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05 무색, 무취, 독극물...니코틴 살인사건

봄꽃 축제가 한창이던 2016년 4월 22일 금요일, 자정을 약 10분 앞두고 112 종합상황실에 한 통의 신고가 접수됐다. “남편이 사망했다”며 한 여성이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필자는 과학수사팀과 함께 즉시 현장에 출동했다. 사망 장소는 경기 남양주시에 있는 한 아파트의 8층이었다. 정리가 잘 된 깔끔한 집의 작은방 바닥에 한 남성이 곧게 누워 있었다. 자정이 넘은 시간, 담당 형사는 신고자인 A 씨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사망한 남성 B 씨의 부인이었다. 갑작스러운 남편의 사망을 겪은 부인은 거실 소파에 앉아 바닥에 시선을 고정한 채 조사에 응했다.

 

 2016. 04. 22.  내인성 급사, 장기 손상 모두 고려


2016년 4월 22일 금요일 저녁, B 씨는 모처럼 가족과 함께 외식한 뒤 귀가해 술과 수면제를 먹고 잠이 들었다. 그는 한 달 전 각막 수술을 하고 3시간마다 안약을 넣어야 해 밤에 편히 잠을 잘 수 없어 수면제를 복용해왔다. 아내는 남편에게 안약을 넣어주기 위해 작은방에 들어갔다가 호흡이 없는 남편을 발견했다고 진술했다.


먼저 검시를 위해 변사자의 몸부터 확인했다. B 씨는 건장한 체격이었다. 시체에서 사후 강직은 없었으며, 양쪽 안구에서도 일혈점 등 특이한 점이 관찰되지 않았다. 구강과 다른 부위에서도 특별한 외상은 관찰되지 않았다. 다만 얼굴에 경미한 울혈이 확인됐다. (*일혈점. 피부나 점막 아래에서 발생하는 점상 출혈. 모세혈관이 터지면서 발생한다.)


이런 갑작스런 사망 사건의 경우 우선 내인성 급사를 고려할 수 있다. 성인의 경우 내인성 급사는 주로 심장 및 뇌혈관계 질환으로 발생한다. 내인성 급사는 특정 자극이 가해졌을 때 비교적 잘 일어나는데, 법의학에서는 이를 ‘유인(誘因)’이라고 한다. 육체적 자극, 정신적 자극 및 의료 행위 등이 모두 유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유인은 결국 일시적으로 심장에 과도한 부담을 주거나 혈압을 상승시키기 때문에 평소 심장과 뇌혈관 질환이 있는 경우 크게 영향을 받는다. 주로 관상동맥 질환이나 고혈압 질환이 나타나고 이는 사망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부인은 변사자가 평소 매우 건강한 사람이었으며, 한 달에 한 번 직장 동료들과 산악회 활동도 했다고 진술했다. 또한 음주와 흡연도 즐기지 않는다고 했다. 따라서 심장이나 뇌혈관계 질환에 의한 것으로 단정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두 번째로 내부 장기 손상 가능성을 고려했다. 육안으로는 외력에 의한 상처를 관찰할 수 없었지만, 내부 장기 손상으로 사망했을 가능성도 있다. 마지막으로 독극물도 있다. 독극물 사고는 대부분 섭취 시 오심, 구토, 호흡 곤란 등의 증상을 동반한다. 하지만 검시를 했을 때 시신에서 구토의 흔적은 발견하지 못했고, 사건 현장에도 구토의 흔적은 없었다. 하지만 부인이 구토의 흔적을 치웠다면, 사건은 미궁에 빠질 수 있다. 


발견 당시 상황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필요했다. 담당 형사로부터 부인의 진술을 듣던 중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보통 사람이 죽거나 다치면 119나 112에 신고하기 마련인데, 부인은 상조회사 대표번호로 전화해 “남편이 사망해 장례 절차를 밟으려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부인은 “너무 당황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상조회사에 전화했다”고 주장했지만, 이런 진술과는 다르게 부인은 너무나도 침착한 모습이었다.


뭔가 미심쩍었다. 변사자의 추정 사인도 명확하지 않았다. 타살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다. 부검을 의뢰하고 변사자의 휴대전화에 대한 디지털 증거 분석을 실시하기로 했다.

 

 2016. 04. 25.  부검에서 졸피뎀과 니코틴 검출


2016년 4월 25일 월요일 오전 8시 30분경, 변사자의 시체에 대한 부검을 진행했다. 부검의는 담당 형사에게 “간, 콩팥 등의 장기에서 울혈이 관찰됐고, 심장 관상동맥이 심하게 막혀있었다”며 “체내 혈액이 검붉게 변하고 응고한 것으로 볼 때 변사자의 사망 원인은 관상동맥에서 발생한 동맥경화에 의한 허혈성 심장질환으로 추정된다”는 1차 소견을 밝혔다. 그러면서도 부검의는 “이런 소견은 독극물에 의해 사망했을 때도 나타날 수 있어, 추후 약·독물 검사를 시행해 정확한 사인을 확인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사건 발생 뒤 한 달쯤 지난 2016년 5월 22일, 담당 형사로부터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시신에 대한 최종 부검 결과, 혈액과 위 내용물에서 졸피뎀과 니코틴이 검출됐다는 것이다. 혈중 농도는 졸피뎀이 0.4mg/L, 니코틴이 1.95mg/L였으며, 혈중 알코올 농도는 0.01% 미만이었다. 
부검의는 소견서를 통해 “변사자의 혈중 졸피뎀 농도는 독성에 해당하는 농도이며, 혈중 니코틴 농도는 치사농도로 봐도 무방하다”며 “심장 혈액이 검붉은 색으로 변했으며, 간과 비장, 신장 등의 장기들에 울혈이 생기는 등 중독에 관한 일반적인 소견들이 보인다”고 썼다. (*울혈. 혈액이 정맥 및 모세혈관에 고여 있는 현상)


졸피뎀은 불면증에 주로 사용되는 단시간 수면제로,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돼 있다. 이상 반응으로는 격앙, 흥분, 졸림, 어지러움, 피로감, 두통, 기억력 장애, 전율, 무력 및 운동실조 등이 있다. 졸피뎀의 혈중 치료농도는 0.08~2mg/L이며, 독성농도는 0.12~0.7mg/L, 치사농도는 1.6~7.7mg/L로 알려져 있다. 

 


니코틴은 담배에 들어있는 알칼로이드 성분으로, 중독성이 강해 흡연자들이 담배를 끊지 못하게 만드는 원인 물질이다. 적은 용량으로도 오심, 구토, 현기증, 극소 동공, 빈맥, 고혈압, 발한, 타액 분비 등 이상 반응을 일으킬 수 있으며, 과량을 복용할 시에는 탈진, 경련, 호흡 마비를 일으켜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성인의 최소 치사량은 40~60mg, 혈중 치사농도는 3.7~5800mg/L로 보고 돼 있다. 


일례로 니코틴 패치 22장을 피부에 붙여 자살한 사람에게서 확인된 혈중 니코틴 농도는 1.4mg/L였으며, 니코틴 패치를 여러 장 붙이고 담배를 연달아 피워서 심장마비로 사망한 사람의 혈중 니코틴 농도는 3.7mg/L였다.


부검의는 “심장의 병변이 있긴 하지만 사망에 이를 만한 정도는 아니었다”며 “여러 정황을 통해 변사자의 사인을 니코틴 중독으로 최종 판단했다”고 의견을 밝혔다. 하지만 변사자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 비흡연자였다.

2016. 08. 17.  계획살인 증거 확보

 

수사팀은 수사를 거듭하며 새로운 실마리를 찾아나갔다. 수사팀은 부인이 2016년 5월 10일 퇴직금을 신청하기 위해 남편의 직장을 찾았을 때 지인 C 씨와 동행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또한 부인의 통화 내역을 분석해 지난 2년간 남편보다 C 씨와 더 자주 통화하고 접촉했음을 확인했다.


수사팀은 C 씨의 행적을 쫓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6년 4월 15일, B 씨가 사망하기 불과 일주일 전, 니코틴 원액을 해외에서 구입한 사실을 확인했다. 이에 수사팀은 A 씨와 C 씨를 사건의 진범으로 판단하고 긴급 체포했다.


사건의 전말은 다음과 같았다. A 씨는 B 씨를 처음 만날 당시 수천만 원의 빚을 지고 있었고, 2013년 법원에서 파산 면책 결정을 받을 만큼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이 때문에 B 씨는 A 씨 가족에게 지속적으로 경제적 지원을 했다. 


하지만 A 씨는 2015년 5월 마카오에서 C 씨를 만나 내연 관계를 맺었다. C 씨 역시 카드 대금을 지불하지 못해 신용유의자(옛 신용불량자)가 됐고, 뚜렷한 직업이나 수입이 없는 상태였다. 두 사람은 이 같은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B 씨의 재산을 가로챌 방법을 궁리하기 시작했다.


A 씨는 B 씨 몰래 2016년 2월 혼인신고를 했다. 이전까지 B 씨와 A 씨는 사실혼 관계였기 때문에 재산 상속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없었다. 또한 2015년 12월부터 2016년 4월까지 신경정신과에서 우울증을 빌미로 수차례 졸피뎀 성분의 수면제를 처방 받았다. C 씨는 2016년 4월 순도 99%의 니코틴 원액을 사들였다. 


같은 달 A 씨는 B 씨의 자택에서 졸피뎀과 니코틴 원액을 B 씨에게 투여했고, B 씨는 결국 니코틴 중독으로 사망했다.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의 은인인 B 씨에게 인면수심(人面獸心)의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두 사람은 2017년 9월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이서정. 삼육간호대에서 간호학을 전공하고 경기북부지방경찰청 검시조사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간호사 근무 경험을 토대로 약물 관련 변사와 의료 사고 등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고 있다. noth1ng@hanmail.net

2019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이서정 경기북부지방경찰청 검사조사관
  • 에디터

    신용수 기자 기자

🎓️ 진로 추천

  • 법학
  • 의학
  • 화학·화학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