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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공군 전투기 편대장이다. 전투기 3대로 정찰을 나갔다가 아군기와 성능이 비슷한 적 전투기 5대와 맞닥뜨렸다. 이때 당신은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까. 임전무퇴의 정신을 발휘할 생각은 버리고 ‘무조건’ 달아나야한다. 싸운다면 적기 한 대를 격추하는 동안 아군기 3대가 모두 전멸할 것이다. 해 보지도 않고 어찌 아느냐고 하겠지만 공중전 결과는 적중률이 높은 예상 공식이 있다. 숫자가 많은 쪽에서 적은 쪽을 빼면 되는데, ‘제곱해서’ 계산한다. 앞서 말한 예는 ‘5²-3²=4²’으로 적을 수 있다. 공중전은 전투기 숫자가 많은 쪽이 훨씬 유리하다는 의미다. 이 공식은 한 영국인 과학자가 1, 2차 세계대전의 공중전 자료를 분석해 만들었는데, 그 사람의 이름을 따 ‘랜체스터 법칙’이라고 부른다.



랜체스터 법칙은 지금도 유효하다. 세계 각국에서 전투기 숫자를 한 대라도 더 늘리기 위해 많은 예산을 투입하는 이유다. 하지만 수십 년간 지켜졌던 이 절대적인 법칙에 최근 예외가 생겼다. ‘스텔스 전투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스텔스 전투기를 타고 있다면 적군의 전투기 대수와 관계없이 거의 100% 승리를 장담할 수 있다. 상대편이 스텔스 전투기라면?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적기를 만났다는 사실을 알기 전에 미사일부터 맞을 테니까.


 
 
 

지금까지 스텔스 기술을 가진 나라는 미국뿐이었다. 러시아나 유럽도 스텔스 기술을 꾸준히 연구해 왔지만 적의 레이더를 완전히 기만할 수 있는 스텔스기를 가진 나라는 미국이 유일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야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2010년 12월 러시아가 인도와 공동으로 그간 개발해 왔던 최신예 스텔스 전투기 ‘Su-50 파크-파’의 실제 생산에 들어간다고 밝힌 데 이어 지난 1월 11일에는 중국이 독자 개발한 스텔스 전투기 ‘젠-20(J-20)’이 시험비행에 성공했다. 젠(殲)은 섬멸이라는 뜻. 군사대국을 꿈꾸는 중국의 야심이 엿보이는 이름이다. 각국 언론은 중국의 스텔스 전투기 개발을 “세계 군사 균형이 바뀔만한 사건”이라고 까지 평가한다. ‘이제는 우리도 군사강국의 반열에 들었다’며 중국이 기염을 토한 것이다.

 
 


 
 


 
 
전투기 한 대를 가지고 이런 말까지 나오는 이유는 스텔스기가 핵무기나 탄도미사일, 고성능 레이더, 군사위성과 함께 전략무기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스텔스 폭격기는 하늘에서 갑자기 나타나 폭탄을 쏟아 붓는다. 눈앞에서 폭탄이 터질 때 까지 두 손 놓고 있다가 당하는 수밖에 없다. 핵무기라도 장착하고 날아오는 날에는 국가의 존립이 흔들리게 된다.



이런 스텔스 기술을 전투기에 적용하면 ‘하늘의 제왕’이 된다. 미군이 2006년 알래스카 기지에서 최신예 스텔스 전투기 ‘F-22 랩터’를 가지고 당시의 주력 전투기인 F-15, F-16, F-18을 상대로 모의 공중전을 벌여 144대 0의 놀라운 기록을 올린 사실은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다. 세 구형(?) 전투기 조종사들은 스텔스 기능 때문에 레이더로 F-22를 찾지도 못했다. 유도탄 같은 공중전 무기를 써 볼 도리가 없으니 두 눈을 가리고 격투기 시합을 벌이는 것과 진배없다.



만일 F-15나 F-16, F-18이 스텔스 기능을 갖추고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F-22가 중국의 신형 스텔스기 J-20과 싸운다면 어떨까. 이 때는 F-22가 꼭 백전백승할 거라고 장담하긴 어렵다. 역설적으로 생각한다면 스텔스 전투기를 보유하지 못한다면 결코 공중전에서 승리하기 어렵다는 뜻도 된다.





➊ F-15SE의 내부 무기 장착 공간. 보잉사는 미사일이나 예비연료탱크를 전투기의 몸체 속으로 감춰 넣는 방식으로 기존 F-15전투기를 스텔스 전투기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➋ 전투기의 후방에서 발생하는 고열(적외선)은 적의 감시장치에 포착돼 스텔스 전투기의 은폐기능을 떨어뜨린다. F-22나 F-35등 신형 스텔스기는 이런 열을 급속도로 식혀 배출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➌ ➍ F-22 전투기 출격을 준비하고 있는 미 공군기지의 모습.



스텔스기가 레이더에 보이지 않는 이유

스텔스 기술은 적에게 비행기나 선박, 차량 같은 무기를 들키지 않도록 하는 기술이다. 국방과학기술연구소(ADD)의 박태학, 신상훈 연구원이 ‘국방과학기술플러스’지 2010년 1월호에 투고한 논문에 따르면 스텔스기가 외부에 노출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할 신호는 크게 4가지다. 레이더를 회피하는 데 쓰는 ‘전자적 신호 감소’ 기능이나 적의 유도무기를 피하기 위한 ‘자외선(열) 감소 기능’,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하는 ‘음파 감소’, 눈에 잘 보이지 않게 만드는 광학적 신호 감소(색채 위장 등)도 모두 스텔스 기술의 범주에 들어간다. 미군이 사용하는 장거리 순항 미사일 ‘BGM-109’ 는 요격미사일이 따라오는 것을 막기 위해 적외선 신호감소 기술(IR)을 적용하고 있고, F-22나 ‘F-35 라이트닝Ⅱ’ 같은 최신형 스텔스 전투기들도 모두 비슷한 미사일 회피 기능을 갖췄다.



하지만 좁은 의미에서 본 스텔스 기능은 역시 ‘적의 레이더에 발견되지 않는 기술’이다.



스텔스기는 ‘레이더에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레이더에 잡힌다. 다만 신호가 너무 약해서 알아보기 어려울 뿐이다. 공군에서 항공기 관제사로 근무했던 한 예비역 장교는 “레이더로 구름이나 작은 새도 잡아낼 수 있지만 항공기 관제와 관계없는 정보는 컴퓨터로 제거하고 있다”며 “스텔스는 이런 (보통은 노이즈로 생각할 만한) 것들과 구분이 안 갈 만큼 신호가 미약해 레이더에 표시되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런 노이즈 제거 기능을 꺼 두면 스텔스기를 찾을 수 있는 걸까. 그것도 쉽지 않다. 스텔스기의 신호뿐 아니라 주변에 있던 수많은 전파들이 한꺼번에 잡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많은 신호가 뒤섞여 들어오면 뭐가 뭔지 해석이 불가능하다.



예비역 공군장교는 “드물게 미군 스텔스기가 한국 영공에 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 때는 비행기가 내보내는 식별신호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면서 “식별신호는 조종사가 마음대로 켜고 끌 수 있기 때문에 적기라고 생각하고 보면 정말 무섭다”고 설명했다.



스텔스기는 페인트칠해서 만든다?

스텔스 기술의 핵심은 ‘전자적 신호 감소 기술’이다. 레이더에서 발사된 전파가 비행기의 몸체에 부딪친 후 되돌아가는 비율을 최소로 줄이는 것이다. 이 비율을 ‘레이더 반사 단면적(RCS)’이라고 부르는데, 배나 비행기 등 움직이는 물건마다 차이가 있다. 스텔스 효과가 없는 일반 전투기는 50㎡ 정도를, 군함은 1만㎡ 정도 면적의 레이더 전파를 반사해 돌려보낸다. 레이더는 이런 전파를 받아 물체를 식별하고 화면에 표시하는 것이다. 결국 효율이 높은 스텔스기는 전파 반사도가 낮은 비행기라는 뜻이 된다. 하늘을 나는 새의 반사도는 0.01㎡, 벌레는 0.001㎡ 정도다. 완벽한 스텔스기를 만들려면 이 정도 수준까지 반사도를 낮추어야 한다.



RCS를 이렇게 극단적으로 낮출 수 있는 방법은 뭘까. 크게 두 가지 방법을 쓴다. 첫 번째는 ‘페인트칠’ 기법이 다. 전파를 흡수하는 물질(RAP·전자파흡수도료)을 칠하거나, 전파흡수 성질을 가진 필름(RAM·전자파흡수재료) 등을 전투기 표면에 고르게 붙여 주는 방법이다. 최초의 스텔스기인 ‘F-117A 나이트호크’나 그 이전에 실험적으로 스텔스 기능을 일부 도입했던 ‘SR-71 블랙버드’ 등을 이 RAP 방식으로 만들었다. 폴리우레탄 계열의 물질을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신형 스텔스기인 F-22는 RAM 방식을 쓴다. RAM은 유전체 물질에 탄소나 흑연 등 전도성이 높은 재료를 첨가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써서 만든다. 페인트칠 기법은 전투기 표면에 발라둔 전파흡수 물질의 두께 역시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컴퓨터와 로봇팔을 이용해 매우 정밀하게 작업한다.



두 번째는 전투기의 몸체를 전자파를 흡수할 수 있는 소재와 모양(RAS·전자파흡수구조)으로 만드는 일이다. 비행기 몸체 단면의 경사각 등을 다듬어 반사된 전파가 레이더와 다른 방향으로 반사되도록 몸체 디자인을 변경하는 작업도 여기 포함된다. 이뿐 아니다. 보통 전투기의 비행기 날개 밑에 붙이는 미사일이나 폭탄, 예비 연료탱크까지 전파의 반사를 고려해 만들 수는 없다 보니 이런 장비를 모두 전투기 몸체 속으로 집어넣고 필요할 때만 꺼내 발사 할 수 있는 장치도 갖춰야 한다.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스텔스기를 만들 수도 있다. 저온 플라스마를 비행기 기체에 뒤덮어 반사단면적을 낮추는 ‘스텔스 보호막’ 방식이다. 이 기술은 미국보다 러시아가 한발 앞서 있는데, 비행기 앞쪽으로 전자를 방출해 공기와 충돌시켜 플라스마 막을 형성하거나, 기체표면에 방사선 동위원소 막을 씌워 방사선으로 플라스마를 형성하는 방법 등이 연구되고 있다. 러시아의 신형 스텔스 전투기 Su-50이 플라스마 방식을 일부 적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기법을 최대한 활용하면 이미 개발을 마친 전투기도 어느 정도는 스텔스 성능을 부여할 수 있다. 처음 개발할 때부터 스텔스 기능을 염두에 두지 못해 RAS는 상대적으로 취약하지만 RAP나 RAM, 또는 플라스마 기술을 최대한 활용한다면 아쉬운 대로 스텔스기로 ‘변신’ 할 수 있는 기회는 남아 있는 셈이다. 실제로 일반 전투기를 스텔스 전투기로 개조한 적도 있다. 미국 보잉사는 F-22가 등장하기 전까진 세계 최강 자리를 고수하던 F-15 전투기를 개조해 스텔스 기능을 추가한 ‘F-15SE 사일런스이글’의 시험 com비행을 2010년 7월 성공했다. 페인트칠 기법으로 전파 반사도를 낮추고, 내부연료탱크 공간을 개조해 미사일 등 무기를 전투기의 몸체 속으로 감춘 것이다.



보잉이 ‘한국 정부가 원한다면 이 전투기를 제공할 의사가 있다’고 밝혀 우리나라의 첫 스텔스 전투기가 F-15SE가 될 것인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처음 설계할 때부터 스텔스 기능을 염두에 두고 만든 비행기와 비교하면 성능면에서 다소 차이가 나겠지만 F-22나 F-35에 비해 가격 면에서 크게 유리한데다 현재 한국군의 주력 전투기인 F-15K와 부품이나 무기를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➊ F35 전투기가 공중급유를 받고 있는 모습.

➋ 중국이 새롭게 개발한 스텔스 전투기 J-20.

➌ 미 공군 병사가 F-22 전투기 아래에서 기체를 점검하고 있다.

➍ 한국군이 KFX 사업을 통해 개발하려고 했던 한국형 전투기의 가상도.



스텔스 기술, 자주독립은 어렵나

스텔스 제작 기술은 세계 어느 나라나 1급 군사기밀로 구분하기 때문에 제작법을 정확하게 알아내기란 불가능하다. 어디까지나 자국에서 기술을 개발해야 ‘스텔스기 개발국가’라는 타이틀을 획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수준은 어떨까. 아직 완전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 스텔스 기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ADD가 주요 진행사업으로 항공기 및 함정용 전파흡수재료를 개발하고 있다고 처음 언급한 것이 2004년. 당시 ADD는 2002년부터 연구를 시작해 2003년부터 시제품을 만들어 보는 등 시험개발 과정을 거쳤다고 밝혔다. ADD는 그 2년 후인 2006년에는 실제로 RAP 또는 RAM 방식에 모두 응용할 수 있는 전파흡수 재료와 전자·세라믹 복합 재료를 개발했다. 이 밖에도 텅스텐-구리 나노복합분말 및 성형체 제조기술 역시 개발해 RAS식 전파흡수 방식도 가능성을 보여줬다.

 

2006년 당시 민간기업에서도 스텔스 관련 도료와 전파흡수장치를 개발해 화제가 됐다. 결국 ADD는 2008년 이런 기술들을 정리해 ‘레이더 전파흡수용 복합재를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지금은 이 기술을 구형 F-4 팬텀기나 신형 T-50 고등훈련기에 적용해 실험 중이다. 2010년대 중반까지는 스텔스 기술확보를 끝낸다는 목표다. 하지만 실용화는 아직 시기를 점치기 어렵다. 정부는 차세대 한국형 차세대 전투기(KFX) 개발 사업을 통해 국산 스텔스 전투기를 개발할 계획이 있었지만 12조 원에 달하는 예산을 놓고 의견이 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 전쟁은 전자전, 정보전 위주로 진행되고 있다. 스텔스 전투기가 미래 전쟁의 핵심요소로 떠오르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이런 시기에 한반도의 평화와 공존을 추구하려면 지금보다 한층 진보된 전자, 정보전 기술이 필요하다. 스텔스 같은 최신 무기의 독자적인 연구개발을 게을리해선 안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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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전승민 기자│이미지 출처│미공군, istock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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