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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그리는 서울대 공학박사 ‘닥터앤닥터 육아일기’ 닥터베르

 

“아데노신에 인이 세 개면 아데노신삼인산….”
‘참을 인(忍)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는 속담이 이렇게 바뀌다니. 만화 속 개그 센스에서 이과 사람의 향기가 물씬 풍긴다. 아데노신삼인산(ATP)은 우리 몸과 근육의 에너지원으로 쓰이는 화합물이다. 만화인데 논문에서나 볼법한 참고문헌도 붙어 있다. 과학 학습용 웹툰인가 싶었는데, 주제는 놀랍게도 출산과 육아. 주인공은 전업주부 아빠다. 


9월 1일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를 시작한 ‘닥터앤닥터 육아일기’는 공학박사 아빠와 산부인과 전문의 엄마가 주인공으로 등장해 좌충우돌 육아 이야기를 다룬다. 과학 웹툰인지, 육아 웹툰인지 헷갈리는 묘한 매력의 웹툰을 그리는 작가 닥터베르를 만났다.

 

육아는 알고리즘? 팩트 체크는 기본


닥터베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이대양 작가는 처음부터 만화가를 꿈꾼 건 아니었다. 그는 올해 2월 서울대 에너지자원공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공학박사다. 나노입자를 석유 산업에 활용하는 기술을 연구했다. 2015년 국제학술지 ‘파우더 테크놀로지’에 관련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doi: 10.1016/j.powtec.2015.05.010  


하지만 2017년 큰 사고를 겪으면서 인생관에 변화가 생겼다. 그는 “경추 골절 사고를 겪은 뒤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있으면서 인생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며 “수험생들이 수능이 끝나면 하고 싶은 일을 적듯이 다시 일어나면 하고 싶은 일을 버킷리스트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일단 박사 과정을 마치고 싶었다. 2015년 태어난 아이에게 아빠의 삶을 알려줄 만한 것을 만들고도 싶었다. 그의 버킷리스트는 ‘중단한 박사 과정 이수’ ‘아이에게 아빠의 삶을 알려줄 수 있는 작품 남기기’ ‘도전적인 무언가 하기’ 등으로 하나씩 채워졌다.


어릴 때부터 그는 콘텐츠 제작에 즐거움을 느꼈다. 서울대 공대에 재학 중이던 2006년에는 ‘공대생의 사랑 이야기’라는 연애소설을 발표했다. 웹툰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지금도 반려동물, 공시생, 탈모 등을 다룬 노래를 작곡하고, 파워포인트로 뮤직비디오를 만들어 유튜브에 업로드하고 있다.
만화도 빼놓을 수 없다. 콘텐츠 제작에 흥미를 느끼게 된 것도 학창시절 연습장에 끄적인 만화가 친구들 사이에서 호평을 받으면서였다. 이 작가는 “당시에는 재밌다고만 생각했지, 만화가를 직업으로 하게 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그의 첫 도전은 물리 학습만화였다. 야심차게 네이버 도전 만화에 연재를 시작했다. 하지만 반응이 영 별로여서 얼마 지나지 않아 접어야 했다. 그는 첫 도전 실패에 대해 “물리에 대한 수요층이 많지 않은 데다가 독자들이 웹툰으로 공부하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간과했다”고 분석했다. 
사람들이 더 가벼운 마음으로 웹툰을 보면서 공감도 얻을 수 있는 주제는 없을까 고민했다. 최근 자신의 생활을 돌아보니 답이 나왔다. 3년간의 육아 경험을 웹툰에 담아 보자. 


그래도 공학박사의 피는 못 속였다. 육아도 ‘알고리즘’의 차원에서 접근했다. 예를 들어 간식의 경우 ‘아이가 밥을 먹으면 간식을 준다’는 규칙을 정하고, 아이가 밥을 먹지 않았을 때는 간식을 주지 않았다. 대신 식사 메뉴 교체를 요구할 권리를 한 번 제공했다.


이 작가는 “아이와 내가 잘 공존하려면 예측 가능한 규칙 내에서 일관된 결과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하는데, 아이들은 일반적으로 좀 더 본능적이고 원초적”이라며 “감정적인 접근을 하면 오히려 실망이 커질 수 있더라”라고 말했다. 실제로 많은 육아 서적에서 감성적인 접근보다는 이성적인 접근, 일관성 있는 루틴을 강조한다. 


그가 만화에서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팩트 체크’다. 이때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 아내다. 산부인과 전문의로서 의학적인 내용을 자문한다. 웹툰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만큼 에피소드의 방향도 조언한다. 이 작가는 “특히 의학적인 내용을 비유적으로 설명할 때 많은 도움을 받는다”고 말했다.


또한 이 작가는 과학이나 의학 관련 내용을 다룰 때면 참고한 논문을 반드시 주석으로 달아 정보의 출처를 정확히 밝힌다. 그는 “독자에게 신뢰를 주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웹툰을 정식으로 연재하기 전까지는 무료 프로그램과 30만 원 수준의 저가 태블릿PC로 작업했다. 그는 “만화가를 꿈꾸는 청소년이라면 장비에 무리하게 투자부터 하기보다는 콘텐츠를 자주 제작해 보는 게 훨씬 도움이 될 것”이라며 “가벼운 도전부터 경험을 쌓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생명과학이든 기계공학이든 역사든 철학이든 한 분야를 전공하거나 전문가 수준의 관심을 가지라는 조언도 남겼다. 그는 “한 분야를 파고들다 보면 그 속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를 전할 수 있게 된다”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경험을 대중적으로 잘 풀어내는 게 성공적인 콘텐츠를 만드는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2019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신용수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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