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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악’ 비명을 지르는 듯한 표정과 딱딱하게 뒤틀린 몸. 흔히 ‘절규하는 여성의 미라’라고 불리는 이집트 미라는 1881년 룩소르(고대도시 테베) 서쪽 다이르 알바흐리 지역 암굴 무덤에서 발견됐다. 암굴 무덤은 도굴 위험이 큰 파라오, 왕비, 왕족 등의 미라 50여 구를 따로 정성스레 재매장한 ‘왕가의 은신처’였다. 이런 무덤에 왜 절규하는 여성이 안치됐는지는 오랜 의문이었다. 


7월 27일 사하르 살렘 이집트 카이로대 연구원과 자히 하와스 이집트 고고학자로 구성된 연구팀은 이 여성의 사인을 밝혀 논문을 발표했다. 이 여성 미라를 컴퓨터단층촬영(CT)으로 분석한 결과 이 여성이 생전 죽상동맥경화증을 앓았으며, 이로 인해 죽음 직전에 심장마비를 일으켰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혈관 석회화, 죽상동맥경화증 증거 찾아 


국내에서도 같은 방법을 이용해 심혈관 질환으로 사망한 여성의 미라를 진단한 경험이 있다. 2010년 경북 문경에서 발굴조사를 하던 중 회곽묘(횟가루를 써서 나무관 주위를 돌처럼 단단하게 굳힌 무덤)를 발견했는데, 무덤 안에는 17세기(1600년대)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미라가 들어 있었다. 


절차에 따라 미라를 곧바로 외부 오염으로부터 차단된 서울대 의대 연구실로 옮긴 후 CT 촬영을 했다. 미라 대동맥 곳곳에서는 석회화된 부분이 발견됐다. 미라 혈관에서 석회화가 관찰되면 그 사람이 생전에 죽상동맥경화증을 앓고 있었던 흔적이라 추정하는 경우가 많다. 


죽상동맥경화증이란 대동맥처럼 탄력성이 있는  동맥의 내층에 지방과 콜레스테롤로 이뤄진 죽종(atheroma)이 생기는 질병을 뜻하는데, 죽종 안에는 출혈이나 궤양, 그리고 석회화 등의 현상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 연구팀은 미라의 사망 원인을 더 정확하게 알아내기 위해 후손의 동의를 얻은 뒤 법의학적 검사를 진행했다. 부검 결과 대동맥에는 죽상동맥경화증과 관련된 형태학적 증거가 남아 있었다. 대동맥의 혈관벽에서 죽종, 죽상판 궤양, 죽상판 출혈, 섬유성막 등 죽상동맥경화증을 앓을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증상들이 관찰된 것이다. doi: 10.1371/journal.pone.0119474 


미라에서 떼어낸 조직으로 DNA도 분석했다. 미라의 유전자 염기서열을 참조용 표준 유전체의 DNA와 비교해 질병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미라의 DNA에는 죽상동맥경화증을 유발할 수 있는 유전자가 있었다. 


결국 우리 연구팀은 17세기 조선시대 미라가 생전에 죽상동맥경화증을 앓고 있었고, 관상동맥질환의 흔적도 발견됐기 때문에 이로 인해 사망했다고 결론지었다. 이런 내용은 국제학술지 ‘플로스원’ 2017년 8월 16일자에 발표됐다. doi: 10.1371/journal.pone.0183098

 

기생충, DNA로 질병 추적


전 세계 어디에서 미라를 연구하든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은 바로 돌아가신 분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몸을 뚫거나 자르는 등의 손상은 가능한 주지 않고 부득이한 경우에만 부검하는 것이 원칙이다. 


CT나 방사선 같은 영상의학 장비를 이용하면 거의 훼손 없이 미라의 신체 골격, 내부 장기의 보존상태를 사실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밀폐된 무덤 속에서도 탈수, 분해, 부패 등이 일어나 외형과 장기 형태에는 변형이 생기지만, 미라 보존상태와 병리적 원인을 분석하고 추정하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다. 


한 예로 우리 연구팀은 2012년 경북 안동에서 발견된 18세기 조선시대 미라를 CT와 방사선으로 촬영해 분석하던 중, 몸의 주인이 살아있을 당시 간에 선천적인 이상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간의 해부학적 위치가 정상인과 달랐기 때문이다. 정밀한 분석을 위해 부검을 해보니 선천성 횡격막 탈장이었다. 그로 인해 간이 흉강으로 밀고 들어간 것이었다. doi: 10.1155/2018/6215025
그밖에도 미라를 연구할 때에는 기생충 조사, 유전자 검사 등 다양한 방식을 활용한다. 조직 분석도 그중 하나다. 미라의 조직은 탈수가 진행돼 수분이 거의 없기 때문에 먼저 수화액에 조직을 넣어 수분을 공급해 줘야 한다. 

 


조직이 수분을 충분히 머금으면 급속 냉동시킨 후 동결조직절편기를 이용해 적당한 두께로 잘라 슬라이드 위에 올린다. 이를 헤마톡실린-에오신(H&E) 등의 염색용 시약으로 처리한 뒤 현미경으로 관찰하면 미라 조직의 형태학적 특징을 관찰할 수 있다. 앞서 소개한 경북 문경에서 발견된 17세기 미라의 사망 원인이 죽상동맥경화증이라는 결정적인 증거도 이 과정에서 나왔다. 


미라의 몸속 기생충을 분석해 질병을 진단하기도 한다. 국내에서는 대개 미라의 장에 남아 있는 대변을 분석한다. 다른 조직과 마찬가지로 미라는 대변도 탈수 상태다. 하지만 이것을 인산완충액에 넣으면 수분이 공급되면서 원래의 축축한 상태로 복원된다. 


대변을 생전의 상태로 되돌린 뒤 현미경으로 관찰하면 종종 기생충 알이 발견된다. 사람 몸속에 있는 기생충 알은 소화액, 장내미생물 등에 의해 파괴되지 않도록 껍질이 단단한 키틴질로 이뤄져 있다. 때문에 수백 년이 흘러도 관찰할 수 있다. 


한 예로 우리 연구팀은 2009년 5월 경남 하동에서 발굴된 400여 년 전 정 씨 부인 미라를 조사한 결과, 생전에 폐디스토마(폐흡충)에 감염된 사실을 알아냈다. 미라의 몸속에는 수천 개의 기생충 알이 들어 있었다. 알은 폐와 간뿐만 아니라 장과 대변에서도 발견됐다.  


기생충이나 세균 등 감염원을 유전자로 찾아낼 수도 있다. 미라의 몸속 조직을 조사하면 사람 유전자 외에 미생물 등 여러 종류의 유전자가 발견된다. 이런 유전자를 중합효소 연쇄반응(PCR) 기술로 증폭해 분석하면 어떤 감염원이 몸속에 있었는지 알아낼 수 있다. 


실제로 우리 연구팀은 2008년 대구 청도에서 발견된 미라와 2014년 충남 당진에서 발굴한 조선시대 미라의 위 조직에서 헬리코박터균의 DNA를 확인했다. 헬리코박터균은 위암의 원인균으로 사람의 위 속에 살고 있다. 2020년 현재 국내 성인의 절반가량이 헬리코박터균을 갖고 있는데, 수백 년 전에도 갖고 있었다는 게 증명된 셈이다. doi: 10.1127/anthranz/2018/0780


올해 초에는 경기 광명에 있는 조선시대 무덤에서 옷감에 쌓여 있는 시신이 발견됐는데, 이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까지 조사 결과 완벽한 형태로 보존되지는 못했지만, 신체 일부가 미라화된 게 확인돼 여러 방법을 이용한 고병리학적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조상들이 보낸 타임캡슐, 미라 


미라 연구를 시작할 당시 첫 번째 고민은 국내에 맞는 미라 연구 방법을 확립하는 것이었다. 초창기에는 미라가 발견되면 발굴 현장에서 수의를 회수하고 연구실로 옮겨왔다. 그 결과 미라가 오염돼 과학적 조사가 불가능해지는 경우가 생겼다. 


결과적으로 과학 분석에 적합한 시료를 얻는 데는 좀 더 안정적인 장소에서 충분한 시간을 두고 복식 수습과 연구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는 미라가 되기 이전에 피장자(무덤에 묻혀 있는 사람)는 한 명의 인간이었기에 그 존엄성을 지킨다는 점에서도 중요했다. 


현재는 이런 초창기의 미숙함을 극복하고 체계적이고 안정적으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발굴한 미라는 곧바로 연구실로 옮겨 방사선 촬영을 하고, 이후 전통 의상학자가 직접 미라 수의를 수습한다. 이 과정은 모두 후손들이 참관하는 가운데 진행되고, 연구를 마친 미라는 다시 후손에게 인도된다. 


미라 연구는 과거 이 땅에 살던 우리 조상들의 삶과 건강, 생활과 질병을 이해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과학적인 증거를 제시한다. 미라가 보존된 회곽묘를 종종 과거에서 보내온 ‘타임캡슐’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미라를 연구하다 보면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치주염을 앓다 돌아가신 분, 임신한 상태로 폐디스토마에 감염돼 돌아가신 분, 선천적으로 뼈와 연골에 이상이 있었던 분, 횡격막 탈장으로 한쪽 폐가 제 기능을 못해 평생 고생하셨던 분…. 과거 우리와 똑같은 삶을 살았을 그들의 미라를 보면, 가끔은 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후대에 남기고 싶어 사라지지 않고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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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오창석 을지대 바이오융합대학 교수, 신동훈 서울대 의대 교수
  • 에디터

    조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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