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0일 미국항공주우주국(NASA)은 케플러(Kepler) 우주망원경이 연료를 모두 소진했다는 신호를 수신했다며 케플러의 ‘은퇴’를 공식 발표했다. 2009년 3월 미국 플로리다주 케네디우주센터에서 ‘델타II’ 로켓에 실려 발사된 지 9년 7개월 23일 만이다. 케플러라는 이름은 광학망원경 연구와 천체물리학의 선구자로 불리는 17세기 독일의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에서 따왔다.
케플러 우주망원경은 그간 지구에서 약 6500만km 떨어진 지점에서 태양궤도를 따라 372.5일 주기로 공전하며 외계행성을 탐색해왔다. 외계행성은 태양계 바깥에 있는 행성 가운데 지구처럼 암석으로 이뤄진 행성을 말한다.
케플러 우주망원경은 NASA의 첫 ‘행성 사냥꾼(planet hunter)’이라는 별명답게 지금까지 항성 53만506개와 외계행성 2662개, 초신성 61개를 찾아냈다. 특히 지구와 조건이 비슷한 외계행성을 찾아내며 우주에 인류 이외의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을 더욱 높였다.
160km 밖 벼룩 찾아낼 만큼 밝은 눈 탑재
케플러 우주망원경은 지름 1m 망원경과 225만 화소의 전하결합소자(CCD) 42개를 장착해 총 9500만 화소에 이를 만큼 ‘눈’이 밝다. 우주의 한 지점을 수개월 이상 바라보면서 항성이 내는 빛의 밝기가 어떻게 변하는지 관측하는 방식으로 외계행성을 찾았다.
태양과 같은 항성은 핵융합을 통해 스스로 빛을 낸다. 그래서 이런 항성 앞으로 행성이 지나가면 빛이 일부 차단되면서 항성이 깜빡거리는 것처럼 보인다. 케플러 우주망원경은 이 현상을 포착해 그 항성을 공전하는 행성이 있는지 알아냈다. 또한 이 현상이 얼마나 지속되는지, 빛이 얼마만큼 감소하는지 관측해 행성의 크기와 궤도, 주기 등을 계산했다.
케플러 우주망원경에 대한 구상은 1980년대 처음 나왔다. 당시 NASA 에임스연구센터 수석연구원이었던 윌리엄 보루키 박사는 10월 30일 진행된 긴급 전화회의(텔레콘퍼런스)에서 “케플러 우주망원경이 외계행성을 찾는 일은 자동차가 전조등을 켜고 100마일(약 160km) 떨어진 곳에서 기어 다니는 벼룩을 찾는 것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케플러 우주망원경은 발사 직후 6주간 관측한 데이터를 지구에 전송했다. NASA 과학자들은 이 데이터를 분석해 외계행성 5개를 찾아 각각 ‘케플러-4b’ ‘케플러-5b’ ‘케플러-6b’ ‘케플러-7b’ ‘케플러-8b’라고 이름 붙였다. 이들 외계행성은 크기가 해왕성과 비슷하고, 공전주기가 약 3일 정도이며, 항성과 가까워 1200도가 넘을 만큼 뜨거웠다.
이를 시작으로 케플러 우주망원경은 이전까지 확인되지 않았던 외계행성에 대한 수많은 정보를 관측해 지구로 보냈다. 케플러 우주망원경은 인류가 지금까지 찾은 외계행성의 70%를 발견했고, 데이터를 678GB(기가바이트)나 수집하는 성과를 올렸다. 이 데이터를 활용해 과학자들이 출간한 논문만 2946편에 이른다.
보루키 박사는 “케플러 우주망원경을 통해 이전까지 알 수 없었던 새로운 사실을 찾아냈고, 예상보다 더 놀라운 결과를 얻었다”며 “우리은하에는 별보다 행성이 훨씬 더 많고, 행성의 종류도 다양하며, 그 중 상당수가 지구와 흡사하다”고 말했다.
케플러 우주망원경이 찾은 외계행성 중에는 크기가 목성만 하지만 태양계의 수성처럼 항성과 매우 가까운 것(케플러-76b, 케플러-447b 등)도 있었고, 해왕성만 한 행성과 위성(케플러-1625b와 케플러-1625bi)도 있었다.
우주에서 가장 흔한 지구형 행성이 지구보다 크고 해왕성보다는 작다는 사실도 케플러 우주망원경을 통해 처음 확인됐다. 또 흥미롭게도 태양계에는 이만한 크기의 지구형 행성이 없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케플러 우주망원경은 특히 ‘골디락스 영역’에 포함된 행성에 주목해왔다. 골디락스 영역은 항성으로부터 행성까지의 거리가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범위를 뜻한다. 즉, 기온이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아 골디락스 영역에 속한 외계행성에는 생명체가 존재할 확률이 높다.
케플러 우주망원경이 2009년 5월 골디락스 영역에서 최초로 발견한 ‘케플러-22b’는 지구로부터 약 600광년 떨어져 있는 항성인 ‘케플러-22’를 290일 주기로 공전하는 행성이다. 이 행성은 지구보다 2.4배 크고, 36배 무거우며, 표면 온도는 약 15.5도로 따뜻한 것으로 분석됐다.
2013년 잠들 뻔, 태양광 압력으로 부활
케플러 우주망원경이 그간 ‘꽃길’만 걸었던 것은 아니다. 외계행성을 추적하려면 망원경의 자세를 안정적으로 제어해야 하는데, 2013년 5월 이를 담당하는 반작용 휠 4개 중 2개가 고장나버린 것이다. 전문가들이 3개월을 매달렸지만 복구하는 데 실패했다.
다행히 같은 해 11월, NASA 전문가들은 고장 난 반작용 휠 2개를 대신해 케플러 우주망원경의 자세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방법을 찾아냈다. 태양이 뿜어내는 광자의 압력을 이용해 망원경을 고정시키겠다는 계획이었다.
케플러 우주망원경에는 태양전지판이 달려 있고, 태양전지판이 태양광 압력을 받을 때 마치 손으로 연필을 잡는 것처럼 망원경을 제어하게 했다. 케플러 우주망원경이 한 번 태양광 압력을 받으면 약 83일 동안 자세를 고정할 수 있었다.
은퇴 위기를 넘긴 케플러 우주망원경은 ‘K2’로 불리는 새로운 임무를 이어나갔다. 케플러 우주망원경은 K2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외계행성 탐사 임무도 19차례나 추가로 진행했다.
최근까지도 케플러 우주망원경은 외계행성 탐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지구에 보낸 데이터는 8월 말부터 10월 19일까지 물병자리에 있는 별 3만여 개와 은하를 관측한 자료였다.
이를 토대로 NASA 과학자들은 밤하늘에 떠 있는 천체의 20~50%가 지구와 크기가 비슷하며, 지구처럼 암석으로 이뤄져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심지어 이 중 상당수의 표면에는 물(액체)이 고여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우주에 인류가 아닌 다른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앨리슨 혹스 NASA 에임스연구센터 박사는 “케플러 우주망원경을 통해 광활한 우주 안에서 지구의 위치를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케플러 이어 ‘테스’ 활동 시작
케플러 우주망원경의 임무는 끝났지만, 외계행성 탐색은 계속된다. NASA는 케플러 우주망원경의 뒤를 이을 행성 사냥꾼으로 올해 4월 미국 플로리다주 케네디우주센터에서 외계행성 탐색 망원경인 ‘테스(TESS·Transiting Exoplanet Survey Satellite)’를 발사했다.
펠리샤 추 NASA 대변인은 과학동아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케플러 우주망원경은 우주의 약 4%인 좁은 범위를 관측했고, 관측된 외계행성 대부분이 300~3000광년 떨어져 있어 후속 연구를 하기에는 너무 희미하다는 한계가 있다”며 “테스는 지구를 13.7일마다 공전하며 이보다 20배가량 넓은, 우주의 약 85%를 스캔할 수 있어 허블이나 스피처 등 우주망원경과 함께 활용해 30~300광년으로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는 외계행성을 탐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테스는 올해 8월 처음으로 관측 이미지를 지구로 전송했고, 9월에는 외계행성 2개를 발견했다. 이외에도 NASA는 2021년 ‘제임스웹 우주망원경(JWST)’을 발사하고, 2020년대 중반에는 ‘광각 적외선 우주망원경(WFIRST)’ 등을 발사해 외계행성 탐색을 지속할 계획이다.
케플러 우주망원경이 지금까지 찾은 수천 개의 외계행성들은 지금도 우주공간에서 각자 자기별을 돌고 있다. 그리고 케플러 우주망원경도 별이 돼 밤하늘에 안겼다. 수고했어, 케플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