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다, 간다, 간다, 가자!!!”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증기 구름과 함께 75t 급 액체엔진을 장착한 시험발사체가 그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2018년 11월 28일 오후 4시, 황사가 짙게 끼어있던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시험발사체는 마침내 하늘로 솟구쳤다.
필자는 발사대에서 7km 떨어진 봉남등대 발사전망대에서 계속 환호성을 질렀다. 눈 한번 깜빡이지 못한 채 액체엔진 연소가 끝날 때까지 시험발사체를 지켜봤다. 같은 장소에서 발사를 구경하던 사람들은 분명 웬 호들갑인가 생각했을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날 소리를 질렀던 시끄럽고 덩치 큰 사람이 저기 날아오르고 있는 저 로켓의 엔진에 불꽃을 가장 많이 붙여본 사람 중 한명이기 때문이다.
이런 필자에게도 시험설비의 후류덕트(시험설비 보호를 위해 로켓의 소음과 플룸을 억제하는 장치)를 통해서만 봤던 짤막한 불기둥이 아닌, 동체보다 더 긴 플룸(로켓노즐을 통해 분출된 고온, 고속의 배기가스)을 내뿜으며 푸른 하늘로 날아오르는 시험발사체의 모습은 전율과 감동 그 자체였다. 원래는 시험발사체를 같이 개발한 동료들과 함께 발사에 참여할 예정이었지만, 집안 사정상 빠져야 했다.
하지만 발사 장면을 놓칠 수는 없었다. 부모님까지 모시고 고흥에 내려와 멀리서나마 발사 장면을 지켜봤다. 돌이켜보면 이는 필자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 중 하나였다.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 모두가 함께 고생해서 완성한 75t급 액체엔진 시험발사체인데, 그 성공적인 발사를 두 눈에 담지 못했다면 천추의 한이 됐을 것이다.
시험평가 위해 시험설비 구축부터 시작
시험발사체가 날아오르기까지 정말 많은 사람들이 땀과 눈물을 흘려야 했다. 누리호의 완성을 위해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구성품은 없지만, 여기서는 필자가 속한 발사체엔진개발단 엔진시험평가팀 얘기를 해보겠다.
2021년 발사 예정인 누리호에는 총 6개의 액체로켓엔진이 들어가는데, 1단에는 75t급 지상엔진 4기, 2단에는 75t급 고공엔진 1기, 3단에는 7t급 고공엔진 1기가 배치된다. 이번 시험발사는 75t급 엔진의 비행성능 확인이 목적이었던 만큼, 원래 75t급 고공엔진 1기가 탑재되는 2단부 기체에 75t급 지상엔진을 장착해 시험발사체로 썼다.
액체엔진에 들어가는 부품은 크게 연소기, 가스발생기, 터보펌프, 각종 밸브들로 나눌 수 있다. 용어들이 생소할 수 있으니 친숙한 자동차 엔진에 대입해 생각을 해보자. 자동차 엔진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엔진에 연료를 공급하는 연료펌프(로켓의 터보펌프)가 작동해야 한다. 연료펌프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전기를 공급해야 하는데, 이는 엔진에 벨트로 연결된 발전기(로켓의 가스발생기)가 담당을 한다.
한 가지 아이러니한 사실은, 자동차 엔진의 발전기나 로켓 액체엔진의 가스발생기 모두 엔진 시스템의 출력을 일부 사용하기 때문에 엔진 성능을 저해하는 원인 부품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이렇게 자동차 엔진에 공급된 연료는 흡입, 압축, 폭발, 배기가 이뤄지는 실린더블록(로켓의 연소기)으로 공급돼 최종적으로 자동차(발사체)를 움직일 수 있는 동력이 엔진에서 발생하게 된다.
필자는 2013년 12월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 입사했는데, 당시 배치된 팀 이름은 ‘추진시험평가팀’이었다. 연소기, 가스발생기, 터보펌프, 액체엔진, 그리고 발사체까지 모두 시험하고 평가하기 위해 구성된 팀이었다. 그런데 팀에 배정된 뒤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다. 바로 시험설비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우리 팀은 부품들 각각을 시험할 시험설비를 직접 만들어야 했다.
다행히 필자는 이 시험설비들의 설계가 거의 마무리돼 구축만 남은 시점에 입사했다. 연소기 연소부터 터보펌프 실매질(케로신, 액체산소 등 로켓에 실제로 들어가는 추진제) 시험, 엔진 지상 연소, 엔진 고공 연소, 3단 엔진 연소, 추진기관 종합시험까지. 국내 최초로 발사체 시험설비 6개를 설계하고 구축하는 엄청난 역사의 현장에서 일하게 된 것이다.
우리 팀은 과학로켓 ‘KSR-Ⅲ’부터 나로호까지 액체로켓엔진 개발에 정통한 베테랑 연구원 7명에, 2012년 가을부터 2015년 여름까지 입사한 30대 초중반 석·박사 연구원 10명으로 이뤄졌다. 이 10명의 새내기 연구원들은 대부분 엑체로켓엔진 시험설비 개발 같은 대형 사업이 처음이었다.
1초에 연료 100L를 100기압으로 공급
팀 업무는 주로 연구보다는 시험설비 건설현장에서 시험설비를 설치하는 업무에 집중됐다. 매일 안전모를 쓰고 안전화를 신은 채 도면을 들고 현장을 분주히 따라다녀야 했다. 설비구축 일정은 다가오는데, 악재가 여기저기서 발생했다.
한번은 터보펌프 시험설비의 소방 설비가 오작동해서 복도가 물바다가 돼 강제로 물청소를 했다. 또 한번은 협력업체 직원이 센서에 연결된 선을 정리하다가 케이블 타이 대신 센서의 선을 잘라버려 애를 먹었던 적도 있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2014년 7월 7t급 터보펌프의 실매질 시험을 국내 최초로 수행하는 데 성공했다.
안도할 틈도 없이 연소기 연소 시험설비에서 진행하는 75t급 연소기의 최초 연소시험을 위해 모두가 달라붙었다. 연소기 연소시험은 연료와 산화제를 초당 각각 100L, 150L씩 100기압이 넘는 압력으로 공급해야 하는 고난도 실험이었다.
때문에 최초 시험설비 설정을 위해 연구팀은 무척 고생했다. 이 무렵엔 월요일 아침에 고흥으로 내려갔다가, 토요일 새벽 대전 본원에 겨우 도착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이런 팀원들의 고생 덕분에 2014년 10월 75t급 연소기의 첫 연소시험을 성공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성공의 기쁨도 잠시, 결과를 분석해보니 연소 불안정이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는 대전 본원에서 저압 연소시험을 했을 때는 발견하지 못했던 현상이었다. 원래 작동 환경에서 시험해 이상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시험평가의 목적이긴 하지만, 처음부터 액체로켓엔진 개발의 최대 난적을 만난 것이다.
그렇게 연소 불안정이라는 커다란 숙제를 짊어진 채, 이번에는 3단 엔진 연소 시험설비라는 새로운 과제를 맞아야 했다. 한국형발사체(누리호) 사업 1단계의 성공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3단에 들어갈 7t급 엔진의 연소시험인데, 이에 대한 설비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 일은 지금도 필자의 머릿속에 가장 고생했던 순간으로 생생히 각인돼 있다.
연소기와 터보펌프 시험설비 구축 당시에는 입사한지 얼마 안 돼 뭘 해야 할지도 잘 모르는 상태로 일정에 따라 정신없이 움직였다. 하지만 3단 엔진 연소 시험설비를 준비할 무렵에는 제어시스템 부분의 설계와 구축 업무를 조금 더 주도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손에 익긴 했지만, 처음 맡은 분야인지라 의욕만 앞서 부품을 망가뜨리기도 했다.
여전히 새벽 2~3시 퇴근이 예사였다. 한번은 새벽에 같이 퇴근하던 선배 연구원이 “현재 월급의 2배쯤 받으면 몰라도, 지금은 너무 힘들다”며 토로했던 일이 생생하다. 그렇게 이번에도 팀원들의 불철주야 노력 끝에 2015년 7월 7t급 액체로켓엔진 시스템의 국내 최초 연소시험에 성공했다.
75t급 8326초 시험 동안 사고 zero
성공의 기쁨도 잠시, 이번에는 엔진 지상 연소시험과 고공 연소시험 설비가 우리 팀을 기다리고 있었다. 엔진 지상 연소시험설비는 1단에 들어가는 75t급 지상용 액체로켓엔진을, 고공 연소 시험설비는 2단에 사용되는 75t 고공용 액체로켓엔진을 시험하는 설비다.
하지만 그동안 연구팀은 연소기, 터보펌프, 3단 엔진 연소시험설비를 구축하면서 설비 구축에 도가 텄고, 이전 시험설비 때보다는 상대적으로 수월히 구축을 완료할 수 있었다.
다만, 연소기 연소시험설비에서 연소 불안정이 발생했던 점이 마음에 걸렸다. 엔진 지상 연소시험설비에서 최초로 시험할 ‘*KRE-075-001G’ 엔진은 연소불안정 현상이 있는 그 연소기를 사용해 조립한 엔진이었기 때문에, 엔진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최대한 많은 시험을 진행하는 것이 핵심 과제였다.
*KRE-075-001G : 시험에 사용된 엔진. KRE은 ‘Korea Rocket Engine’의 약자로 ‘075’는 추력 75t을 뜻하며 ‘001’은 1호 엔진을, ‘G’는 지상(Ground)엔진을 나타낸다.
물론 앞서 수행했던 터보펌프 실매질 시험과 75t급 연소기 시험, 7t급 엔진 시험에서도 폭발 등 대형사고의 위험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75t급 엔진은 이 모든 시험 대상이 동시에 작동하는 최고 난도의 시험이었다.
결국 우리 팀은 또 한 번 이 문제를 풀어냈다. 이 이야기를 다 기록하자면 책 한 권으로도 모자란다. 온갖 우여곡절을 거쳐 2016년 4월 우리 팀은 75t급 액체로켓엔진의 최초 연소시험에 성공했고, 이후 연소 시간을 조금씩 늘려나갔다. 같은 해 7월에는 누리호 1단의 임무시간인 145초 연소시험까지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2015년 7월 7t급 액체로켓엔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75t급 지상엔진 9기, 75t급 고공엔진 1기, 7t급 지상엔진 3기, 7t급 고공엔진 1기의 시험을 수행했다. 놀라운 건 75t급 누적 8326초, 7t급 누적 4275초(75t급 시험발사체 발사일 기준)의 연소시험을 진행하는 동안 단 한 번도 엔진 폭발이나 손상이 없었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연구팀은 이런 엄청난 일정을 수행하면서도, 누리호 이후 고성능 발사체 개발을 위한 9t급 다단연소 액체로켓엔진의 개발까지 병행해, 최근 기술개발검증용 지상엔진의 100초 시험까지 성공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묵묵히 개발에 매진한 팀원들 덕분에 필자도 지금까지 잘 해올 수 있었다. 모두의 노력이 더해져 우주강국 대한민국의 꿈이 순항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