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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노믹스’가 한국에 주는 교훈은?

 

‘잃어버린 20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장기적인 경제 불황을 겪던 일본이 부활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2018년 3분기 일본의 경제 성장률은 3.0%를 기록했으며(분기 성장률을 연간 수치로 환산한 ‘연율’ 기준), 전분기 대비 0.7% 성장했다. 노동시장의 여건도 확연하게 개선돼, 지난 5월 일본의 실업률은 2.2%로 26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하락했다. 일본 경제는 어떻게 이런 호황을 누리게 됐는지, 한국 경제에 시사하는 점은 무엇인지 정리했다.

 

최근 일본 경제가 강한 회복세를 보이는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아베노믹스’ 덕분이다. 2012년 총리가 된 아베 신조(安倍晋三)는 디플레이션 탈출을 가장 핵심적인 목표로 선언했다. 지난 9월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다시 한 번 승리하면서 아베 총리는 2021년 9월까지 장기집권에 성공했다.  

디플레이션이란 물가 상승률이 지속적으로 0%, 혹은 이 수준을 밑도는 등 물가 하락이 지속되는 현상을 일컫는다. 사람들은 흔히 물가가 오르는 것보다 오르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제품이나 서비스 가격이 오랜 기간 동안 오르지 않으므로 소비심리가 위축되고 이것이 다시 경기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 

 

디플레이션을 촉발하는 원인은 기본적으로 수요 부진이다. 경제의 생산능력에 비해 수요가 지속적으로 부진하고, 생산 설비 감축이 지체될 때 물가는 하락하기 쉽다. 그리고 또 다른 원인으로 환율이 있다. 

 

 

디플레이션에 ‘양적완화’로 대처한 일본 
 

특히 일본에서는 환율이 물가의 지속적인 하락을 유발한 중요한 원인이었다. 달러에 대한 엔화 환율이 하락할 때마다 일본의 소비자물가가 급격히 떨어졌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1990년대 초반으로, 달러에 대한 엔화 환율이 160엔에서 80엔까지 떨어지면서 강력한 디플레이션이 발생했다(아래 그래프). 물론 경기가 급격히 악화된 직접적인 원인은 1990년부터 자산 가격이 폭락한 것이지만, 엔화 강세(달러에 대한 엔화 환율 하락)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렇다면 일본은 엔화 가치가 상승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어떤 행동을 했을까. 힌트는 2001년에 있다. 당시 일본은 달러에 대한 엔화 환율이 100엔에서 130엔 수준으로 급등했는데, 이후 일본 경제는 잠깐이나마 강한 호황을 누렸다. 

 

이유는 2001년 3월부터 2006년 3월까지 일본 중앙은행이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 정책을 시행했기 때문이다. 양적완화란 중앙은행이 금리를 더 이상 내릴 수 없는 한계(제로 금리)에 도달했을 때, 시중에 통화 공급을 늘리기 위해 이미 발행된 채권을 시장에서 직접 매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양적완화 정책이 달러에 대한 엔화 환율을 상승시킬 수 있었던 건, 당시 일본 중앙은행이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0% 이상으로 상승할 때까지 이 정책을 유지한다’는 정책 목표를 강하게 표시했기 때문이다. 이는 쉽게 이야기해,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때까지 정부가 무제한 돈을 푼다는 이야기다(참고로 일본 중앙은행은 1차 양적완화 기간 중 40조 엔 규모의 채권 매입을 단행했다). 

 

그러면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일본 채권에 투자할 매력이 떨어진다. 채권은 일정 기간 이후에 돈을 갚겠다는 일종의 차용증서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실질적인 이자율이 떨어진다. 이 정책은 2006년 3월까지 실행됐다. 

 

 

그런데 2012년 말 아베 총리가 임명한 새로운 일본은행 총재 구로다 하루히코(黒田東彦)는 또 한 번의 양적완화를 단행했다. 구로다 총재는 채권뿐만 아니라 주식까지 무제한 매입하는 정책을 펼쳤다.  

 

그 결과, 2012년 말 78엔 전후였던 달러에 대한 엔화 환율은 2016년 120엔까지 상승했다. 더 나아가 일본의 대표적인 주가지수인 닛케이225는 2012년 9월 말 9000포인트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2018년 9월 말에는 2만4000포인트를 돌파하는 데 성공했다. 

 

 

 ‘아베노믹스’의 결정적 한계
 

물론 아베노믹스에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강력한 통화 공급 확대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이 아직까지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2012년 말 일본 중앙은행의 총 자산 규모는 158조 엔에 불과했지만 2018년 9월 말 545조 엔까지 부풀어 올랐다. 그러나 같은 기간 일본의 소비자물가 지수는 95.8%에서 101.6%로 6%p가량 상승하는 데 그쳤다. 

 

다시 말해 시장에 거의 400조 엔(약 4000조 원) 가까운 거액을 투입하고 환율을 50%가량 인상했음에도 불구하고, 물가는 1년에 1%씩도 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2014년 4월 소비세가 5%에서 8%로 인상되면서 일시적인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던 것을 감안하면 물가가 1년에 0.5%도 상승하지 않은 셈이 된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을까.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일본 사람들의 생활 패턴이 디플레이션 환경에 맞춰져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원인으로 보인다. 주식이나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고 있지만, 20년 넘게 고정된 가격표를 보던 습관을 공급자나 소비자 모두 바꿀 용기가 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용기 부족’ 현상은 일본의 국가 경쟁력이 약화돼온 추세와도 관련이 깊다.

 

미국의 정보통신(IT) 기업 아마존이나 월마트 같은 유통 기업들은 다양한 채널을 통해 제품을 조달하며, 환율변동 등의 요인으로 제품 가격이 변화할 가능성이 높을 때에는 탄력적으로 제품 가격을 수정한다. 

 

그러나 일본 기업에서는 이런 태도를 찾아보기 어렵다. 1990년 이후 자산 가격이 폭락하면서 상당수의 기업이 피해를 입은 데다, 일본 정부가 당장의 경기 회복에만 재정 지출을 집중했기 때문이다. 먼 미래의 경제 성장을 위한 투자를 게을리했던 것이 지금 일본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당장 시계를 10년 혹은 20년 전으로 돌려봐도, 후지쯔나 산요 등 일본의 전자기업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지금은 이들 중 그때의 영광을 유지하고 있는 기업을 찾기 힘들다. 

 

그 결과 일본의 소비자들은 다른 선진국 소비자들에 비해 많은 정보통신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예를 들어 상업용 전화의 경우 기본요금을 제외하고는 모든 항목에서 비용이 미국의 2~3배 수준이며, 국제통화는 9.5배, 국제전용 회선도 8배 이상 비싸다. 미국이나 한국 등 경쟁국이 적극적인 투자를 통해 정보통신산업에서 뛰어가는 동안, 일본은 폐쇄된 내수시장에서 투자 없이 정체된 기업들을 양산했던 탓이다. 

 

 

소비심리 위축된 한국에 주는 교훈 
 

정리하자면 1990년대 이후 세계적으로 정보통신 혁명이 본격화될 때 일본은 이를 쫓아가지 못했고, 일본 기업들이 거대한 내수시장에서 안주하며 경쟁력을 잃어버린 것은 일본 물가가 상승하는 데 큰 부담을 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베 정부는 생산성 향상을 위한 정책을 시행하겠다고 공언하며 유연한 가격표와 정보통신 혁명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노력 중이다. 

 

 

일본 정부가 어떤 식으로 경기를 부양하고, 또 어떻게 경제주체의 비관론을 꺾을 수 있었는지에 대해 한국 정부도 면밀하게 연구할 필요가 있다. 물론 한국은 일본과 달리 인플레이션 압력이 존재하고 외환시장도 안정적이다. 그러나 소비심리와 투자심리가 위축되는 현상이 장기화되고 있는 만큼, 일본의 경험은 한국에게 반면교사(反面敎師)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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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홍춘욱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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