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중시체(水中屍體)는 물속에서 발견된 시체를 통칭하는 말이다. 익사로 사망한 익사체만을 뜻하는 건 아니다. 입수 전 질병이나 입수 전 또는 수중에서 발생한 부상, 음독 후 투신, 살해 후 투기 등 수중시체는 익사 외에도 여러 이유로 발생한다. 따라서 수중시체는 사후검사를 통해 사망 원인을 확인해야 한다. 특히 수중시체는 대부분 부패한 상태로 발견돼 검시에 어려움이 많은 만큼 더욱 세심하게 다뤄야 한다.
2012. 07. 02 오전 7시 버려진 택시에서 혈흔 발견
2012년 7월 2일 오전 7시경 전북 김제군 인근 국도에서 사고가 난 택시가 방치돼있다는 연락을 받고 수사팀이 출동했다. 택시가 발견된 국도는 몇 개의 시가 서로 인접한 지역이지만 야간이나 새벽에는 매우 한적한 곳이었다. 차량 앞쪽은 심하게 손상된 상태였다. 보호난간에 부딪혀 범퍼는 분리돼 있었고 번호판은 떨어져 나가 있었다. 하지만 택시 자체는 갓길에 비교적 안정된 모양으로 주차된 상태였다.
조심스레 차량의 문을 열었다. 그 순간, 단순 교통사고이기를 바랐던 마음이 헛된 희망이었음을 직감했다. 어지럽게 널려진 잡동사니와 동전들, 택시를 불태워버릴 작정이었는지 꺼진 채로 발견된 불에 탄 화장지 더미, 그리고 택시기사가 신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샌들 한쪽이 눈에 들어왔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띈 건 바로 혈흔이었다. 보조석 시트부터 목 받침대 위쪽까지 많은 혈흔이 묻어있었다. 강력사건일 가능성이 커 보였다. 먼저 도착한 과학수사대 요원들과 함께 보호복과 마스크, 라텍스 장갑으로 단단히 무장하고 합동 감식을 시작했다.
우선 차량 바깥에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유류지문을 채취하기 위해 차량 외부를 살폈다. 트렁크 손잡이에서 혈흔이 확인됐다. 운전석과 보조석 그리고 운전석 뒤편 좌석에서도 혈흔이 발견돼 이를 채취했다. 차량 내부에 진동하는 피비린내가 감정을 자극했다. 사건 현장을 수없이 조사했지만, 냄새에 의한 자극은 언제나 낯설다.
다시 정신을 집중해 차량을 살피던 중 전혀 예상치 못한 흔적을 발견했다. 운전석 뒤쪽 가죽시트에 콘크리트 가루가 묻어있었다. 콘크리트 가루는 일정한 배열로 3개의 구멍을 만들었다. 벽돌에 의한 흔적일까. 이 가루가 벽돌에서 온 것이라면 적어도 승객을 태우는 택시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그날 오후 벽돌 공장을 방문해 그 가루가 3개의 구멍이 뚫려있는 가로세로 각각 약 10cm, 40cm, 무게가 약 4kg인 콘크리트 벽돌의 것임을 확인했다. 벽돌은 왜 택시 안에 실려 있었을까?
생존 가능성은 적어 보이지만 택시기사를 찾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했다. 차량과 관련된 사건에서는 트렁크 안에서 결정적인 증거가 나오거나 시체가 발견되곤 한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뒤로 한 채 조심스레 트렁크 문을 열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차량 뒷문에서 제법 깨끗한 지문을 채취하는 데 성공했지만, 이 차량은 수많은 승객이 타고 내리는 택시가 아닌가. 지문이 나온다고 해도 지문의 주인이 누구인지, 또 알리바이는 없는지 확인해야 하는 만만찮은 일들이 남아있었다.
2012. 07. 02 오후 5시 수사 회의, 피해자는 어디에
사건 접수 10시간 뒤 수사 회의가 열렸다. 현장에서 발견된 혈흔과 기타 증거물들은 불행히도 택시기사의 사망을 암시하고 있었다. 명백한 강력사건이었다. 용의자를 찾기 위해 차량 외부에서 채취한 지문을 지문자동검색시스템(AFIS)에서 등록된 자료와 비교했다. 동시에 수사 인원 200여 명의 협조를 얻어 주변 산과 저수지에서 사라진 피해자를 찾는 수색 작업에도 돌입했다.
우리는 차량에서 발견된 콘크리트 벽돌의 흔적을 토대로 사라진 피해자가 물속으로 던져졌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아마도 벽돌은 피해자의 몸이 영원히 물 위로 떠 오르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사용됐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물속에서 사망했든 사망한 이후 물속으로 던져졌든 물속에 들어간 시체는 가라앉는다. 이후 시체는 물의 온도에 따라 점차 부패하는데, 그동안 몸속에서 혐기성 세균의 대사로 인해 여러 가지 가스가 발생한다. 이 가스가 수압과 시체의 무게를 이겨낼 수 있을 정도로 발생했을 때 시체는 물 밖으로 떠오른다.
따라서 시체가 가라앉은 곳의 수온과 수심, 그리고 시체의 무게가 부유를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가 된다. 사건 당시 평균 기온은 27~30도로 한여름이었다. 그리고 피해자는 55~60kg 남짓한 체구로 추정됐다.
현장 근처에는 마침 시체를 숨길만 한 저수지가 여럿 있었다. 저수지의 수심은 5~10m. 그동안 실험과 경험을 토대로 계산했을 때, 만약 피해자가 물속에 있다면 약 3일 뒤 몸속 가득 부패 가스를 품은 채 떠오를 것이다.
사건으로 돌아가기 전에 잠시 익사에 대해 살펴보자. 일반적으로 익사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공기 대신 물이 기도를 막으면서 발생하는 질식이다. 익사에 이르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기껏해야 5~8분이다. 하지만 이는 사고자의 부상이나 손상 정도, 질병이나 약물, 음주 같은 신체 상태와 민물이나 바닷물 같은 물의 특성 등 상황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익사 과정에서는 일반적으로 다량의 물을 흡입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양쪽 폐의 팽대와 가슴막 삼출액 증가, 폐부종, 출혈 등 조직학적 변화가 생긴다.
이처럼 물에서 발견되는 수중시체의 경우 시체 외부에서는 사인을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중요한 단서를 찾기가 어렵다. 미약한 선홍색 시반이나 입모근이 수축해 형성되는 아피(닭살), 익사에서 주로 나타나는 포말괴(코와 입에서 발견되는 거품 덩어리)의 유무가 그나마 수중시체에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단서다. 하지만 정확한 사인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부검이 필수다.
2012. 07. 05 오후 3시 다시 떠오른 피해자의 시체
수사를 시작한 지 3일이 지났다. 그동안 현장 감식과 회의를 통해 사건을 어느 정도 정리할 수 있었다. AFIS 검색 결과 차량 외부에서 발견된 지문의 주인은 용의자인 것으로 추정됐다. 성폭력과 특수강도 관련 전과가 있었다. 하지만 3일 동안 수많은 인원이 수색 작업에 동원됐는데도 피해자가 발견됐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오후 3시경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피해자의 차량이 발견된 곳으로부터 약 4km 떨어진 저수지에서 피해자로 보이는 수중시체가 발견됐다는 것이다. 만약 이 수중시체가 피해자라면 예상대로 3일 만에 다시 떠오른 셈이다.
부패 분석은 과학이다. 범인은 피해자가 영원히 떠오르지 못할 것으로 믿었겠지만, 수심 10m의 압력에서 57kg의 몸무게와 4kg의 콘크리트 벽돌을 3일 만에 이겨내는 부패 가스의 부력은 미처 고려하지 못했을 것이다.
피해자가 깜깜한 물속에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얼마나 많았을까. 바로 저수지로 향했다. 더운 날 수중시체를 물 밖으로 꺼내면 부패가 너무 빨리 진행돼 수사가 더욱 어려워진다. 수색대에 신신당부해둔 덕분에 시체는 여전히 물에 있었다. 피해자는 엎드린 채 녹색 반소매 셔츠를 입고 있었다. 하의는 벗겨져 있었으며 한쪽 발에만 샌들이 신겨있었다. 첫날 택시에서 먼저 발견된 샌들이 비로소 짝을 찾았다.
물 밖으로 피해자를 꺼내기 위해 시체를 뒤집는 순간 목에 감긴 검은색 천이 보였다. 피해자를 끌어내는 데 목 부분이 묵직하다. 시체를 거의 땅 위로 끌어올린 뒤에야 수사팀은 콘크리트 벽돌이 목에 묶여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목에 감긴 검은색 천은 피해자의 바지로 추정됐다. 천으로 목을 졸라 사망했을 가능성도 있는 만큼 묶인 세기와 방법부터 확인했다. 사망 전 피해자가 물로 던져졌다면 익사의 가능성도 있다. 시체의 머리와 얼굴에서는 다수의 열창(찢어진 상처)과 멍이 보였다. 천에 의한 교사(絞死), 익사 또는 두부 손상에 의한 사망 가능성이 있음을 보고하는 것으로 검시를 마쳤다.
정황상 발견된 수중시체는 피해자가 분명했다. 하지만 지문이나 유전자를 통해 신원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수중시체는 물속에서 인체의 지방이 가수분해돼 지방산염 등으로 변하는 시랍화가 진행된다. 또 손가락과 발가락에서는 표모피(피부가 물을 흡수해 하얗게 주름지는 현상)가 형성된다. 게다가 인양 후에는 부패가 급속하게 진행된다. 지문채취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인양과 동시에 지문을 채취해야 그나마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우리나라는 전체 성인의 지문을 자료화한 대표적인 국가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범죄나 사고현장에서 지문을 채취해 신원을 확인하는 기법이 발전해왔다. 수중시체의 지문채취에는 ‘고온습열처리법’이 사용된다. 고온습열처리법은 지문채취가 어려운 상태의 손가락을 끓는 물에 담가 순간적으로 지문을 팽창시켜 채취하는 기법이다. 우리나라 과학수사계가 자체 개발한 기법으로, 미국연방수사국(FBI) 등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기법이다.
수사팀은 고온습열처리법을 이용해 수중시체에서 지문을 채취했다. 그리고 피해자가 사라진 택시기사임을 확인했다. 이미 형사팀은 살인 및 시체유기 혐의로 용의자를 검거하기 위해 출동했다.
현철호
전북대에서 의학박사를 받은 뒤 현재 전북지방경찰청에서 검시사무관으로 있다. 국내 최초로 곤충을 통해 사후 경과 시간을 추정하는 등 법곤충학 전문가다. 순천향대, 충남대 법과학대학원, 경찰수사연구원 외래교수를 역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