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퍼드대는 글로벌 인재를 육성한다는 목표에 맞춰 학생들의 진로 탐색을 위해 전공 분야에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많이 제공한다. 그 중에서 나는 연구 인턴십과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경험했다.
연구 인턴십에 참여한 지는 올해가 벌써 3년째다. 전공을 살려 화학 연구실에서 연구 인턴십을 하고 있다. 연구 인턴십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겁부터 내는 친구들이 있는데,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스탠퍼드대 교수들은 학부생에게 비교적 관심이 많은 편이어서 연구를 하고 싶다고 찾아가서 얘기하면 대부분 받아준다. 내 경우에는 화학과 수업 조교에게 “혹시 지도교수님을 뵐 수 없을까요?”라고 물었더니 직접 교수에게 소개를 해줬다.
연구 인턴십의 경우 학기 중에는 수업이 있어 연구실에서 일할 수 있는 시간이 제한되지만, 여름방학에는 오롯이 연구에 집중할 수 있다. 가령 학과별로 ‘여름 연구 펠로우십’을 선발하는데, 여기에 선발되면 연구비를 비롯해 여름방학 동안 기숙사비와 생활비 7500달러(약 870만 원)를 지원받는다. 지원 자격이 그리 까다롭지는 않다. 연구를 지도해줄 교수와 연구실 멘토, 그리고 연구 주제를 정한 뒤 제안서만 성실하게 작성하면 대부분 선발된다.
여름 연구 펠로우십에 선발된 학생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돌아가면서 각자 연구 주제를 발표하고, 여름방학이 끝나갈 무렵에는 포스터 발표를 가진다. 일주일에 40시간 이상 연구를 하는 것이 펠로우십의 선발 조건인 만큼 여름방학을 이용해 대학원생의 삶을 미리 경험할 수 있다. 말이 40시간이지, 실제로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것이 연구다.
1학년 여름, 처음으로 폴 웬더 화학과 교수 연구실에 들어갔을 때는 익숙하지 않은 탓에 실험을 준비하는 데만 한참 걸렸다. 실험을 시작해서 끝낼 때까지도 매번 예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고, 그 바람에 매일 계획이 틀어져 시간 낭비가 많았다.
대학원생 선배들은 동시에 실험을 3~4개씩 진행하는데도 수월하게 처리했다. ‘짬’에서 나오는 노하우가 중요하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꼈다. 이후 1년 이상 연구를 하면서 나도 차츰 시간 관리 요령을 익혔다. 덕분에 2학년 여름방학부터는 동시에 여러 실험을 관리할 수 있게 됐다.
여름 연구 펠로우십에서 얻은 가장 값진 교훈은 수업에서 배우는 화학과 실제 연구실에서 진행되는 화학이 많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동시에 화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확신도 생겼다. 처음에는 실험 결과가 잘 안 나와 좌절했지만, 실패를 반복하면서 많은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훌륭한 교수님들뿐만 아니라 대학원 선배들과 친분을 쌓으면서 앞으로 대학원에 진학해 화학 연구를 계속해나가야겠다는 마음을 굳히는 계기가 됐다.
올해 봄 학기에 세 달 간 피렌체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낸 경험도 여러모로 도움이 됐다. 사실 피렌체 교환학생은 진로보다는 휴식을 위한 선택이었다. 교환학생으로 지내면서 인턴십을 병행하는 경우도 있는데, 나는 한 학기 동안 전공인 화학 대신 미술, 미술사, 이탈리아어 등을 들으며 교양을 쌓는데 집중했다.
스탠퍼드대는 특정 대학과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대신, 피렌체에 있는 스탠퍼드 센터에서 수업을 들으면서 이탈리아 가정집에서 지내도록 한다. 그래서 한 편으로는 피렌체 현지 대학생들과 수업을 같이 듣지 못해서 아쉬웠지만, 교환학생으로 함께 간 스탠퍼드대 학생들과는 매우 돈독해졌다. 그리고 내가 머물렀던 이탈리아 가정집의 할머니와 지내면서 맛있는 집밥도 많이 먹고, 이탈리아어도 많이 늘었다.
사실 교환학생에 가기 전 이탈리아어를 조금 배웠지만 영어만큼 잘 하는 것이 아니어서 현지에서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예상보다 훨씬 빨리 이탈리아 생활에 적응했고, 언어도 금세 늘었다. 덕분에 나중에 박사학위를 받은 뒤에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생활하면서 그 나라의 문화와 언어를 배울 수 있는 직업을 찾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피렌체에서의 교환학생 경험 덕분에 내 적성과 미래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인 계획이 생긴 셈이다.
1학년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스탠퍼드대가 제공하는 진로 탐색 프로그램을 더 많이 알아보고 최대한 많이 참여했을 것 같다. 진로를 결정할 때 직접 경험해보는 것보다 좋은 것은 없기 때문이다. 이제 학부 생활이 1년 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못내 아쉽지만, 남아 있는 기간만이라도 할 수 있는 경험은 최대한 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