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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 기술로 거장의 작품을 재현한다

컴퓨터원용정형가공연구실

KAIST 기계공학동 건물 지하에는 오귀스트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조각들이 진열돼 있다. 기계공학과 연구실에 왜 로댕의 작품이? 컴퓨터원용정형가공연구실을 이끄는 양동열 교수는 “우리 연구실의 최근 연구 작품”이라는 알듯 모를듯한 말을 던진다. 컴퓨터원용정형가공연구실(Laboratory for Computer-Aided Net Shape Manufacturing)이라는 긴 이름은 무슨 의미일까? 풀어보면 컴퓨터를 이용해 여러 형상을 만드는 방법을 연구하는 곳이라는 뜻. 양 교수팀의 최근 연구 분야 중 하나는 큰 스케일에서 작은 스케일로 내려가서 눈으로 보이지 않을 만큼 정밀한 3차원 형상을 제작하는 것이다.
 

컴퓨터원용정형연구실 학생들과 양동열교수(맨 앞줄 왼쪽 세번째). '생각하는 사람'과 이순신 장군도 함께 놓여있다.


전자현미경으로 보는 예술작품

“우리 연구실에서는 ‘생각하는 사람’을 20마이크로미터(1μm=10-6m)까지 작게 만들 수 있습니다.” 20μm면 머리카락 굵기의 1/4이다. 더구나 “만드는데 두 시간 반도 채 걸리지 않는다”고 양 교수는 설명한다. 눈으로 볼 수 없을 만큼 작게 재현한 거장의 작품은 어떻게 만드는 것일까.

먼저 실물을 3차원 측정기로 측정해 수많은 점으로 이뤄진 입체 형상을 얻는다. 이때 점 하나의 간격은 불과 12나노미터(1nm=10-9m)다. 이어서 컴퓨터를 이용해 이 형상을 수평으로 잘라 2차원 단면 데이터를 얻는다. 다음은 빛에 민감하도록 합성된 광경화수지에 각 단면 데이터에 따라 레이저빔을 투영한다. 광경화수지에서 레이저빔의 초점이 지나가는 곳마다 딱딱하게 굳어져 단면 데이터가 차례로 쌓인 입체 형상이 만들어진다. 마지막으로 형상을 둘러싼 액상의 광경화수지를 에탄올로 제거한다. 만들어진 형상은 전자현미경으로 확인한다.

이 방법은 ‘3차원 나노 스테레오리소그래피’라는 공정이다. 3차원 프린터 기술로 불리기도 한다. 입체 형상을 찍어낸다는 점이 일반적으로 반도체 제작에 사용하는 리소그래피 기술과는 다르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2μm 크기의 미세한 용수철처럼 높은 정밀도가 필요한 기계 부품을 만들 수 있다. 연구팀은 도날드 덕 그림, 안중근 의사의 ‘大韓國人’(대한국인) 글씨, 한반도 지도 등 다양한 2차원 그림도 모두 100nm 수준의 정밀도로 제작했다. 이런 그림을 그리는 공정을 ‘나노 복화(復畵)’ 기술이라고 부른다.

양 교수는 “현재 80nm를 최소 단위로 하는 정밀한 형상 제작이 가능하다”며 “앞으로 50nm급 정밀도로 최대 500μm 크기의 제품을 만들 수 있도록 연구 중”이라고 의욕을 내비쳤다. 정밀도가 높고 제작 가능한 크기가 클수록 활용 범위는 더욱 넓어진다.


안중근 의사의 '大韓國人'(대한국인) 글씨와 손바닥. 가로25㎛, 세로 10㎛다.


광반도체, 생명공학에도 응용

연구가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양 교수는 “연구에 착수한 3년 전 국내에는 마땅한 재료도 없어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고 회고했다. 그러다 한남대 이광섭 교수가 합성수지를, KAIST 공홍진 교수가 광학시스템을 개발했고 여기에 양 교수팀이 기계공학 시스템을 결합시켰다. 이렇게 세 교수팀이 공동연구를 시작하면서부터 3차원 나노조형기술이 완성된 것이다.

3차원 나노조형기술을 정보 저장매체에도 응용하면 지금까지 2차원 평면 위에 정보를 담았던 CD나 DVD와는 차원이 다른 대용량 매체가 실현 가능하다. 이밖에도 나노 조형물은 3차원 광결정체, 광메모리뿐만 아니라 미세한 세포 배양틀 등에도 널리 응용할 수 있다.

“광경화수지보다 활용 범위가 넓은 금속으로 나노 형상을 만드는 연구를 추진 중”이라며 “이 연구가 성공하면 IC칩 등 전자공학 분야에 획기적인 진전을 이룰 것”이라고 양 교수는 내다봤다. 광경화수지인 SCR500은 녹는점이 낮아 고온에는 취약하므로 열에 강한 세라믹을 재료로 이용하는 연구도 현재 이뤄지고 있다.

양 교수팀의 연구 분야는 나노 조형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쾌속주형이라는 기술은 폴리스티렌을 재료로 최단 40분 만에 원하는 모습을 처음 모양 그대로 만들 수 있다. 이렇게 제작한 대표적인 작품이 연구실 한쪽에 서 있는 1m 남짓한 크기의 이순신 장군 동상이다. 각종 모형이나 3차원 지형도 등을 만드는데 드는 시간과 비용을 크게 절약해 준다. “미국 러쉬모어산의 대통령 얼굴상도 원형 그대로 만들어 부천 아인스월드 테마파크에 기증했다”고 설명하는 양 교수의 미소에 뿌듯함이 묻어났다.

올해로 벌써 27년째 연구실을 이끄는 양동열 교수는 KAIST 제 1호 박사다. 무려 655편의 논문을 국내외 학술지와 학술대회에 발표했고, 관련 특허만 50건이라는 그는 연구실의 성공비결을 ‘창의적 도전’이라는 한 단어로 요약했다.

“불과 몇년 전만 해도 나노 정형 가공에 도전할 계획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3년전 이 분야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결단이 오늘날 세계적인 기술력을 갖게 된 원천이라는 그의 설명이다. 양 교수는 “도전이 있는 곳에 성취도 있다”며 말을 맺었다

2005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이상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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