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술술읽혀요 | 나는 과학동아 키즈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작은 경험이 때로는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될 수 있다’.
내겐 특히 더 와닿는 말이다. 고등학생 시절 과학동아에서 읽었던 기사 하나는 나를 완전히 새로운 곳으로 인도했다. 과학동아는 당시 나의 지적 호기심을 채워주는 가장 친한 친구였다. 그리고 그런 호기심의 재료는 소중하고 귀한 발견으로 이어졌다. 과학동아와의 인연을 지금도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경험으로 여기는 이유다.
▲ 장혁 대표가 공동창업한 폴라리언트에는 가상현실, 실내 측위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있다.
공학도 꿈꾸며 과학고 진학
어린 시절부터 과학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공학도를 꿈꾸며 충북과학고에 진학했다. 고등학생 시절 과학, 특히 물리학에 흥미를 갖고 실험을 통해 마음껏 탐구했던 기억은 이후 내게 큰 자산이 됐다. 현재 창업한 기술의 기반 아이디어를 얻은 것도 바로 이때였다.
고등학교 1학년 봄, 여느 때처럼 과학동아를 읽고 있는데 한 기사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사막개미(Cataglyphis)가 먹이를 찾은 후 집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소개한 기사였다. 간단한 신경계를 가진 사막개미가 뜨거운 사막에서 태양빛이 대기에 부딪혀 발생하는 편광을 활용해 방향과 위치를 찾는다는 내용은 호기심을 마구 불러일으켰다.
마침 자율연구주제를 찾고 있던 나는 사막개미의 시각 원리를 바탕으로 한 연구를 기획했다. 실내 공간에 있는 조명의 편광을 활용해 실내에서 위치를 찾는 방법을 주제로 삼았다. 이 주제로 친구와 함께 1년간 자율연구를 진행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나는 고려대 전기전자전파공학부에 진학해 본격적인 공학도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청년창업활성화 프로그램으로 정부와 학교의 지원을 받아 스타트업의 산실이라고 하는 미국 실리콘밸리로 현장 연수를 가게 됐다.
그곳에선 나와 비슷한 또래의 학생들이 직접 회사를 창업하고 자신이 가진 기술을 바탕으로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었다. 그들이 서비스를 판매해 수익을 올리는 모습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 모습에 반한 나는 한국으로 돌아와 고등학생 시절 연구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무모한 도전에 나섰다. 바로 창업이었다.
2015년 벤처 폴라리언트 창업
2015년 5월, 나는 2명의 공동창업자와 함께 ‘폴라리언트’라는 벤처를 창업했다. 폴라리언트라는 회사 이름은 polarization(편광)과 ant(개미)의 합성어다. 어린 시절 과학동아를 통해 품었던 순수한 호기심이 현실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기존 연구자료를 바탕으로 1년간 기술을 개발해 실내에서 위치를 측정할 수 있는 기본 기술을 완성했다.
하지만 회사와 기술이 빠르게,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투자를 받아야 했다. 당시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신호가 도달하지 않는 실내에서 사용자의 위치를 파악하고자 하는 연구는 IT기업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신문기사를 통해 네이버가 실내 위치인식 회사들에 투자를 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네이버에 e메일을 보냈다. 실내조명으로 위치를 추적할 수 있다고, 꼭 만나고 싶다고. 지금 생각하면 무모한 시도지만, 절실한 마음이 통했는지 네이버에서 처음으로 기관투자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투자를 받기는 했지만, 실제 회사를 운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실내 위치인식 분야에 이미 자리를 잡고 있는 솔루션 업체들이 많아 시장 진입이 쉽지 않았다. 우리는 보유하고 있던 기술을 다른 분야에 접목하는 방안을 찾아 나섰다. 성장 가능성이 크면서 아직 많은 회사가 진입하지 않은 분야를 찾아야 했다.
과학동아를 비롯한 수많은 자료를 검토하고 실생활에서 소비자들이 어떤 불편함을 느끼는지 조사했다. 그 결과 찾아낸 분야가 바로 가상현실(VR)이었다. 당시엔 스마트폰으로 가상현실을 구현할 경우 사용자의 손 위치를 반영할 방법이 없었다. 이런 문제는 사용자의 경험을 해치는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우리는 여기에 착안해 별도의 장비 없이도 모바일 가상현실 기기에서 사용자의 손 위치를 반영할 수 있는 위치추적 컨트롤러 개발에 착수했다. 위치추적 컨트롤러는 쉽게 말해 가상현실 기기를 사용하기 위한 ‘3차원 마우스’라고 볼 수 있다.
이 제품은 당시 가상현실 분야에 뛰어들던 많은 기업들의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가상현실 기술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지금처럼 높지 않아 시장을 개척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꾸준히 기술 트렌드를 따라가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 순간이었다.
연구자 겸 사업가로... 과학에 대한 뜨거운 열정
기회는 결국 찾아왔다. 자율주행자동차 개발이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우리 기술을 실내에서 움직이는 로봇이나 차량의 위치를 측정하는 분야에 사용하고 싶다는 제안이 곳곳에서 들어왔다.
이후 우리는 로봇, 지도, 차량 등 이동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빌리티 회사들과 공동연구를 진행했다. 특히 자율주행자동차의 실내 위치인식 기술을 개발하는 프로젝트에 집중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연구에 매진하던 중 한 가지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모빌리티 기업으로 유명한 쏘카에서 폴라리언트를 인수하겠다는 제안이었다.
쏘카의 인수 제안에 응하기까지는 많은 고민이 필요했다. 하지만 기술력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는 것이 사업이라는 사실을 느끼고 있었기에 쏘카와 함께 하기로 결정했다. 5년을 투자해 연구한 공간정보 기술을 잘 이해해줄 것이라는 믿음도 컸다. 폴라리언트가 자율주행과 공유경제 두 가지 키워드를 훌륭하게 수행하는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든든한 후원자를 만난 것이다.
사업으로 작은 성공을 거뒀지만 과학기술에 대한 열정은 아직 그 누구보다 뜨겁다. 쏘카 소속으로 폴라리언트를 운영하면서 동시에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대학원에 진학한 이유다. 2월이면 석사학위를 받는다.
그동안의 경험을 되돌아보면 편광으로 자신이 나아갈 길을 찾는 사막개미처럼 나 또한 과학동아를 통해 나의 길을 찾았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그 길을 개척하는 것은 자신의 몫이다. 학창시절부터 가졌던 호기심과 탐구심은 내게 열정을 불어넣었고 과학동아라는 연료를 만나면서 더 불타올랐다.
지금 이 글을 읽는 과학동아 독자들도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 끊임 없이 탐구심을 발휘하길 바란다. 그 경험들이 모여 여러분들을 자신만의 길로 인도하는 빛이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