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20일, 가랑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오후. 안개 낀 전남 고흥군 봉래면 외나로도 나로우주센터 선착장에 커다란 배 한 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 달 뒤 발사에 사용될 나로호 1단을 실은 3000t(톤)급 바지선이었다. 1단 반입은 보안상의 이유로 도착과 이동 시간, 경로가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다. 장장 1주일에 걸쳐 1단 이송을 마치고 나로우주센터로 들어서는 러시아와 한국 연구원들의 표정에선 묘한 안도감이 느껴졌다.
기차, 수송기, 무진동 트레일러, 선박 총동원
길이 25.8m, 지름 2.9m에 이르는 나로호 1단은 나로호를 지상 300km 우주에 올려놓기 위한 핵심부품이다. 나로호 상단(2단)과 상단에 실을 위성은 순수 국산기술로 만든 반면, 1단은 러시아의 흐루니체프가 조립한 것을 그대로 사용했다.
나로호 1단을 국내로 이송하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발사 준비 과정 중 하나였다. 나로호 1단이 무사히 한국에 도착해 국내 연구진이 제작한 상단과 제대로 결합해야 비로소 발사가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1단을 본격적으로 이송하기에 앞서 나로호 1단의 지상검증용 기체(GTV)로 이송 과정에 문제가 없는지 사전 검증을 마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러시아의 흐루니체프 조립동에서 대한민국의 나로우주센터까지, 사람이라면 하루 만에 움직일 수 있는 거리를 나로호 1단이 이동하는 데는 꼬박 1주일이 걸렸다. 기차, 화물전용 비행기, 무진동 트레일러, 선박 등 세상의 모든 ‘탈것’들을 총동원해야만 했다.
먼저 모스크바 시내 중심에 있는 흐루니체프 조립동에서 모스크바 공항까지는 철도로 이동했다. 러시아 연구팀은 중량이 10t가량 되는, 연료와 산화제를 채우지 않은 나로호 1단을 전용 운반구조물(ATU· Air Transportation Unit)에 실어 철로로 이송했다. 일반적으로 러시아 발사체 조립장 안에는 철로가 놓여 있다. 나로호 1단을 기차에 싣고 모스크바에서 동남쪽으로 약 700km 떨어진 울리야놉스크까지 3일 동안 달렸다.
울리야놉스크에서 우리나라 김해국제공항까지는 러시아의 수송기인 안토노프(AN-124-100)로 날랐다. 안토노프는 군용 화물을 선적하고 하역하기 위해 개발된 수송기로 비행기 꼬리 부분을 마치 뚜껑처럼 여닫을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 특징이다. 군용전차나 전투기 등을 최대 150t까지 실을 수 있다. 안토노프로 나로호 1단을 김해국제공항까지 이송하는 데 꼬박 10시간이 걸렸다.
김해국제공항에 도착한 뒤에는 대한항공 테크센터 보호구역으로 옮겨 세관검사와 1차 성능검사를 했다. 그리고 이튿날 자정 특수 무진동 대형 트레일러에 나로호 1단을 실었다. 다시 육로 이송이었다. 운송과정 도중 브레이크를 거의 밟지 않고 시속 50~60km로 정속 운행하는 무진동 차량 특성상, 육로 이동에도 만만찮은 시간이 소요됐다. 부산 명지나들목과 부산과학단지를 거쳐 35km 떨어진 부산신항에 5시간 만에 도착했다.
마지막으로 부산신항에서부터 나로우주센터 선착장까지는 바닷길이었다. 1단을 3000t급 바지선에 실어 남해안을 따라 약 170km를 10시간 동안 이동해 마침내 나로호가 발사될 나로우주센터 선착장에 도착했다. 나로호를 해상으로 수송하는 동안 주변 해역은 철저히 봉쇄됐다. 부산지방경찰청, 부산소방본부, 해양경찰청, 해군, 공군 등 관계기관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정한 온도, 습도, 압력 유지가 관건
‘성능에 문제가 없어야 할 텐데….’
나로호 1단이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감도 잠시, 러시아 연구팀이 1단의 포장을 푸는 모습을 지켜보며 필자는 마음을 졸였다. 추진체나 인공위성과 같이 정밀하게 조립된 기기는 운송하기가 매우 까다롭기 때문이다. 외부 충격을 최소화하고, 먼지를 차단하며, 일정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해야 한다.
실제로 러시아 연구팀은 나로호 1단을 나로우주센터까지 운송하는 과정 내내 1단 탱크 내부의 온도와 압력이 제어될 수 있도록 특별히 개발한 이동식 장비(TEST-5507)를 사용했다. 실시간으로 탱크 내 온도와 압력을 측정해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는 장치였다. 덕분에 김해국제공항에서 탱크 내 압력이 높아진 것을 확인하고 낮출 수 있었다.
한-러 공동 연구팀은 도착한 1단의 상태를 점검하는 시험에 곧바로 돌입했다. 여러 가지 정밀 시험을 거쳐야 확실히 알 수 있지만, 간단한 검사로는 이송 중에 큰 문제가 발생한 것 같지는 않았다.
이처럼 추진체의 상태는 엔지니어들에게 초미의 관심사다. 추진체의 상태가 발사 성공을 일차적으로 좌우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추진체에는 추적 장치가 이중삼중 적용돼 있다. 러시아 연구팀은 1단의 상태를 장기적으로 점검하기 위해 광섬유 기술을 기반으로 한 지상측정시스템(VOKSNI)도 개발했다. 이 시스템은 발사체에 설치된 센서로부터 실시간으로 정보를 수신해 온도, 압력, 습도 등의 정보를 초당 500회 이상 수집한다. 수집된 정보는 광섬유를 타고 엔지니어들에게 빠르게 전달된다.
1단을 포함한 발사체 전체가 정상 작동하는지 원격으로 추적하는 원격자료수신장비(텔레메트리)도 있다. 나로호는 최대 초속 8km로 날아가면서도 위치 정보와 동작 상태를 실시간으로 전송하도록 설계됐다. 텔레메트리는 최대 2000km 떨어진 곳에서 보낸 정보까지 수신할 수 있다. 한국과 러시아 연구팀은 발사체를 지상에서 시험할 때나 비행 중에, 혹은 비행이 종료된 후에 발사체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텔레메트리 장비 ‘리톤-5’를 공동으로 개발했다.
개발 덜된 1단을 러시아에 속아서 사 왔다?
2009년 여름, 나로호의 첫 발사가 임박하고 나로호 1단까지 도착하면서 나로우주센터에는 온 국민의 관심이 쏠렸다. 그러다 보니 웃지 못할 사건들도 많았다. 한 번은 보안규정에 따라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돼야 하는 1단의 이송 날짜와 경로가 국내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었다.
경위 조사 결과, 1단 이송에 참여한 업체 관계자가 무심코 발설한 내용이 단초였다. 해당 업체에는 경고와 함께 불이익이 가해졌다. 원래는 해당 업체의 로고를 1단에 크게 붙이기로 돼 있었는데, 발사체 제일 윗부분인 위성보호덮개부에 작게 붙이는 것으로 계획이 변경됐다.
그런데 실제로 발사 운용을 하다 보니 위성보호덮개부가 1단보다 훨씬 더 방송 카메라에 오랫동안 선명하게 자주 노출되는 게 아닌가. 해당 업체를 홍보하는 효과는 오히려 더 커졌고, 반드시 그 일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나로호 1단 이송을 발설한 직원은 회사에서 계속 승승장구했다. ‘인생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이 새삼 떠올랐다.
또 한동안은 ‘한국이 개발도 덜 끝난 1단을 러시아로부터 사 왔다’는 루머에 시달렸다. 나로호 1단을 한국으로 이송한 뒤, 러시아에서는 1단에 대한 최종 종합 확인 시험을 위해 1단과 동일한 추진체를 하나 더 만들어 지상연소시험을 했다.
그런데 이 과정을 오해한 비전문가가 언론에 제보하면서 예상치 못한 논란에 휘말렸다. 러시아 연구진이 수행한 지상연소시험은 성공적으로 이뤄졌으나(연소 시간이 232초로 나로호와 동일하고, ‘사이클로그램’이라고 하는 엔진 운용 조건도 나로호와 동일했다), 데이터를 상세하게 분석해 보니 1단에 해결해야 할 기술적 문제가 남아있더라는 내용이 2009년 7월 30일 언론에 보도된 것이다. ‘러시아를 믿을 수 없다. 한국이 당했다’는 논조였다.
8월 4일 부랴부랴 나로우주센터에 머물고 있던 러시아측 책임자를 만나 러시아 연구자들이 별도로 수행한 지상연소시험의 결과를 요청했다. 특히 지상연소시험 결과 해결해야 할 기술적 문제가 있다고 하는데, 무슨 뜻인지 다그쳐 물었다.
이에 대해 러시아측 연구 책임자는 지상연소시험 중 원격측정데이터를 수신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지 1단의 성능과는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그는 원격측정데이터 중 하나가 비정상값을 나타냈는데, 이것이 센서의 불량인지, 데이터 수신·처리 장비의 불량인지, 아니면 정말 1단이 잘못된 것인지 면밀한 분석을 했고, 그 결과 1단의 이상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논란은 러시아 연방우주청의 발사체 담당 부청장이 러시아에 있는 한국 대사관을 방문해 직접 기술적 검토 내용을 설명하면서 겨우 일단락됐다. 지금은 그래도 의미 있는 추억이라고 회상하지만, 당시엔 많은 사람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웃지 못할 해프닝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