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통난이도 | 남녀뇌 차이
남녀의 다른 생각, 다른 행동들이 과연 뇌 차이 때문일까? 실제로 남성과 여성의 뇌가 다르다는 연구결과는 수없이 나왔다. 한 예로 2014년 라지니 버마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의대 교수팀이 8~22세 949명(남자 428명, 여자 521명)의 뇌 연결망 구조를 분석한 결과, 남녀 간 뚜렷한 차이가 나타났다.
연구팀은 뇌 신경세포의 연결망 구조를 보여주는 확산텐서영상(Diffusion Tensor Imaging)을 촬영해 비교했다. 여성은 대뇌의 좌반구와 우반구를 연결하는 영역이 발달했지만, 남성은 좌반구 내, 그리고 우반구 내의 연결망이 발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뇌에서는 이와 반대였다. 남성의 소뇌는 좌우 반구의 연결 영역이, 여성의 소뇌는 각 반구 내의 영역이 발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팀은 “뇌 구조의 특성상 남자는 감각인지와 통합 행동에, 여자는 기억과 직관, 사회성에 더 뛰어나다는 걸 뒷받침한다”며 “이런 차이는 14세 이상 청소년기부터 두드러진다”고 분석했다.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렸다. doi: 10.1073/pnas.1316909110
하지만 남녀의 뇌가 다르다는 주장에도 복잡다단한 의견이 오가고 있다. 남녀 뇌에는 차이가 없다는 강한 반박도 나온다. 남녀의 뇌에 차이가 있다 한들 그 특성이 성별에 따라 선천적으로 결정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이 지금까지의 남녀 뇌 차이에 대한 연구를 어떻게 반박하고 있는지, 아리 버코위츠 미국 오클라호마대 생물학과 교수의 글을 통해 알아보자.
100년 연구한 남녀 뇌,
중요한 차이는 발견되지 않았다
글 아리 버코위츠 미국 오클라호마대 생물학과 교수
※ 편집자 주
각계 연구자의 글을 싣는 비영리 매체 ‘The Conversation’에 게시된 글로 저작권 규정(CCL)에 따라 번역, 재게시했습니다.
남녀의 뇌 차이를 연구하기 시작한 건 19세기, 미국 의사인 사무엘 조지 모턴이 인간 두개골에 씨앗과 납으로 된 탄환을 부어 부피를 측정하면서부터다. 19세기 프랑스 의학자 구스타브 르 봉은 남성의 뇌가 일반적으로 여성의 뇌보다 크다는 사실을 알아냈으며, 스코틀랜드 철학자 알렉산더 베인스와 영국의 진화생물학자 조지 로마네스는 이런 뇌 크기 차이 때문에 남성이 더 똑똑하다고 주장했다. 이를 두고 영국의 사회학자 존 스튜어트 밀은 뇌 크기가 똑똑함의 기준이라면 코끼리와 고래가 사람보다 더 똑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후 남녀 뇌 연구의 초점은 뇌 일부 영역의 상대적인 크기를 측정해 비교하는 것으로 옮겨갔다. 골상학(두개골의 형상으로 인간의 성격과 심리적 특성 및 운명 등을 추정하는 학문) 연구자들은 지능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대뇌의 전두엽이 여성보다 남성이 크고 여성은 전두엽 바로 뒤에 있는 두정엽이 남성보다 크다고 봤다. 이와 다르게 신경해부학자들은 두정엽이 오히려 지능에 더 중요하고 실제로는 남성의 두정엽이 더 크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20세기 이후로도 과학자들은 뇌의 여러 작은 영역에서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찾아냈다. 하지만 행동신경생물학자인 필자는 이 연구들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뇌는 너무나 다채롭기 때문이다.
해부학적 뇌 차이
뇌의 여러 영역 중 남녀 사이에 가장 차이가 나는 부위는 생식과 관련된 생리 현상과 행동을 조절하는 시상하부다. 적어도 설치류와 인간만큼은 시상하부 일부분이 남성에게서 더 큰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많은 과학자는 단순히 생식과 관련된 생리 현상뿐만 아니라 생각의 차이도 뇌 차이에서 기인한다는 걸 밝히고자 했다. 그렇게 지능과 연관성이 깊은 대뇌로 관심이 옮겨졌다.
대뇌의 여러 부분 중 인종별, 성별 차이 연구에서 가장 관심을 받는 곳은 뇌량이다. 뇌량은 대뇌의 좌반구와 우반구 사이에서 신호를 전달하는 두꺼운 신경섬유 집단이다.
20세기와 21세기의 일부 과학자들은 뇌량 전체가 여성이 더 크다고 얘기했지만, 또 다른 이들은 뇌량 중 일부분만 여성이 더 크다고 주장했다. 이런 뇌량의 차이는 대중의 관심을 끌었고, 성별 간 인지 능력의 차이를 발생시킨다고 봤다.
하지만 이후 성별에 상관없이 뇌가 작은 사람일수록 뇌량의 상대적 크기가 크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리고 이런 뇌량의 크기 차이를 연구한 결과들은 일관성이 없었다. 뇌량 외에 대뇌의 여러 영역에 대한 크기 측정 연구 역시, 성별 간 인지 능력 차이를 뒷받침하기에는 부족했다.
‘여자 뇌’와 ‘남자 뇌’의 교집합
평균적으로는 뇌 영역별로 남녀 간에 차이가 있다. 하지만 남성의 뇌 특성과 여성의 뇌 특성은 상당 부분 겹친다. 만약 남녀 공통되는 특성을 가진 뇌가 있다면 그것만 보고는 자신있게 성별을 예측할 수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키를 생각해보자. 필자의 키는 5피트7인치(약 170cm)다. 이 키만 보고 필자의 성별을 맞출 수 있겠는가? 뇌는 키보다도 성별에 따른 차이가 훨씬 작다.
(이스라엘 텔아비브대) 신경과학자인 다프나 조엘과 동료 연구자들은 1400명(13~85세) 이상의 뇌를 자기공명영상(MRI) 장치로 촬영해 성별에 따른 차이가 가장 큰 뇌 영역 10곳을 특정했다.
이어서 연구팀은 조사한 뇌의 각 영역이 남성 쪽 특성인지, 여성 쪽 특성인지, 아니면 그 중간의 특성을 갖는지 평가했다. 그 결과 3~6%의 사람만이 10개 영역이 모두 일관되게 남성 또는 여성의 특성을 띠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뇌는 모두 모자이크(한 명의 뇌가 일부 영역은 남성 쪽 특성을, 일부 영역은 여성 쪽 특성을 띠는 것)였다.
태아기의 호르몬
성별에 따라 뇌가 다르다면 그 원인은 무엇일까? 1959년에 발표된 한 연구가 이를 처음으로 설명했다.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을 주입한 쥐에서 암컷 자손이 태어났는데, 이 쥐가 성숙했을 때 수컷이 하는 구애 행위를 하는 현상이 관측된 것이다. 이 연구의 저자들은 태아 고환에서 분비되는 테스토스테론이 뇌를 ‘조직화’한다고 추론했다. 이후 이를 뒷받침하는 많은 연구가 나왔다. 단 인간이 아닌 동물 대상의 연구인지라 실험 설계가 지나치게 단순화된 측면은 있다.
연구자들은 윤리적으로 인간의 태아기 호르몬을 조절하는 실험은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생물학적으로 중성인 사람과 같이 태아기 호르몬의 수치나 또는 태아기 호르몬에 대한 반응이 일반적이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연구결과에 의존했다.
그러나 이 연구결과들에는 호르몬 요인과 환경적 요인들이 서로 얽혀 있고, 남녀 간 뇌 차이에선 일관성이 없어 과학자들은 인간 뇌 발달에는 호르몬이 어떤 효과가 있을지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유전자도 뇌의 성별 차이를 유발한다
인간을 제외한 동물들의 성별 간 뇌 차이는 대부분 태아기 호르몬이 원인이지만, 때론 유전자가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할 때도 있다.
이는 특별한 금화조(zebra finch)에서 확인됐다. 이 특별한 금화조는 유전적으로 신체 절반은 수컷, 나머지 절반은 암컷이었다. 그리고 이 금화조의 좌반구와 우반구는 동일한 호르몬 환경에 있었음에도 (일반적인 수컷 금화조의 노래 관련 뇌 영역이 부풀어 있는 것처럼) 노래 관련 영역은 수컷의 특성을 띠는 오른쪽 뇌에서만 부풀어 있었다. 이는 금화조의 뇌가 호르몬이 아닌 유전적 원인 때문에 비대칭으로 발달했음을 뜻한다. 또 다른 쥐 실험에서도 성별 간 뇌의 차이가 유전자 때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학습은 뇌를 변화시킨다
많은 이들이 성별에 따른 뇌 차이가 타고난 것이라 생각하지만 이는 잘못된 가정이다. 인간은 어릴 때 매우 빠른 속도로 학습하고, 성인이 돼서도 느리지만 학습을 지속한다. 기억하고 대화하는 것부터 음악적 능력이나 운동 능력을 향상하는 것까지, 모든 학습은 시냅스라고 불리는 신경세포끼리의 연결을 변화시킨다. 시냅스는 크고 빈번하게 변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변하는 크기 범위는 머리카락 너비의 100분의 1보다도 작다.
그러나 특정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성인의 두뇌도 학습에 따라 매우 크게 바뀔 수 있다. 가령 영국 런던의 택시 기사는 도시의 복잡한 도로와 경로, 랜드마크라는 ‘지식’을 외워야 하는 직업이다. 한 연구팀이 택시 기사들의 뇌를 분석한 결과 길을 찾는데 중요한 뇌 영역인 해마의 크기가 매우 크게 변했음을 확인했다. 택시 기사들의 후위해마(posterior hippocampi)는 운전을 하지 않는 사람보다 수 밀리미터 더 큰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시냅스의 1000배가 넘는 크기다.
따라서 인간 뇌의 차이가 성별에 따라 타고난 것이라고 가정하는 건 현실적이지 않다. 그 차이 또한 학습의 결과일 수 있다.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성별에 따라 받는 교육, 기대, 기회가 근본적으로 다른 문화에 살고 있다. 이는 필연적으로 뇌를 변화시킨다.
궁극적으로 성별에 따른 뇌 차이는 유전자와 호르몬, 학습의 복잡성과 그들의 상호작용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