로 배출되는 현상이다. 보통 28일 주기로 발생하며 3~5일 지속된다.


하지만 이 마저도 ‘그날’ ‘마법’과 같이 더 에두른 표현 속에 숨었다. 김민지 월경에디터는 “월경이란 표현에는 피 흘리는 며칠이 아니라 여성의 몸에서 한 달의 주기로 일어나는 일 중 하나라는 의미가 담겨있다”며 “이런 표현은 불편한 며칠이 내 몸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사이클(주기)이라고 인식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손님을 대할 땐 굳이 월경이란 말을 고집하지 않고 손님이 쓰는 말을 따라 사용한다”며 “대신 질이나 자궁(포궁), 외음부를 말할 때도 ‘거기’ ‘그곳’ 등의 간접적인 단어를 사용하시는 분도 있는데 이때는 정확한 명칭을 써서 설명한다”고 말했다.


월경상점은 스타트업 이지앤모어가 운영하고 있다. 이지앤모어는 2017년 해외직구매로만 살 수 있었던 월경컵을 국내에서 구매할 수 있도록 식품의약안전처의 판매 허가를 이끌어낸 기업이다. 당시는 생리대 안전성 논란이 터져 여성들이 일회용 생리대를 대체하는 다양한 월경용품을 모색하던 시기다. 이지앤모어는 월경용품 수다회, 월경 박람회 등을 열며 여성들의 월경용품 선택권을 넓히는 활동을 했다. 그렇게 여성들이 월경용품을 직접 만져볼 수 있는 상점도 열게 됐다. 


김 에디터는 월경상점 손님 중엔 생리컵에 대해 묻기 위해 오시는 분이 가장 많다고 전했다. “생리컵을 써보고 신세계를 경험한 여성들은 소위 ‘영업’을 하기 위해 친구를 직접 데려오기도 한다. 손가락을 넣어 질 길이를 재야 맞는 생리컵을 찾을 수 있는데, 당장 사고 싶은 마음에 건물 화장실에 가서 직접 재고 오시는 분도 있다. 청소년들이 써도 되는지도 많이 궁금해 하시는데 경도가 낮아 말랑하고 크기가 작은 컵을 추천한다. 질에 손가락을 넣는 게 낯설 수 있지만 생리컵을 사용하면 늘상 해야 하는 일이니 부담감을 낮추기 위해 일단 해보길 권하고 있다.”


월경상점에서는 직원들이 사용해보지 않으면 제품으로 내놓지 않는다. 지금도 사무실에는 직원들의 월경을 기다리는 제품들이 있다고 했다. 김 에디터는 “직원들의 리뷰가 아무리 좋은 제품이라도 광고나 브랜드 이미지가 여성을 대상화하는 등 부적절하다면 판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월경상점은 월경 기간 외에 평소에도 여성이 몸을 보살필 수 있도록 디카페인차, 영양제, 질염테스트기 등을 판매하고 있다. 월경 중에 경험하는 고민들은 보통 나머지 수 주 동안의 생활로 비롯됐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월경상점에서는 심한 월경통, 월경전증후군(PMS)과 같이 일상을 위협하는 고민들도 들어준다.


김 에디터는 “월경은 수면, 카페인 섭취, 운동 등 생활습관에 영향을 받는다”며 “월경용품에 대한 궁금증뿐만 아니라 한 달 주기에 관한 궁금증이 있다면 언제든 환영이다”라고 말했다. 다만 주의할 점을 덧붙였다. “월경에디터들은 연구자나 의사가 아닌 만큼 질병을 진단하거나 치료할 수 없다. 대신 생활습관을 점검하고 막연한 고민을 구체적인 문제로 설명해줄 수는 있다. 월경에 관해 고민이 생겼을 때 ‘월경상점에 가서 물어보자’라는 인식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여성들이 내 몸을 알아가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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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박영경 기자 기자
  • 디자인

    이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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