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유럽면역학저널(European Journal of Immunology)’에는 쥐에서 관찰한 새로운 세포에 대한 논문이 실렸다.
당시 연구에 사용한 쥐는 성체로, 멸균된 환경에서 길러져 특정 위협에 노출된 적이 없었다.
연구팀은 이 쥐의 비장에서 세포를 추출해 시험관에서 키운 쥐의 비정상 백혈구 세포와 섞는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비장에 있는 일부 세포가 백혈구를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반응이 나타났다.
이상한 점은 T림프구와 B림프구 등이 공격 반응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들이 나타났다면 공격 대상이 매우 구체적이어야 하는데, 백혈구를 공격한 세포는 T림프구나 B림프구와 동일 계통에 속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행동은 딴판이었다.
이후 여러 연구를 거쳐 이 세포의 정체는 림프계 전구세포에서 분화한 자연살해세포로 밝혀졌다.
자연살해세포는 간이나 골수, 림프절, 비장, 편도선, 흉선에서 성숙해 혈관을 순환하며, 림프구 중에서는 가장 크다.
자연살해세포는 대식세포에서 분비되는 화학물질에 의해 활성화된 뒤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나 종양세포(암세포)를 인식한다.
이후 세포독성 T림프구처럼 퍼포린과 그랜자임 단백질을 차례로 분사해 세포막과 세포질을 해체하는 방식으로 감염된 세포나 종양세포가 자살하도록 만들거나, 공격 대상인 세포 내부로 물과 염분을 주입해 괴사를 일으키게 유도한다. 다양한 방법으로 항원을 무력화할 능력을 갖춘 셈이다.
자연살해세포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특징은 수지상세포를 통해 항원에 대한 교육을 받은 T림프구나 B림프구가 오기 전에 선천 면역반응 단계에서 공격할 세포(항원)를 인식해 완전히 사멸하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T림프구나 B림프구는 표식이 없는 감염된 세포를 죽이지 못하지만, 자연살해세포는 항체나 표식 없이도 구체적인 대상을 죽일 수 있을 만큼 강력하다.
이런 특징 덕분에 ‘살해(killer)’라는 무시무시한(?) 단어가 이름에 포함됐다.
이밖에도 자연살해세포는 감염된 세포나 종양세포의 증식을 차단하는 신호물질을 분비하며, 선천 면역반응을 담당하는 식세포들이 바이러스 침입 부위로 이동하도록 유도하는 신호를 내보내기도 한다.
자연살해세포는 성인 기준 체내에 약 1억 개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연살해세포는 감염 후 수일 내로 작용하는데, 그 기능상의 활성도는 20세를 전후로 최고조에 이르고, 이후 점차 떨어져 60세에는 절반으로, 80세에는 3분의 1 수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