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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07. 치료제┃인간 지킬 유일한 방패, 백신항바이러스제 개발의 꿈

“We weren’t doing this to make money, We were interested in developing a compound that would be a benefit to society.”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이 일을 하는 게 아닙니다. 사회에 이로움을 줄 수 있는 화합물을 개발하기 위함입니다.”
_최초의 항바이러스제를 개발한 윌리엄 프루소프, 2001년 예일대 인터뷰 

 

 

항바이러스제 개발을 위해 노력해온 시간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꿈을 향한 도전’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항바이러스제는 백신을 도와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인류를 지켜낼 강력한 무기다. 


항바이러스제는 이름처럼 바이러스의 증식을 억제한다. 이미 감염된 환자를 치료해 사망률을 낮추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감염을 예방하는 백신과는 분명히 다르다. 백신이 바이러스의 공격을 막는 방패라면 항바이러스제는 바이러스를 공격하는 창과 같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항바이러스제의 중요성은 두말할 것이 없지만, 그동안의 항바이러스제 개발 성적은 솔직히 안타까운 수준이다. 지난 50년 동안 새롭게 등장한 인간 감염 바이러스 중 항바이러스제 개발에 성공한 감염병은 단 두 개.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로 인해 발병하는 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AIDS·에이즈)과 신종 인플루엔자바이러스로 인한 신종플루뿐이다. 

 

항바이러스제 개발이 이토록 어려운 이유는 바이러스의 특징 때문이다. 바이러스는 지속적으로 돌연변이를 일으켜 애써 개발한 항바이러스제를 쓸모없게 만들어버리거나, 항바이러스제에 대한 내성을 획득한다. 


또 박테리아(세균) 감염을 치료하는 항생제는 한 종류를 사용하더라도 여러 박테리아에 대해 효과를 보이지만, 항바이러스제는 대부분 한 종류의 바이러스에만 효과를 나타낸다. 


바이러스는 박테리아와 달리 세포 내부로 침투해 숙주의 효소로 증식하기 때문에 인체에 부작용 없이 바이러스만 선택적으로 억제하는 약물을 개발하기도 쉽지 않다. 그동안 상당수의 항바이러스제가 구토와 설사, 발열 등 부작용으로 사용이 중단됐다. 한때 에이즈 치료제로 사용됐던 스타부딘(Stavudine)이 대표적이다. 


스타부딘을 항바이러스제로 개발한 인물은 미국의 약리학자 윌리엄 프루소프다. 프루소프는 1959년 항암제 이독수리딘(Idoxuridine)을 개발한 후 이것으로 인류 최초의 항바이러스제를 만든 ‘항바이러스제의 아버지(father of antiviral)’로 불리는 인물이다. 


이독수리딘은 DNA 염기 중 하나인 티민(T)과 당이 결합한 티미딘과 유사한 구조를 가진 약물로, 암세포가 세포분열을 하기 위해 DNA를 복제할 때 티미딘 대신 끼어 들어가 암세포 증식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프루소프는 DNA 복제를 방해해 세포분열을 차단하는 이독수리딘이 헤르페스바이러스의 증식도 똑같이 억제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의 예상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1962년 미국식품의약국(FDA)은 이독수리딘을 헤르페스바이러스 치료제로 승인했다. 최초의 항바이러스제는 최초의 현대적인 백신(영국의 의사 에드워드 제너가 1796년 개발)보다 166년이나 늦게 세상에 나온 셈이다. 


프루소프는 다음 목표로 에이즈를 겨냥했다. 그는 이독수리딘과 마찬가지로 티미딘과 구조가 유사해 1960년대 항암제로 개발됐으나 임상시험에서 실패한 약물인 스타부딘에 주목했다. 프루소프가 스타부딘을 재합성해 HIV에 처리한 결과, HIV는 정상적으로 DNA를 합성하지 못하고 비정상적인 짧은 DNA를 만들어내며 증식이 억제됐다. 스타부딘은 1994년 에이즈 치료제로 FDA의 승인을 받았다. 


그러나 당시 스타부딘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비싼 가격 때문이었다. 이에 프루소프는 2001년 자신의 특허권을 포기하면서 당시 스타부딘을 독점 공급하던 제약사를 설득해 낮은 가격에 스타부딘이 판매될 수 있도록 했다. 그는 당시 예일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이 일을 하는 게 아닙니다. 사회에 이로움을 줄 수 있는 화합물을 개발하기 위함입니다.”


1984년 HIV가 에이즈의 원인으로 밝혀지면서 항바이러스제 개발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사실 최초의 HIV 항바이러스제는 스타부딘이 아닌, 1987년 FDA 승인을 받은 아지도티미딘(AZT· Azidothymidine)이다. 아지도티미딘은 미국의 화학자 제롬 호로비츠가 1964년 백혈병 치료제로 처음 개발했다. 아지도티미딘도 스타부딘과 유사한 티미딘 유사체로 암세포의 DNA 합성을 저해하는 기능이 있었다. 


1986년 미국의 제약회사 버로우즈-웰컴(현재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은 HIV가 역전사효소를 이용해 자신의 RNA 유전체를 DNA로 바꿔 숙주세포의 DNA에 끼워 넣는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연구팀은 아지도티미딘을 이용해 HIV가 사용하는 역전사효소를 효과적으로 저해할 수 있는지 실험했다. 아지도티미딘은 HIV 억제에 확실한 효과를 보였다. 


그런데 임상시험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에이즈 환자 282명을 대상으로 위약(가짜 약)과 아지도티미딘의 효능을 비교하는 시험이 16주 만에 돌연 중단된 것이다. 보통은 약의 부작용이 심하거나 약효가 떨어지는 것이 원인인데, 아지도티미딘의 경우는 그와 반대였다. 약효가 너무 뛰어났다. 


당시 임상시험 기록에 따르면 위약을 처방받은 환자 그룹은 137명 중 19명이 사망했지만, 아지도티미딘을 복용한 환자 그룹은 145명 중 목숨을 잃은 사람이 단 한 명이었다. 에이즈 전파가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높은 사망률을 보이는 상황에서 FDA는 위약으로 임상시험을 계속 진행하기보다 모든 환자에게 아지도티미딘을 처방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옳다는 판단을 내렸다. 아지도티미딘이 시판되기 시작되면서 에이즈 환자의 생존율은 크게 높아지기 시작했다. 


물론 HIV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아지도티미딘에 내성을 가진 HIV가 출현하면서 연구자들은 새로운 전략을 고민해야 했다. 가령 역전사효소는 동물에는 존재하지 않는 HIV 같은 레트로바이러스만의 특징으로, 이를 직접 공략한다면 부작용은 줄이고 바이러스만 효과적으로 억제할 수 있다. 이렇게 등장한 항바이러스제가 네비라핀(Nevirapine)이다. 


오늘날 사용되는 에이즈 치료제는 다양한 전략을 취한다. 그중에는 프루소프가 개발한 스타부딘처럼 바이러스의 복제를 막아 세포 안에서 증식할 수 없게 하는 증식억제제도 있지만, 바이러스의 세포 침투 자체를 방해하는 부착 및 침투억제제도 있다. 


부착 및 침투억제제는 바이러스의 특징을 영리하게 역으로 활용한 경우다. 바이러스는 단독으로 존재할 땐 증식이 불가능하고, 오직 숙주세포에 침투한 상태에서만 숙주의 효소를 이용해 증식할 수 있다. 즉 바이러스가 숙주세포에 붙거나 침투하는 것만 막아도 바이러스 억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이런 원리로 만든 에이즈 치료용 항바이러스제가 칼레트라(Kaletra)라는 상품명으로 잘 알려진 로피나비르/리토나비르(Lopinavir/Ritonavir)와 엔푸버타이드(Enfuvirtide), 마라비록(Maraviroc) 등이다.


덕분에 오늘날 에이즈는 정복할 수는 없지만 관리할 수 있는 감염병으로 취급된다. 에이즈 환자도 꾸준히 약물치료를 받으면 건강한 사람과 비슷한 기간 생존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백신 없이 순전히 항바이러스제만으로 이룬 쾌거다. 


하지만 기뻐하는 것도 잠깐, 2000년대 들어 인류는 새로운 바이러스의 위협에 직면했다. 기껏해야 감기를 유발하는 바이러스 정도로 얕봤던 코로나바이러스가 치명률 높은 바이러스로 변신해 찾아온 것이다. 2002년 사스코로나바이러스(SARS-CoV)가 창궐하며 사스(중증급성호흡기
증후군)로 전 세계에서 8000명 이상이 감염돼 773명이 목숨을 잃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대표적인 단일가닥 RNA 바이러스로 다양한 돌연변이를 만든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유전자형에 따라 사람을 감염시키거나 박쥐, 쥐, 소, 낙타 등 다양한 동물을 감염시킨다. 

 

그간 인체 세포에는 침투하지 못하고 동물만 감염되는 코로나바이러스는 국가연구소나 제약회사의 중요한 연구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동물 감염 코로나바이러스가 돌연변이를 일으키면서 얘기가 달라졌다. 


현재까지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스코로나바이러스는 박쥐를 감염시키던 바이러스가 돌연변이를 통해 사람을 감염시킬 수 있는 능력을 획득하며 탄생했다. 


전 세계 연구진은 서둘러 백신과 더불어 항바이러스제 개발에 뛰어들었다. 후보는 DNA 염기 유사체와 바이러스 부착 및 침투억제제다. 하지만 헤르페스바이러스와 HIV 등의 항바이러스제를 개발했던 연구자들에게도 코로나바이러스에 대응할 항바이러스제 개발은 쉽지 않은 과제였다. 


중증환자와 사망자가 계속해서 증가하는 상황에서도 항바이러스제 개발은 지지부진했다. 사스의 경우 폐렴을 완화할 스테로이드제와 인공호흡기 치료 등 증상을 완화하는 치료만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당시 HIV 치료 목적으로 개발 중이던 로피나비르/리토나비르, C형 간염바이러스 치료제였던 리바비린(Ribavirin) 등 기존 약물을 활용한 시험에서 일부 항바이러스 효과가 확인됐지만, 공식적으로 사스에 대한 항바이러스제로 인정받지 못했다. 


다행히 방역과 환자격리 조치 덕분에 사태는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다. 2003년 7월 5일 세계보건기구(WHO)는 사스 종식을 선언했다. 하지만 이때까지 단 한 종의 항바이러스제도 개발되지 못했고, 이후 대부분의 국가연구소와 제약회사는 사스 치료를 위한 항바이러스제 개발을 중단했다. 보건과 경제성 측면에서 개발이 더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는 사이 다시 한번 위기가 찾아왔다. 사스가 종식되고 약 10년 만에 2012년 낙타를 감염시키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인체를 넘보는 능력을 얻게 됐다. 이렇게 등장한 메르스코로나바이러스(MERS-CoV)는 전 세계적으로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를 유행시켰다. 메르스는 사스보다 한층 더 강력했다. 사스보다 전염성은 낮았지만 치명률이 최대 40%에 육박했다. 높은 치명률을 낮추기 위해서는 항바이러스제 개발만이 답이었다. 


전 세계 연구진은 다시 한번 로피나비르/리토나비르 등 항바이러스제의 효능을 시험했다. 사스 환자의 혈액에서 얻은 항체를 이용해 항체치료제의 활용 가능성도 확인했다. 이미 FDA 승인을 받은 면역억제제인 사이클로스포린과 마이코페놀산, 말라리아 치료제인 하이드록시클로로퀸 등에 대해서도 세포실험을 진행해 긍정적인 효과를 확인했다. 


하지만 이후 진행된 환자 대상 임상시험에서 메르스 치료에 대한 효능을 입증한 약물은 없었다. 메르스가 2012년부터 2015년까지 3년 동안이나 지속됐음에도 항바이러스제는 단 한 종류도 개발되지 못했다.


문제는 코로나바이러스뿐만이 아니었다.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바이러스, 2013년 에볼라바이러스가 차례로 찾아왔다. 바이러스가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바이러스를 상대하는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항바이러스제 개발이 얼마나 어려운 도전인지 깨닫게 되는 사건들이 반복됐다. 


2019년 말 사스코로나바이러스-2(SARS-CoV-2)에 의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일으키며 다시 한번 인류를 시험대에 올려놨다. 사스코로나바이러스-2는 2002년 사스코로나바이러스와 마찬가지로 박쥐에서 유래한 코로나바이러스의 돌연변이로 확인됐다. 


현재 세계 각국의 연구기관과 제약회사는 기존 약물의 용도를 재평가하며 코로나19에 맞설 항바이러스제를 발 빠르게 찾고 있다. 에이즈 치료제인 칼레트라, 말라리아 치료제인 하이드록시클로로퀸, 에볼라 치료제인 렘데시비르 등으로 임상시험에 돌입한 결과 현재 렘데시비르에서 희망이 보이는 상황이다. 


미국 국립보건연구원(NIH)의 주도로 전 세계 73개 의료기관에서 임상시험을 진행한 결과, 렘데시비르는 코로나19 환자의 회복 기간을 15일에서 11일로 단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발병 14일차 치명률도 약 12%에서 7%로 낮췄다. 비록 아직은 코로나19의 완벽한 치료제로써 효능을 입증하지는 못했지만, FDA는 임상시험 결과를 바탕으로 렘데시비르의 긴급사용을 허가한 상황이다. 코로나바이러스 침공 세 번째 만에 처음으로 성공에 가장 가까운 항바이러스제가 등장한 셈이다.


코로나19 전용 항바이러스제 개발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완치자의 혈액에 포함된 사스코로나바이러스-2 항체를 환자에게 투여해 치료하는 항체치료제가 대표적이다. 항체치료제의 원리는 백신이 바이러스 감염을 예방하는 원리와 유사하다. 차이가 있다면 백신은 바이러스에 감염되기 전 인체의 면역시스템을 활성화해 감염 이후 적극적으로 항체를 생산하게 만들어 감염병을 예방한다. 


반면 항체치료제는 외부에서 인위적으로 바이러스의 활성을 억제할 수 있는 중화항체를 주입한다. 


항체치료제는 언젠가, 반드시 찾아올 바이러스에 대항할 차세대 감염병 치료제로 떠오르고 있다. 바이러스를 억제할 수 있는 후보물질을 더 쉽게 찾아낼 수 있고, 상대적으로 부작용이 적다는 장점 때문이다. 1994년 첫 항체치료제가 처음 출시된 이후 항체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한 시도가 계속 이어지는 이유다.


바이러스와 인류의 전쟁에서 최종 승자는 누가 될까. 지금까지의 싸움에선 돌연변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장착한 바이러스가 대부분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비관할 필요는 없다. 인류도 1962년 최초로 항바이러스제를 개발한 이후 항바이러스제 후보물질을 재빠르게 찾아낼 방법을 확보하는 등 새로운 바이러스에 맞서 싸울 준비태세를 하나씩 갖추고 있다. 점점 더 강력해지는 바이러스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2020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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