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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하다가 무기(뿔)가 생기면 용감해진다

예로부터 동양에선 인삼과 더불어 사슴의 뿔인 녹용을 만병통치의 신약으로 여겨오고 있다. 한방(韓方)의 정교본초강목(精校本草鋼目)에 보면 사슴은 뿔은 물론이고 이빨 뼈 고기 심지어는 배설물까지도 약이 된다고 썼을 정도다.

특히 사슴의 뿔은 그 약효가 수십가지에 이른다고 되어 있다. 그 진위(眞僞)는 규명 할 수 없으나 뿔이 몸전체의 어느 부분보다도 풍부한 영양을 가지고 있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같은 반추(反芻·되 새김질)동물인 소나 염소의 뿔은 한번 나면 일생동안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뿔이 도중에 빠지면 새로운 뿔이 다시 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반면 사슴의 뿔은 해마다 빠져 새것으로 바뀌고 가지가 돋는다. 허나 사슴뿔의 용도는 매우 제한적이다. 암컷들을 차지하기 위해 추운겨울에 수컷끼리 싸움을 할때만 유용하다. 다시 말해 외적(外敵)에 대해선 전혀 무기가 되지않는 무용지물이다.

예외로 사슴종류인 사향사슴과 우리나라에 분포한 고라니에는 뿔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한편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의 썰매를 끄는 순록은 암수 모두가 뿔이 있다.


사슴.


|사슴을 노루로 혼동해

필자가 사슴과 첫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1966년 10춸초 휴전선의 서부전선에서였다.

당시 소대장이던 필자는 대원들과 순찰중 임진강 물줄기를 타고 필사적으로 헤엄쳐 남쪽으로 내려오는 노루 한마리를 발견했다. 몇년뒤에 이 노루가 사슴이란 사실을 알게 됐지만 그때는 노루라고 믿었다. 노루의 남하를 발견한 나와 대원들은 잽싸게 몸을 낮게 하고 노루의 거동을 지켜봤다. 그리고 대원들에게 절대로 총을 쏘지 말라고 명령했다.

강물을 건너온 노루는 너무 지친 나머지 한동안 강둑에서 머무르며 몸을 털다가 갑자기 인기척을 느꼈는지 껑충껑충 뛰어 갈대 숲으로 사라졌다. 그래서 노루를 잡는데 실패했다. 필자는 곧 이웃 초소에 연락, 지나가는 노루가 발견되면 절대로 사격하지 말 것을 당부하였다. 그 이후로 필자의 머리속은 그 노루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동토(凍土)를 힘들게 탈출한 한마리의 노루가 무사해야 할텐데…'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4년후인 1970년 9월 나는 창경원 동물원에 취직, 근무하게 되었다.

출근 첫날 선배를 따라 동물사(舍)를 차례로 돌아보던 중이었다. 한국사슴사(舍) 앞에 이르렀을 때 필자는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너무도 감격한 나머지 사슴사 철망만 붙들고 "누루가 아니라 사슴이었구나"하는 탄성만 되풀이하였다. '자유를 찾아온 한국사슴, 1966년 10월 5일 임진강을 넘어오다'

이렇게 적혀있는 동물설명판을 읽고는 참으로 인연이란 묘한것이라고 생각했다. 필자가 4년전에 발견했고 못내 그의 행방에 대해 걱정했던 노루아닌 바로 그 사슴이 필자의 보호를 받게 된 것이다.

당시 창경원 동물원에 기증, 입원된 그 사슴은 '한국사슴'으로 명명되었다는것이다. 몇번의 죽을 고비와 다리골절로 직원들의 마음을 무척 태운 후 지금은 왕자로 군림, 많은 암사슴을 거느리고 있다고 선배가 일러주었다.

지구에는 여러 종류의 사슴들이 살고 있다. 학자들에 따라서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대략 17속 53종의 진사슴(True deer)이 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 북서아프리카, 유라시아, 일본, 필리핀 그리고 여기에는 토끼와 같이 작은 남미의 푸두사슴이 있는가하면 큰 말과 같은 체구를 가진 무우스사슴과 엘크 등이 북미와 유라시아에 분포하고 있다.

우리와 비교적 가까운 사슴으론 우리나라의 북부산악 지방과 만주 남쪽에서 살고 있는 한국사슴(일명 대륙 사슴)을 꼽을 수 있다. 근래에 와서는 일본 나라(奈良)지방의 일본사슴(일명 나라사슴)과, 북해도의 애조사슴, 큐슈남단의 야큐사슴, 대만의 꽃사슴이 친숙하다.

이 가운데 한국사슴은 다른 사슴류보다 몸집이 크고 힘이 세다. 임진강을 건너온 '필자의 한국사슴' 역시 기골이 장대하고 뿔도 우람해 당시 창경원 사슴사(舍)에서 늘 왕좌를 차지했던 것.

|녹용의 약효가 가장 클 때

원래 일부다처제인 사슴사회에선 누가 암놈을 많이 차지하느냐가 늘 관심사로 남는다. 이처럼 심각한 문제는 각축전(角逐戰)이란 제도를 통해 해결한다. 일명 축록전(逐鹿戰)이라고도 하는 사슴들의 왕위쟁탈전을 보고 있으면 흡사 레슬링경기를 관전할 때와 같이 흥미진진해진다.

갓난 숫사슴은 출생한 해에는 뿔이 없고 다만 뿔자리가 도드라져 있을 따름이다. 출생 2년째가 되는 4, 5월에 가서야 비로소 그 자리가 종기처럼 불그러지고, 날이 갈수록 버섯자라듯이 솟아난다. 8, 9월에 이르면 약 20cm가량의 외가닥 뿔이 된다. 3년째에는 역시 4, 5월에 그 뿔이 돌연 예고없이 떨어지고 그 자리에 다시 뿔이 솟아나 자라다가 가지가 하나 생긴다. 4년째에는 가지 하나를 더하고 5년이 되면 또 하나를 더해 이런바 삼차사첨(三叉四尖)이 된다. 삼차란 원대에 가지가 셋이 있으니 교차점이 셋이란 뜻이고 사첨이란 가지 셋과 원대를 합해 끝이 넷임을 말한다. 출생 5년 이후에는 대개 이 삼차사첨의 형태를 유지한다. 이렇게 한참 자라는 뿔의 열기는 몹시 뜨겁다. 겉은 마치 벨벳(velvet)같이 부드러운 피모를 가진 피부로 싸여있는데 이때를 낭각이라고 한다. 낭각은 열이 날 만큼 혈액순환이 왕성하며, 내부는 혈관분포가 풍부해 쉴새없이 칼슘과 같은 영양분을 날라다 저장한다. 낭각이 떨어진 날로부터 약 60일 전후가되면 세번째 가지가 뻗기시작 하는데 한방에서 쓰는 녹용(鹿茸)은 이 때에 자른 것이 가장 좋다고 한다.

6, 7월 동물원 사슴장을 관람하거나 양록장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숫사슴의 참모습인 우람하고 늠름한 뿔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때의 숫사슴은 뿔이 다칠세라 몸조심이 아주 대단하다. 여름철이 지나고 신선한 가을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면 숫사슴들은 성질이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여름내 아껴 기른 뿔을 나무등걸이나 바위나 땅에 마구 비벼 예리하고 강한 무기로 만든다.

날이 갈수록 거칠어지는 숫사슴의 횡포는 단풍이 물들어 절정이 될 무렵이면 최고조에 달한다. 발정기가 시작된 것이다. 이때부터 숫사슴들 사이에 각축전이 벌어진다.

암사슴들이 저마다 운명을 점치며 주시하는 가운데 각축전의 막이 열린다. 숫사슴가운데 야심 많고 자신만만한 사슴이 나머지 숫사슴중에서 상대를 택해서 혈전을 벌인다. 여기서 이긴 숫사슴은 계속해서 제2, 제3의 도전자들을 물리치고 마침내 패왕이돼 군림한다.

삭풍이 몰아치고 살을 에이는 추위가 오면 숫사슴의 욕정은 더욱 왕성해진다. 이때쯤이면 의심스러우리만큼 열띤 사랑을 계속한다. 무리의 모든 암사슴을 거느리는 것이다. 때론 끼익 끼익 소리를 내기도 한다. 또 특유한 숫사슴의 냄새를 풍겨 멀리 떨어져 있는 암컷들을 유인하기도 한다. 또한 암사슴을 보호하는 기사도 정신을 발휘하기도 한다. 2월말까지 지속되다가 3, 4월이 되어 뿔이 떨어지면 다시 순하고 겁이 많은 사슴이 된다.

사슴의 생태는 사슴이 가지고 있는 그들의 뿔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해가 바뀔 때마다 낡은 뿔은 떨어지고, 새로운 뿔이 매년 자라 나오는 현상은 생명력의 무한함조차 느끼게 한다.

암사슴들은 7개월이 조금 넘는 약 2백27일의 임신기간을 거쳐, 6, 7월 사이에 한마리의 귀여운 새끼를 분만한다. 이때 새끼는 흰 반점이 뚜렷하고 몸털은 담홍색이다. 사슴의 후각과 청각은 아주 잘 발달외어 있으나 시력은 좀 약한 편이다.

그들은 여름에는 초본과식물을, 가을과 겨울에는 교목과 관목의 잎을 먹는다. 사슴의 천적은 호랑이, 표범, 스라소니 등이며, 곰은 주로 어린 사슴을 습격한다.

보통 꽃사슴의 몸길이는 1백40~1백55cm, 키는 1백~1백 10cm, 몸무게 60~1백10kg이며 성장한 뿔의 크기는 68-87cm정도가 된다.

1988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김성원 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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