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세계에서 처음으로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백신을 등록했다.
그것은 상당히 효율적으로 기능하며 지속적인 면역을 형성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8월 11일 원격 내각회의에서 이같이 밝히며 러시아가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해 공식 승인했다고 발표했다. 백신 이름은 옛 소련 시절 세계 최초로 개발한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Sputnik)’를 딴 ‘스푸트니크 V’다. 푸틴 대통령은 자신의 두 딸 중 한 명이 이미 백신을 맞았다고 덧붙였다. 코로나19 백신 개발 전쟁에서 러시아가 세계 최초 타이틀을 가져간 것일까.
러시아가 1등? 치열한 선두다툼
현재 세계적으로 개발 중인 코로나19 백신은 170여 종이다. 이 가운데 세계보건기구(WHO)가 마지막 임상 단계인 임상 3상시험에 진입했다고 공인한 백신은 6종이다(8월 10일 기준). 러시아 백신은 WHO 목록에 포함되지 않았다.
스푸트니크 V는 러시아 가말레야 연구소에서 개발했다. 연구소는 백신의 효능과 안전성을 확인했고 상용화를 위한 허가를 마친 만큼 접종에 문제가 없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성급한 결정이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타릭 야사레비치 WHO 대변인은 푸틴 대통령의 발표 이후 즉각 성명을 내고 “백신의 적합성에 대해 러시아 정부와 논의 중”이라며 “모든 백신은 엄격한 평가가 필요하다”고 스푸트니크V 승인에 유보적인 입장을 취했다.
마이클 헤드 영국 사우스햄튼대 수석연구원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 백신이 어떤 작용을 하는지 알 수 없다”며 “러시아 백신에 대해 공개된 정보가 전무하다”고 비판했다. BBC는 러시아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며 “1, 2상 임상시험은 76명을 대상으로 소규모로 이뤄진 만큼 3상 임상시험이 끝날 때까지 허가를 연기해야 한다”는 러시아 임상협회의 입장을 보도했다.
현재 미국에서는 바이오기업 모더나가 속도를 내고 있다. 모더나는 올해 5월 18일 1차 임상시험에서 참가자 45명 전원에게 중화항체가 형성됐다고 발표한 이후, 7월 27일 다수를 대상으로 장기적인 약물의 효능을 평가하는 3상 임상시험에 들어갔다.
모더나의 3상 임상시험은 미국 텍사스주, 캘리포니아주, 플로리다주, 조지아주, 애리조나주 등 코로나19 피해가 큰 89개 지역을 중심으로 세 달간 진행된다. 이전 임상시험 결과 약효가 가장 뛰어났던 100μg(마이크로그램·1μg은 100만분의 1g) 용량을 29일 간격으로 두 차례 투여한 뒤 악효와 안전성을 평가한다.
임상시험 대상은 3만 명으로 일반적인 3상 임상시험(수백 명에서 수천 명 대상)보다 규모가 훨씬 크다. 7월 29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모더나의 백신 가격이 50~60달러(약 6만~7만2000원)로 책정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독일 바이오엔테크와 협력해 백신을 개발 중인 미국 바이오기업 화이자도 7월 27일 미국과 아르헨티나, 브라질, 독일 등 39개 지역에서 3만 명을 대상으로 3상 임상시험에 들어갔다. 미국 바이오기업 이노비오는 6월 22일 한국인 160명을 대상으로 1/2a상 임상시험(1상과 2상을 동시에 진행하는 임상시험)에 돌입했다. 이르면 8월 중 3상 임상시험을 진행할 계획이다.
모더나와 화이자가 개발 중인 백신은 RNA 백신, 이노비오에서 개발 중인 백신은 DNA 백신이다. RNA 백신과 DNA 백신은 합쳐서 핵산 백신이라고도 부르는데, 코로나19 바이러스 항원 단백질의 염기서열을 담은 RNA 또는 DNA를 세포에 넣어 체내에서 항원 부위가 만들어지도록 한다. 이런 방식은 개발 과정이 비교적 간단하고 다양한 항원에 대해 동시에 면역반응을 유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한편 중국에서는 시노팜과 시노백 바이오텍 두 회사가 7~8월 3상 임상시험에 들어갔다. 시노팜은 아랍에미리트에서 1만5000명을 대상으로, 시노백은 브라질과 인도네시아에서 3상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이들이 개발 중인 백신은 병원체를 불활성화해 직접 주사하는 사백신이다. 사백신은 전통적인 백신으로 부작용 등 연구 결과가 다수 축적돼 있다는 장점이 있다.
사실 중국에서는 이미 사람에게 백신을 접종 중이다. 중국 군사과학원과 함께 백신을 개발 중인 칸시노 바이오로직스는 6월 21일 2차 임상시험에서 항체 형성에 성공한 뒤, 중국 정부의 임시 허가를 받아 6월 29일부터 곧바로 군인들을 대상으로 백신 접종에 들어갔다.
백신 종주국인 영국은 올해 5월 1일 가장 먼저 3상 임상시험에 돌입했다. 옥스퍼드대와 다국적 제약회사 아스트라제네카 공동 연구팀이 영국과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의 1만 명을 대상으로 3상 임상시험을 시작했다. 임상시험이 원활하게 진행될 경우, 이르면 10월부터는 백신을 상용화할 수 있을 전망이다.
국내에서도 백신 개발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6월 12일 국내 제약회사 제넥신은 세브란스병원과 코로나19 백신 ‘GX-19’ 1/2a상 임상시험 계약을 체결했다. 6월 19일 첫 투여를 시작으로 제넥신은 국내 제약회사 가운데 가장 빠르게 임상시험에 진입했다. SK바이오사이언스와 진원생명과학도 이르면 9월부터 임상시험을 시작하는 것을 목표로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권준욱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은 8월 13일 열린 정례브리핑에서 “3대 백신 핵심품목을 2021년 하반기에서~2022년까지(상용화하는 것을) 목표로 중점지원하고 있다”며 “올해 내로 국내 백신 3종 모두 임상 착수가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속도와 안전성 ‘두 마리 토끼’ 잡아야
속도전의 이면에는 항상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있다. 미국 정부는 2021년 1월까지 코로나19 백신 3억 개를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제약사들을 지원하는 ‘초고속 작전(Operation Warp Speed)’을 진행하고 있다. 여기에는 제약사들에 대한 재정적인 지원뿐만 아니라 임상시험 승인 절차를 조정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일반적으로 1상 임상시험에 진입하거나 다음 단계의 임상시험으로 넘어갈 때는 독성평가와 효능평가 등의 자료가 필요하다. 특히 까다롭기로 소문난 미국식품의약국(FDA)에서 임상시험을 허가받기 위해서는 수많은 서류를 준비해야 한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초고속 작전을 통해 필수적인 안전성 자료를 확보하면 임상시험을 우선 허가하고, 부가적인 자료는 임상시험을 진행하면서 함께 준비할 수 있도록 지침을 변경했다. 임상시험을 더 빨리 시작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중국, 유럽 등에서도 백신 개발에 속도를 낼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지원책이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3상 임상시험의 결과가 어떨지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 송대섭 고려대 약학과 교수는 “현재 공개된 임상시험 논문을 살펴보면 코로나19 백신은 일반적인 백신보다 부작용 빈도가 높은 편에 속한다”며 “대규모로 진행되는 3상 임상시험의 특성상 1상과 2상에서 나타나지 않은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모든 백신에는 부작용이 따르므로 백신 개발 성공 여부는 부작용이 얼마나 심각한가에 따라 결정된다. 국제학술지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NEJM)’ 7월 14일자에 발표된 모더나의 RNA 백신 ‘mRNA-1273’의 1상 임상시험 결과에 따르면 일부 참가자에게서 부작용이 나타났다.
총 45명의 시험 참가자를 세 그룹으로 나눠 백신을 저농도, 중간 농도, 고농도로 투여했을 때, 중간 농도 이상으로 투여한 참가자 그룹 전원에게서 전신성 부작용이 발생했다. 낮은 농도로 투여한 참가자 그룹에서도 절반이 부작용을 보였다. doi: 10.1056/NEJMoa2022483
중국에서도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부작용 사례가 높은 비율로 나타나고 있다. 칸시노 바이오로직스가 국제학술지 ‘랜싯’ 7월 20일자에 발표한 2상 임상시험 결과에 따르면, 고농도의 백신을 투여한 참가자의 72%에서 부작용 사례가 보고됐다. 그중 9%는 고열과 두통 등에서 심각한 수준의 부작용을 보였다. doi: 10.1016/S0140-6736(20)31605-6
‘휴먼 챌린지’ 해야 할까
통상 백신은 치료제보다 개발 기간이 길다. 환자가 아닌, 건강한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치료제를 개발할 때에는 임상시험 참가자를 모집하고 치료 효과를 추적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쉬운 편이지만,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백신 임상시험은 그렇지 않다.
특히 코로나19 백신은 최근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전 세계에서 적극적인 방역 조치가 이뤄지고 있어 백신의 감염 예방 효과를 평가할 수 있는 지역이 많지 않다. 바이러스가 꾸준히 확산되는 지역이 아니라면, 백신을 접종한 사람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는 이유가 백신 효과인지 아닌지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때문에 일부 과학자들은 건강한 자원봉사자에게 살아있는 바이러스를 직접 주입해 백신의 효능을 검증하는 ‘휴먼 챌린지(Human Challenge)’ 시험을 제안하기도 한다. 일반적인 임상시험은 참가자를 모집해 백신을 투여한 뒤 그들이 일상생활을 하는 동안 바이러스에 감염되는지 확인한다. 이 경우 발병률이 낮아 백신의 효능을 확인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참가자에게 백신을 투여한 뒤 바이러스를 직접 주입하면 이런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실제로 2011년 장티푸스 백신과 1976년 콜레라 백신을 개발할 때 휴먼 챌린지 시험이 도입돼 백신 개발을 앞당기기도 했다. 현재 코로나19 휴먼 챌린지 참가자를 모집하는 사이트인 ‘1day sooner’에는 157개 국가에서 3만4800여 명이 참여 의사를 밝힌 상태다.
다만 휴먼 챌린지시험의 부정적인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일단 사람을 고의로 바이러스에 감염시킨다는 점에서 윤리적인 논란이 따르고 그 결과 또한 장담할 수 없다. 송 교수는 “전임상시험에서는 바이러스 주입을 통해 효능을 빠르게 확인한다”면서도 “다만 이를 사람에게 적용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로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