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과학기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드라마가 나왔습니다. tvN에서 절찬리 방영 중인 ‘날 녹여주오’는 24시간 냉동인간 프로젝트에 참여한 남녀가 20년 후 깨어난다는 아주 실험적인 줄거리인데요. ‘실제 있을 법한 SF다’와 ‘말도 안 되는 코미디다’, 이렇게 의견들이 엇갈리더라고요. 그래서 과학적으로 직접 따져봤습니다. 함께 보시죠.
궁금증 1. 24시간 냉동 가능할까?
때는 1999년. 극한 실험 예능 ‘무한실험천국’으로 일약 스타 PD 자리에 오른 마동찬(지창욱)은 시청자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더 자극적인 실험을 기획합니다. 바로 ‘냉동인간 프로젝트’! 마 PD는 대학생 고미란(원진아)과 함께 냉동 캡슐에 들어가 24시간 동안 냉동인간이 돼보고자 합니다.
사실 사람을 냉동하는 것 자체는 전혀 새롭지 않습니다. 1967년 1월 12일 제임스 베드포드 당시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심리학과 교수가 최초로 냉동인간이 된 이후, 지난 50여 년간 사람들은 꾸준히 영하 196도 액체 질소 속으로 들어가고 있으니까요.
세계 3대 냉동인간 회사 홈페이지에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미국 크라이오닉스연구소에는 177명(2019년 8월 기준), 미국 알코어생명연장재단과 러시아 크리오러스는 2019년 9월 30일 기준으로 각각 172명, 71명의 냉동인간이 있습니다. 이미 전 세계에 4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냉동인간으로 잠들어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아쉬운 건 ‘24시간 냉동’이라는 설정입니다. 인간의 몸을 냉동상태로 만드는 데에만 하루가 꼬박 걸리기 때문입니다. 설명을 위해 세포를 냉동시키는 과정을 먼저 살펴보죠.
세포를 구성하는 물질의 대부분은 물입니다. 물은 얼리면 날카로운 결정을 만들고 부피가 커집니다. 따라서 세포를 무작정 얼리면 얼음 결정에 의해 세포가 파괴되고 맙니다.
과학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얼리기 전 몸속의 물(혈액 포함)을 동결억제제로 치환합니다. 글리세롤, DMSO(Demethyl sulfoxide), PR-OH (Prophandiol) 같은 물질이 대표적인데요. 물에 동결억제제를 5~10% 넣으면 어는 점이 0도보다 낮아지기 때문에 이 상태로 몸에 넣고 얼리면 액체의 상변화가 거의 일어나지 않아 세포가 망가지는 일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혈액을 동결억제제로 치환하는 작업은 최소 24시간에서 많게는 48시간이 걸립니다. 먼저 인체의 온도를 4도가량으로 낮추고, 동결억제제를 조금씩 주입하면서 체온을 서서히 낮춥니다.
해동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몸속 동결억제제를 서서히 혈액으로 치환하는 데 만 하루가 소요됩니다. 따라서 딱 24시간만 냉동상태가 되겠다는 건 현재 기술로는 조금 성급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궁금증2. 20년 뒤 해동해도 멀쩡하다고?
냉동 캡슐에 들어간 남녀 주인공은 의문의 사고로 20년 동안이나 얼어있게 됩니다. 2019년이 돼서야 녹은 두 사람은 자신들이 세계 최초의 냉동인간임을 만천하에 알리죠. 이들은 늙지 않고 20년 전 모습을 그대로 갖고 있습니다.
사실 의학적인 측면에서 냉동 기간은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신장 냉동과 해동 기술을 연구하고 있는 김시윤 건국대 의학전문대학원 연구교수는 “현재 기술로 하루 얼리는 것과 20년을 얼리는 것은 해동시키는 데 큰 차이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실제 현실에서도 냉동인간이 되길 희망하는 사람들은 100년 단위로 냉동 기간을 정합니다.
냉동 기간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건 세포 단위에선 이미 논문으로 증명된 사실입니다. 한 예로 데이비드 스트론섹 미국 국립보건연구원(NIH) 연구원팀의 실험을 들 수 있는데요.
액체 질소에 1일부터 5년 6개월까지 냉동 기간이 다른 백혈구 311개를 비교한 결과, 해동했을 때 정상 기능으로 돌아온 백혈구의 비율은 냉동 기간에 관계 없이 거의 동일했습니다. 연구팀은 적어도 7년까지는 보관 기간에 따른 문제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doi: 10.1111/j.1537-2995.2011.03210.x
문제는 세포가 무수히 많이 뭉쳐 있는 장기를 녹이는 일입니다. 냉동된 사람의 몸을 녹인다고 가정해보죠. 몸 바깥 표피 세포가 녹는 속도는 몸속 장기를 구성하는 세포가 녹는 속도보다 훨씬 빠릅니다. 몸 바깥의 열이 대류 현상을 통해 안쪽으로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냉동실에 넣어 놓았던 고깃덩어리를 실온에 두면 겉은 금세 말랑말랑하게 녹지만 안쪽은 한참 동안 꽁꽁 얼어있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이때 외부와 내부의 큰 온도차는 그 사이에 있는 세포에 재결정화를 일으키며 세포를 파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재빠르게 해동하는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합니다.
장기를 녹일 때 세포의 극히 일부만 손상된다 해도 안심할 수 없습니다. 손상된 세포가 뇌 기능과 관련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던 세포라면, 세포 대부분을 성공적으로 해동했더라도 깨어나는 것이 힘들 수 있습니다.
이처럼 몸속 모든 장기를 100% 손상 없이 해동하는 방법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실망하진 마세요. 많은 연구자가 해동 연구에 매달리고 있으니까요. 대표적으로 존 비쇼프 미국 미네소타대 기계공학과 교수팀은 작은 철(Fe) 입자를 이용해 동물의 생체 장기를 손상 없이 빠르게 녹이는 연구 결과를 2017년에 발표했습니다.
비쇼프 교수팀은 작은 철 입자를 섞은 동결억제제를 이용해 장기를 냉동시켰습니다. 그리고 해동할 때에는 이 장기를 코일에 넣고, 에너지를 가해 강한 자기장을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철 입자가 자기장에 반응해 열을 내면서 장기가 바깥쪽부터 안쪽까지 고르게 녹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조직이 녹으면서 철 입자는 자연스럽게 장기 밖으로 빠져나갔고요. doi: 10.1126/scitranslmed.aah4586 이처럼 기발한 아이디어가 앞으로 더 많이 나오길 기대해 봅니다.
궁금증 3. 깨어나 보니 체온이 31.5도?
20년 동안 냉동된 뒤 깨어난 두 남녀 주인공은 부작용으로 저체온 현상을 겪습니다. 드라마 설정상 정확히는 체온이 31.5도로 유지되고, 체온이 만약 33도 이상으로 올라가면 신체에 이상이 생기는 부작용입니다. 이들이 서로 사랑에 빠지면서 사랑이라는 감정에 의해 체온이 오르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모습이 드라마의 재미 포인트입니다.
하지만 전문가는 바로 이 부분을 드라마에서 가장 비현실적인 부분으로 꼽았습니다. 김 연구교수는 “오랫동안 냉동됐다가 깨어난다고 하더라도 사람의 체온은 일정하게 유지된다”며 “저체온이 나타날 가능성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의 체온은 보통 36.5~37.5도로 유지되는데, 이보다 낮아지면 저체온증 증세가 나타납니다. 일단 온몸에 경련이 일어나고, 체온이 33도 이하로 내려가면 기억 상실과 환각 증세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31도 이하로 떨어지면 심장박동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며 사망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체온이 31~32도로 유지되는 드라마 주인공들이 일상생활을 하는 것은 무리죠. 거기에 사랑까지 한다니요.
개인적으로 저는 드라마와 무관하게 냉동인간 기술은 언젠가는 실현될 SF의 영역이라고 봅니다. 김 교수는 15~20년 후로 전망하더군요. 그는 “상용화까지는 아니더라도 냉동인간 기술 자체는 완성될 것”이라며 “그러기 위해서는 단세포가 아닌 여러 개의 세포로 이뤄진 장기를 냉동하는 기술부터 완성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