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학교는 어느 정도 사업 목적으로 운영되는 곳이 많다. 그래서 연간 학비가 5만4600달러(약 6300만 원)로 매우 비싼 건 물론, 기숙사비, 학식 가격 등도 학교 밖과 별 차이 없을 정도로 비싸다. 나는 국비 장학금을 받고 유학을 와서 등록금을 내진 않지만, 기숙사비, 식비 등 부수적인 생활비도 만만치 않다.
다행히 전공 서적 구매 비용은 따로 들지 않는다. 캘리포니아공대는 전공 책을 도서관에 기본으로 3~4권 비치해 두기 때문에 수업 교재를 돈 주고 따로 살 필요 없이 빌려 쓰면 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온라인 수업이 진행된 올해는 ‘캘리포니아공대 VPN(가상사설망)’으로 e-book을 이용해 수업을 들었다.
유학 생활비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기숙사비로, 한 학기에 3176달러(약 360만 원)다. 매달 120만 원 정도 내는 셈이다(캘리포니아공대는 한 학기가 11주다). 물론 방학 때 기숙사에서 지낼 수 있으니 실제 월세는 이보다 적지만, 내가 이번 여름 방학에 인턴을 하면서 잠시 살았던 방의 월세가 1050달러(약 120만 원)였던 것을 생각해보면 기숙사치고 비싸긴 하다.
그래도 학교 밖에서 원룸을 구하는 것보단 기숙사가 편리하고 혜택이 많아 거의 모든 학생이 기숙사 생활을 한다. 가끔 요리를 즐기거나 기숙사의 규칙이 극도로 싫은 친구들은 따로 4~5명 정도 모여 함께 집을 렌트한다.
기숙사는 공용 공간이 있고, 학교에서 관리를 해줘 늘 깔끔하게 유지돼 학생들이 신경 쓸 일이 거의 없다. 특히 내가 3학년 때 거주한 ‘스위트’라는 기숙사는 단 6명만 살고, 매주 두 번씩 학교에서 청소를 해줘서 굉장히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했다.
기숙사 생활의 또 다른 장점은 끼니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기숙사에서 제공하는 학식(meal plan)은 아침, 저녁 두 끼가 제공되는데 한 학기에 2414달러(약 280만 원)이다. 하루에 31달러(약 3만5000원) 정도 내는 셈이다.
기숙사 식당 외에 아침부터 점심까지 샐러드와 샌드위치를 먹을 수 있는 ‘브로드 카페(Broad Café)’, 초밥, 피자, 샐러드 등 각종 음식을 골라 먹고 저녁에도 이용할 수 있는 식당 ‘챈들러(Chandler)’, 그리고 새벽 2시에도 요기할 수 있는 ‘레드 도어 카페(Red Door Cafe)’도 있다. 캘리포니아공대 학부생은 이 식당과 카페를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다.
평소 식사량이 적은 친구들은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스탠퍼드대 등 규모가 더 큰 대학만큼 캘리포니아공대 학식이 맛있지 않고 비싸다고 불평하곤 했다. 그러나 나는 하루에 세 번씩은 카페를 이용했고, 매일 헬스를 해서 저녁을 두 그릇씩 먹었기 때문에 캘리포니아공대 학식에 매우 만족했다.
교내 식당도 여러 개고, 식당마다 음식 종류도 다양하지만 가끔은 학교 밖 ‘맛집’의 음식을 먹고 싶을 때도 있다. 그래서 주말은 외식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의 경우도 2주에 한 번은 친구들과 외식한다. 한 번 외식할 때 드는 비용은 15~20달러(약 1만7000~2만3000원) 정도다. 이 가격으로 학식보다 훨씬 더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으니, 외식은 한 주간 고생한 자신에게 주는 소소한 선물 같다.
이외에 가끔 기숙사 모임, 술자리 등에 가면 5달러(약 6000원)정도씩 내고 참석한다. 가끔 기숙사에서 ‘공식적’으로 주최한 파티는 공짜로 가기도 한다. 한 예로 내가 스위트에 살았을 때는 학기당 한 번씩 파티가 열렸는데, 기숙사에서 공식적으로 주최한 파티라서 초대한 손님한테 비용을 받지 않았다. 스위트에 사는 6명이 각각 30달러(약 3만4000원)씩 모아 파티를 열고 신나게 놀았다. 여담인데, 한번은 파티 소리가 새어 나갔는지 기숙사 감독관이 와서 돌연 파티를 중단시키는 바람에 2시간도 채 놀지 못해 굉장히 아쉬웠다.
외식비, 파티 참석비 등의 용돈은 아르바이트로 충당한다. 미국의 경우 유학생은 학교에서 제공하는 아르바이트만 할 수 있는데, 일주일에 일할 수 있는 시간은 최대 20시간으로 정해져 있다. 그래서인지 캘리포니아공대에는 유학생을 비롯해 학부생들이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가 많다. 교내 아르바이트를 하면 한 학기 외식비 정도는 충분히 벌 수 있다.
학생들은 주로 연구실의 프로그래머나 행정실의 사무직으로 일한다. 나는 2학년 때 두 학기 동안 생물 연구실에서 개발자로 일했다. 평소에 학업으로 매우 바빠 일주일에 10시간 정도만 일했는데, 그마저도 매우 벅찼다. 그래도 시간당 20달러(약 2만3000원)을 받아서 생활비에 보탤 수 있었으니 만족한다.
또 학부생이 가장 많이 하는 아르바이트 중 하나는 조교(TA)다. 과목별로 성적이 좋았던 학생들이 이듬해 수업에서 조교로 일할 수 있다. 조교는 일주일에 한 번씩 ‘오피스아워’를 열고, 1시간 동안 학생들이 제출한 과제를 채점한다.
나는 이번 4학년 1학기에 처음으로 조교를 하게 됐다. 과목에 따라 일주일에 9시간, 또는 12시간 근무한다. 시급은 연구실 프로그래머와 비슷하다. 조교의 장점은 일하면서 내가 공부했던 내용을 다시 한 번 익힐 수 있어 스스로에게도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가능한 기숙사 생활을 하고, 학업에 도움되는 교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용돈을 벌면 생활비를 아끼면서도 파티도 즐기는 알찬 미국 유학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