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5일 개봉하는 영화 ‘엑스맨: 다크 피닉스’는 뇌의 능력이 극대화된 진 그레이가 세상을 파괴하려는 악한 마음을 가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그는 상대방의 뇌 속 정보를 읽어내고 이를 이용해 자신이 원하는 대로 그들의 뇌 기능을 유도하고 행동을 조종한다. 엑스맨으로 성장했지만, 엑스맨의 가장 강력한 적인 다크 피닉스가 된 진 그레이. 다크 피닉스처럼 타인의 뇌를 자유자재로 조종하는 능력은 현실에서는 어디까지 가능한 걸까.
"뇌의 작동 원리를 밝히기 위해
1000억 개의 뇌 세포가 연결된 지도를 만드는
‘휴먼 커넥톰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아직 현실에서는 뇌 기능을 원하는 대로 조종하는 게 불가능하다. 인간은 뇌를 이루는 신경세포의 개별적 활성과 사멸 과정을 이해했고, 심지어 완전히 죽은 뇌세포를 살려내는 데도 성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뇌세포들이 만들어내는 고도의 정신 활동이 어떤 과정으로 일어나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 엑스맨 사상 가장 강한 캐릭터. 미국의 영화배우 소피 터너가 연기하는 진 그레이는 뇌의 능력이 극대화됐다. 다른 생명체를 제어해 지구를 파괴로 몰아 넣는다. 이미지는 영화 속에서 진 그레이의 눈빛이 붉게 물들며 초능력이 발동하는 모습.
2009년 ‘휴먼 커넥톰 프로젝트’ 시작
뇌 활동의 비밀을 밝혀내기 위해 과학자들은 뇌세포들이 해부학적으로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조사하고 있다. 뇌세포들이 모두 연결된 완벽한 ‘뇌 지도’를 만들 수 있다면 뇌의 작동 과정도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
대표적인 사례가 2009년 미국의 주도로 시작된 ‘휴먼 커넥톰(connectome·연결성) 프로젝트’다. 휴먼 커넥톰 프로젝트는 이름 그대로 인간의 뇌 속 신경세포들이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조사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잠시 시계를 반세기전으로 돌려보자.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팀이 1977년 최초의 유전자 분석기술인 ‘DNA 염기서열 결정법’을 개발했을 때, 그 기술로 한 사람의 유전자를 조사해 유전자 지도로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 돈으로 약 2조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었고, 기간도 10년이나 필요했다. 때문에 당시에는 인간의 유전자 지도를 완성한다는 생각을 ‘비현실적인 꿈’으로 치부하는 과학자들도 많았다.
조광현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는 “그간 유전자 분석 기술은 발전에 발전을 거듭했다”며 “지금은 한 사람의 유전자를 완전히 해독해 유전자 지도를 그리는 데 약 두 달의 기간과 수백 만 원의 비용이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살아있는 뇌를 관찰하는 영상 기술이 급속도로 발달했고, 현재는 이 기술이 뇌 지도를 완성하려는 커넥톰 연구의 핵심으로 꼽힌다. 조 교수는 “자기공명영상(MRI) 기술 중 하나인 ‘확산텐서영상(Diffusion Tensor Imaging)’은 뇌를 잘게 나눠 층별로 사진을 이어 붙이는 방식으로 3차원 이미지와 영상을 만들어낸다”며 “이렇게 찍은 뇌 조직에서 컴퓨팅 기법을 이용해 신경세포 사이의 연결망을 확인하는 작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확산텐서영상 기법으로 일반인 1200명의 뇌 영상이 촬영됐고, 이 자료는 인터넷 검색창에 휴먼 커넥톰 프로젝트 데이터베이스를 치면 등록절차를 거쳐 확인할 수 있다(db.humanconnectome.org). 전 세계 연구팀은 이 자료를 토대로 커넥톰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더욱 완벽한 뇌 지도를 제작하고 뇌의 작동 비밀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뇌세포 1억 개 중 지배적인 역할은 7%뿐
조 교수팀은 공개된 확산텐서영상 자료 중 100명의 자료를 골라 1억 개에 이르는 방대한 뇌세포가 만드는 신경 다발 사이의 커넥톰을 분석했다. 그 결과 정보의 흐름을 조종하는 과정에서 지배적인 역할을 하는 신경세포는 7~8%뿐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내용은 국제학술지 ‘아이사이언스’ 3월 29일자에 실렸다. doi:10.1016/j.isci.2019.02.017
대뇌 전두엽은 인지와 사고 능력을, 대뇌 기저핵은 말하기 능력을 담당하는 등 뇌의 특정 부위에 해당하는 정신 활동은 일부 확인된 상태다. 조 교수팀은 이미 밝혀진 뇌의 기능별 구역 164개에 존재하는 뇌세포 1억 개의 위치와 상호 연결 상태를 컴퓨터에 입력해 분석했다. 이와 동시에 정보의 흐름을 지배하는 최소 신경세포들의 모임을 의미하는 ‘최소지배집합(MDS)’이라는 개념도 도입했다.
만약 어떤 사람이 그림을 본 뒤 ‘저 그림 예쁘다’고 말했다고 하자. 이 때 A부터 D까지 뇌의 네 영역이 작동했다. 조 교수팀이 이들 영역 사이의 커넥톰을 확인한 결과, A는 B와 D 등 두 곳과 연결된 반면, C는 A 한 부위에만 시냅스로 연결돼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림이 예쁘다고 반응하기 위해서는 A가 B와 D를 지배하고 있는 만큼 사실상 뇌에서 A와 C만 작동하면 뇌 기능은 정상적으로 발현된다. 여기서 A와 C가 그림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활동을 생성시키는 뇌의 최소지배집합이 된다.
논문의 제1저자인 이병욱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박사후연구원은 “뇌에서 발견된 최소지배집합은 뇌 전체 구역에 존재하는 신경세포의 약 7% 수준이라는 사실을 처음 확인했다”며 “또 이들 최소지배집합은 쉽게 망가지지 않는다는 사실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흔히 뇌의 신경연결망은 복잡한 전력망이나 도로망에 비유되곤 한다. 만약 가장 중요한 전력 서버가 불타거나 지진으로 도로가 파괴되면 이들 전력망이나 도로망의 전체 시스템이 무너진다.
반면 뇌의 신경연결망은 이와 다르다. 이 박사는 “하나의 최소지배집합에 해당하는 신경세포들이 파괴돼도 다른 최소지배집합이 그 기능을 대신할 수 있도록 뇌의 신경연결망은 중첩 구조를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연구팀이 선충부터 쥐, 침팬지 등 동물의 뇌 속 최소지배집합의 연결 상태를 추가로 확인한 결과도 다르지 않았다. 이 박사는 “뇌의 신경연결망은 매우 복잡하게 서로 중첩된 구조로 이뤄졌다”며 “융단 폭격을 가하지 않는 이상 갑자기 뇌 기능을 완전히 잃어버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조 교수는 “커넥톰 연구에서 얻은 자료를 토대로 뇌를 제어하는 기본 원리를 찾아낸 첫 번째 연구”라며 “최소지배집합이 파괴돼 뇌 기능을 잃는 과정을 면밀하게 밝혀내면 결국 뇌 기능이 발휘되는 원리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GPU 1개가 CPU 200개 역할
뇌에 존재하는 신경세포는 약 1000억 개에 이르고, 이들이 연결된 신경연결망은 약 860조 개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상조차 어려울 만큼 방대한 신경연결망에서 핵심이 되는 최소지배집합을 찾고, 그 기능을 온전히 밝히는 게 가능할까.
조 교수팀이 100명의 확산텐서영상 자료에서 1억 개의 신경세포를 특정한 뒤, 이들을 온전히 작동시키는 최소지배집합을 찾기까지 소요된 시간은 약 1년 4개월이다. 60개의 중앙처리장치(CPU)와 128GB(기가바이트)의 메모리를 각각 장착한 서버 5대로 분석한 결과였다.
조 교수는 “최근에는 그래픽처리장치(GPU) 1개를 활용한 병렬컴퓨팅 방식을 활용하면 CPU 200개에 해당하는 속도로 뇌의 신경연결망을 분석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며 “컴퓨터의 연산 속도가 계속 빨라지는 만큼 뇌의 신경연결망 지도를 만들고 이를 토대로 신경세포의 상호연관성과 기능의 발현 과정을 밝혀내는 게 불가능 한 일은 아닐 것”이라고 전망했다. doi:10.1016/j.neuroimage.2018.12.015
뇌의 작동 원리를 알아내면 뇌전증 환자의 발작을 멈추거나 사지마비 환자를 움직이게 만드는 데 활용할 수 있다. 신경이 망가진 사지마비 환자의 로봇 의수를 정교하게 만들기 위해 뇌 원리를 밝혀 제어하는 기술을 연구하는 김소희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로봇공학전공 교수는 “뇌의 작동 원리에 대해서는 아직은 모르는 게 많다”며 “다양한 연구를 통해 뇌의 비밀이 하나씩 밝혀질수록 뇌 손상으로 인한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