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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네이터 로봇의 진화 가능할까



“I’ll be back.” 터미네이터가 다시 돌아왔다.
이번엔 육해공을 누비는 터미네이터 군단이 화면에 가득하다.
터미네이터의 과학적 가능성과 인간 정체성에 대한 질문 공세 역시 만만치 않다.


2018년 지구에는 인류를 말살하려는 기계 군단에 맞서 인간 저항군이 전쟁을 벌이고 있다. 위~잉! 비행접시 같은 무인정찰기(에어로스태츠)가 주인공에게 다가오더니 얼굴을 스캔하고 그의 정체를 파악해 위치 정보를 인공지능 네트워크 ‘스카이넷’으로 보낸다. 부~앙! 미끈한 무인오토바이(모터 터미네이터)가 주인공을 추격하다가 폭발로 흩어진 잔해가 다가오자 충돌물체를 감지하고 몸체를 피해 움직인다.

5월 21일 개봉한 영화 ‘터미네이터: 미래 전쟁의 시작’에는 지상은 물론, 하늘과 물속까지 넘나드는 로봇 군단이 등장한다. 2m가 넘는 걸어다니는 병기 ‘T-600’, 날렵한 몸체에 인간을 닳은 터미네이터 ‘T-800’, 공중을 순찰하다 미사일을 발사하는 전투기형 터미네이터 ‘헌터 킬러’, 정찰용 터미네이터 ‘에어로스태츠’, 집게 모양의 팔로 인간을 사냥하는 키 25m의 ‘하베스터’, 하베스터 다리에 장착돼 있다가 도망치는 인간을 추적하는 ‘모터 터미네이터’, 길이 1.2m의 뱀처럼 생겨 물속에서도 촉수를 뻗어 공격하는 ‘하이드로봇’. 이들은 스카이넷이 만들어낸 가공할 만한 살상 기계들이다. 이런 괴물 같은 로봇들이 가능할까.



곤충, 동물, 추론, 사람 수준으로 로봇 지능 구분

현재 기술에 무인화에 필요한 기술을 개선해 덧붙이면 실현 가능한 로봇도 있다. 모터 터미네이터, 헌터 킬러, 하베스터가 대표적 예.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인지로봇연구단 유범재 박사는 “모터 터미네이터나 헌터 킬러는 오토바이나 수직이착륙기에 무인운전 기술, 고속정밀 위치추적 기술, 자율주행 기술 등을 덧입히면 가능할 것”이라며 “하베스터는 포클레인에 쓰는 유압 관절을 적절히 사용하고, 큰 덩치를 지탱하며 움직이기 위한 동작제어 기술을 적용하면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들이 스스로 전투할 수 있느냐다. 한국형 휴머노이드 ‘휴보’를 개발한 한국과학기술원(KAIST) 기계공학과 오준호 교수는 “오히려 과학적으로 구현하기 힘든 부분이 바로 자율성”이라고 밝혔다. 영화에서는 인공지능 네트워크(센터)인 스카이넷이 전략적인 명령을 내리면 하드웨어 플랫폼(로컬 에이전트)인 각종 터미네이터가 이에 따라 움직이는데, 이들 에이전트가 살아남기 위해 센터의 명령 없이 임기응변으로 움직일 수 있을까가 관건이라는 뜻이다. 현재 네트워크 로봇은 서버컴퓨터에서 여러 로봇에게 제한된 인식기능, 동작명령 등을 제공하는 방식이라 스카이넷과 터미네이터에 비하면 초보적 수준이다. KIST 유 박사팀이 개발한 네트워크 로봇을 예로 들면 ‘마루’와 ‘마루-M’라는 2대의 로봇이 동시에 사람 50명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으며 가요 ‘텔 미’에 맞춰 원더걸스 춤을 추는 식이다.

오 교수는 로봇의 지능을 곤충 수준, 동물 수준, 추론, 사람 수준 크게 4가지로 구분했다. 곤충 수준 지능은 바퀴벌레처럼 잘 돌아다니고 싸우는 능력을, 동물 수준 지능은 강아지처럼 사람을 알아보고 스스로 중심을 잡는 능력을 말한다. 그는 “청소로봇은 바퀴벌레 수준으로 여기저기 부딪쳐도 잘 다닌다”며 “휴보는 밀어도 안 넘어지고 잘 움직일 정도로 중심을 잘 잡는다”고 설명했다. 또 추론 지능은 전문가 시스템처럼 자료를 많이 받으면 추론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다. 체스나 바둑을 두고 병명도 알아내는 컴퓨터가 이런 능력을 지녔다. 그는 “사람 수준 지능은 스스로 생각하고 창조하며 기획하는 능력”이라며 “아직 이를 구현하기엔 현실과의 격차가 크다”고 밝혔다.




동력원은 수소연료전지

영화에 등장하는 인간형 터미네이터를 개발하기란 아직 요원하다. 인간을 닮은 인공지능은 문제 삼지 않더라도 크기가 작으면서 큰 힘을 내는 액추에이터(구동장치)나 반영구적인 동력원 개발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유 박사는 “영화 ‘터미네이터 3’을 보면 터미네이터가 뱃속에서 뭔가를 하나 끄집어낸 다음 버리는데, 이것이 바로 소형이면서 대용량인 동력원”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영화에서 터미네이터의 동력원으로 소형 연료전지가 등장한다. 그는 “수소를 이용한 연료전지는 반영구적 동력원”이라며 “현재 휴머노이드를 움직이려면 라면 상자 크기의 연료전지가 필요한데, 연료전지 크기를 휴대전화 2~3개 정도로 줄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 영화에서는 인간형 터미네이터의 진화도 볼 수 있다. 구형 버전 T-600은 큰 덩치에 얼굴을 고무 피부로 가리고 몸에 넝마를 걸친 채 좀비처럼 꾸물꾸물 돌아다닌다. 여기서 진화한 T-800은 더 작고 날렵한 몸에 사람 피부와 비슷해 보이는 인조 피부를 하고 있다. 또 터미네이터 시리즈 전편에는 액체금속 휴머노이드라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는 터미네이터 T-1000, 이보다 더 발전된 형태로 주변 기계까지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터미네트릭스 T-X가 등장한다.

터미네이터가 이처럼 진화할 수 있을까. 오 교수는 “하드웨어는 구형에서 신형으로 발전하지만 기억력, 판단 능력 같은 지능은 엇비슷해 보인다”며 “특히 ‘터미네이터 2’의 액체금속 로봇(T-1000)부터 동정심이 사라졌다”고 밝혔다. 이번 영화에서도 T-600이든 T-800이든 기계 군단의 인간형 터미네이터는 심장이 뛰는 것이라면 고민하지 않고 잔혹하게 살인하는 기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점에서 이들 터미네이터가 인간보다 동물과 비슷하다는 평가를 내린다.

 


“2020년 휴머노이드 실전 투입”



실제 전투로봇의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미국 포스터-밀러 사가 개발한 이동로봇 ‘탤런’이 기관총이나 유탄발사기를 장착하고 도시지역에서 전투용으로 쓰일 예정이다. 무게 36kg인 탤런은 보스니아내전에서 수류탄을 제거하거나 아프가니스탄의 트라보라 동굴 내부에서 사진을 촬영하며 감시 및 첩보 활동을 했으며, M249나 M240을 장착한 ‘로봇 군인’으로서 이라크 전에 투입되기도 했다. 시속 8.4km까지 속도를 내고 32km 거리를 주행할 수 있으며 1회 배터리 충전으로 1주일간 가동할 수 있는 게 탤런의 특징이다. 사람이 로봇과 화기를 원격 제어해야 한다.

전장에서 쓸 수 있는 정찰 및 감시 로봇은 미국 아이로봇 사를 중심으로 개발되고 있다. 계단이나 울퉁불퉁한 길에서도 움직이며 1.8m 높이에서 콘크리트 바닥으로 떨어져도 충격을 극복해야 한다는 사항이 중요하게 검토되고 있다. 아이로봇 사의 ‘팩봇’은 현재 전 세계에서 1500대 이상이 사용되고 있다. 한국의 경우 KIST와 유진로보틱스에서 공동 개발한 위험작업 로봇 ‘롭해즈’가 자이툰부대와 함께 이라크 전장에 투입되기도 했다. 적군을 정찰하거나 사제 폭발물을 제거하는 임무를 맡았다.

보급 로봇, 구조 로봇, 치료 로봇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미국 육군을 중심으로 전시에 식량과 군수품을 보급할 수 있는 견마형 로봇인 ‘빅독’을 제작했으며, 미국 베크나로보틱스 사에서는 전장에서 부상당한 군인을 안전하게 후송할 수 있는 구조용 인간형 로봇 ‘베어’(BEAR)를 개발했다.



미국 국방부는 2012년까지 17조 8000억 원을 투입해 로봇을 기반으로 ‘미래형 전투시스템’(FCS)을 위한 기술 개발에 나설 계획이다. 분쟁지역에 C-130 수송기로 유무인 차량을 운송하면 소수의 유인 차량에서 무인 로봇차량(UGV)과 무인 정찰기(UAV)를 네트워크로 지휘하는 시스템이다. 무인 정찰기는 정찰과 감시에 나서며, 소형 무인 로봇차량은 터널, 하수구, 동굴 등에서 군인을 대신해 독성화학물질을 감지한다. 현재 무인 자율주행과 군집제어를 위한 로봇기술도 개발 중이다. 곤충만 한 크기에 무게 10g 미만인 초소형 무인정찰기뿐 아니라 적군을 선별해 공격하는 인간형 로봇도 연구하고 있다. 로봇 과학자들은 2020년이면 휴머노이드가 실전에 투입되기 시작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영화 ‘터미네이터’와 비슷한 상황을 만날 날도 머지않은 셈이다.



블랙박스와 서비스 사이



영화처럼 인간이 로봇에 지배당할 수 있을까. 오 교수는 “인간은 이미 컴퓨터 시스템의 노예”라며 “컴퓨터 시스템이 고장 나면 엄청난 혼란이 올 것”이라고 밝혔다. 예를 들어 인터넷에 문제가 발생하면 온라인 뱅킹이 마비되거나 보안 시스템에 에러가 생겨 전쟁까지 일어날 수 있다. 그는 또 “윈도 같은 컴퓨터OS가 업그레이드되지만 매번 복잡성이 증가해 버그가 발견돼도 패치 프로그램을 덧붙여 누더기가 될 뿐”이라며 “휴보가 여러 면에서 기능이 향상됐지만 이제 삐딱하게 걸어도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알기 힘들 정도”라고 덧붙였다. 시스템에 복잡성이 증가해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블랙박스’가 늘어난다는 뜻이다.

로봇에 자율성을 주는 문제도 고민해봐야 한다. 예를 들어 청소로봇은 벽에 부딪쳐도 전혀 위험하지 않지만, 덩치 크고 힘 센 로봇에 자율성을 많이 준다면 집을 다 부수는 무기가 될 수 있다. 공장에서 커다란 부품을 조립하는 산업용 로봇의 경우 힘도 매우 세고 빠르게 움직일 수 있지만 자율성은 거의 허용되지 않고 단순 작업만 반복하도록 돼 있다.


현재 사람에게 로봇은 어떤 존재일까. 일부에서는 로봇을 슈퍼휴먼이나 포스트휴먼 같은 인격체로 간주하며 위험성을 말하지만, 대부분의 로봇 전문가들은 로봇을 자동차나 강아지처럼 인간에게 편리함이나 즐거움을 주는 대상물이라고 본다. 오 교수는 “손발이 불편한 노약자가 목욕을 해야 할 때 봉사자한테 시중을 받는다 해도 수치심을 느낄 수 있다”며 “서비스 로봇이 이런 일을 대신 해준다면 인간의 존엄이 손상 받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2월 19일 지능로봇 프론티어 사업단에서 공개한 노인용 서비스로봇 ‘실벗’이 좋은 예다. ‘실버세대의 벗’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로봇답게 노인의 말벗이 되거나 고스톱 게임 상대도 돼 준다.

인간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이번 영화에서도 변함없다. “자신이 인간이라고 생각하나?” “그렇다!” 뇌와 심장만 살아 있고 나머지가 전부 기계라면 이를 인간으로 볼 수 있을까. 유 박사는 “현재 팔이나 손이 없는 사람은 인공 팔이나 손을 장착하고 근전도 감지기를 이용해 움직이고 원숭이 뇌파로 로봇팔을 움직이게도 한다”며 “미래 사회에는 사이보그가 자연스러울 것”이라고 밝혔다. 그래도 뇌와 심장만 있는 그것(it, 사이보그)은 인간으로 보기 힘들지 않을까. 그런 존재는 보통 인간이 태어나는 방식이 아니니까.

2009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이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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