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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혈흔과 뼈가 말하는 살인사건의 진실

 

누군가 사라진 사건 현장에서 과학수사는 더욱 신중해진다. 단순 실종인지 강력 사건인지 알 수 없을뿐더러, 만약 범행을 은폐할 목적으로 깨끗하게 정리된 현장이라면 더욱 어려워진다. 마땅한 증거가 눈에 띄지 않는 현장에서 사라진 이의 상태를 파악하고 보이지 않는 시체를 검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2009. 04. 20.  루미놀이 밝혀낸 살인 현장


담배를 입에 물고 화투를 내리치며 종종 거친 말도 오가는 곳. 출동 순번을 기다리는 화물차 운전사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이곳은 몇 개의 컨테이너를 이어 만든 화물차 지입회사의 사무실이다. 


이 곳 사무실의 사장은 유도 등 운동으로 다져진 37세 건장한 남성이었다. 며칠 전부터 행방이 묘연해 가족으로부터 실종 신고가 접수됐다. 실종자가 성인인 경우 본인의 의지에 따라 잠시 연락을 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현장에 희미한 혈흔이 한두 방울 발견돼 과학수사가 필요하다는 요청을 받았다.


현장에 도착해 우선 혈흔을 관찰했다. 혈흔이 닦여 윤곽만 남은 윤곽혈흔이었다. 바닥과 천장, 책상과 의자 등 주변 집기를 꼼꼼히 살폈다. 보통 윤곽혈흔은 혈흔을 닦아야만 형성된다. 이곳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수사팀은 숨겨진 혈흔을 찾기 위해 밤이 오길 기다렸다. 현장 전체에 루미놀을 사용해 숨겨진 혈흔을 모두 찾을 생각이었다.


루미놀 용액과 과산화수소수를 혼합해 피에 뿌리면, 적혈구 속 헤모글로빈의 헴(heme)과 반응해 청백색의 강렬한 화학 발광이 일어난다. 이것으로 사건 현장에서 혈흔의 유무를 확인할 수 있다. 
어둠이 내려앉은 밤 10시, 이제는 루미놀이 활약할 시간이다. 촬영을 위해 카메라를 삼각대에 고정하고 시약을 분무했다. 노즐을 통해 뿌려진 시약이 닿는 모든 부위에서 푸르고 흰빛이 강렬하게 일었다. 환한 낮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깜깜한 밤이 돼서야 비로소 그 실체를 드러냈다. 죽인 자와 죽은 자, 그날 그들은 모두 거기 있었던 것이다.


현장에서는 이탈혈흔(움직이는 물체에서 떨어져 나온 혈액이 만든 혈흔)과 함께 접촉혈흔(혈액이 물리적 접촉에 의해 다른 물체로 옮겨지면서 생성되는 혈흔)의 일종인 닦인혈흔(혈흔이 물체에 닿아 움직이면서 변형된 혈흔)과 문지름혈흔(혈액이 다른 물체로 옮겨질 때 횡적 움직임에 의해 생성된 혈흔) 등이 발견됐다. 이탈혈흔을 제외하면 이날 현장에서 발견된 혈흔은 대부분 혈액이 묻은 물체와 다른 물체가 접촉해서 생성되는 전이혈흔이었다. 현장을 이미 누군가 청소했다는 뜻이다. 아마도 범인의 짓이었을 것이다.


쉼 없이 루미놀을 뿌리며 혈흔을 추적했다. 발광은 사무실 밖 공터로 이어졌고, 다시 20m 거리의 주차장까지 이어진 뒤 사라졌다. 아마도 피해자는 날카로운 물체나 둔기에 의해 상처를 입고 많은 피를 흘렸을 것이다. 가해자는 이미 사망한 피해자를 땅바닥에 끌고 주차장까지 힘겹게 옮긴 뒤 차에 싣고 현장으로 돌아와 혈흔을 닦고 사라졌을 것이다. 


혈흔 속 여러 가지 특징을 분석하면 범행 도구, 가격한 횟수, 피해자와 가해자의 움직임 등 다양한 요소를 추측할 수 있다. 마치 홀로그램처럼 혈흔은 피해자와 가해자를 현장으로 다시 불러내 사건 당시를 재연했다. 수사팀은 혈흔을 통해 현장의 목격자가 됐다.


혈흔 분석을 중심으로 이번 실종사건이 왜 살인사건일 수밖에 없는지 수사회의에 참석해 보고했다. 비록 피해자의 시체조차 발견되지 않았지만, 수사팀의 의견이 반영돼 사건은 실종사건에서 살인사건으로 전환됐다. 사건은 강력계 형사부서로 다시 배당됐다. 실종 당일을 전후로 사무실에 출입한 모든 화물차 기사들이 용의선상에 올랐고, 이후 통신 기록과 알리바이, 그리고 피해자인 사장과의 이해관계를 토대로 용의자가 특정됐다. 조사를 위해 용의자의 출두를 요청했지만, 그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실종자도 용의자도 완벽하게 사라졌고, 결국 사건은 오랫동안 미제로 남게 됐다.

 

 


 2014. 07. 26.  정화조에서 발견된 뼈


그로부터 5년 뒤인 2014년 7월 26일, 한 정화조에서 뼈가 발견됐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검시보다 현장 수습이 먼저였다. 포크레인을 불러 정화조를 꺼낸 뒤 정화조를 분해해 뼈를 수습하기로 결정했다.


수사팀은 수습된 뼈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먼저 성별, 신장, 나이 등 개인의 생물학적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뼈의 성장, 발달, 퇴보 그리고 변형 등을 살폈다. 성전환자를 제외하면, 성별의 선택지는 남성 또는 여성밖에 없다. 항상 50 대 50의 확률로 시작한다. 


일반적으로 성별을 구분할 때 남녀의 뼈 크기와 모양의 차이를 이용하는데, 그중에서도 골반과 두개골에 초점을 맞춘다. 이들 중 정확도가 높은 건 골반이다. 두개골은 70~80%의 확률, 골반은 90~95%의 확률로 성별을 파악할 수 있다. 


정화조 안에서 오랫동안 삭은 궁둥뼈와 엉치뼈를 조심스럽게 조립한 뒤 관찰을 시작했다. 입구는 폭이 좁은 심장 모양이고, 두덩밑각은 50~60도로 좁았다. 일반적으로 여성은 2차 성징이 끝나면 골반이 넓어진다. 따라서 해골의 성별은 남성일 확률이 높았다. 추가로 배쪽활과 궁둥두덩가지 안쪽면, 두덩밑 함몰 부위를 살폈다. 배쪽활은 궁둥결합면과 평행을 이루고, 궁둥두덩가지 안쪽면은 넓고 편평하며, 두덩밑 함몰은 오목하다. 이 또한 모두 남성의 특징이다.


다음으로는 두개골을 확인할 차례다. 대개 비계측적인 5점 척도검사를 이용해 각 부위에 점수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성별을 확인하는데, 목덜미뼈마루의 크기와 주름, 유양돌기의 크기와 모양, 눈확위뼈 가장자리와 융기, 미간부위의 융기, 그리고 아래턱융기를 확인한다. 1점에 가까울수록 여성, 5점에 가까울수록 남성이다. 조사한 두개골은 모든 부위가 4~5점으로 나타났다. 골반과 두개골 모두 피해자가 남성임을 가리켰다.


이제는 신장을 추정할 차례다. 거의 모든 뼈가 발견됐기 때문에, 대퇴골과 경골의 길이를 이용해 신장을 추정했다. 신장 추정 공식인 ‘1.26×(대퇴골 길이+경골 길이)+67.09cm(오차범위 ±3.74cm)’에 대퇴골 길이 43.6cm, 경골 길이 36.4cm를 대입해 계산한 결과 피해자의 키는 167.89cm 내외인 것으로 추정됐다. 


마지막으로 성별과 신장을 토대로 나이와 사망 원인을 확인했다. 일반적으로 나이는 두개골 봉합선의 폐쇄와 치아의 마모, 그리고 두덩뼈결합면의 변형 등을 확인한 뒤 I형부터 Ⅵ형으로 분류해 나이를 추정한다. 


가장 어린 I형은 두덩뼈결합면에 주름과 수평능선이 있고, 나이가 들수록 주름과 수평능선이 사라지는 대신 테두리가 마모된 흔적이 뚜렷이 나타난다. 피해자의 경우 두덩뼈결합면의 결이 매끈하고 수평능선이 형태만 존재하며, 결합면 테두리가 전체적으로 발달했다. 이는 제Ⅳ유형으로 35.2세 내외(±9.4세)로 추정할 수 있다.


167cm, 30대 중반의 남성, 이 사람은 누굴까? 왜 정화조 안에서 뼈로 남아야했을까? 우리는 뼈에 남아있는 흔적이 있는지, 그리고 혹시라도 소실된 뼈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해부학적 구조에 따라 모든 뼈를 맞췄다. 


뼈는 자극이나 손상을 받으면 스스로 재건되는, 살아있는 결합조직이다. 법의학적 측면에서는 사망 후 가장 마지막까지 유전자 검사를 할 수 있는, 신원 확인에 중요한 증거물이 된다. 보통 갈비뼈와 가슴뼈를 잇는 연골부위가 유전자 검사에 가장 적합하다. 


유전자 검사가 가능한지 확인하기 위해 긴 갈비뼈를 검시하던 중, 일부 갈비뼈의 가장자리 부위에서 패인 흔적을 발견했다. 이는 부식이나 사후 손상에 의한 흔적이 아닌, 예기의 흔적이었다. 


칼 같은 예기에 가슴 부위를 찔리면 상대적으로 약한 갈비뼈의 가장자리도 베이면서 흔적이 남는다. 흔적은 3, 5, 6, 7, 9번 갈비뼈, 오른쪽과 왼쪽 모두에서 다발성으로 형성돼 있었다. 이는 피해자의 옷에 남아있던 자창흔(날카로운 물건에 찔린 흔적)과 일치했다. 그렇다면 이 피해자는 누군가에게 가슴을 수차례 찔린 뒤 사망했고, 이후 정화조 안에 버려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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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현철호 전북지방경찰청 검시사무관
  • 에디터

    신용수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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