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만간 인간의 췌장을 가진 쥐가 돼지의 뱃속에서 태어날지도 모르겠다. 7월 26일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나카우치 히로미쓰 일본 도쿄대 교수팀이 사람과 동물의 이종간 배아 실험에 대해 처음으로 자국 정부의 허가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연구팀은 생쥐의 배아에 사람의 유도만능줄기세포(iPSC)를 주입한 ‘키메라 배아’를 만들고 이를 대리모가 될 동물에 이식해 키우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배아 14.5일 지나면 장기 형성
그간 키메라 배아 연구는 기술적인 문제보다는 윤리적인 문제와 법적 규제로 제한돼왔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키메라 배아 연구가 늘면서 동물복지 등 윤리적 논란이 계속 발생하자 2015년 9월 “인간의 유도만능줄기세포를 다른 척추동물의 낭배형성(gastrulation·내배엽, 중배엽, 외배엽이 형성되는 단계) 이전 단계 배아에 주입하는 연구에 대해서는 연구비를 지원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쥐의 배아는 수정 이후 10.5일 정도가 지나면 신경관 형성이 시작되면서 뇌가 발달하고, 14일이 지나면 장기가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조직과 장기 분화 가능 여부가 줄기세포 관련 생명윤리의 핵심인 만큼 진정한 의미에서 생명체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그간 일본 정부도 사람 세포를 가진 동물 배아를 14일 이상 배양하거나 이를 다른 동물에 착상시키는 것을 법으로 금지했다. 하지만 올해 3월 이런 연구 지침을 개정해 키메라 배아를 만들고 대리모 동물에 착상시킨 뒤 분만하는 시험까지 허용하기로 했다. 2012년 야마나카 신야 교토대 교수가 유도만능줄기세포 연구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는 등 줄기세포 연구에서 일본이 앞서면서 이 분야를 선점할 수 있도록 정책 기조를 바꿨다.
나카우치 교수팀은 쥐(mouse)의 배아에 사람 세포를 주입한 키메라 배아를 만든 뒤 여기서 장기가 형성되는 14.5일까지 배양하는 것을 일차적인 목표로 삼고 있다. 이 단계가 성공적으로 끝나면 이후 키메라 배아를 대리모 돼지의 자궁에 착상시켜 최대 70일 동안 키울 계획이다. doi: 10.1038/d41586-019-02275-3
나카우치 교수는 ‘네이처’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실험은 키메라 배아로 특정 장기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번에는 췌장을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 미국 솔크생물학연구소는 세계 최초로 돼지의 수정란에 사람의 유도만능줄기세포(iPSC)를 주입한 키메라 배아를 만들어 2017년 발표한 바 있다. 사진은 4주 된 키메라 배아다.
돼지 배아에 인간 세포 넣은 ‘키메라 배아’
실제로 과학자들이 키메라 배아 연구에 주목하는 이유는 부족한 장기 수급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한국도 장기 공급이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질병관리본부 장기이식관리센터 통계에 따르면 장기이식을 기다리다가 숨진 환자는 2018년 기준 하루 평균 5.2명에 이르렀다.
장기 부족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그간 학계에서는 돼지의 각막, 췌도 등을 사람에게 이식하는 이종간 장기이식 연구를 진행해왔다. 하지만 초급성 거부반응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이식을 받는 쪽이 혈청 항체를 보유한 경우 이식된 장기가 수 분 내에 항원항체반응으로 신체의 공격을 받아 혈전이 생기고 괴사를 일으키는 것이다.
키메라 배아는 이런 이종간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키메라 배아는 특정 장기를 생산하지 못하도록 유전자를 교정한 동물의 초기배아(8세포기~배반포)에 사람의 유도만능줄기세포를 주입해 만든다.
이 배아를 대리모에 착상시킨 뒤 키우면 다른 동물의 몸에서 사람 세포로 이뤄진 장기가 만들어진다. 이는 하나의 배아에서 서로 다른 종의 세포가 보완적인 작용을 하기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예를 들어 췌장을 만들지 못하는 돼지의 배아세포에 사람의 유도만능줄기세포를 주입해 키메라 배아를 만들면 이 키메라 배아는 췌장으로 분화하게 된다. 돼지의 몸에서 분화했지만 온전히 사람의 세포로 구성된 췌장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는 기존 연구에서도 확인됐다. 일본 도쿄대 의과학연구소는 서로 다른 동물의 키메라 배아를 만든 뒤 여기서 특정 장기를 만드는 데 성공해 2010년 국제학술지 ‘셀’에 발표했다.
당시 연구팀은 래트(rat)의 배아세포에 쥐의 유도만능줄기세포를 주입해 키메라 배아를 제작했다. 연구팀은 키메라 배아의 결과를 맨눈으로 확인하기 쉽도록 검은색 쥐와 흰색 래트를 이용했는데, 실험 결과 쥐와 래트의 세포를 모두 가진 얼룩무늬 래트가 태어났다.
또 연구팀은 발생 과정에서 췌장을 만들지 못하는 쥐에 래트의 유도만능줄기세포를 주입했고, 그 결과 이 줄기세포가 췌장으로 분화해 래트의 췌장을 가진 쥐가 태어났다고 밝혔다. 췌장의 혈당 조절 기능도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쥐 배아는 래트의 세포를 가졌지만 정상적인 쥐로 자랐고, 수명도 정상 쥐와 비슷했다. doi: 10.1016/j.cell.2010.07.039
그렇다고 모든 동물로 키메라 배아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키메라 배아는 유전적으로 유사한 동물 사이에서만 가능하다. 쥐의 배아세포에 래트의 유도만능줄기세포를 주입하거나, 돼지의 배아세포에 사람의 유도만능줄기세포를 주입했을 때는 키메라 배아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돼지의 배아세포에 래트의 유도만능줄기세포를 주입하면 키메라 배아가 형성되지 않는다. 돼지와 래트는 계통적으로 멀기 때문이다. 미국 솔크생물학연구소는 이런 내용을 실험으로 확인하고 2017년 국제학술지 ‘셀’에 발표했다. doi: 10.1016/j.cell.2016.12.036
韓, 인간화된 돼지에서 인간 면역세포 생산
국내에서도 키메라 배아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건국대 인간화돼지연구센터는 올해 5월 14일 사람의 유도만능줄기세포를 면역결핍돼지 배아에 이식하는 연구에 대해 정부의 승인을 얻었다. 다만 일본은 키메라 배아에서 특정 장기를 키워 대리모 동물에서 출산하는 시험까지 허용하는 반면, 우리 정부는 장기 배양까지만 허가하고 있다.
건국대가 2014년 만든 면역결핍돼지는 면역세포 발달에 필수적인 ‘재조합활성유전자(RAG2)’와 ‘인터류킨2 감마수용체 유전자(IL2RG)’를 동시에 제거해 면역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T세포와 B세포가 생성되지 않는다. 면역반응에 관여하는 흉선도 발달하지 않는다.
연구팀은 이 돼지에 사람의 유도만능줄기세포를 주입해 면역세포로 분화시켜 사람의 면역체계를 가진 ‘인간화된(humanized) 돼지’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인간화돼지연구센터를 이끄는 김진회 건국대 줄기세포재생공학과 교수는 “면역결핍돼지에서 T세포, NK세포 등 다양한 면역세포를 생산해 이를 항암 보조제로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항암 치료에는 환자의 면역세포를 이용해 암세포를 제거하는 면역 항암 치료법이 많이 쓰이고 있다(2018년 노벨 생리의학상이 수여된 분야이기도 하다). 환자의 면역세포를 추출한 뒤 이를 배양해 환자 몸에 주입하는 것이다. 하지만 면역세포를 배양하는 동안 환자의 면역력이 약해질 수 있다. 이때 인간화 돼지를 이용해 환자의 면역세포와 동일한 면역세포를 생산하고 이를 환자에게 주입할 수 있다.
또 사스(SARS),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등 급성 호흡기 질환이 유행할 경우 항체를 만드는 B세포를 인간화된 돼지로 생산해 미리 비축했다가 사용할 수도 있다. 현재 시험관에서 배양해 만드는 인공혈액도 인간화된 돼지를 이용하면 훨씬 더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
다만 아직 갈 길이 멀다. 김 교수는 “한국은 실험에 대해 윤리적인 규제가 과한 측면이 있다”며 “장기적인 의료 발전을 위해서는 임상은 허가하되 임상에서 나타나는 위험 요소를 엄격히 규제하는 방향으로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