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몸에 좋으니까 쭉 마셔, 식품도 약이 될 수 있어. 오죽하면 밥이 보약이라는 말이 다 있어?” 오늘 아침에도 이런 말과 함께 정체불명의 초록 주스를 들이켠 분, 손들어주세요. 역시 손을 든 분이 이렇게 많을 줄 알고 있었습니다. 8년 전엔 아로니아가 인기였고요, 아사이베리를 거쳐 요즘은 크릴 오일과 타트 체리가 인기입니다. 이들 식품의 효능을 들어보면 ‘불면증 치료’ ‘간 기능 개선’ 등 귀가 솔깃해지는 말투성이입니다. 저도 모르게 지갑이 열릴 정도죠. 최근엔 코로나19를 예방한다는 유산균 음료까지 나왔어요. 근데, 정말 밥은 보약이 될 수 있는 걸까요. 식품 광고 속 약효를 뜯어봤습니다.
건강에 좋은 식품에 관해 이야기하기 전에, 입에 들어가는 상품 중에서 ‘몸에 좋다’는 것을 부르는 명칭을 먼저 정리하겠습니다. 크게 일반식품과 건강기능식품, 의약외품, 그리고 의약품으로 나눌 수 있어요.
일반식품은 우리가 평소에 접하는 음식을 뜻합니다. 사과, 라면, 커피 등이 있죠. 건강기능식품은 인체에 유용한 기능성을 가진 원료나 성분을 사용해 제조(가공)한 식품입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로부터 인체 기능성과 안전성을 인정받아야 건강기능식품이라는 이름으로 판매할 수 있습니다. 의약외품과 의약품은 질병의 치료와 예방을 위한 제품이죠. 마스크, 자양강장제, 건위소화제, 비타민제 등은 의약외품, 진통제, 해열제 등은 의약품입니다.
의약외품과 의약품의 차이는 약국에서 살 수 있느냐로 나뉩니다. 의약품은 약국에서만 팔고, 의약외품은 마트 등 일반 가게에서도 구입할 수 있죠. 일반식품과 건강기능식품 역시 마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의약품을 제외한 나머지 셋이 헷갈릴 때가 많습니다.
확실한 구분법은 제품의 용기나 포장, 혹은 첨부 문서를 잘 살펴보는 겁니다. 의약외품과 건강기능식품은 각각 약사법과 건강기능식품법에 의해 관리되며 ‘의약외품’ ‘건강기능식품’이라고 명시하도록 법률로 규정돼 있습니다. 이런 문구가 안 쓰여 있으면 일반식품인 겁니다. 우리가 살펴볼 타트 체리와 크릴 오일이 바로 일반식품에 포함됩니다.
같은 듯 다른 ‘식품’과 ‘약’
일반식품과 건강기능식품, 의약외품과 의약품을 엄격하게 구분하는 이유는 이들의 역할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권오란 이화여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먹는 것이 식품이고,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먹는 것이 약”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신체 기능이 저하됐다고 느낄 때 일반식품이나 건강기능식품을 먹어 도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치료와는 다른 개념이죠. 일반식품이나 건강기능식품을 통해 질병을 치료하길 기대하면 안됩니다.
권 교수는 “식품은 질병이 보이는 특정 증상을 개선하기보다는 전반적인 신체의 기능 향상을 돕는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쉬운 이해를 위해 예를 들어볼까요. 알로에 겔은 건강기능식품에 들어가는 기능성 원료입니다. 이 원료의 기능은 ‘장 건강 증진에 도움을 줄 수 있음’이라고 식약처가 인증했죠.
하지만 만약 장 점막에 염증이 생기고 설사를 한다면 ‘장 건강 증진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알로에 겔을 먹을 게 아니라, ‘성인의 급·만성 설사를 치료하는 효과가 있다’는 의약품을 먹어야 합니다. 설사라는 특정 증상을 개선해야 하니까요.
일반식품 포장지에 질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하는 효과가 있다고 표시할 수 없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구체적인 질병의 명칭을 언급하면서 효과가 있다고 광고하면 소비자들이 일반식품을 건강기능식품이나 의약품으로 혼동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죠. 부당광고가 됩니다. 그런데 최근 건강정보 프로그램을 통해 다양한 일반식품의 효능이 널리 소개되면서 이를 가공한 상품이 의약품과 같은 효과가 나는 것처럼 호도하는 부당광고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타트 체리의 경우 ‘불면증’ ‘만성염증 완화’ ‘관절염증 예방’ ‘항산화 효과’라는 문구를 사용하고, 크릴 오일은 ‘혈중 콜레스테롤 감소’ ‘다이어트 효과’ ‘눈 건강 향상’ 등의 문구를 넣어 광고하는 식인데요. 모두 부당한 광고로 식약처의 적발 대상입니다. 실제로 지난해 4월에는 크릴 오일 부당광고 829건, 8월에는 타트 체리 부당광고 138건이 적발됐죠.
식약처는 2019년부터 의사, 식품영양학 교수 등 전문가 40여 명으로 구성된 민간 광고검증단과 함께 새로 유행하는 식품이나 의학적 효능을 표방하는 식품의 표시·광고를 검증하고 있습니다.
식품과 의약품은 효능과 안전성을 검증하는 임상시험단계에서도 차이가 납니다. 의약품의 경우 질병에 걸렸다고 진단된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합니다. 반면 식품의 건강 기능성을 평가할 때에는 건강인이나 준 건강인을 대상으로 진행됩니다. 정수진 전북대병원 기능성식품임상시험지원센터 연구교수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먼저 환자를 대상으로 식품 건강 기능성을 평가하면 ‘병의 치료는 약으로 하는 것’이라는 대원칙에 위배됩니다. 둘째, 환자들은 이미 의약품을 복용 중인 경우가 많은데 다양한 화학물질이 섞여 있는 식품 추출물을 복용하게 하면 예상치 못한 상호작용으로 건강에 악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과학적으로 증명됐다’ 광고에 속지 않으려면
식품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과학적 근거로 주로 꼽히는 건 논문의 형태로 발표된 연구결과입니다. 타트 체리의 경우 글린 호왓슨 영국 노섬브리아대 인간 및 응용생리학과 교수팀이 국제학술지 ‘유럽 영양 저널’에 2011년 발표한 논문과 프랭크 그린웨이 미국 루이지애나 주립대의 페닝턴 의생명연구센터 교수팀이 ‘미국 치료학 저널’에 2018년 발표한 소규모 선행연구 논문이 흔히 광고에 언급됩니다. doi: 10.1007/s00394-011-0263-7, doi: 10.1097/MJT.0000000000000584
이들 논문은 각각 20명과 11명의 지원자를 두 그룹으로 나눠 타트 체리를 먹은 그룹과 가짜 약을 먹은 플라시보 그룹에서의 수면 질 개선을 비교한 겁니다. 두 논문 모두 플라시보 그룹과 비교했을 때, 타트 체리 주스를 섭취한 그룹의 수면 시간이 증가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이들 논문이 ‘약효’를 정당화한다고 주장하기는 이릅니다. 논문의 시험자 수가 20명과 11명인 점이 우선 걸립니다. 정 교수는 “국내에서 식품의 기능성을 평가하는 임상시험은 일반적으로 80~100명의 시험자를 대상으로 진행한다”고 말했습니다.
연구의 신뢰도를 판단하려면 임상시험에 참가한 사람의 수 외에 그 논문의 신뢰성과 연구 방법도 주목해야 합니다. 권 교수는 “논문의 신뢰성은 해당 논문이 게재된 학술지의 임팩트 팩터(연구의 가치를 평가하는 점수, 수치가 높을수록 신뢰도가 높다)를 판단에 참고할 수 있고, 연구 방법은 실제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한 임상시험인지, 플라시보 그룹이 있었는지, 어떤 지원자가 일반 식품을 먹고 어떤 지원자가 실제 검증하고자 하는 식품을 먹을지 배정이 무작위로 됐는지를 따져봐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해당 논문이 이해당사자의 지원을 받았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타트 체리에 대한 위 두 논문 가운데 두 번째 논문은 체리마케팅연구소라는 미국 체리 판촉 기업으로부터 임상시험 연구비를 지원 받았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해당사자가 관여했으니 감안해서 결과를 해석해야겠죠.
국내에서도 최근 이해당사자가 개입된 연구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4월 13일 남양유업은 한국의과학연구원이 주관한 ‘코로나 시대 항바이러스 식품개발’ 심포지엄에서 자사의 유산균 음료인 불가리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항바이러스 효과가 있음을 국내 최초로 확인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남양유업 주가는 발표 이후에 급등했다가 발표를 둘러싼 논란이 불거지면서 다시 급락했습니다. 발표의 근거가 된 연구가 동물시험이나 임상시험을 거치지 않았던 데다, 불가리스 7종류 제품 중 1종류 제품에 대해서만 코로나19 항바이러스 세포실험을 했음에도 불가리스 제품 전체가 항바이러스 효과가 있는 것으로 제품명을 특정했기 때문입니다. 남양유업은 코로나19로 인한 국민 불안감을 주가를 띄우는 데 악용했다는 의심을 피할 수 없었죠.
식약처가 4월 15일 진행한 긴급 현장조사에서는 남양유업이 해당 연구 및 심포지엄 개최에 연구비를 지원하고 심포지엄 임차료를 지급하는 등 적극적으로 개입했다는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식약처는 “식품은 의약품이 아니므로 질병의 예방, 치료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인식할 우려가 있는 표시·광고 행위는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며 “남양유업의 이와 같은 행보는 ‘식품표시광고법’ 제8조 위반으로 판단한다”고 밝혔습니다. 식약처는 남양유업을 행정처분 및 고발조치했고 세종시는 남양유업의 세종 공장에 대해 2개월 영업정지 처분을 내렸습니다.
식품은 식품으로만 즐기자
연구결과를 모두 신뢰할 수도 없고, 신뢰할 만한 연구결과가 몇 개 있다 해서 바로 ‘건강에 도움이 되는 식품’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우선 연구결과가 많이 모여 해당 식품의 기능이 충분히 입증돼야 합니다. 이후에는 시중에 나와 있는 다양한 제품을 대상으로 동등한 품질 관리 기준을 세우고 용법과 섭취량에 대한 기준을 마련해야 합니다. 이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해당 식품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겁니다. 이제 막 이슈가 된 타트 체리, 크릴 오일 등의 식품은 아직 갈 길이 머네요.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연구결과가 충분히 쌓여 효능이 검증되고, 용법과 품질 관리의 기준이 명확한 식품은 건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보약의 사전적 정의가 ‘인체의 생리기능의 부조현상에서 오는 신체의 허약상태를 도와주는 약물’이니, 밥이 보약이라는 말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건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는 정도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식품과 의약품은 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