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어려워요 | 추석음식
추석이면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요리가 있다. 잘 달궈진 팬에 넉넉히 기름을 두르고 부쳐낸 전(煎)이다. 호박전, 부추전, 동태전, 해물파전…. 들어가는 재료는 각기 다르지만 식욕을 자극하는 고소한 향과 바삭한 식감은 공통적인 매력이다. 고분자공학을 연구한 필자가 알고 먹으면 더 맛있는 추석 음식 이야기를 준비했다.
고소한 풍미의 비결, 마이야르 반응
기름으로 음식을 조리하는 방식은 튀김(Deep Frying), 부침(Pan Frying), 볶음(Stir Frying)으로 나뉜다. 튀김은 다량의 기름에 식재료를 담그고 고온에서 수분 이내 가열하는 조리법이다. 반면 볶음과 부침은 비교적 소량의 기름을 두르고 가열한다. 볶음은 빠르게 뒤적이고 부침은 앞뒤를 고루 충분히 익혀낸다. 추석 상차림에 빠지지 않는 전은 부침 방법으로 조리한다.
전은 기름지다. 과학적으로 말하면 지방이 풍부하다. 지방은 탄수화물, 단백질에 비해 에너지 효율이 두 배 이상 높다. 같은 양을 먹어도 두 배나 더 많은 에너지를 낸다는 뜻이다. 오랜 세월 궁핍하게 살았던 원시 인류에게 지방은 매우 요긴한 영양분이었고, 자연스레 지방에 대한 선호가 생겼다. 명절처럼 온 가족이 모이는 자리에 전을 부치게 된 것도 특별한 날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전에 끌리는 것이 비단 영양학적인 이유만은 아니다. 아무리 에너지를 많이 낸다 하더라도 맛이 없다면 인기를 얻기 힘들다. 특히 고온의 조리과정에서 만들어지는 풍미는 전을 한층 더 맛있게 탈바꿈한다.
풍미는 혀에서 느끼는 미각과 코에 전달되는 후각이 함께 작용해 만들어진다. 맛은 단맛, 짠맛, 쓴맛, 신맛, 감칠맛의 다섯 종류밖에 없지만 향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감기에 걸려 코가 막히면 음식의 풍미를 제대로 느낄 수 없는 것이 이 때문이다. 혀로 느끼는 맛만큼 향도 중요하다.
튀김이나 부침처럼 고온으로 조리하는 방식에서는 향 성분이 특히 많이 만들어진다. 식재료에 포함된 탄수화물과 단백질이 고온의 조리과정에서 각각 당과 아미노산으로 분해되고, 두 물질은 여러 종류의 반응을 거쳐 1000여 가지의 향을 만들어낸다. 프랑스의 화학자 루이스 카밀 마이야르가 처음 발견해 ‘마이야르(Maillard) 반응’이라고 부른다. 마이야르 반응으로 만들어진 대표적인 부산물은 전 겉면을 노릇하게 만드는 갈색 풍미 물질 ‘멜라노이딘(Melanoidine)’이다.
전의 풍미를 완성하려면 한 가지 반응이 더 필요하다. 달콤한 풍미를 만드는 또 하나의 마법, ‘캐러멜화(Caramelization) 반응’이다. 설탕과 같은 당 성분을 가열하면 산화되며 갈색을 띠고 단맛과 고소한 향을 낸다. 전에서는 원재료 겉면에 꼼꼼히 바른 밀가루의 탄수화물이 캐러멜화 반응을 일으킨다.
‘겉바속촉’ 식감의 비결, 글루텐 막
노릇노릇하게 익은 전을 한입 베어 물면 겉은 바삭하면서 속은 부드러운 식감의 조화가 일품이다. 이 식감은 밀가루와 수분의 합작품이다. 밀가루와 수분이 만나면 얇고 탄력성 있는 글루텐 막이 형성된다. 달군 팬에 재료를 놓으면 글루텐 막에 포함된 수분이 증발한다. ‘자글자글’ 전을 구울 때 들리는 소리는 수분이 증발하며 나는 소리다.
수분이 빠져나간 자리는 구멍이 숭숭 뚫린 구조로 남고, 이 다공질 구조는 우리를 매혹하는 바삭한 식감을 만든다. 두께가 얇은 전의 가장자리 부분은 다공질 구조의 비중이 높아 중심 부분보다 더 바삭한 식감을 갖는다. 오랜 시간 가열하면 수분을 많이 증발시켜 더 바삭한 식감을 얻을 수 있지만, 바삭함이 지나쳐 자칫 딱딱해질 수 있어 적당한 타이밍에 조리를 끝내는 것이 비법이다.
글루텐 막은 시중에 파는 부침가루를 쓰지 않아도 충분히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요리를 막 시작하는 ‘요린이’이라면 부침가루가 가장 실패없는 선택이긴 하다.
우선 밀가루는 글루텐 단백질 함량에 따라 강력분, 중력분, 박력분으로 나뉜다. 강력분은 글루텐 단백질 함량이 13% 이상으로 높아 찰지게 반죽되며 주로 빵을 굽는 데 사용한다. 박력분은 글루텐 단백질 함량이 10% 정도로 낮아 찰기는 덜하지만 바삭한 식감을 원하는 튀김 요리에 주로 사용한다. 전이나 면 요리를 만들 때는 글루텐 단백질 함량이 중간 정도인 중력분이 필요하다.
부침가루는 중력분에 전분을 적당량 추가한 제품이다. 실제로 전문가들도 바삭한 식감을 내기 위해 중력분에 전분을 추가해서 쓴다. 전분에는 글루텐 단백질이 들어있지 않아 전분을 추가하면 단백질 함량이 낮아진다. 또한 전분의 구성성분인 아밀로오스와 아밀로펙틴은 글루텐 막을 한 겹 더 감싸는 효과를 낸다. 부침가루 제품에는 기포 발생을 촉진해 바삭한 식감을 만드는 데 도움을 주는 베이킹파우더와 간을 조절하는 소금, 후추 등도 포함돼 있다.
밀가루만큼 중요한 재료 선택이 한 가지 더 남았다. 기름이다. 색다른 맛을 내려면 올리브유나 버터 같은 기름을 골라 특색있는 풍미를 주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기름 선택은 건강에 해로운 포화지방과 트랜스지방 양을 좌지우지한다. 동물성 기름은 식물성 기름보다 포화지방을 더 많이 함유하고 있다. 또 여러 번 사용한 기름은 고온에서 장시간 기름을 가열했을 때 생성되는 트랜스지방이 많기 때문에 피해야 한다.
발연점(smoke point)이 낮은 기름도 주의해야 한다. 발연점은 기름을 가열했을 때 표면에서 푸르스름한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하는 온도를 말한다. 발연점보다 높은 온도로 가열하면 알데하이드나 케톤, 알칸 계열의 발암물질이 포함된 연기가 많이 발생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전을 부칠 때 온도는 200℃ 이상으로 올라간다. 일반 가정에서 사용하는 해바라기씨유, 대두유 등은 발연점이 200℃ 이상이므로 부침에 적당하다. 반면 올리브유는 170℃로 발연점이 낮아 부침이나 튀김 요리에는 사용하지 않도록 주의한다.
임두원
서울대에서 고분자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기업에서 연구 개발을 하다가 과학기술부로 자리를 옮겨 과학기술 정책 기획을 담당했다. 현재 국립과천과학관에서 연구관으로 근무하며 일반 대중들에게 과학을 쉽게 전달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튀김의 발견’ 옮긴 책으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 읽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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