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통난이도 | 조선의 애피타이저
1884년 11월, 전라도 일대 지방 관아는 바쁘다. 한양에서 온다는 귀한 손님을 맞이해야 한다. 나라에서 극진히 모시라고 했다니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때마침 그가 왔다. 짧은 곱슬머리를 한 파란 눈동자의 사나이는 조선말을 잘도 구사한다. 부엌에서는 과일과 떡 등 음식이 차려진 상을 내왔다. 대화를 나누며 음식을 먹다 보니, 밥과 탕을 비롯해 반찬이 가득 차려진 상이 하나 더 등장했다. 파란 눈의 그는 이 모든 것을 기록했다.
한식 상차림 메뉴 기록한 파란 눈의 미국인
조선 관아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은 사람은 미 해군이었던 조지 클레이턴 포크다. 한자 이름은 복구(福久)였다. 포크는 조선에 주재한 최초의 미국 공사로 경복궁 내 전기 시설 도입과 서양식 낙농기술 도입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조선의 근대화에 큰 공헌을 한 인물로 평가 받는다.
그는 조선의 문화는 물론 한국어를 익혀 대신들과 가깝게 지냈으며, 고종황제의 신임까지 받았다고 한다. 미국이 조선에 불에 탄 제너럴셔먼호에 대한 손해배상을 요구했을 때는 본인의 입장이 난처해질 것을 알면서도 조선을 변호하며 조선에 대한 남다른 사랑도 과시했다는 기록이 있다.
포크의 문서를 연구한 박채린 세계김치연구소 문화융합연구단장은 “2018년 인기를 끈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주인공 유진 초이(이병헌)는 포크를 모델로 참고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군인으로 조선에 파견되고, 조선에서 미국 공사로 일했던 경력뿐만 아니라 다국어에 능통한 지적인 면모까지, 출신을 제외하고는 비슷한 점이 많다.
1876년 미국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아시아 지역 함대에서 복무 중이던 포크는 1883년 조선의 첫 미국 해군 무관으로 파견됐다. 그리고 이듬해인 1884년 9월 수도권 지역을 방문했고, 11월에는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삼남 지방의 주요 지역을 순방했다. 가마꾼이 끄는 가마를 타고 40일 넘게 약 1500km에 이르는 거리를 여행한 셈이다.
여행이라고 했지만, 포크의 순방 목적은 분명했다. 한반도 정세를 파악해 미 해군정보국에 보고하기 위함이었다. 포크는 주관을 최대한 배제한 채 사실적인 정보를 꼼꼼히 기록했고, 사진으로도 남겼다. 현재 미국 밀워키 위스콘신대 도서관에 있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희귀본도 포크가 이때 수집한 것이다.
포크는 밥상 기록 하나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여력이 되는 한 지방 관아에서 접빈상(손님 접대를 위해 마련한 밥상)을 내놓을 때마다 먹은 음식을 기록했다. 특히 전라도 지역을 여행할 때 대접받은 6번의 식사를 상세히 남겼고, 그림도 그려 놨다.
박 단장은 “포크가 정보 전달을 위해 남긴 기록에서 근대 개혁 전 조선인의 식생활을 엿볼 수 있다”며 “한식 상차림에서 본식과 구분되는 전채요리가 있었다는 새로운 사실도 발견했다”고 밝혔다. 박 단장은 이런 내용을 지난해 10월 16일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원하는 ‘2019 한식의 인문학 심포지엄’에서 처음 공개했다.
꿀, 밤, 감으로 차려진 전식, 1시간 뒤 본식 나와
흔히 서양의 코스요리에서는 본 식사(main dish)가 나오기 전에 식욕을 돋우기 위한 용도로 간단한 음식인 전채요리(appetizer)가 제공된다. 이제껏 한식에서는 이런 전채요리를 찾아볼 수 없었다. 전통 한식 상차림은 한 상 가득 온갖 음식을 올려놓고 한 번에 제공하는 ‘한상차림’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박 단장은 포크의 기록을 연구한 결과 한식의 상차림에도 애피타이저가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전채요리와 본 요리가 시차를 두고 순서대로 나오는 코스 형태로 한식 상차림이 제공됐다는 것이다.
포크가 전북 익산을 방문했을 때 나온 점심상에서 12가지로 차려진 전식을 ‘자쿠스카(zakuska)’라고 기록했는데, 자쿠스카는 러시아어로 애피타이저라는 뜻이다. 간식이 아닌 전채요리로 인식한 것이다. 또 메뉴를 언급하지 않은 경우에도 “전식과 본식으로 나눠 음식이 나왔다”고 명시했다. 전북 전주를 방문했을 때는 아침에 전식과 본식이 제공된 시간까지 기록했다. 꿀, 밤, 감으로 이뤄진 전식이 먼저 제공됐고, 밥을 포함해 17가지로 차려진 본식은 1시간 뒤에 나왔다.
전식과 본식에 나온 음식 종류도 확연히 달랐다. 전식은 주로 여러 종류의 과일과 떡, 국수 같은 면 요리로 구성됐다. 반찬이라 할 만한 젓갈, 나물, 전 등은 찾아볼 수 없었다.
흥미롭게도 당시 전식에서는 오늘날의 후식 개념인 과일의 비중이 가장 높았고, 포크의 기록에서 후식에 대한 언급은 없다. 박 단장은 “지금과 달리 조선 후기에는 과일이나 떡을 후식이 아닌 전식으로 먹은 것으로 추정된다”며 “마치 최근 건강식으로 화두가 된 ‘거꾸로 식사법’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거꾸로 식사법이란 기존의 식사 순서를 반대로 하는 것이다. 과일이나 채소를 먼저 먹고 고기와 같은 단백질을 섭취한 뒤 탄수화물로 이뤄진 밥과 반찬을 나중에 먹는다. 섬유소가 많이 들어 있는 과일이나 단백질이 풍부한 고기를 먼저 먹으면 포만감이 생겨 과식을 방지해 탄수화물의 과다 섭취를 막을 수 있다.
한편 본식은 전식에 비해 음식의 가짓수가 훨씬 많았다. 밥과 탕을 비롯해 젓갈과 소고기, 수란 같은 반찬에 회와 소 내장 요리도 나왔다. 포크는 전주에서 본식을 먹은 뒤 “높이가 가슴에 닿을 만큼 쌓아 올린 음식 상”이라고 기록했다.
박 단장은 “조선 시대에는 큰 행사나 중요한 손님이 오면 음식을 쌓아 올려 대접하는 문화가 있었다”며 “행사 규모에 따라 높이를 규정했는데, 임금의 밥상은 40cm까지 쌓아 올리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불을 이용한 요리는 약한 불로 오랜 시간 익힌 전과 찜 요리가 대부분이었다. 아궁이를 이용했던 조선의 부엌 상황을 생각하면 당연하다. 박 단장은 “화구가 많지 않았던 만큼 한 번에 여러 요리를 하는 게 효율적”이라며 “밥 위에 음식을 올려 동시에 익히는 찜 요리가 많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날 것 즐겨 먹었던 조선시대
“매우 맛있다. 준비된 모든 음식은 외국인들이 먹기에 적절하다(Very good one. All prepared well enough to suit any foreigner).”
충남 공주 충청감사가 제공한 아침을 먹은 뒤 포크는 이렇게 기록했다. 조선의 식문화를 접한 서양인들이 남긴 기록에는 ‘냄새 난다’ ‘맛이 좋지 않다’는 표현이 많다. 그런데 포크는 오히려 한식이 외국인의 입맛에 잘 맞고, 심지어 맛있다고 평가했다.
박 단장은 “개화기 이후 조선에 온 서양인들은 동양의 문화에 왜곡된 관점을 갖는 오리엔탈리즘이 개입돼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며 “포크의 기록은 본국에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이었던 만큼 신뢰할만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다른 외국인은 의사소통이 어려웠겠지만, 포크는 통역을 거치지 않고 직접 대화할 만큼 한국어 이해에 뛰어났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포크는 1883년 조선의 보빙사(서방세계와 친선 및 교류를 목적으로 파견한 최초의 외교 사절단)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통역원으로 임무를 수행했을 만큼 조선어에 능통했다.
하지만 한식을 거부감 없이 잘 먹던 포크에게도 난관은 있었다. 날것 그대로 먹는 소 내장 요리였다. 소의 내장은 당시 굉장히 귀한 식재료여서 왕실에서나 먹을 수 있던 음식이었다. 식사를 준비한 입장에서는 최고의 대접이었지만, 포크의 입맛에는 맞지 않았다.
실제로 조선시대에 음식을 날것으로 먹는 일은 흔했다. 생선을 날로 먹는 회가 일본에서 전파된 식문화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은데, 조선에서는 훨씬 전부터 이미 생선이나 내장을 날로 먹는 문화가 있었다.
채종일 서울대 의대 기생충학교실 교수 등 연구팀은 2007년부터 국내에서 발굴된 미라와 문헌 등을 바탕으로 연구한 결과 조선시대 사람들은 4명 중 1명꼴로 간흡충이나 폐흡충에 감염돼 있었다는 연구 결과를 2014년 ‘대한의사협회지’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조선시대 문헌을 분석한 결과 당시 사람들이 민물에서 사는 어패류와 갑각류를 익히지 않은 상태에서 즐겨 먹었기 때문에 기생충 감염이 만연한 것으로 분석했다.
서양인들이 본격적으로 조선에 온 건 1890년대 이후로, 대부분의 서양인 기록은 조선이 개화한 이후의 것이다. 포크의 기록은 그 전인 1884년 기록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 있다. 박 단장은 “전근대 체제가 섞여 있던 시기였고, 새로운 문물이 들어오기 전 조선시대의 풍속을 알 수 있어 자료의 가치가 더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