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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유학일기] 오픈북 기말고사 시간, 장소는 맘대로

"지난 1년간 유학일기를 쓰면서 제 유학 생활을 되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유학을 와서 이렇게 유학일기를 연재하는 좋은 기회를 얻은 것도 큰 행운이었죠. 지난 3년간 유학 생활을 하면서 겪은 제 경험과 생각을 최대한 자세히 적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부디 제 글을 읽으며 미국 공대생의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셨길 바랍니다."

 

캘리포니아공대의 기말고사 시험 기간은 특별히 힘들지 않다. 기말고사라고 따로 몰아서 공부하지 않기 때문이다. 학기 중에 평소 열심히 수업 듣고, 과제 하고, 시험 기간에는 공부한 내용을 가볍게 정리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한 학기 동안 배운 내용이 많아 정리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어쨌거나 시험을 쳐야 한다는 부담도 있다. 그러나 캘리포니아공대의 힘든 한 학기를 버텼다면, 기말고사 기간 정도는 문제없다.
캘리포니아공대는 1년에 3학기이고, 한 학기는 수업 10주와 기말고사 1주로 구성돼 있다. 수업 마지막 주차에는 수업이 없다. 학생들이 기말고사를 준비할 수 있도록 학교에서 시간을 주는 것이다. 이때는 매주 제출해야 했던 과제도 없어 학생들이 시험을 준비할 시간은 꽤 있다. 
게다가 시험은 어느 곳에서든 치를 수 있다. 캘리포니아공대에 ‘명예규율(Honor Code)’이라는 정책 때문인데, 학생들의 학교생활 대부분에 자율성을 주고, 일에 대한 책임은 학생의 양심에 맡기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학교여서 가능한 정책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물론 시험 답안지 제출 기한은 있지만, 명예규율에 따라 시험을 보는 시간이나 장소 등이 모두 자유다. 각자 원하는 시간, 원하는 장소에서 시험을 보고 마감 기한 안에 답안지를 제출하면 된다. 제한 시간조차 학생들 양심에 맡긴다. 
그래서 과목 난이도에 따라 시험 시간표를 조정할 수 있다. 쉬운 과목부터 먼저 끝내놓고, 어려운 과목은 조금 더 공부한 뒤에 치를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각자 집중이 잘 되는 시간을 선택하니, 모두 최상의 상태에서 시험을 본다. 시험 장소 혼동, 갑작스러운 복통 등 예상치 못한 변수로 시험을 망칠 일이 거의 없다. 본인이 노력한 만큼 결과를 얻으니 만족도도 크다. 
물론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명예규율의 허점을 악용하지 못하도록 중요한 과목은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둔다. 인터넷 검색, 컨닝페이퍼 등을 무력화할 ‘오픈북 시험’을 보는 것이다. 이런 시험은 전공 서적을 대놓고 펼쳐놓고 보거나, 미리 내용을 정리해 온 뒤 참고할 수 있게 한다. 시험 시간을 24시간, 심지어 무제한으로 둬서 시간 제약이 의미 없게 만드는 수업도 있다.
오픈북 시험은 난이도가 매우 높다. 교과서에도 나오지 않고, 인터넷 검색으로도 찾아볼 수 없는 문제가 대부분이다. 한번은 문제가 너무 어려워 답안지 제출 후 바로 찾아본 적이 있는데, 그 어디에도 나오지 않았다. 경험상 이런 시험은 몇 시간 더 들여다본다고 결과가 바뀌지도 않았다. 
이 외의 시험은 대체로 과제보다 문제가 쉽다. 문제 풀 시간도 충분히 주어진다. 그래서 평소에 수업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고 과제를 열심히 했다면 시험 기간이 그렇게 힘들지만은 않다.
내가 전공하는 컴퓨터과학과에는 기말고사 자체가 없는 과목도 많다. 과제로만 최종 점수가 정해지기도 하고, 학기 말 최종 프로젝트가 기말고사를 대체할 때도 있다. 프로젝트는 학기 중 미리 준비해 놓거나, 개인 스케줄에 맞춰 진행하면 되니 편하다. 무엇보다 프로젝트 준비는 시험보다 재밌다. 
컴퓨터과학과 학생은 졸업을 위해 연구 수업을 들으며 논문을 쓰거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수업을 하나 들어야 한다. 나는 친구 2명과 함께 프로젝트 수업을 들으며 15초 정도의 음악 클립을 공유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앱)의 프로토타입(시제품)을 만들었다. 
사용자들의 팔로잉 관계 등을 이용해 어떻게 음악을 추천할 수 있을지 등의 연구 요소도 넣었다. 아쉽게도 실제로 출시하지는 못했지만 한 학기 동안 개발을 한 뒤, 학과에서 열린 포스터 전시회에서 발표할 수 있었던 것으로 만족했다. 
이번 학기에 나는 수업을 5개 듣는데, 그중 기말고사를 보는 수업은 단 하나다. 이렇게 시험을 보는 과목 수가 적으면, 수업과 과제가 없는 기말고사 기간을 비교적 편하게 보낼 수 있다. 
기말고사가 성적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30% 정도로 결정적이진 않다. 시험을 망쳐도 평소 과제를 잘했다면 전체 성적에는 큰 타격을 입지 않는다. 나는 3학년 때 ‘CS142’라는 분산 컴퓨팅 과목에서 시험을 망쳐서 70점대의 점수를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평소 과제를 굉장히 열심히 했었고, 중간고사 성적도 매우 좋아서 최종 성적으로 A를 받았다.
물론 시험을 잘 보면 기분이 좋고, 최종 성적을 잘 받을 확률도 높다. 그러나 못 봤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취업할 때 작은 성적 차이는 결정적이지 않고, 대학교를 졸업하는 데도 특별히 문제가 되지 않는다. 
미국 대학은 한국 대학처럼 전공별 수업과 교양과목 수업을 일정 수준 이상 들어야 졸업할 수 있다. 졸업을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하는 최저 성적도 있지만, 최저 성적 맞추기는 쉽다. 그래서 나는 좋은 점수를 받는 것보다 각 과목에서 배우는 내용을 충분히 익혀서 본인의 지식과 실력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2020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글 및 사진

    이용균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컴퓨터과학과 및 경영학과 4학년
  • 에디터

    조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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