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고흥군 외나로도 나로우주센터 내 발사체조립동에서 발사대로 이동할 준비를 하는 나로호. 뒤편에 걸린 대형 태극기에서 한국의 첫 우주발사체를 개발한다는 자부심이 느껴진다.
발사체명: 나로호(KSLV-Ⅰ)
발사용도: 과학기술위성 2호 발사(2기)
위와 같이「우주개발진흥법」제11조제1항 및 동법 시행규칙 제5조제2항의 규정에 따라 우주발사체의 발사를 허가합니다.
2009년 6월 8일 나로호의 발사허가증이 발부됐다. 당시 나로호 발사 주무부처인 교육과학기술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0장이 넘는 나로호의 발사계획서를 검토해 나로호의 발사를 최종 승인했다. 발사허가증 왼쪽 모서리엔 ‘제1호’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대한민국의 첫 번째 우주발사체 발사를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는 책임감이 다시 한번 무겁게 다가왔다.
발사 허가 첫 관문, 발사계획서
나로호의 발사 허가를 받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은 발사계획서를 쓰는 것이었다. 발사계획서는 말 그대로 발사계획을 설명하는 문서다. 발사체의 크기, 무게, 단수(段數), 추진제와 같은 제원은 물론이고, 발사체에 탑재되는 위성의 특성, 위성이 투입되는 궤도, 발사예정일 등을 꼼꼼하게 적는다.
발사계획서 작성은 경험이 없는 우리에게 결코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다. 발사가 이뤄질 장소와 추적소의 위도, 경도, 고도와 같은 위치 정보와 함께 발사체의 비행순서(이벤트), 비행궤적 및 낙하점, 발사시간대(소위 말하는 하늘 문이 열리는 시간), 발사체의 성능, 자세제어 정밀도, 중요시스템의 규격 등도 전부 기술해야 했다.
발사 운용에서 가장 중요한 안전성 분석보고서도 필수였다. 발사안전조직, 비행안전계획, 기상에 따른 발사기준 등 발사체 안전 대책을 설명하고, 발사 중 육상, 해상, 공중에 대한 경계 및 통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발사장 안전 관리대책을 적었다.
발사 중 사고로 인해 제3자의 사망, 부상, 재산상의 손실이 발생할 시에는 어떻게 손해를 배상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도 제시해야 했다.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그렇다고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 이런 사고에 대한 가능성이니 말이다.
2000억 원 보험 가입… 자동차 보험과 다른 점?
‘공해상에 떨어지도록 설계된 발사체가 만에 하나 운항 중인 선박이나 육지 위로 추락하면 누가 어떻게 책임을 질까?’
국민들 입장에서는 충분히 걱정할 수 있는 부분이다. 실제로 우주발사체를 발사하는 작업은 위험도가 매우 높고, 다양한 주체가 공동으로 수행하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최선의 노력을 다하더라도 예상치 못한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 이때 과실이 있는 특정 업체가 사고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게 한다면, 해당 업체는 파산에 이를 수 있고 결과적으로 우주산업이 기피 산업으로 전락해버릴 우려가 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바로 보험이다. 발사체 보험은 자동차를 구입한 사람들이 의무적으로 가입하는 자동차 보험과는 개념이 조금 다르다. 발사체 보험은 ‘참여자 간 상호면책 및 책임의 집중’ 원칙을 따른다. 쉽게 말하면 각자에게 발생한 손해는 각자가 책임지고, 제3자에게 손해가 발생할 시에는 우주물체 발사책임자가 발사 전 가입한 제3자 손해배상책임보험으로 배상한다.
우주물체 발사책임자인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국제연합(UN)이 정한 책임협약(우주물체에 의해 발생한 손해에 대한 국제책임에 관한 협약), 우주개발진흥법 및 우주손해배상법 등의 국내법과 한-러 계약에 의거해 발사 활동에 따른 우주 사고에 대비할 몇 가지 약정을 체결했다.
먼저 발사참여자 간의 책임 한계를 명확히 하고, 각자의 손해에 대한 배상을 다른 발사참여자에게 청구하는 권한을 포기하는 상호책임면제합의서를 작성했다. 또한 제3자의 인적, 물적 손해를 담보하는 2000억 원 규모의 배상책임보험에 가입했다.
이 같은 보험 규모를 결정할 땐 일반적으로 사고 시 발생할 수 있는 최대발생가능손실(MPL·Maximum Probable Loss)을 따져 그 금액 이상으로 책임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당시엔 우리나라에 MPL 산정의 주체나 기준 등이 고시된 게 없었기 때문에 미국과 호주의 사례를 참고해 MPL을 888억 원으로 산정했다.
그러나 이 금액이 객관적이고 타당한 값이라 해도, 사고에 대한 모든 손해배상을 담보할 수는 없다. 또 우주물체 발사책임자가 최대한의 손해배상보험에 가입하고자 하더라도 보험회사의 인수능력 등 시장 상황에 따라 가입한도 및 범위가 제한되는 경우도 현실에선 분명 발생한다.
따라서 미국이나 러시아 같은 우주 선진국에서는 우주물체 발사책임자가 담보하는 손해배상 범위를 초과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정부가 부담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2008년 8월 7일, 정부는 나로호의 배상책임보험금액을 우주손해배상법상 최고치인 2000억 원으로 확정 고시해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보험에 가입하도록 했다. 보험료는 2억5000만 원 규모였다.
전 세계에 나로호 발사를 고하다
나로호 발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연구팀은 나로호 발사를 전 세계에 알렸다. 우주발사체 기술은 군사용으로 전용될 수도 있는 민감한 기술이기에 전 세계의 주목과 의심을 받는다. 나로호는 이에 대비해 애초부터 개발과 발사 운용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절차적으로도 국제 규범을 준수했다. 당연히 국제사회로부터 아무런 의심도 받지 않았다.
하지만 의혹의 눈초리는 의외로 국내에서 불거졌다. 나로호 발사와 북한의 은하 2, 3호 발사를 비교하며 다른 점이 없다고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로호 발사는 비판하지 않으면서 북한을 비판하는 것은 불공정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나타났다. UN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사항을 위반하며 발사를 진행하는 북한과 비교한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인데도 말이다.
한국은 ‘탄도미사일 확산방지를 위한 헤이그행동규범(HCOC·Hague Code of Conduct against Ballistic Missile Proliferation)’에서 규정하는 발사사전통보 제도에 따라 나로호의 일반적인 규격, 발사시간대, 발사장소, 발사방향 등 정보를 국제사회에 통보했다. HCOC는 대량살상무기 운반이 가능한 탄도미사일 확산 방지를 목적으로 2002년 11월 네덜란드의 헤이그에서 개최된 ‘국제 미사일 행동 규약’ 회의에서 서명, 발효됐다.
뿐만 아니라 UN 외기권사무소(OOSA·Office for Outer Space Affairs)의 ‘외기권에 발사된 물체의 등록에 관한 협약’에 따라 우주물체를 발사하는 발사국은 UN 사무총장에게 발사와 관련된 정보를 등록해야 했다. 나로호에 탑재한 인공위성이 위성망을 확보하려면 국제전기통신연합(ITU·International Telecommunication Union)의 전파규칙에 따라 위성망 등록 절차도 밟아야 했다.
나로호가 이동할 하늘길, 바닷길에도 발사를 알렸다. 사전 통보가 적절한 시점에 긴밀하게 이뤄져야 근해의 선박을 이동시키고, 항공기의 비행 항로를 사전에 조정하는 등 사고를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International Civil Aviation Organization) 협약에 따라 항공고시보(NOTAM)에 나로호 발사 정보를 기재했고, 국제해사기구(IMO·International Maritime Organization)와 국제수로기구(IHO·International Hydrographic Organization)에 항행통보(NOTMAR)도 했다.
그밖에 민간용 로켓 발사 시 사전에 고지하고 미국의 참관을 허용한다는 한·미 미사일 협정의 규정에 따라 미국 측의 참관을 허용했고, 인접 국가로서 비행안전 상황에 미묘한 관심을 보인 일본의 발사사전통보 요청도 국제사회에 대한 투명성 제고 차원에서 응했다.
‘나로(NARO)’라는 이름의 비밀
‘나로(NARO)’라는 이름은 우리나라에서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발음하고 기억하기가 쉬웠다. 이런 훌륭한 이름은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엔지니어가 지은 게 아니었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직접 제안했다.
2009년 2월 23일부터 3월 31일까지 진행된 명칭 공모전에 전국 2만2916명이 참가해 총 3만4143개의 이름을 제안했다. 대상작인 ‘나로’는 우리나라 우주개발의 산실인 나로우주센터가 위치한 전남 고흥군 외나로도의 지역명에서 따왔다.
되돌아보면 나로호의 이름이 될 뻔한 두 번째로 멋진 이름들도 있었다. 태양을 뜻하는 ‘해’와 용의 옛 말인 ‘미르’의 합성어인 ‘해미르’, 대한민국의 얼(혼)을 의미하는 ‘한얼’도 우수상 작품으로 주목을 받았다. 장려상 작품 중에는 한반도 태백산맥의 정기를 이어받자는 의미의 ‘태백’과 고구려의 옛말인 ‘가우리’, 대한민국 우주개발의 빛나는 별이 돼 달라는 뜻의 ‘샛별’도 있었다.
어떤 이름이건, 국민들이 지어준 이름이라면 우리나라의 첫 우주발사체가 많은 관심과 사랑 속에 성공을 이뤄내지 않을까. 영하 183도에도 벗겨지지 않는 특수한 페인트로 1단 한 가운데 발사체의 이름을 한 땀 한 땀 새기며 연구팀 모두는 한뜻으로 발사 성공을 기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