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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밍아웃' 통해 본 스테로이드 부작용

젊을수록 더 해롭다?

근육을 키우기 위해 아나볼릭 스테로이드 약물을 사용했다는 ‘약밍아웃(약+커밍아웃의 합성어)’ ‘약투(약+미투(Me Too))’ 고백이 유튜브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보디빌더들이 불법으로 약물을 투약하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피트니스 업계 종사자들뿐만 아니라 일반인, 심지어 청소년에게까지 약물이 만연해 있다는 폭로는 큰 충격을 낳았다. 약으로 만든 몸의 부작용을 상세히 짚어봤다. 

 

“15년 전 전국체전에 나가기 위해 스테로이드를 했습니다. 단기간에 몸을 만들려고 약물을 네 가지나 섞어 대량으로 투약했어요. 하지만 결국 대회에 못나가게 됐고, 곧바로 끊었는데, 그때부터 어마어마한 후유증이 시작됐습니다.”


아놀드 홍 씨의 목소리는 무겁고 진지했다. 유명 트레이너이자 피트니스 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1988년 데뷔해 2001년 ‘YMCA 전국보디빌딩대회’ 1위, 2001~2002년 ‘미스터서울 선발대회’ 1위 등 화려한 이력을 쌓은 전문 보디빌더다. 그는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과거 스테로이드 약물을 4개월 간 사용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고백했다. 2월 8일 서울 관악구에 있는 한 체육관에서 그를 만났다. 

 

탈모, 여유증, 발기부전···근육과 함께 얻은 것 

“보통 주변 사람이 약을 하면 별 생각 없이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라이벌이 어느 날 갑자기 몸이 너무 좋아져 나타나도 약물의 유혹을 느끼게 되죠. 1년만 먹어도 10년 동안 운동한 사람의 몸을 만들 수 있는 게 약물이니까요.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소탐대실(小貪大失)’입니다.”


홍 씨는 스테로이드 복용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2004년 5월부터 4개월간 스테로이드 약물인 데카듀라보린과 남성호르몬인 안드로겐을 주사로 투여하고, 빈혈과 근육 소모 질환 치료제로 개발된 옥시메토론과  에스트로겐 분비를 억제하는 항(抗)에스트로겐 경구제를 먹으며 고강도의 운동을 했다. 


“괴물같이 운동했다”고 그는 당시를 회상했다. 벤치프레스 머신에서 200kg의 바벨을 들어 올렸고, 100kg짜리 바벨 운동은 40회까지도 거뜬했다. 체내에서 동화작용을 하는 스테로이드 덕분이었다.
동화작용이란 몸속에서 지방을 태우고 단백질(특히 근육) 합성을 촉진해 전반적인 신진대사율을 높이는 작용이다. 당시 그의 몸(키 187cm, 몸무게 118kg, 체지방 5%)은 보디빌더 출신 배우이자 전(前) 미국 캘리포니아주지사인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전성기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다. 약을 끊자 심각한 근육통이 찾아왔다. 너무 무거운 중량을 들다 보니 인대가 손상되고 근육이 파열된 탓이었다. 양쪽 가슴에는 여성의 유방처럼 몽우리가 생겨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탈모가 생겼고 발기부전도 꽤 오랫동안 그를 괴롭혔다. 그는 “2006년 은퇴를 하고 11년 동안 대회에 나가지 못했다”며 “종합검진 결과 혈압과 간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높았다”고 말했다. 


그는 일반인들이 이러한 부작용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스테로이드에 관심을 보이는 것을 우려했다. “요즘에는 운동 경력이 길지 않은 일반인도 참여할 수 있는 보디빌딩 대회가 많아졌고, 몸매만 좋으면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일약 스타가 되는 분위기라 약물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부작용이 전신에 나타나는 이유 


스테로이드의 부작용은 사람마다 다르게, 몸 전체에 나타난다. 최근 유튜브 채널 ‘TV간고’를 통해 투약 사실을 고백한 김동현 트레이너는 엉덩이 피부 괴사, 성기능 장애, 분노 조절 장애 등을 호소했다. 여성 피트니스 BJ 이나현 씨는 약물 복용 이후 얼굴과 목소리가 남성화됐다고 말했다. 


임수 분당서울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스테로이드가 심장에 과부하를 일으키고, 내분비계를 변화시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유명 운동선수나 보디빌더 중에는 급성 심장마비로 사망한 사람이 적지 않다. 스테로이드 약물을 복용하면 심장근육이 커지고, 심장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과부하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또 스테로이드는 혈액 속 지방질의 패턴을 바꾼다. 좋은 콜레스테롤이라고 하는 HDL콜레스테롤이 덜 만들어지고, 나쁜 콜레스테롤인 LDL콜레스테롤 수치가 올라간다. LDL콜레스테롤은 동맥경화증을 유발할 수 있다. 


스테로이드는 체내 호르몬의 균형도 깨트린다. 실제로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은 스테로이드 호르몬의 일종이다. 세 개의 헥산 고리(hexane ring)와 하나의 펜탄 고리(pentane ring)로 이뤄진 유사한 화학 구조식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스테로이드를 체외에서 과다하게 주입하면 체내 테스토스테론 생산량이 급격히 줄어든다. 


테스토스테론은 95%가 고환에서, 약 5%가 콩팥 위 부신에서 만들어지는데, 스테로이드가 꾸준히 외부에서 들어오면 뇌는 더 이상 고환과 부신에 테스토스테론을 생성하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는다. 임 교수는 “체내 테스토스테론 농도가 높아지면서 남성성은 증가하지만 고환이 수축되고 정자 수가 감소해 생식력은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여성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스테로이드를 외부에서 공급하면 우리 몸은 이를 유사한 화학구조식을 가진 여성호르몬으로 착각하고, 더 이상 만들어내지 않는다. 그 결과 생리 주기가 불규칙해지고, 임신이 어려워진다. 또한 체내 테스토스테론 농도가 높아져 성대가 커지고, 유방의 크기가 작아지며, 여드름이 심해지는 등 남성의 특징이 나타난다. 

 

청소년기 호르몬 교란 특히 위험해 


“요즘 대회를 보면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의 몸이 저보다 더 좋을 때도 있습니다. 근육은 나이테처럼 시간이 지나야 커지는데, 의아한 일이죠.” 


홍 씨는 청소년들의 스테로이드 남용도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대학에 보디빌딩 특기자로 진학하기 위해, 또는 소속팀 성적을 높이기 위해 약물에 손을 대는 청소년 스포츠 선수들이 있기 때문이다. 


임 교수는 “성호르몬 분비가 시작되는 청소년기에는 특히 치명적”이라며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고 못 박았다. 그는 이를 ‘공장’에 비유해 설명했다. 20대 이후 성호르몬을 생산하는 공장이 몸 안에 생성된 이후에 약물을 투약하면 공장이 일시적으로 문을 닫게 되지만, 10대에 약물을 투약하면 이런 공장이 아예 세워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임 교수는 “약물을 일찍 시작할수록 근육량은 더 빨리 늘지만 부작용도 더 심해진다”며 “약을 끊어도 약해진 생식력이 회복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스테로이드가 뼈 성장을 촉진하다보니 성장판이 일찍 닫혀 키가 자라지 않는 부작용도 생길 수 있다.  


홍 씨는 “약물을 사용하지 않는 소위 ‘내추럴(natural)’로도 충분히 멋진 몸을 만들 수 있다”며 “정직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내추럴’ 대회의 도핑 검사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보디빌딩 대회는 주최 측이 참가자들의 약물 투약 사실을 알면서도 방조, 묵인한다는 게 업계의 정설이다. 도핑 검사 비용을 절약하고, 대회의 수준을 높인다는 이유에서다. 손정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도핑컨트롤센터 선임연구원은 “스테로이드뿐만 아니라 흥분제(스티뮬런트), 성장호르몬, 인슐린, 약물 복용 사실을 숨기기 위한 이뇨제까지 약 500가지 금지 약물을 모두 잡아낼 수 있는 분석 기술이 있다”면서도 “도핑 검사를 하지 않는 대회가 있어 선수들이 약물에 무분별하게 노출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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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이영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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