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계 내 달이나 행성을 탐사하는 일은 이제 흔해보인다. 올 2월 니어-슈메이커 탐사선이 소행성에 착륙하면서또다른 탐사의 모습을 보여줬다. 최근 딥스페이스 1호가 혜성에 접근해 베일에 가렸던 혜성핵의 모습을 생생하게 포착했다. 태양계 탐사의 새로운 지평을 연 역사적 현장을 만나보자.
최근 미항공우주국(NASA)의 탐사선 딥스페이스 1호(Deep Space 1)가 보렐리혜성에 가까이 접근해 이전보다 생생한 혜성의 모습을 포착했다. 태양계의 방랑자 혜성의 신비가 조금씩 벗겨지고 있는 것이다. 딥스페이스 1호는 원래 혜성 탐사용이 아니라 21세기의 태양계 탐사 계획을 위한 첨단기술의 시험을 주된 목적으로 발사된 탐사선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다. 딥스페이스와 보렐리가 랑데부하기까지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오래 걸리지만 효율적인 이온추진
NASA의 딥스페이스 1호는 1998년 10월 24일 미국 플로리다주의 케이프 커내버럴 공군기지로부터 발사됐다. 딥스페이스 1호는 앞으로 행성 탐사 계획에 필요한 신기술을 테스트하는 NASA의 뉴 밀레니엄 계획(New Millennium Program)에 의한 최초의 탐사선이다. 즉 딥스페이스 탐사선의 주목적은 우주 탐사를 위한 12가지의 신기술을 시험하는 것이었다. 이 모두가 지금까지 시도되지 않은 최첨단 기술이다.
이 가운데 가장 주목받는 특징은 우주탐사선으로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이온추진방식의 주엔진을 채용했다는 점이다. 탐사선은 현재 보렐리혜성에 대한 근접탐사 이후 사실상 모든 미션을 마친 상태지만 지금도 순조롭게 비행중이며 지금까지 엔진의 분사시간은 약 5백83일(1만4천여시간)이었다. 이것은 우주 추진기관의 가동시간 면에서 보면 신기록이다. 이전에는 1970년 지구 궤도에 올려졌던 NASA의 우주 전기로켓 테스트 2호(Space Electric Rocket Test 2)에 장착된 이온엔진이 약 1백61일간 분사했던 일이 기록이었으나, 이번에 딥스페이스 1호가 새로운 기록을 다시 세운 것이다.
딥스페이스 1호가 실은 연료는 크세논(Xe)뿐이다. 크세논의 양은 기존 우주선 연료의 1/10에 불과하지만 크세논이온 추진방식은 화학 추진방식보다 10배 정도 큰 추진력을 제공하는 대단히 획기적인 기술이다. 크세논은 헬륨, 네온, 아르곤 등과 함께 불활성기체에 속하는 원소인데, 불활성기체는 이온화되기 힘들지만 원자 자체가 갖는 에너지가 크기 때문에 일단 이온화되면 큰 에너지를 낸다. 그래서 크세논을 이온엔진에 사용했던 것이다. 딥스페이스 1호에는 81.5kg의 크세논이 탑재돼 있고, 엔진을 연속 분사할 경우 소비되는 크세논의 질량은 1일간 불과 1백g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딥스페이스 1호는 우주공간에서 크세논 가스원자를 이온으로 만들고 이 이온을 전기장으로 가속해 이때 생기는 추진력으로 탐사선을 움직인다. 크세논이온 추진엔진은 기존의 화학추진방식에 비해 효율이 매우 높지만 탐사선을 가속시키는데 좀더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크세논 이온 자체는 시속 10만9천km라는 엄청난 속도로 배출되지만 탐사선은 자체 질량이 너무 무겁기 때문에 가속시키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실제 이온엔진으로는 탐사선을 하루에 시속 25-32km밖에 가속시킬 수 없고 3일간 가속하면 시속 97km에 이르며 3백일 뒤에는 탐사선의 속도가 시속 9천7백km가 될 수 있다. 현재 탐사선의 속도는 시속 1만1천km에 달한다고 한다.
또한 딥스페이스 1호에는 별, 소행성 등을 관측해 자신의 위치를 파악한 다음 비행방향을 스스로 결정하는 인공지능 비행시스템이 성공적으로 적용됐다. 아폴로우주선이 달로 향했을 때 우주인이 직접 길잡이별을 보며 방향을 찾았던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새로운 기술이다. 이것은 컴퓨터와 관측장치의 발달로 가능해진 것이다. 즉 별을 CCD라는 영상촬영장치로 찍어서 컴퓨터에서 자료를 처리해 스스로 방향을 찾아가는 방법이다.
이 밖에 기존 태양전지판보다 좀더 효율적으로 이온엔진에 전력을 공급하는 업그레이드된 태양전지판, 기존의 것보다 2배나 가벼운 통신장치, 어떤 일에 대처할 때 탐사선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한 인공지능 소프트웨어(자동운행시스템) 등이 딥스페이스 탐사선에 사용됐다.
소행성 탐사하며 신기술 테스트
딥스페이스 1호에 적용된 신기술을 테스트하는 작업은 1999년 7월 29일 소행성 브레일에 접근하면서 절정에 이르렀다. 소행성 브레일에 접근해 관측하면서 자동운행시스템을 비롯한 다양한 신기술이 테스트됐다. 소행성이 예상 외로 어두워서 최접근시에 카메라가 소행성을 확인하지 못하고, 최접근 후 약 15분만에 소행성의 모습을 파악했지만, 탐사선에 대한 기술상의 테스트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게다가 소행성의 크기나 형태, 광물 조성 등 과학적인 성과도 얻을 수 있었다. 특히 소행성 브레일에서 관측된 스펙트럼이 소행성 베스타와 매우 닮았다는 점은 과학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베스타에는 강한 충돌흔적이 남아있어 이 충돌로 인해 파편이 떨어져 나왔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었는데, 브레일의 관측결과를 두고 브레일이 이 파편일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이 제기되기도 했다.
원래 딥스페이스 1호의 미션은 1999년 9월에 종료될 예정이었다. 보통 우주탐사 미션은 예산 문제나 탐사선 장비의 성능 문제로 수명을 다한다. 하지만 딥스페이스 미션의 경우 탐사선 장비가 아직 쓸만했고 탐사팀의 도전 의욕도 컸기 때문에 연장될 수 있었다. 연장 미션의 대상은 이전까지 탐사된 적이 거의 없는 천체인 혜성. 전혀 검증되지 않았던 각종 신기술을 테스트하는 탐사선 딥스페이스에 어울리는 도전 대상이라 할 수 있었다. 이는 지난 2월 최초로 소행성에 착륙하는 미션을 성공시켰던 탐사선 니어-슈메이커의 경우와 비슷한 도전이었다. 원래 니어-슈메이커는 소행성 에로스 둘레를 돌면서 소행성을 탐사하는 일이 주목적이었다.
딥스페이스 연장 미션이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별을 관측해 방향을 결정하는 탐사선의 가이드 카메라(일명 스타트래커)가 갑작스럽게 고장났다. 물론 NASA 제트추진연구소의 엔지니어들은 해결책을 내놓았다. 바로 실험용 카메라(MICAS)를 가이드 카메라로 전환하는 것. 지구에서 3억2천1백만km나 떨어진 탐사선에 임무를 전환하는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전파로 송신했다. 다행히 탐사선의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산등성이와 계곡 존재
딥스페이스 1호의 미션이 연장돼 혜성을 탐사하는 임무가 부여되자, 탐사대상으로 떠오른 혜성은 바로 보렐리혜성(19P/Borrelly)이었다. 탐사팀이 보렐리혜성을 목표로 선정한 이유는 때마침 이 혜성이 2001년 9월 14일 태양에 가장 가까이 접근했기 때문이다. 보렐리는 6.9년마다 태양계 안쪽을 지나는 혜성이다. 사실 이 혜성은 19세기 동안 목성에 너무 가까이 지나가다가 태양쪽으로 방향이 바뀌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딥스페이스가 긴 여정 끝에 보렐리에 가장 근접한 때는 9월 22일 22시 30분(세계표준시)이었다. 탐사선은 혜성에 2천2백km까지 접근했다. 이때 얻을 수 있었던 영상은 혜성핵에 대한 것으로 지금까지 얻었던 영상 중 최고로 평가받았다. 이전인 1986년에도 핼리혜성에 지오토, 베가 등의 탐사선이 접근해 관측한 적이 있다. 이 중 유럽우주기구(ESA)의 지오토가 핼리혜성의 핵을 사진으로 찍었지만 이번처럼 선명한 사진을 얻지는 못했다.
또한 딥스페이스 1호는 혜성 탐사가 주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지오토 같은 혜성탐사선이 갖춘 방어막도 없는 가운데 혜성에 접근했다. 보렐리혜성으로부터 나오는 작은 티끌이 차례차례 부딪쳐 왔으면 탐사선은 운행이 정지됐을지도 몰랐다. 다행히 티끌과 거의 충돌하지 않아 성공적으로 관측할 수 있었다. 딥스페이스 1호는 태양계에서 가장 어두운 물체 중의 하나인 혜성핵의 모습을 보내온 것이다.
보렐리혜성의 핵은 폭 4km, 길이 8km 정도인 볼링핀 모양이었고 핵표면의 미세구조가 비교적 자세히 드러났다. 즉 산등성이처럼 울퉁불퉁한 지형, 기복이 완만한 평지, 계곡처럼 깊게 파인 곳 등이 나타났다. 또 표면은 유기분자로 보이는 검은 물질로 덮여 있었다. 얼음과 먼지로 이뤄진 혜성핵은 태양광선에 녹으면서 우물처럼 파인 부분에서 3방향으로 제트 먼지를 분출하면서 긴 꼬리를 만들어냈다.
딥스페이스 1호는 영상을 촬영한 것 이외에 적외선으로 분광 관측했고, 혜성 주변의 이온이나 전자의 밀도, 자기장의 강도나 플라스마 등을 관측했다. 이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사실은 혜성 주위 이온의 흐름과 가스의 형태를 측정해 태양풍과 혜성가스가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는 것이다. 즉 태양풍(태양으로부터 나오는 고에너지 입자의 흐름)이 혜성가스와 부딪칠 때 혜성가스를 태양의 반대방향으로 밀치면서 혜성의 꼬리가 생기는 과정을 이전에 비해 좀더 확실히 밝혀낸 것이다.
보렐리혜성으로부터 9만km-2천km 사이에서 플라스마 장비로 이온의 흐름을 관측한 결과, 혜성핵 주위의 이온 흐름이 혜성 핵을 중심에 두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즉 이온 흐름이 핵 주위를 상하좌우 동일하게 감싸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혜성 주위의 이온 흐름 속에 있는 이온은 1백만K(절대온도, 절대온도(K)=섭씨온도(℃)+273.16)까지 가열돼 이온 띠가 태양풍에 비해 넓고 톱니처럼 보이게 된다고 한다. 이전에는 혜성핵 주위의 온도가 10만K 정도로 측정됐다.
또다른 미지세계에 착륙 시도
천문학자들은 혜성이 태양계 생성 초기에 지구와 부딪치면서 지구에 생명체가 탄생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으로 보고 있다. 또 혜성은 태양계 생성 초기의 상태를 고스란히 가진 원시 ‘화석’으로 중요한 천체다. 딥스페이스 1호가 혜성 탐사에 역사적 지평을 열었지만 본격적인 혜성 탐사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딥스페이스 1호에 이어 혜성에 접근해 관측할 예정인 탐사계획은 여러가지가 있다. 이미 1999년 2월 발사된 NASA의 혜성탐사선 스타더스트(STARDUST)는 2004년 1월 빌트혜성(81P/Wild 2)에 접근해 혜성 주변의 티끌을 갖고 지구로 귀환할 야심찬 계획이다. 2002년 8월 발사되는 NASA의 탐사선 카운터(Comet Nucleus Tour; CONTOUR)는 엥케혜성(2P/Encke)과 슈바스만-바흐만혜성(73P/Schwassmann-Wachmann 3)에 접근해 딥스페이스 1호가 찍은 혜성핵의 사진보다 더 정밀한 사진을 찍는 것이 목적이다.
2004년 1월 발사될 NASA의 탐사선 딥임펙트(Deep Impact)는 마치 영화장면처럼 템플혜성(9P/Tempel 1)에 탄환을 발사해 혜성과 충돌할 때 날아오르는 파편을 관측할 예정이다. 또 유럽우주기구(ESA)에서는 2003년 1월 탐사선 로제타(Rosetta)를 발사해 워타넨혜성(46P/Wirtanen)과 여러 소행성에 접근시켜 혜성과 소행성을 관측할 계획이다. 로제타는 혜성 착륙선도 준비중이다.
바야흐로 21세기는 혜성 관측의 세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