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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초파리 연구, 진화의 비밀 밝혀

동물 염색체

사람과 초파리는 4백개 이상의 동일한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다. 따라서 몇몇 모델들의 연구결과는 막바로 인간에게 적용되기도 한다.

생물의 종(種)은 형태적으로나 행동방식에 있어 저마다 특이성을 갖는다. 그러나 생물체 내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생리학적 현상이나, 더 작게는 각 세포 내에서 일어나는 여러 작용들은 오히려 종에 관계없이 매우 비슷하다. 생물체 내에서의 각종 작용들은 많은 종류의 단백질에 의해서 일어나는데, 이러한 단백질을 만들어 내는데 필요한 정보가 바로 유전자다.

실제로 여러 종류의 생물들이 비슷한 유전자들을 많이 갖고 있다. 한 예로 사람과 초파리도 4백개 이상의 동일한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 숫자는 연구가 계속될수록 증가될 것이다. 따라서 사람의 유전자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먼저 다른 종의 생물의 유전자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유전자는 무엇이며 어디에 있는가.
 

초파리의 침샘염색체. 초파리의 침샘에는 거대염색체가 있다.
 

자식은 부모를 닮는다

유전자가 자리잡고 있는 곳은 각 세포의 핵속에 있는 염색체다. 염색체를 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하면 많은 유전자들이 일렬로 이어져 있다. 이를테면 염색체란 처음과 끝이 있는 물질이다. 특정시기의 염색체는 현미경으로 관찰할 수 있는데, 각 세포마다 일정한 개수의 염색체가 있고, 같은 종류가 한쌍씩, 2조(set)가 들어 있다. 즉 사람의 염색체는 23쌍-46개이고, 쥐는 20쌍-40개, 초파리는 4쌍-8개다.

그러나 생식세포(난자와 정자)를 만들 때에는 한개의 세포가 두개로 나눠지면서 한쌍으로 된 염색체도 한개씩으로(1조) 나눠지게 된다. 이로써 한조(set)의 염색체(난자)를 가진 정자와 또 다른 한조(set)의 염색체를 가진 자식이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각 유전자는 염색체의 특정부위에 위치해 있다. 생식세포를 만들 때, 다른 염색체 위에 있는 유전자들은 서로 나뉘어져서 각기 다른 세포에 들어갈 확률이 크고, 같은 염색체 위에 있는 유전자들은 같은 세포에 들어가게 될 확률이 크다. 같은 염색체 위에 있더라도 가까이 있는 유전자들은 상대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유전자들보다 같은 세포에 들어가게 될 확률이 더 커진다.

그러므로 자식에게 나타난 형질을 관찰하면, 어떤 유전자들이 염색체 위에 있는지, 또 얼마나 가까이에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서 염색체 위의 유전자의 상대적 위치를 나타낸 것을 유전자지도라고 한다.

모든 세포는 같은 조(set)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코와 눈이 다르고, 두뇌와 심장은 다른 기능을 하는가. 어떻게 곤충의 애벌레와 성충은 다른 형태를 가질 수 있는가. 이것은 각 세포들이 공통으로 이용하고 있는(발현하는) 유전자들이 있는 동시에, 각 세포마다 따로 이용하고 있는 유전자들도 있기 때문이다. 개체의 시기별로 봐서도, 태아시기와 어른이 됐을 때 각각 독특하게 발현되는 유전자들이 있다. 즉 각 세포마다 기능이 다르므로, 그 다른 기능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단백질의 종류가 다르고, 발현되는 유전자의 종류도 세포마다 달라진다.

눈의 색깔 뿐만 아니라 개체의 모든 형질이 유전자의 정보에 의해서 결정된다. 유전자를 만드는 근본물질은 DNA라는 화학물질로, 모두 네가지 종류가 있다. 이 네가지 DNA는 한 줄로 배열돼 있는데 그 배열중에서 한 종류의 단백질을 만들어낼 수 있는 부분을 한개의 유전자라고 한다.

유전자를 연구한다는 것은 유전현상을 관찰하고 유전자의 염색체 위 위치를 알아내는 작업이다. 아울러 분자생물학의 실험기술을 활용해 유전자를 분리, 그 DNA의 배열순서를 밝혀서 단백질의 기능을 알아내는 것이다.

유전현상을 연구하는 첫번째 단계는 변이종을 찾아내는 일이다. 눈의 색깔이 한 가지 일 때에는 유전현상을 연구할 수 없지만, 검은색 눈을 가진 동물 중에 파란색의 눈을 가진 개체가 섞여 있을 때에는 그 유전현상을 조사, 염색체 위에 유전자의 위치를 결정 할 수 있다.

유전현상을 연구하는데 활용되는 동물은 다음 네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 첫째 세대 간의 간격이 짧아야 하고, 둘째 자식의 숫자가 많아야 한다. 셋째 개체가 크기가 적을수록 좋은데 그 이유는 그래야 유지 관리하기가 수월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변이종을 만들기 쉬워야 한다.

이러한 조건에 잘 부응해 유전학자들이 오래 전부터 이용해온 동물은 초파리와 생쥐다. 최근에는 흙속에 사는 선충류의 한 종류(C. elegans)도 많이 연구되고 있다.
 

초파리의 변이.^왼쪽은 정상의 초파리를 머리 앞쪽에서 본 사진이고 오른쪽은 안테나가 될 부분이 다리로 변한 초파리의 변이종
 

초파리의 비밀, 90%쯤 밝혀져

사과같은 과일 근처에 모여드는 아주 작은 파리를 본 적이 있는가. 그것이 초파리다. 초파리가 유전학의 대상이 된 것은 80여년 전부터다. 초파리는 앞에서 언급한 조건들 외에도 또 다른 특징들을 갖고 있다.

첫째 초파리는 침염색체라는 거대염색체를 소지한다. 이것은 1천여개의 염색체가 서로 나란히 붙어 있어서 현미경으로 관찰이 가능하고, 특정위치에 밝고 어두운 띠들이 자리잡고 있어서 위치를 확인하기가 쉽다. 둘째 개체가 모체 바깥에서 발생하므로 발생 과정을 연구하기가 용이하다. 셋째 유전자조작 등을 이용해서 변이종을 만들기가 수월 하다.

초파리는 전체 DNA(genome size) 크기가 사람의 20분의 1 정도로 작지만, 효모(yeast)보다는 훨씬 고등동물이다. 따라서 초파리의 전체 유전자들을 모두 밝혀내 모든 생물에서 공통인 '기능적 언어'를 찾으려는 실험들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특히 포유류에서는 실험하기 어려운 유전자(예컨대 개체의 발생에 필요한 유전자, 개체의 암수분화에 필요한 유전자, 신경 감각기관의 발달에 필요한 유전자)들을 초파리에서 찾아냈다. 이는 포유류에서 비슷한 기능을 가진 유전자들을 찾아내는데 이용되고 있다. 또한 학습과 기억에 관한 유전자를 추적하는 실험에도 이용된다. 고등동물에의 유전자 중에서 기능을 알기 어려운 것은, 초파리에서 그 유전자의 변이종을 만들어서 역으로 그 기능을 관찰하는 방법도 흔히 채택되고 있다.

초파리의 유전연구를 통해 알아낸 중요한 발견중 하나는 발생에 관한 것이다. 알에서 성장 분화해 복잡한 구조를 가진 성체가 될 때까지 수많은 유전자들이 차례로 관여한다. 즉 초파리의 유전자는 몸의 뒷부분 또는 앞부분이 될 것이지, 머리가 될 것인지, 가슴 또는 배가 될 것인지를 정한다. 그 다음 단계에서는 머리의 어느 부분이 될 것인지를 결정하는데 관여하고 이 단계를 지나면 그 부분에 꼭 필요한 부속품(예컨대 안테나 날개 다리 등)이 나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런 유전자들중 하나에만 이상이 있어도 몸의 형태에 변화가 생긴다. 예를 들어 머리에 안테나 대신 다리가 생길 수 있다.

현재 초파리 염색체의 DNA들은 90% 정도가 분리돼 있다. 그중 많은 부분이 유전자 배열까지 밝혀져 있다. 그리고 변이종연구를 통해 기능까지 알려진 유전자도 수두룩하다. 장차 초파리의 염색체 구조가 모두 밝혀지면, 생물을 전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표본(model system)으로서 매우 중요하게 취급 될 것이다.

변이를 인위적으로 일으키고

우리 말로는 집쥐(rat)나 생쥐(mouse)를 다같이 쥐라고 부르지만 이 두 생물은 매우 다르다.

생쥐가 유전학에서 연구되기 시작한 것은 지금부터 약 80년 전부터다. 그러나 초파리에 비해서 연구 속도가 훨씬 더디게 진행 돼 왔다. 그 이유는 전체 유전자 크기(genome size)가 초파리보다 20배 정도 크고, 배(胚)발생이 모체 내에서 이뤄지므로 유전학적 조작실험이 용이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각종 실험에서 매우 유용한 실험대상으로 채택되고 있는데, 생쥐는 포유류 중에서 개체의 크기가 상대적으로 작고, 세대간격(6주)도 비교적 짧고, 한꺼번에 많은 수의 새끼(8~12마리)를 낳기 때문이다.

유전학을 연구하는 방법, 즉 변이종을 가려내는 방법도 발달되고 있다. 처음에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변이종, 즉 털의 색깔, 털의 형태, 꼬리의 길이 등이 연구의 주된 대상이었다. 그후 생리학적 변이도 연구되기 시작했다. 요즘에는 이렇게 실제로 존재하는 변이종을 찾고 있을 뿐아니라 X선이나 화학 물질 등을 이용, 새로운 변이종을 인위적으로 탄생시키기도 한다.

최근 유전자조작을 통해 특정한 유전자를 변이시키는 방법이 소개돼 주목을 끌고 있다. 이것은 배(胚) 시기에 특정유전자를 없애거나 집어넣어서, 그 유전자가 없어졌을 때 또는 새로이 발현됐을 때 개체에서 일어나는 이상현상을 연구하는 방법이다. 대개 기능을 알 수 없는 한 유전자를 제거하면 어떤 이상이 나타나는지를 밝히고자 할 때 이 방식이 도입된다. 아울러 쥐를 이용해 인간에게 질병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연구하거나 새로운 변이종을 대량으로 만들 때에도 유효하다.

그런가 하면 유용생물체를 만드는데도 활용된다. 예를 들어 유용한 단백질을 함유하는 우유를 생산하는 젖소 등이 이 방식으로 개발되고 있다.

쥐를 이용한 중요한 연구중 하나는 질병의 치료법 개발이다. 즉 유전자의 결함으로 생긴 질병을 약으로 치료하는 대신 정상유전자를 집어넣어서 치료하는 것이다. 이같이 쥐는 인체를 대상으로 실시할 수 없는 유전적 조작실험을 가능하게 해준다.

현재 미국 유럽 일본 등에서는 게놈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 즉 사람과 몇가지 생물(쥐 초파리 효모 등)의 전체 유전자를 밝히고자 하는 연구를 국가정책으로 실시하고 있다. 이러한 연구가 예상대로 이뤄진다면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신체적 질병, 정신적 질환, 체내의 신진대사, 개체가 발생하고 늙어가는 것, 생물체의 형태, 생물의 진화 등 모든 생명현상에 대해 인류는 보다 많이 이해하게 될 것이다.

어떻게 자식이 부모를 닮을 수 있는가. 닮는다는 것을 유전이라고 하는데, 유전현상을 농업 등에 이용해온 것은 신석기시대부터지만, 유전현상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1900년대로 극히 최근의 일이다.

1860년 멘델(Mendel)은 그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유전에 대해서 설명했다. 사실 그때까지는 부모의 각각의 형질을 반죽 하듯이 섞어서 자식을 만드는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은 왜 눈은 아버지의 것을, 입은 어머니의 것을 닮게되는 지에 대해서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멘델은 각각의 형질을 만드는 물질이 따로 있다고 가정했다. 또 그 물질은 몸 세포 속에 한쌍씩 들어있는데 생식세포(즉 정자와 난자)를 만들 때에는 한개씩으로 나눠 진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렇게 형질을 전달 해주는 물질을 유전자라고 불렀다.

그러나 멘델의 학설이 학문적으로 지지를 받은 것은 그로부터 훨씬 후의 일이다. 왜냐하면 그의 가정에 대한 든든한 뒷받침이 될 수 있는 실체인 염색체가 1900년 경에 발견 됐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모든 것이 멘델의 가정대로였다. 염색체는 몸세포에 한쌍씩 들어있었고, 생식세포를 만들 때에는 한개씩으로 나눠졌다. 또 수정을 하게 되면 다시 한쌍으로 합쳐지는 것이 확인됐다.

그러나 염색체의 개수는 형질의 개수보다 훨씬 적었다. 사람의 염색체는 23쌍-46개, 쥐는 20쌍-40개, 초파리는 4쌍-8개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후에 발표된 많은 연구를 통해서 염색체는 유전자들이 일렬로 배열된 처음과 끝이 있는 물질이고, 유전자란 한개의 단백질을 만들어낼 수 있는 염색체상의 부분이며, 유전자의 근본물질은 DNA라는 화학물질이고, DNA는 네가지 종류(A, T, G, C)의 염기를 소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염색체를 잘 관찰하면 염색체의 이상에 의한 질병을 찾아낼 수 있다. 염색체의 한 부분이 없어졌거나, 다른 염색체와 서로 일부분이 바뀌었거나, 염색체의 개수가 많아지거나 혹은 적어진 경우다. 그러나 유전자의 DNA배열에 이상이 생겼을 때에는 염색체만을 관찰해서는 그 원인을 알아낼 수 없다. 대개는 분자생물학의 기술을 동원해 달라진 부분을 찾아낸다. DNA배열중 하나만 달라져도 심각한 유전병에 걸릴 수 있고 또 선천성 기형이 되거나 전혀 다른 형질로 나타날 수 있다.

사람은 꼬리는 없지만, 선천성 기형 중에서 척추의 마지막 부분이 닫히지 않고 벌어져 있는 아기가 태어난 사례도 있다.

이처럼 눈으로 확인되는 변이종을 발견해 내거나, X-선 화학물질 등을 이용해서 새로운 변이종을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찾아낸 동물들 가운데 인간의 특정질병과 유사한 질병을 가진 종류가 적지 않다. 예컨대 면역성이 전혀 없는 쥐, 암에 잘 걸리는 쥐, 고혈압에 걸릴 가능성이 많은 쥐 등이 그것이다.

염색체는 짝으로 이뤄져 있는데, 그중에서 서로 닮지 않은 짝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떤 종류는 암컷이, 어떤 종류는 수컷이 서로 닮지 않은 짝을 갖고 있다. 수컷이 서로 다른 두개의 성염색체를 지니는 형태를 XY형이라고 한다.

초파리는 XY형이지만 다른 포유류와는 암수를 결정하는 방식이 다르다. 초파리의 Y염색체에는 수컷이 되게하는 유전자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체로 초파리의 암수결정은 다른 염색체와 X염색체의 비율을 통해 이뤄진다. 즉 다른 염색체들이 한쌍씩이고 X염색체도 한쌍일 때에는 암컷으로, 다른 염색체들이 한쌍씩인데 X염색체가 한 개일 때에는 수컷으로 자라게 되는 것이다.

최근 포유류의 Y염색체에서 수컷이 되도록 하는 유전자를 찾아냈다. 이것은 사람과 쥐의 연구결과를 상호교환하는 과정에서 발견됐다.
 

특허받은 생쥐. 암에 잘 걸리는 특징을 갖고 있다.
 

1992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신희섭 교수
  • 정해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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