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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쥐라기 공룡, DNA 조작으로 되살릴 수 있나

지상에서 사라진 생물, 혹은 이미 죽어버린 인물을 부활시킬 수 있을까. DNA조작법의 발전은 이같은 상상을 단순한 허구에 그치지 않게 하고 있다. DNA부활은 이론적으로, 그리고 실제로 얼마나 가능한가.

코스타리카 해변 쥐라기 공원… 사흘전 5마리의 시뻘건 쥐새끼가 태어났고 이들은 남은 알 껍질을 사과먹듯 먹어대고 있었다. 해먼드박사는 또다시 실망의 한숨을 내쉬었다. 호박 속의 모기는 누구의 피를 먹었단 말인가? 비웃기라도 하듯 태어난 생쥐들은 하나 둘 둥지를 떠나고 있었다.

이것은 영화 '쥐라기공원'의 공룡제조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시행착오 부분을 필자가 나름대로 각색해 본 것이다. 비록 허구이기는 하나 이 영화의 이론적 배경은 지질학 고생물학 분자생물학적으로 상당히 치밀한 것이 사실이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과연 이러한 일이 가능한가에 대한 질문을 한번쯤 해보았을 것이다.

이에 대한 답은 바로 허구와 현대과학 간의 간격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기회에 현대생물학이 추구하는 DNA의 부활은 어디까지 왔으며 그것이 목적하는 바는 무엇인지 생각해 보도록 하자.

왜 호박 속 모기인가?

생명현상으로서 DNA는 정보의 질적인 차이로 무생물적 정보와 이미 구별되지만 ‘부활'이란 말은 보다 적극적으로 개체성 획득을 전제하고 있다. 먼저 DNA가 있고 그것으로부터 이미 소멸된 개체의 독특한 정보를 발현시키는 과정이 있다는 것이다.

다시 영화 속으로 돌아가 보자. 해먼드 박사는 공룡을 제조하는 과정에서 먼저 공룡의 DNA를 분리 증폭 교정하고 악어알을 이용해 공룡 DNA를 발현시키고자 하였다. 따라서 가장 기초가 되는 전제는 어떻게 공룡의 DNA를 얻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현대 분자생물학에서도 원시생물의 DNA 분리방법은 아직 개발단계에 있다. 고생물 유전자 연구의 권위자인 스반트 파보(Svante Paabo) 박사는 1989년 5천년 된 이집트 미라의 피부와 간조직, 이미 멸종된 주머니여우땅나무늘보의 1만3천년 된 조직으로부터 게놈 DNA를 분리했고, 특정유전자를 PCR(polymerase chain reaction) 기법으로 증폭하는데 성공한 바 있다.

그러나 이것은 조직이 개체로서 박물관에서 훌륭하게 보존된 경우다. 자연상태의 생물 혹은 이보다 훨씬 오래된 고생물의 경우 DNA 분리 자체가 쉽지 않다. 생물이 죽은 뒤 미생물에 의해 DNA가 분해되고, 산화되기 쉬운 지구 대기상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남아있는 DNA 손상이 가속화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생물의 게놈 DNA 추출에는 표본분리를 위한 전략이 필요하다.

영화 속에서 해먼드 박사가 행했던 호박 속 곤충으로부터 공룡의 DNA를 분리하는 방법은 실제로 이용되고 있는 방법이다. 호박은 탄수화물 고분자로서 DNA를 분해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호박 안에 포착된 식물의 씨나 곤충으로부터 성공적으로 게놈 DNA를 분리한 예가 많이 보고되고 있다. 1993년 라울 카노(R. Cano) 박사팀은 1억3천5백만년 전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곤충으로부터 게놈 DNA를 분리하여 리보솜 DNA 서열을 비교한 결과 계통상 바구미의 아종으로 분류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호박 속에 갇히는 생물종에 한계가 있으므로 공룡과 같은 고생물의 유전자를 연구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만일 화석으로부터 게놈 DNA를 분리할 수 있다면 어떨까?
 

영화 쥐라기 공원에 등장한 거대하고 난폭한 육식공룡 티라노사우루스.


화석으로부터의 DNA 분리

고생물 표본의 대명사인 화석은 현존하지 않는 고생물 연구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왔지만 이는 형태학적인 관찰에 한정된 것이었다. 따라서 이들 고생물의 유전정보 분석은 보다 높은 차원의 질문에 답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진정 공룡은 현재의 조류와 파충류의 공통 조상인가? DNA 변화 속도와 진화와의 관계는 옳은 것인가? 지금까지 형태학적으로만 논의돼왔던 진화의 문제를 심도있게 다룰 수 있게 될 것이다.

1994년, 어려서부터 공룡학자의 꿈을 갖고 있었던 우드워드(R. Woodward)는 지질학자인 고등학교 친구와 함께 공룡의 화석으로부터 DNA를 분리하였음을 '네이처'지에 보고했다.

이들은 공룡의 DNA 분리를 위해 8천만년 전 공룡의 뼈를 토탄층에서 찾아냈는데, 이는 소택지의 진흙 속에 빠진 공룡이 산화로부터 차단되면서 토탄층이 되기 위한 고온 고압하에서 화석화가 급속하게 진행되었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수집된 뼈들의 내부조직은 일부 화석화되지 않은 부분이 남아 있었고 절단하여 현미경으로 관찰했을 때 골수세포가 존재함이 확인되었다.

수천번의 PCR 실험 결과 이들은 미토콘드리아 게놈에 암호화되어 있는 시토크롬 b 유전자를 분리할 수 있었고 이를 클로닝하여 염기서열을 결정하였다. 컴퓨터 검색 결과 이 유전자의 염기서열은 매우 독특한 것으로 현재까지 알려진 것들 중에는 동일한 것이 없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조류나 파충류의 시토크롬 b와의 유사성이 60% 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공룡이 파충류와 조류와 가까운 유연관계를 갖는다는 기존의 형태학적 분류 기준에 크게 어긋나는 것으로, 많은 학자들이 반론을 제시하기에 이르렀다.
 

호박속에 갇힌 곤충의 DNA는 오랜 세월이 흘러도 손상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만일 모기가 쥐의 피를 먹었다면

앞서 말한 영화에서는 호박에 갇힌 모기가 한 종류의 공룡의 피를 먹은채 보존된다는 정연한 논리를 전개하고 있으나 만일 그 모기가 여러 종의 공룡피를 흡입했다면, 혹 그것이 쥐의 피였거나 모기내장에 기생하는 박테리아가 섞여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리고 오염없이 순수한 DNA를 분리했을 때 이것이 공룡의 DNA인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우드워드의 실험에도 같은 논리로 반박의 여지가 있어 현재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다. 즉 토탄층에서 수많은 생물의 유전자가 오랜 세월 동안 섞여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드워드 연구진이 분리한 시토크롬 b 염기서열은 아미노산 서열로 환원해보면 조류의 것보다도 사람의 것과 유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공룡의 전성시대에는 인간이 아직 등장하지 않았으니까 위 결과는 실험자로부터의 오염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인간의 것과 유사성이 낮기는 하지만 PCR에 사용되는 중합효소의 오차율을 계산하면 근거있는 반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누가 옳은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어쩌면 결정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한번 생각해 보자. 실험의 실수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 한 그것이 공룡의 DNA가 아니라고 증명할 수 있을까? 그리고 DNA를 개체로 부활시킬 수 없다면 그것이 정말 공룡의 DNA인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우드워드의 공룡 DNA에서 보다 많은 유전자를 검색할 수 있다면 좀더 문제가 명확해지겠지만 DNA가 상당한 손상을 수반하고 있어서 시토크롬 b 유전자 외에는 증폭할 수 없었다.

누가 옳은가의 논의를 떠나 우리는 여기서 DNA 부활 논의의 현실적 문제들을 실감하게 된다. 개체성의 논의는 전체 게놈을 대상으로 해야 하는데 고생물 DNA의 경우 극미량으로 존재하면서 손상을 수반하고 있다는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고생물의 DNA를 과연 분리했는가라는 기초적인 질문에도 대답하기가 난해한 시점인 것같다. 그래서 ‘게놈의 부활은 가능한가?' 라는 질문보다는 오히려 '게놈의 부활이 요구된다'는 것이 현실적인 견해일지도 모른다.
 

화석을 통해 공룡DNA를 복원하려는 연구도 진행중이다. 사진은 쥐라기 공원의 한 장면.


2천5백만년을 넘어 되살려낸 미생물

미생물계에서는 앞서 제기됐던 고생물 부활이 가능하다는 점이 올해 '네이처'지에 보고되었다. 카노 박사팀은 호박속에 갖혀 있던 도미니카 벌의 위장속에서 균주분리를 시도하여 성장하는 한종의 균주를 얻어냈다. 호박의 겉을 소독한 상태에서 분리한 이 균주는 고초균의 일종(Bacillus sphaericus)으로 판명되었다.

이 또한 현대에 생존하는 미생물의 오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이번 경우는 좀 다르다. 이 균은 오늘날의 도미니카 벌의 장기에서도 특이적으로 기생하는 균주이기 때문이다.

이 균주가 같은 것임이 증명된다면 실험실 환경에서 오염가능성이 매우 희박해진다. 균주로부터 리보솜 DNA를 비롯, 여러 유전자의 서열을 컴퓨터 검색한 결과 2천5백만년이나 된 이 균주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미생물이 그토록 오랜 세월을 죽지 않고 견딜 수 있었던 것은 포자라는 특수한 구조 때문이었다. 이들은 온도 등 생활환경이 악화되면 보통 번식생활을 멈추고 포자라는 특수한 체계로 들어간다. 일단 포자상태에 들어가면 포자의 특수방벽이 DNA를 보호해줄 뿐 아니라, 특수한 단백질이 DNA를 잘 포장하여 손상을 막아주게 된다. 이곳에 들어가면 마치 '알라딘 램프'속에 있는 '지니'처럼 잠자코 있다가 환경이 호전되면 다시 옛날의 상태로 돌아가 번식하게 되는 것이다.

이 실험 전에 포자의 수명을 검사한 경우는 파스퇴르 박사가 실험실에 두었던 것을 70년 후에 후배과학자가 살려낸 것이 기록이었다. 이제 포자는 적어도 2천5백만년까지도 살 수 있음을 알게 된 셈이다. 이 경우 중요한 점은 포자에서 보호된 것은 DNA 자체뿐 아니라, DNA에 들어 있는 정보를 단백질로 번역해 내는데 필요한 각종 효소, 아미노산, 에너지 공급 물질 등도 함께 보존되어 있다는 점이다.

즉 생물세포를 특징지우는 그 자체요소가 포자 속에서 같이 보존되었다는 말이다. 만일 이 미생물의 DNA만을 아무런 손상없이 분리해서 보관한다 해도 현대기술로 다시 개체로 재생시킬 수 없음은 물론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생물 그 자체가 필요하니까, 닭과 알의 관계로 생각할 수 있겠다. 누가 먼저일까?

아인슈타인은 부활하지 않는다

만일 공룡을 되살릴 수 있다면 금세기 최고의 천재로 일컬어지는 아인슈타인도 부활시킬 수 있을까. 아인슈타인은 오래 전에 저 세상 사람이 되었지만 그의 뇌가 보존돼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다면 유전자 조작 기술이 발달한 미래에 그의 천재성은 되살릴 수 있지 않겠느냐는 질문도 나올법하다.

인간의 천재성을 결정하는 주요 유전자위가 밝혀지면 현재 보관돼 있는 그의 뇌로부터 게놈 유전자를 분리할 수 있을 것이고 PCR을 통해 이들 유전자를 클로닝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들을 인체배아에 도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이론적으로, 기술적으로 상상이 가능한 것들이다.

문제는 이 경우에 과연 아인슈타인의 유전자를 취입한 신생아가 아인슈타인처럼 천재적인 인간으로 자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만일 아인슈타인의 천재성이 몇개의 유전자에 의하여 결정적으로 만들어진 결과라면, 가능하다 하겠다.

그러나 유전자는 빈공간에서 혼자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다. 아무리 뛰어난 뉴욕 필 교향악단의 클라리넷 연주자라 할지라도 KBS 오케스트라에 와서 연주할 때 다른 연주자와 호흡이 맞지 않는다면 연주회는 실패한 것이 된다. 마찬가지로 유전자도 게놈을 이루는 다른 유전자와의 상호작용이 중요하다.

어떻게 하면 유전자가 잘 조화되는가 하는 문제는 생명현상 전체의 원리를 이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큰 과제다. 또한 한 인간의 천재성이 유익한 곳에 창조적으로 발휘되기 위해서는, 유전자 외에도 환경이라는 필수적인 요소가 있다. 결국 아인슈타인의 DNA로 천재를 만들겠다는 생각은 어리석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DNA 부활기법은 생명현상 연구, 진화의 실상을 파악하는 도구로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1995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김대수 박사과정
  • 신희섭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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