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꽤어려워요 | 기초과학의 힘, IBS
나노화학 분야의 연구자라면 누구나 소원하는 기술이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가 나노입자를 원자 수준에서 3차원으로 보는 것이다. 나노입자를 구성하는 원자 하나하나의 배열과 상호작용이 나노입자의 성질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가령 나노입자의 원자 배열이 미세하게 바뀌면 촉매의 활성이 저하되거나, 디스플레이의 색 순도가 바뀌는 등 물성이 달라진다.
나노입자를 관찰할 때는 해상도도 중요하다. 지금까지 기술은 나노입자를 수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 수준으로 관측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원자 중 가장 작은 수소 원자의 크기는 대략 0.05nm로, 수소 원자를 관찰하려면 관측 해상도가 지금보다 수십 배 더 높아야 한다.
필자가 속한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입자 연구단은 최근 호주 모나쉬대, 미국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와 함께 나노입자를 관찰하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 이런 한계를 극복했다.
회전하는 나노입자에서 아이디어를 얻다
오늘날 물질의 3차원 구조를 원자 수준의 높은 해상도로 관찰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극저온 투과전자현미경(cryo-TEM)을 이용한 단일입자 구조 분석과, 전자 단층 촬영(ET)이다.
극저온 투과전자현미경을 이용하면 단백질 등 생체분자의 3차원 구조를 고화질로 볼 수 있다. 먼저 같은 종류의 시료를 여러 개 배열한 뒤 초저온으로 냉각한다. 그리고 각각의 자세를 달리해 촬영한 뒤 컴퓨터 알고리즘으로 사진을 결합하면 입체적인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 극저온 투과전자현미경 기술을 개발한 과학자들은 2017년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하지만 나노입자는 극저온 투과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하기가 어렵다. 생체분자 시료는 같은 종류라면 구조가 일정하지만 나노입자는 같은 반응으로 합성됐더라도 원자 수준에서는 배열 등 구조가 미묘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전자 단층 촬영도 나노입자 분야에선 활용하기가 어렵다. 전자 단층 촬영은 한 시료를 여러 각도에서 찍어 시료의 구조를 한 번에 포착한 뒤 3차원으로 구현한다. 단 전자 단층 촬영은 시료가 진공 상태에 놓여있을 때만 촬영할 수 있다. 진공 환경은 나노입자가 실제로 존재하는 환경이 아니므로 나노입자의 구조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다.
이에 IBS 나노입자 연구단 연구원들은 나노입자가 녹아있는 극미량의 용액을 담을 수 있는 특수용기인 ‘액체 셀(Liquid Cell)’을 자체 개발한 뒤, 액상 투과전자현미경으로 나노입자의 움직임을 관측해왔다. 액체 셀에 나노입자를 합성하는 액체를 담아 나노입자가 합성되는 과정을 관찰하거나 크기 변화를 포착하는 것이다. 진공 환경과 달리 액체 환경에서는 나노입자가 실제와 거의 비슷한 구조를 유지한다.
그러던 2018년 여름 연구단은 액체 셀 속에 들어있는 나노입자가 회전하는 현상을 발견했다. 순간 회전하는 나노입자의 이미지를 연속적으로 촬영한 뒤 합치면 원자 수준의 영상을 3차원으로 얻을 수 있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나노입자의 3차원 증명사진을 얻을 수 있는 셈이다.
연구단은 현미경의 관측 해상도를 원자 수준으로 높이는 방법도 고안해냈다. 비결은 탄소로 이뤄진 ‘그래핀(Graphene)’. 그래핀은 두께가 1nm 수준으로 매우 얇다. 연구단은 이런 그래핀 사이에 액체 용액에 담긴 나노입자를 가두면 나노입자를 원자 수준으로 촬영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빅데이터 알고리즘으로 3D 구조 재현
나노입자 연구단은 용액 상에서 합성된 백금(Pt) 나노입자가 자유자재로 회전하는 모습을 초당 400장의 속도로 촬영했다. 수천 장의 이미지가 나왔다. 연구단은 자체 개발한 빅데이터 분석 알고리즘을 이용해 이들 사진이 촬영된 방향을 추적하고 이 정보로 나노입자의 3차원 구조 이미지를 재구성했다.
이것을 실제 백금 나노입자 구조와 비교해보니 오차는 19pm(피코미터·1pm는 1조분의 1m)에 불과했다. 백금의 격자 상수(결정 구조에서 원자 간의 간격)가 수백 pm임을 감안하면 매우 작은 오차다.
관측 과정에서 연구단은 새롭고 흥미로운 사실도 알아냈다. 낮은 해상도로 관찰했을 때에는 규칙적으로 보였던 나노입자에서 불규칙성이 드러난 것이다. 동일한 조건에서 만들어진 백금 나노입자라 하더라도 크기와 결정학적 특징이 제각각 달랐다. 결정 전체가 일정한 결정축을 따라 규칙적으로 생성된 ‘단결정’ 나노입자가 있는 반면, 결정축의 방향이 각기 다른 ‘다결정’ 나노입자도 있었다. 나노입자의 크기도 2~3nm 차이가 났다.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4월 3일자에 실렸다. doi: 10.1126/science.aax3233
나노입자의 3차원 구조를 원자 수준에서 정밀하게 파악하는 것은 나노입자가 어떤 물리적, 화학적 특성을 지니는지 알아내는 데 바탕이 된다. 그리고 나노입자의 물리적, 화학적 특성을 파악하면 나노입자를 지금보다 더 잘 응용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촉매 반응에 사용했을 때의 활성도나 양자점을 구현했을 때 광학적 성질을 계산해볼 수 있다.
무엇보다 이번 연구로 나노입자 분야의 응용 연구와 이론 연구의 괴리를 메울 수 있게 됐다는 데 큰 자부심을 느낀다. 그동안 과학자들은 나노입자의 실제 구조를 정확히 알 수 없어 이론 연구자들이 계산을 통해 알아낸 구조로 연구를 했다. 그러다 보니 물질의 성질을 예측하고 분석한 결과가 실제 나노입자의 특성과는 다른 경우가 종종 있었다. 앞으로는 나노입자의 실제 구조를 바탕으로 나노입자의 특성을 연구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나노입자 연구단은 이번에 개발한 기술이 다양한 분야에 응용될 수 있도록 연구에 사용한 빅데이터 알고리즘을 무료로 배포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또 이번에는 백금 한 종류의 원소로 이뤄진 나노입자를 분석했지만 앞으로 여러 종류의 원소로 구성된 나노입자를 분석하는 연구를 수행할 계획이다. 새로운 연구를 탄생시키기 위해 앞으로 나노과학 분야, 영상처리 분야, 빅데이터 알고리즘 분야 등 여러 분야 연구팀과의 협업을 계속해나갈 것이다.
박정원
2012년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화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2016년까지 하버드대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했다. 2016년 9월부터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입자 연구단 연구위원이자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로서 나노 재료 실시간 분석 기법 개발, 액상 투과전자현미경 개발, 3차원 재료 구조 분석 등을 연구하고 있다. jungwonpark@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