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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만 종 ‘생명의 설계도’ 만들어요”

이아랑 미국 국립보건원 연구원

▲ 7만 종 척추동물의 ‘유전자 설계도’를 만드는 ‘척추동물유전체프로젝트 (VGP)’가 최근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지금까지 진행된 다른 유전체 프로젝트에 비해 설계도의 정확도가 월등히 높다.

 

‘10마리에서 4마리로’. 
지난 40년간 전 세계 척추동물 개체수는 60%나 감소했다. 반백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벌어진 일이다. 진정 공룡 멸종에 버금가는 지구의 6번째 ‘대멸종’이 진행되고 있는 걸까. 전 세계 과학자들은 대책 마련에 나섰다. 현존하는 척추동물 7만 종의 ‘생명의 설계도’를 만드는 ‘척추동물 유전체프로젝트(VGP·Vertebrate Genomes Project)’를 시작했다. VGP에서 핵심 역할을 맡은 이아랑 미국 국립보건원(NIH) 국립인간유전체연구소(NHGRI) 연구원을 만나 자세히 들어봤다. 

 

 

 

 

“카카포라는 앵무새가 있어요. 뉴질랜드 특정 섬에 150여 마리만 생존해 있다고 알려진 멸종위기종이죠. 이 새를 보존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정확한 표준유전체를 구축하는 겁니다.” 


6월 21일 서울대에서 만난 이아랑 연구원은 VGP의 목표를 이 같이 설명했다. VGP에는 12개 나라, 50여 개 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그는 VGP 어셈블리(유전자 조립) 그룹의 유일한 한국인 과학자로, 척추동물에서 읽어낸 DNA 염기서열을 재조립해 해당 동물의 ‘설계도’인 표준유전체를 구축하고 있다. 

 

99.99% 정확한 설계도 만든다


VGP는 지난해 9월, 3년간의 연구 끝에 척추동물 14종의 표준유전체를 처음 공개했다. 여기에는 카카포(Strigops habroptilus)와 같은 멸종위기종뿐만 아니라 언어학습 능력이 있다고 알려진 금화조(제브라 핀치·Taeniopygia guttata), 알을 낳는 포유류인 오리너구리(Ornithorhynchus anatinus) 등 독특한 특성을 가진 종들이 포함됐다. 일부는 과거에도 유전체 분석 연구가 이뤄졌던 종들이다.

 
하지만 이 연구원은 “정확도가 다르다”고 강조했다. 그는 “VGP에서 발표한 표준유전체는 정확도가 99%가 넘는 고품질”이라며 “표준유전체의 염기서열을 다른 세포에 주입해 키우면 원래 생물로 자랄 수 있을 정도로 정확한 유전체를 구하는 것이 VGP의 최종 목표”라고 말했다. 정확하고 완성도 높은 표준유전체만 있다면 빙하시대 매머드도 되살릴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2004년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법(NGS·Next Gene-ration Sequencing)이 상용화된 이후 다양한 생물종의 유전체 분석 연구가 쏟아졌다. NGS 방식은 DNA를 100~500염기쌍 길이로 짧게 잘라 염기서열을 읽은 뒤 한꺼번에 조립하는 방식이다. 많은 양의 유전체를 고속으로 분석할 수 있는 대신 정확도가 떨어졌다. 가령 관심 있는 유전자 부분이 빠져 있거나 위치가 바뀌곤 했다. 


VGP 연구팀은 3세대 염기서열 분석법인 ‘롱 리드(long read)’ 방식을 사용해 이런 단점을 보완했다. DNA를 적게는 1만 염기쌍에서 많게는 300만 염기쌍 길이로 잘라서 읽은 뒤 순서대로 조립해 나갔다. 반복되는 리드끼리 이어붙이고, 이어붙인 염색체를 다시 방향을 맞춰 연결하고 빈 공간을 메웠다. 


여기서 이 연구원의 활약이 빛났다. 그는 일일이 사람이 조립에 관여하지 않고도 질 높은 표준유전체를 얻을 수 있도록 어셈블리 자동화 매뉴얼을 만들었다. 그는 이를 레시피를 만드는 작업에 비유했다. 돼지고기와 김치라는 재료로 김치찌개를 만드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어떻게 조리해야 효율적으로 최선의 맛을 낼 수 있는지 고민한 결과물이 레시피다. 


마찬가지로 그는 분석하려는 대상과 다양한 유전체 분석, 조립 기술이 있을 때 이것들을 어떻게 단계별로 적용해야 질 높은 표준유전체를 얻을 수 있을지 결과를 예상해 유전체 조립 ‘파이프라인’을 만들었다. 


먼 거리에 떨어져 있는 DNA 정보를 분석하는 데 쓰이는 팩바이오(PacBio) 염기서열분석법, 바이오나노 지노믹스 광학 지도 작성법 등을 조합해 약 100가지 레시피를 만든 뒤 1등을 뽑았다. 이렇게 나온 1.5버전의 파이프라인으로 현재 100여 개 게놈의 표준유전체를 구축하고 있다.

 

▲ 세계자연보전연맹 (IUCN) 적색목록에 심각한 위기종(CR)으로 분류된 앵무새 카카포. 전 세계에 150여 마리밖에 남지 않은 카카포의 표준유전체를 최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유전자에 각인된 종 분화 비밀 밝혀


VGP 연구팀은 척추동물 7만 종의 표준유전체를 차례로 확립해 나갈 계획이다. 일단 내년까지 1단계로 260여 종의 표준유전체를 완성할 예정이다. 


이러한 고품질 표준유전체는 생물종을 보존하는 목적 외에도 다양하게 쓰일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유전적으로 독특한 특성을 가진 생물종의 유전자 변이를 연구하는 데 사용된다. 기존의 유전체 분석 연구가 DNA 정보만으로 이뤄졌다면, VGP의 표준유전체 기술을 이용하면 RNA 정보, 후성유전적인 변화까지 세부적으로 연구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이철 서울대 생물정보및집단유전학 연구실 연구원이 VGP의 유전체 분석 기술을 이용해 한국 고유종 민물고기인 큰볏말뚝망둥어(Periophthalmus magnuspinnatus)를 연구하고 있다. 큰볏말뚝망둥어는 멸종위기종이기도 하지만 갯벌 위를 펄쩍펄쩍 뛰어다니는 독특한 특성을 보인다. 어류가 육지동물로 진화한 과정을 설명할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뿐만 아니라 척추동물 7만 종의 표준유전체가 확립되면 전체를 비교하는 연구도 가능해진다. 계통수를 보면 지금으로부터 약 5000만 년 전 목(目·order) 수준의 어마어마한 생물종 분화가 일어났다. 

 


이 연구원은 “7만 종의 표준유전체를 비교하면 공통조상에서 영장목, 고래목, 식육목 등이 갈라져 나온 요인이 무엇인지 연구할 수 있다”며 “또한 5차 대멸종에서 살아남은 종들의 특성을 연구해 6차 대멸종에 대비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환경보다 목표에 집중하길”


이 연구원은 사람의 표준유전체를 이용해 질병과 연관된 유전자를 찾아내는 연구에도 참여하고 있다. 미국에 오기 전 서정선 서울대 의대 유전체의학연구소장과 함께 한국인의 표준유전체 ‘AK1’을 새롭게 분석했던 것이 많은 도움이 됐다. 분석 결과는 2016년 ‘네이처’에 실렸는데, 당시 네이처로부터 “현존하는 유전체 분석 결과 중 가장 완벽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연구원은 이듬해인 2017년 미국 국립보건원 국립인간유전체연구소로 옮겨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국립인간유전체연구소는 1990년 인간 게놈 프로젝트(HGP) 를 처음 시작한 곳으로 올해 20주년을 맞는다. 이 연구원은 유전체 분석을 위한 고성능 슈퍼컴퓨터를 필요하면 언제든지 쓸 수 있다는 것을 연구소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았다.  


그에게 지치지 않고 계속해서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비결을 물었다. 그러자 “목표에 집중하는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어떻게 하면 하고자하는 일을 할 수 있을까에 집중하면, 환경이 바뀌면서 생기는 어려움이나 새로운 일에 대한 두려움은 부차적인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의 경력은 독특했다. 컴퓨터공학 전공으로 학부와 석사를 마치고 돌연 의대로 진학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진짜’ 데이터를 이용해 알고리즘을 짜보고 싶다는 목표가 생겨서다. 


그는 “앞으로 여성에게만 나타나는 유전적 변이를 연구해보고 싶다”며 새로운 목표를 밝혔다. 출산과 같은 신체 변화가 어떤 후성유전적 유전자 발현을 야기할지 관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두 아이의 엄마인 그는 “출산과 육아는 분명 힘든 일이지만 여성이라는 것을 한계가 아닌 장점으로 활용하고 싶다”며 “과학을 하겠다는 목표가 있다면 성별이나 주변 환경에 구애받지 말고 일단 도전해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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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이영애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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