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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콕’으로 다시 주목받는 '시민과학 프로젝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범유행이 길어지면서 전 세계 사람들이 집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일명 ‘집콕’ 문화가 퍼져가고 있다. 이에 미국항공우주국(NASA) 등 주요 연구기관도 현장 연구를 멈추고 재택근무를 시작하면서 아르테미스 프로젝트 같은 초대형 연구계획에 제동이 걸렸다. 하지만 어두운 면이 있으면 밝은 면도 있는 법.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어디서든, 누구나 과학자가 될 수 있는 시민과학 프로젝트가 ‘집콕’으로 다시 재조명되고 있다.

 

 

시민과학은 일반 시민들이 과학자들과 함께 과학연구에 필요한 데이터를 수집하거나 수집된 데이터를 분석하는 연구방식이다. 넓은 의미에서는 연구가 필요한 분야를 시민이 제안하고 과학자가 연구를 수행하는 방식이나, 과학자의 연구결과를 알리는 과학 대중화에 시민이 참여하는 것도 포함된다.
시민과학의 가장 큰 장점은 누구나 과학자가 될 기회를 제공하고 과학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을 높인다는 점이다. 반드시 실험실을 방문하지 않더라도, 전문 장비가 없더라도 최신 연구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도 코로나19 사태에 시민과학이 새로운 형태의 연구방법으로 활발히 활용되는 이유다.

 

늘어난 집콕, 더 늘어난 시민과학


코로나19로 비대면 활동이 늘어난 상황은 시민과학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증폭시키는 계기가 됐다. 우주망원경으로 촬영된 은하를 시민들이 직접 분류하는 영국의 시민과학 프로젝트인 ‘갤럭시 주(Galaxy Zoo)’는 지난해 3~4월 4주 사이에만 약 20만 명이 참여해 500만 개 이상의 데이터를 분류하는 성과를 얻었다. 2007년에 개최된 갤럭시 주의 첫 번째 프로젝트에서 10만 명의 참가자가 175일 동안 4000만 개의 데이터를 분류하며 마무리된 것에 비하면 크게 늘어난 수치다. 생태 다양성을 연구하기 위한 ‘스냅샷 사파리(Snapshot Safari)’ 프로젝트도 코로나19로 참가자가 급격히 증가했다. 메르디스 팔머 스냅샷 사파리 프로젝트 매니저는 지난해 4월 미국의 온라인 과학매체 ‘언다크’와의 인터뷰에서 “평소 하루 평균 2만 5000건 수준이던 동물 분류 데이터 수가 코로나19 유행과 자가격리 직후 20만 건까지 급증했다”며 “이후에도 코로나19 사태 이전에 비해 평균 3~5배 이상 많은 참가자들이 활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언뜻 시민과학 프로젝트는 단순히 일반인들이 과학연구에 참여해보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뜻으로만 비칠 수 있다. 하지만 미국, 유럽 등 과학문화 선진국에서는 이미 연구방법 중 하나로 정착해 프로젝트 결과가 과학적 성과로 이어지고 논문으로 출판되는 사례가 많다. 박진희 동국대 다르마칼리지 교수는 “해외에서는 시민과학이 천문학, 분류생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미 하나의 과학문화로 자리매김했다”며 “해외의 시민과학 프로젝트는 매뉴얼이 잘 갖춰져 있고 시민의 관심이 높아 좋은 연구성과로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코로나19로 시민과학 프로젝트 참여자가 크게 늘어난 것에 대해서는 “시민과학 프로젝트는 언택트 시대에 가장 적합한 모델의 연구방법”이라며 “앞으로 플랫폼과 기술이 발전하면 시민과학 프로젝트의 역할이 더 커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과학자들이 모은 데이터, 시민이 풀어낸다


현재 시민과학 프로젝트는 특히 천문학 분야 연구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나사 앳 홈(NASA at Home)’이라는 이름의 채널을 운영하며 시민들과 함께 연구하고 있다. 나사 앳 홈에는 이름 그대로 누구나 집 안에서 NASA의 연구에 기여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다양하게 마련돼 있다.


NASA의 시민과학 프로젝트를 통해 새로운 천문학적 발견이 이뤄진 사례는 많다. 지난해 12월 적도 인근과 남반구 지역에서 개기일식을 관측하는 도중 새로운 혜성 ‘C/2020 X3 (SOHO)’를 발견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혜성을 발견한 사람은 태국의 아마추어 천문학자 워라찻 분플랏으로 NASA의 또다른 시민과학 프로젝트 ‘선그레이저(Sungrazer)’에 참여하는 시민과학자 중 한 명이다. 선그레이저의 목표는 새로운 혜성을 발견하는 것인데,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일반 시민들과 아마추어 천문학자들이 장비 없이 새로운 혜성을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NASA는 태양 관측 위성(SOHO)과 스테레오(STEREO) 등 관측위성으로 촬영한 이미지 자료를 제공하고 시민과학자들이 해당 이미지를 분석해 혜성 흔적을 찾아내도록 했다.


지난해 8월에도 NASA의 시민과학 프로젝트를 통해 연구된 결과가 논문으로 발표됐다. ‘백야드월드: 플래닛9 (Backyard Worlds: Planet9)’이라는 프로젝트의 연구 논문이다. 40여 명의 저자가 참여한 연구에는 16명의 아마추어 천문학자가 포함됐다. 백야드월드의 목표는 새로운 갈색왜성을 찾는 것이다. 갈색왜성은 행성보다는 크고 별보다는 작은 천체다. 태양계에 9번째 행성이 존재한다면 갈색왜성이 그 주인공일 가능성이 있어 천문학자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이번 연구에서 연구팀은 광역 적외선 탐사 우주망원경 ‘와이즈(WISE)’에서 촬영한 적외선 이미지를 분석해 95개의 새로운 갈색왜성 후보 중 75개의 갈색왜성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지금까지 백야드월드 프로젝트에 참여한 시민과학자는 10만 명으로, 이들이 발견한 천체는 1500개가 넘는다.  doi: 10.3847/1538-4357/aba633 연구에 참여한 아마추어 천문학자 레슬리 햄릿은 “저자로 참여한 첫 번째 논문이었다”며 “이번 연구를 통해 이미 임무를 마친 스피처 우주망원경과 내가 연결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의미가 깊다”고 말했다.

 

 

시민과학으로 풀어내는 코로나19


시민과학은 코로나19 관련 연구에도 유용하게 사용된다. 유럽 시민과학(EU-Citizen.Science) 프로젝트에서는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을 위한 시민과학을 진행했다. 스페인 고등과학연구위원회(CSIC)를 중심으로 진행된 이 프로젝트는 기존에 에볼라, 인플루엔자 등 바이러스성 감염병의 치료제로 개발된 후보물질이 코로나19에도 효과를 나타낼 수 있는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이용해 분석했다.
약물의 효능을 확인하는 시뮬레이션은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야 해 계산량이 매우 많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약물 시뮬레이션 연구는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진행된다. 연구팀은 슈퍼컴퓨터 한 대를 사용해서 코로나19 치료제 후보물질을 찾아내는 대신 프로젝트에 참여한 시민들의 컴퓨터 연산능력을 이용해 시뮬레이션을 하는 분산 컴퓨팅 플랫폼을 활용했다.


결과는 한 편의 논문으로 발표됐다. 시민들과 함께 에볼라 치료제 후보물질이었던 렘데시비르, 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AIDS·에이즈) 치료제인 테노포비르가 사스코로나바이러스-2의 RNA 복제를 얼마나 더 효과적으로 방해하는지 확인한 결과 렘데시비르의 효과가 더 우수해 치료 효능이 높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유럽 시민과학 프로젝트 ‘플루서베이(Flusurvey)’는 지역사회의 감염병 정보를 수집한다. 플루서베이는 2009년 돼지인플루엔자 유행 당시 만들어진 조사 프로젝트로 그동안 여러 감염병의 실태조사에 활용돼 왔다. 미국과 캐나다 등에서는 ‘아웃브레이크 니어 미(Outbreaks near me)’라는 프로젝트가 시작돼 지역 내 위험 지역을 시각적으로 표시한 지도를 만들었다.


시민과학 프로젝트는 생태 다양성을 연구하거나 기후, 환경, 지리 조사 등에서도 널리 활용되며 과학연구 전방위에서 활약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국내에서는 해외만큼 시민과학 문화가 자리 잡지 못한 상황이다. 다양한 분야의 시민과학 프로젝트가 진행됐지만 아직 연구의 질과 양은 해외 선진국과 비교하면 부족한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국내에서도 시민과학 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과학 대중화와 미래 과학자 양성에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박 교수는 “시민과학 프로젝트는 일반 시민들이 과학연구에 참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며 “시민과학은 단순히 전문가가 지식을 전달하는 방식이 아닌 스스로 데이터를 다뤄보고 과학적 탐구과정을 체험할 기회인 만큼 교육적인 목적도 커 국내에서도 과학 대중화를 위해 활성화돼야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 까마귀 정보 모으고 미세먼지 측정하고

"야, 너두 과학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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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이병철 기자
  • 일러스트

    김진욱
  • 디자인

    유두호
  •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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