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4일 미국이 유엔에 ‘파리협정’ 탈퇴를 공식 통보했다. 파리협정은 지구 평균온도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에 비해 2도 이하로 유지할 수 있도록, 각 나라가 스스로 온실가스 배출 목표를 정해 실천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지구온난화를 믿지 않는다’며 공공연히 탈퇴를 예고했던 터라 새삼 놀랍지는 않다.
미국과 같은 주요 온실가스 배출국의 파리협정 탈퇴는 분명 전체 목표 달성에 큰 영향을 미치겠지만, 다행히 중국과 프랑스 등 파리협정에 서명한 나머지 194개 국가는 계속해서 협약한 목표를 이어가기로 했다. 다만 지금까지 이들 국가의 이행 내용은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지난해 12월 발표된 ‘기후변화대응지수 2019’에 따르면 어느 나라도 2도 이하의 목표를 이루는 포괄적인 정책을 만족스럽게 추진하고 있지 않았다. 더군다나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37% 감축하겠다고 정한 우리나라는 기후변화대응지수를 평가받은 57개국 중 54번째를 기록하며 세계 최하위 수준으로 평가됐다. 재생에너지 사용 비율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과 1인당 에너지 사용량은 모두 최고 수준으로 조사됐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는 온실가스, 특히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줄일 새로운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그 가운데 자연적으로 이산화탄소를 땅에 묻을 수 있는 ‘블루카본’이 최근 주목받고 있다.
갯벌의 탄소 흡수 속도 열대우림의 50배
지표면 아래에 묻혀 있는 탄소는 각각 저장된 과정과 위치에 따라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우선 원인을 알 수 없이 땅속에 묻힌 화석 구조의 탄소를 ‘블랙카본’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육상에서 식물의 광합성으로 흡수돼 땅속에 묻힌 탄소는 ‘그린카본’으로 불린다. 마지막으로 바닷가에 서식하는 식물과 퇴적물을 통해 저장된 탄소는 ‘블루카본’에 해당한다.
이처럼 블루카본은 해양에서 순환되는 탄소가 아닌 갯벌이나 모래 속에 흡수된 탄소를 일컫는다. 이 말은 맹그로브, 염생 식물, 잘피 등 해안에 서식하는 식물의 광합성 과정에서 흡수되거나, 끈적끈적한 갯벌에 쌓이고 묻히면서 지표면 아래로 흡수되는 탄소라는 뜻이다. 해조류나 부유성 플랑크톤 등도 해양에서 광합성을 하지만, 갯벌에 매몰되는 양을 파악하기 어려워 아직까지 블루카본에 포함되지 않고 있다.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탄소를 흡수하는 건 역시 육상 식생이 흡수하는 그린카본이다. 면적도 넓고, 목본식물의 경우 규모도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갯벌이 흡수하는 블루카본의 양도 이에 비해 크게 적지 않다.
갯벌은 육상에 비해 탄소 흡수 속도가 최대 50배 빠른 것이 장점이다. 맹그로브의 경우 1년 동안 1ha(헥타르·1ha는 1만m2) 면적에 묻을 수 있는 탄소량이 약 15t(톤), 염습지는 9.2t으로 열대우림(2.5t)보다 탄소 흡수량이 3배에서 최대 6배까지 많다.
블루카본을 만드는 맹그로브, 염생 식물, 잘피 등의 해안 식물은 서식 면적이 바다 전체 면적의 0.5%에 불과해 지금까지 무시됐지만, 탄소 흡수 속도가 빨라 전 세계에서 탄소 감축량의 10%를 담당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이 있다.
2487㎢갯벌이 온실가스 감축 대안
우리나라는 세계 5대 갯벌에 속하는 약 2487km2 면적의 갯벌을 보유하고 있다. 해안선이 복잡해 전남 순천만 등 여러 지역에 대형 습지가 발달해 있고, 지난 6000~7000년 동안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갯벌에는 10m 이상의 두께로 퇴적물이 쌓였다. 강화도 갯벌의 경우 두께가 최대 50m에 이르는 곳도 있다.
1년마다 갯벌에 쌓이는 퇴적물의 두께는 지역마다 다르지만, 연간 0.5cm로 가정하고 갯벌의 탄소농도(1~3%)와 밀도(1.6g/cm3)를 고려하면 국내 갯벌은 매년 수십만t의 탄소를 흡수한다고 추론할 수 있다. 더불어 지구온난화에 따라 해수면이 상승하면 그 속도에 비례해 갯벌에는 더 많은 퇴적물이 쌓인다. 우리나라는 막대한 블루카본 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의 연간 온실가스 총배출량은 2017년 기준 약 7억910만t이다. 2007년부터는 산림이 탄소 흡수원으로 인정받아 국가통계에서도 유일한 온실가스 저감원으로 활용되고 있는데, 2013년 산림부문의 온실가스(이산화탄소) 흡수량은 4720만t으로 국가 전체 흡수량의 99.8%를 차지했다.
문제는 산림 노령화로 인해 탄소 흡수량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라는 점이다. 파리협정에 따라 2030년까지 온실가스 37% 감축을 선언한 우리나라로서는 산림 이외의 탄소 흡수원 개발에 대한 노력이 급한 상황이다.
천혜의 갯벌을 가진 우리나라는 블루카본이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중요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이미 호주, 인도네시아는 탄소 흡수원으로 블루카본을 채택해 국가보고서로 제출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동남아시아를 비롯해 브라질 등 남미로 확대되고 있으며, 올해 12월에 열리는 유엔기후협약 당사국회의(UNFCCC)에서도 블루카본에 대한 논의가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호주, 중국 등 블루카본 연구 가속
블루카본은 최근에야 주목받기 시작한 만큼 블루카본 연구도 이제 출발점에 서 있다. 그래서 지금부터 알아내야 할 것도 많다. 그 첫 단계가 블루카본이 현재 얼마나 있고, 해마다 얼마나 쌓일지 예상하는 것이다. 이를 명확히 해야 국제사회에서 블루카본을 탄소 흡수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해양에서의 탄소 저장 과정은 의외로 복잡하다. 갯벌과 갯벌 식물들이 탄소를 흡수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식물의 호흡이나 퇴적물 속에서 진행되는 환원작용 등에서는 오히려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따라서 탄소 흡수과정과 더불어 갯벌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에 대한 정확한 계산이 필요하다. 또 국가나 지역마다 갯벌의 특성이 다른 만큼 환경에 맞는 계산법을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2017년부터 해양수산부의 국가연구개발사업으로 해양환경공단 등 10여 개 연구기관과 대학이 참여해 블루카본 산정을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과 부산대 연구팀은 해안에서 탄소를 흡수하는 주요 대상인 염생 식물과 잘피 군락의 생산량을 조사하기 위해 해안 식생에 의한 블루카본 저장량과 생산성을 산정하고 전체 분포량을 추론하고 있다.
서울대 등 5개 대학 연구팀은 전국의 갯벌에서 흡수되는 탄소량을 파악하는 동시에 갯벌에서 일어나는 탄소의 흡수와 배출 과정, 그리고 이에 따른 탄소 축적률을 파악하는 방법을 개발하고 있다.
블루카본이 탄소 흡수원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최소 20년 이상 탄소 축적량에 대한 자료가 필요하다. 그래서 연구팀은 20년 간의 해안 위성 자료를 확보해 식생 면적 변화를 추적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를 포함해 호주, 중국 등 10여 개국은 블루카본이 탄소 흡수원으로 국제적인 공인을 받을 수 있도록 합심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갯벌 식물이 탄소를 흡수한다는 사실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갯벌은 영토 확장을 위한 공간으로 매립됐다. 다행히 20여 년 전부터 갯벌이 해양생물다양성과 수산물 생산지로 관리되기 시작했지만, 이미 30%에 해당하는 갯벌이 육지화됐다. 지금은 상황이 역전됐다. 어떻게든 대기 중 탄소를 흡수하기 위해 갯벌에서 한 포기의 습지 생물이라도 늘리기 위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독자 여러분도 갯벌과 블루카본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 주기를 당부한다.
박흥식.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해양생물자원연구단 책임연구원으로, 미크로네시아의 태평양해양과학기지에서 10년 이상 열대해양생물을 연구했다. 현재는 국내 염생 식물을 조사해 블루카본의 양을 산정하는 연구를 수행 중이다. hspark@kio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