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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제약 사업에 뛰어든 바이오 전문가 “인생의 멘토를 만드세요”

세상을 바꾸는 여성엔지니어

◇보통난이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주목받는 국내 기업들이 있다. 코로나19 진단과 예방에 관련된 물품을 생산하는 곳이다. 마스크, 소독제, 진단키트 등 국내 바이오기업들의 우수성이 확인되면서 ‘K-바이오’의 위상이 재평가됐고, 해외에서도 각종 러브콜이 쏟아지고 있다. 

 

 

코로나19 백신 개발 미국 바이오벤처 인수


그중에서도 백신 개발 업체에 대한 관심은 그야말로 뜨겁다. 치료 후 재입원하는 사례와 2차 대유행에 대한 우려는 백신 개발에 대한 갈망을 키우고 있다. 


현재 국내외 기업들은 앞다퉈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돌입했다. 5월 6일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코로나19 백신 개발은 세계적으로 108건이 진행되고 있다. 


그중 미국 바이오기업인 이뮤노믹 테라퓨틱스는 올해 1월 국내 기업인 에이치엘비(HLB)가 인수하면서 국내에 이름을 알렸다. 


당초 HLB는 이뮤노믹 테라퓨틱스의 뇌종양 치료제 가치를 높이 평가해 인수를 결정했다. 그런데 이뮤노믹 테라퓨틱스가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착수하면서 현재 또 다른 성과를 기대하고 있다. 
HLB는 글로벌 바이오 제약사로 발돋움하기 위해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뮤노믹 테라퓨틱스 외에도 표적항암제인 ‘리보세라닙’을 개발한 미국의 엘리바, 인공 간 줄기세포치료제 개발사인 에이치엘비셀(구 라이프리버) 등 바이오연구기업을 인수했다. 항암제 개발에 주력하기 위해 에이치엘비생명과학(HLB생명과학)도 설립했다. 


HLB생명과학의 바이오사업본부장이자 HLB의 바이오사업을 총괄하는 권진아 사업개발부문장은 “한국과 아시아를 주 무대로 항암제 전문 제약사로 성장하고, 이를 통해 글로벌 바이오 제약사로 도약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HLB는 5년 내 항암제 5개를 출시한다는 도전적인 계획을 세웠다. 이미 경구용 위암 치료제인 리보세라닙은 미국식품의약국(FDA)에 신약 허가 신청을 진행 중이다. 리보세라닙의 글로벌 권리도 원개발사인 미국 어드벤첸연구소로부터 인수했다.

 

 

“인생의 멘토를 만들어라”


대학 입학 후 박사학위를 받기까지 총 8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만 12년, 이후 병원과 여타 연구소에 근무한 기간까지 합치면 20년 넘게 권 부문장은 기초과학, 중개의학 등 연구에 매진한 과학자였다. 그런 그가 지금은 제약 사업을 논하고 전략을 짜고 있다. 


권 부문장이 지금의 일을 하기까지는 여러 번 결정적인 순간이 있었다. 중요한 순간, 결정에 영향을 준 건 결국 사람이었다. 그는 청소년들에게 “순간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라”며 나아가 “인생의 멘토를 만들라”고 조언했다. 


대학에 다닐 때만 해도 그는 학문을 연구하고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점점 학문을 깊이 파기보다는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실용적인 일을 하고 싶어졌다. 


박사학위 논문 최종 심사 당시 그는 “좋은 연구 결과를 내며 순수한 학문적 성과를 추구하는 학자가 아닌, 질병 치료제를 개발해 질병 예방에 직접 도움이 되는 일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에게 학자의 길을 권했던 지도교수를 순간 당황하게 만든 파격적인 발언이었지만, 지도교수는 그의 결정을 존중해줬다. 그렇게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기 위해 권 부문장은 미국행을 택했다.


미국 하버드대 의대, 미국 국립보건원(NIH) 등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오라는 제안을 받고 어느 곳에서 일할지 행복한 고민을 하던 중, 결정의 순간이 또 한 번 찾아왔다. 


알렉산더 리치 MIT 교수 연구실에서도 같이 일하자는 제안이 왔기 때문이다. 리치 교수는 DNA와 RNA 분자 구조와 기능 연구에서 세계적인 석학으로 꼽히는 구조생물학자였다. 권 부문장은 “조건은 제안이 온 곳 모두 좋았지만, 거처가 정해지기 전에 친히 숙소를 잡아 주는 리치 교수의 배려에 함께 일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회상했다. 


리치 교수의 연구실에서 일하면서도 권 부문장은 MIT 근처의 크고 작은 바이오벤처와 제약 회사 등에서 근무할 기회를 제안받았다. 그러나 ‘연구실이 문 닫을 때까지 함께 하자’는 리치 교수의 말에 결국 권 부문장은 2012년 그가 건강 악화로 자리를 떠날 때까지 연구실을 지켰다. 


권 부문장은 “리치 교수는 학자로서 학문을 대하는 자세부터 인간관계의 맺음과 유지의 중요성까지 가르쳐줬다”며 “이는 이후 내 삶을 변화시킨 인생의 절대적인 지침이 됐을 만큼 그는 내 인생 최고의 멘토였다”고 말했다.  

 

 

연구와 임상 연결하는 과학자이자 경영자  


MIT를 떠날 무렵 기초연구와 임상을 연결하는 중개의학(translational medicine)에 도전해보고 싶었던 권 부문장은 그간의 경력을 인정받아 미국 하워드휴스의학연구소(HHMI)에서 전문연구원 자리를 얻었다. 이때 종양학 연구를 하면서 임상에도 관심이 생겼다. 


특히 연구와 임상의 협업이 잘 이뤄지는 병원의 시스템은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권 부문장은 “임상 결과를 연구에 적용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다시 임상을 진행하는 효율적인 네트워크 시스템이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그러던 2015년 지카와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바이러스가 세계를 강타했다. 마침 국내 바이오기업인 진원생명과학의 미국 관계사가 메르스 백신 임상을 시작한다는 기사를 보고 그곳에서 일을 해보자고 생각했다. 주변에서는 말렸다. 큰 조직에서 상대적으로 작은 조직으로 이직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 작은 제약 벤처들이 근 10년 사이에 이름을 알릴 정도로 크게 성장하는 경우를 여러 번 봤는데 이 점이 매력적이었어요. 큰 회사에서는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는 있지만 여러 분야를 두루 배우기는 힘들다고 생각도 했고요. 그래서 이직을 강행했죠.” 


예상대로 그는 다양한 분야를 경험할 수 있었다. DNA와 RNA 백신 개발 플랫폼, 백신 후보물질 도출, 전임상 개발 등 기초연구부터 임상까지 제약의 전 과정을 경험했다. 임상 가능한 물질을 새롭게 도입해 제품을 개발(License-in)하는 등 사업개발과 관련된 경험도 쌓았다.


이런 다양한 경험은 권 부문장이 최근 화두인 ‘오픈 컬래버레이션(문을 활짝 열고 여러 기업과 협업하라는 뜻)’을 실현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 무엇을 전공했는지, 학계에서 연구하는지 기업에서 근무하는지에 따라 같은 일도 서로 다른 관점으로 보게 된다. 국내외 수많은 자회사간에 소통해야 하는 일도 많다. 권 부문장은 “그때마다 다양한 경험을 토대로 상충하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렸했다”고 말했다.


업계 경력 20년이 넘는 바이오 전문가인 권 부문장은 “여전히 새로운 분야를 배우고 전문성을 더 쌓고 싶다”며 “기회가 된다면 MBA(경영학 석사과정)를 밟아 바이오사업에 특화된 전문성을 가지고 체계화된 바이오사업을 하는 데 보탬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에는 바이오사업 개발처럼 연구 이외의 업무조차도 과학 전공자를 우대하는 추세”라며 “이공계를 전공하더라도 흔히 생각하는 연구개발 외에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그는 대학 시절 방송국 앵커 일과 파티 플래닝 등 현재 직업과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일들을 재미 삼아 시도했던 경험을 언급하며 “이런 작은 경험들조차 프레젠테이션이나 조직 구성 등에 알게 모르게 도움이 됐다”며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라”고 말했다. 


그는 올해 1월 11일 한국여성공학기술인협회 주최로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백양누리에서 열린 ‘세상을 바꾸는 여성엔지니어 토크콘서트’에 패널로 참석해 이공계 여학생들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했다. 그는 자신이 현장에서 경험한 여성공학인으로서의 어려움을 진솔하게 나눴다. 


권 부문장은 “당시 이공계 여성은 늘 소수고, 약자 입장이니 배려받아야 한다고 말했는데, 한 학생이 그런 생각 자체가 불평등을 초래하지 않겠냐고 하더라”며 “그 의견에 동감하며 여성이라는 울타리에 갇히지 말고 현장에서 동등하게 나아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2020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조혜인 기자
  • 사진

    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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