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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민 떡볶이 마스터즈’ 결선에 가다

 

‘다음 중 떡볶이 먹는 소리로 올바른 것을 고르시오.’
수능을 치르는 기분으로 시험지를 받아들고 첫 장을 쓱 훑었다. 1번부터 3번까지는 듣기 영역이다. 귀를 쫑긋 세웠지만, 보기 4개 중 2번과 4번이 영 헷갈린다. 이렇게 60문제를 60분 안에 풀라니. ‘떡볶이 마스터’가 되는 길은 쉽지 않았다. 

 

 

최고의 ‘떡볶이 덕후’를 가리는 ‘배민 떡볶이 마스터즈’ 결선이 11월 11일 서울 세종대 광개토관 컨벤션홀에서 열렸다. 이번 대회에는 57만8000여 명이 도전해 2312대 1이라는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250팀(500명)이 최종 결선 진출자로 선정됐다. 과학으로 떡볶이를 정복(?)해 보겠다는 포부를 안고 기자도 결선에 참여했다. 

 

 

 

글루텐으로 밀떡과 쌀떡 구분


60문제 중 필기가 50문제, 나머지 10문제는 실기였다. 과학적 지식을 총동원해서 필기에 도전했지만, 떡볶이의 표준 발음을 고르라는 국어 영역부터 영어, 역사, 지리, 상식까지 분야가 다양했다(떡볶이의 표준 발음은 [떡뽀끼]다). 


그래, 실기 10문제에 집중하자. 떡볶이를 눈으로 관찰하고 입으로 맛볼 수 있는 만큼 어느 정도 승산이 있지 않을까. 가장 중요한 단서인 떡에 집중했다. 특히 밀떡인지, 쌀떡인지 떡의 종류를 구분하기 위해 모든 과학 지식을 동원했다. 

 

경험적으로 밀떡과 쌀떡을 구분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식감이 다르기 때문이다. 쌀떡이 밀도 높은 쫀쫀한 느낌이라면, 밀떡은 수분을 머금어 탱글탱글한 느낌이다. 밀떡은 빨리 익고, 오래 끓여도 떡이 흐물흐물하게 풀어지지 않는다. 쌀떡은 밀떡보다 천천히 익고 오래 끓이면 떡이 흐물흐물해진다. 양념도 밀떡은 잘 스며드는 반면, 쌀떡은 그렇지 않다. 

 


두 떡이 이런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글루텐 때문이다. 글루텐은 밀이나 보리 등에 들어있는 불용성 단백질로 글루테닌과 글리아딘이라는 단백질이 결합해 만들어진다. 밀가루에 물을 넣어 반죽하면 반죽을 치대는 물리적인 운동으로 두 성분이 결합하면서 글루텐이 만들어진다. 


글루텐에는 단백질을 이루는 아미노산 중 하나인 시스테인이 많다. 시스테인은 다른 아미노산과 달리 황이 포함된 티올기(-SH)를 갖고 있다. 


최희돈 한국식품연구원 가공공정연구단 책임연구원은 “글루텐이 반죽 사이에서 이황화결합(S-S)을 이루면서 그물구조를 형성한다”며 “이 구조 덕분에 밀떡은 오래 끓여도 풀어지지 않고 형태를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최 책임연구원은 “글루텐 표면에 물이 잘 결합하기 때문에 밀떡이 익는 속도도 빠르고 양념도 잘 밴다”고 덧붙였다. 


한 문제라도 더 맞히기 위해 녹말의 호화와 노화도 기억해냈다. 떡을 물에 넣고 60도 이상 고온으로 가열하면 수분을 흡수하면서 녹말의 결정구조가 파괴되는 호화 과정이 일어난다. 호화가 된 녹말은 수분을 머금어 쫀득한 찰기가 생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온도가 낮아지면 수분이 날아가면서 다시 결정구조를 이루며 딱딱해지는 노화가 일어난다. 


밀떡과 쌀떡은 여기에서도 차이가 난다. 밀떡의 경우 글루텐이 그물구조를 만들어 수분을 더 오래 잡아둘 수 있다. 최 책임연구원은 “밀떡은 그물구조에 결합한 수분 덕분에 쌀떡보다 노화가 느리게 일어난다”며 “덕분에 밀떡은 조리한 뒤 시간이 지나도 금방 딱딱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떡에 양념이 잘 배어있고 수분을 머금은 경우는 밀떡, 떡이 다소 굳어있는 것처럼 보이면 쌀떡! 


고추장 떡볶이, 조선 시대에도 먹었을까


떡볶이 양념의 핵심은 고추장이다. 그런데 46번 문제가 이상하다. 부산 해운대구의 유명 떡볶이집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을 고르란다. 보기 1번이 ‘떡볶이에 고추장을 사용하지 않는다’이다. 고추장이 안 들어간 떡볶이도 있단 말인가. 호기롭게 1번을 골랐지만, 어랏? 정답이 아니다. 그렇다면 떡볶이의 상징인 고추장은 언제부터 사용됐을까.


고추장의 주재료인 고추부터 살펴보자. 고추는 1592년 임진왜란 이후 일본에서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4년 이성우 당시 한양대 식품영양학과 교수가 일본에 수입된 남아메리카 페루산 고추의 일종인 ‘아히(Aji)’가 담배와 함께 우리나라로 들어왔다고 주장했던 것이 통설로 굳어진 것이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임진왜란보다 훨씬 이전부터 우리나라에 고추가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식품연구원이 2017년 ‘전통식품저널(Journal of Ethnic Foods)’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고추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의 고추는 아히와는 계통학적으로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doi: 10.1016/j.jef.2017.08.010


만약 일본으로 들어온 아히가 우리나라에까지 넘어왔다면, 우리나라 고추는 아히와 계통학적으로 가까워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고추는 아히보다는 중앙아시아나 헝가리의 고추와 계통학적으로 가까웠다. 


연구를 주도한 권대영 한국식품연구원 헬스케어연구단 책임연구원은 “아히의 학명은 카프시쿰 바카툼(Capsicum baccatum)으로 한국 고추인 카프시쿰 안눔(Capsicum annuum)과는 종 자체가 다르다”며 “수십만 년 전부터 한반도에 고추가 자생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고추가 임진왜란 이후 일본에서 수입됐다는 가설은 시기적으로도 맞지 않는다. 보통 식품학계에서는 발효 음식이 자리 잡는 데 200년 이상 걸린다고 본다. 교통이 열악했던 시대라는 점을 고려하면, 고추가 전국에서 식재료로 자리 잡는 데 100년, 고추장 등 발효식품이 자리 잡는 데 200년가량 걸렸을 것이다. 만약 고추가 임진왜란 이후 수입됐다면 우리가 먹는 고추장이 1900년대에야 생겼다는 결론이 나온다. 


권 책임연구원은 “고추장뿐만 아니라 김치, 젓갈, 장아찌 등 우리나라의 많은 발효식품에 고추가 들어간다”며 “100년 만에 이 모든 음식이 생겨나 중심 식문화로 자리 잡는 건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일본에서 고추가 전파됐다면 일본에도 고추로 만든 발효식품이 있어야 하는데, 일본에는 고추로 만든 발효식품이 없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조선 사람들도 고추장 떡볶이를 먹었을까. 일단 조선 왕실에서 고추장을 먹었다는 기록은 여럿 남아있다. 태조 이성계가 전북 순창에 방문했을 때 고추장을 맛있게 먹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며, 조선 초기 음식 서적인 ‘식료찬요(食療纂要)’에는 현재의 고추장으로 추정되는 초장(椒醬)으로 양념한 닭요리가 기록돼 있다. 또한 영조가 고추장을 즐겨 먹었다는 사실이 ‘승정원일기’에 기록돼 있다. 


소위 ‘궁중떡볶이’로 불리는 간장떡볶이는 일제강점기에 작성된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 처음 언급됐는데, 실제 궁중떡볶이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권 책임연구원은 “떡볶이에 관한 기록은 오병(熬餠·볶은 떡)을 먹었다는 기록만 승정원일기에 남아있다”며 “어쩌면 조상들도 우리처럼 매콤한 고추장 떡볶이를 즐겼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매운 고추는

 

떡볶이는 매운맛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고추의 매운맛을 내는 성분인 캡사이신이 많이 들어있을수록 매운맛도 강할 것이다. 그런데 매운맛으로 유명한 동대문 엽기떡볶이는 본사 홈페이지에 캡사이신 소스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공지하고 있다. 


만약 캡사이신 소스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매운맛을 내는 걸까. 일반적인 고추보다 더 매운 고추를 사용했을 수밖에 없다. 고추의 매운맛은 스코빌 척도(SHU)로 측정하는데, 스코빌 척도가 높을수록 캡사이신 함량이 높다. 일반적으로 고추의 스코빌 척도는 600~2000SHU, 매운 고추로 알려진 청양고추의 스코빌 척도는 4000~1만SHU이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매운 고추로 공인받은 종은 ‘캐롤라이나 리퍼’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에드 커리가 개발한 캐롤라이나 리퍼는 세계에서 가장 매운 고추로 2013년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사신(reaper)이라는 이름처럼 살인적인 매운맛을 자랑한다. 이 고추의 스코빌 척도는 156만~220만SHU로 청양고추보다 최대 약 550배 맵다. 

 


캐롤라이나 리퍼보다 더 매운 고추도 있다. 아직 공인을 받지는 못했지만 2017년 개발된 ‘페퍼X’다. 이 고추 역시 에드 커리가 만든 품종으로, 스코빌 척도가 무려 318만SHU이다. 만지기만 해도 화상을 입을 수 있어 묽게 희석한 소스로만 판매한다. 


요리에 사용하는 고추 중에서는 태국 고추(7만5000~15만SHU)와 멕시코의 하바네로(10만~35만SHU) 등이 맵기로 유명하다. 매운 떡볶이의 불타는 맛은 이런 매운 고추들이 만들어낸 작품일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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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신용수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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